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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다른 시간 1960년대 한 법학도가 바라본 한국의 참모습

김중순 저 | 나남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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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0088084 / 40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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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데모도….”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나 혼자 있기가 무섭습니다.”
“곧 통행금지 시간이 됩니다. 난 여관으로 가서 잘 작정입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 김승옥,〈서울, 1964년 겨울〉

1960년대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은 유명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서울은 갑작스러운 도시화로 인해 생겨난 정체성 상실, 가난, 우울, 고독이 얼어붙은 삭막한 도시이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세 젊은이는 각자의 ‘사연’을 나눈다. 다름 아닌 ‘시대의 고민’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시대’와 ‘사상’이다. 역사적 격동기에 부유하는 인간 군상은 배경일 뿐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것이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의 전부인가?” “서울을 벗어난 다른 지방의 정서와 문화는 어떠했을까?” “젊은 지식인들 이외의 다양한 연령대의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은 어떠했을까?”
문학과 역사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과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진정한 시대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다양한 지역과 계층, 연령을 아우르는 좀더 폭넓은 시선이 필요하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도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희(古稀)가 지난 원로 인류학자이자 대학총장인 저자가 자신의 뜨겁던 젊은 날의 기록이자 한 시대의 증언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기고자 오랜 시간의 숙고를 거쳐 반세기가 지난 오늘 펴낸 책이 바로《같은 공간, 다른 시간: 1960년대 한 법학도가 바라본 한국의 참모습》이다.

공간을 넘고 시간을 달리는 기억의 숲에서 만나는
1960년대 우리 산하와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도시화, 경제개발, 민주화 운동 등 정책과 사상의 흐름으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이러한 추상적 이해에서 놓치기 쉬운 그 시절 우리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963년 10월부터 1965년 6월까지 대학원생 신분으로 법의식 조사*를 위해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소양강에 이르기까지 전국 자연부락 500여 마을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우리 산하와 서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국적인 아열대 섬 제주에서 접한 아름다운 다도해와 강인한 해녀들, 낭만의 항도 목포에서 만난 넉넉한 인심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토박이 처녀, ‘병풍 너머’ 인터뷰를 요구하던 괴산 양반마을의 할아버지, 울산 바닷가 마을의 자연을 닮은 구릿빛 사나이와 해맑은 아낙네, 부산 전차역을 아버지의 ‘직장’으로 소개하던 천진난만한 지게꾼의 어린 딸,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소 건설을 홍보하며 설레여 하던 인제의 버스차장….
그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도 소박한 꿈과 진솔한 고민을 품고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 ‘나그네’이자 ‘정체불명의 사나이’인 저자는 때론 간첩으로 오해받아 문전박대의 설움도 겪고 때로는 나라에서 시찰 나온 ‘높으신 분’으로 오해받아 대접받기도 했지만, 마을을 떠날 때쯤이면 아름다운 풍광과 살가운 인심에 물들어 발걸음을 떼기 힘들 때가 많았다.
7백여 일의 반도기행은 그렇게 아쉬움 속에서 끝났다.

그리고 반세기가 흘렀다. 가난한 대학원생이던 저자가 권위 있는 인류학자이자 대학총장이 되는 동안 우리의 땅과 그 속에 흐르는 삶도 변하였다. 오랜 세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한 저자는 변화한 고국의 강산도 보고 젊은 날의 추억도 떠올리기 위해 ‘그 시절, 그 공간’을 다시 찾는다. 두 번째 여행에서 만난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저자의 발길을 따라 우리 땅 곳곳을 걸으며, 이 땅의 아름다움에, 민초들의 삶의 향기에, 그리고 모든 변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보자.

* 저자는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로 순직한 고(古) 함병춘 박사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고 밝혔다.
법의식 조사는 함 박사가 연세대 교수 시절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저자 소개

김중순은 연세대와 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2001년 귀국하기 전까지 미국 테네시대학에서 인류학 조교수, 부교수, 종신직 정교수, 그리고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려사이버대 총장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고려대, 고려사이버대 및 중앙중․고등학교)의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Way Back into Korea, Voices of Foreign Brides, Kimchi and IT, One Anthropologist, Two Worlds, Anthropological Studies of Korea by Westerners, A Korean Nationalist Entrepreneur, Japanese Industry in the American South, The Culture of Korean Industry, Faithful Endurance, An Asian Anthropologist in the South,《문화를 알면 경영전략이 선다》등이 있다. 1998년에는 여러 저서를 통해 한국을 바르게 소개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인촌상’을 수상했다. 2007년 이래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는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2014년부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책 속에서

7천 피트 상공에서 보기가 아깝고 가까이 다가앉아 주옥같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가끔 보이는 섬의 초가지붕 아래에는 알뜰한 다도해의 서정을 지닌 마음씨 고운 소녀가 해풍이 밀고 간 언저리에 서서 소라의 그리움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반도에서 분가하여 딴살림을 하는 다도해에는 어디에든 육지와 다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기창(機窓) 너머 안개로 ‘커튼’을 두른 검은 산이 가까스로 보였다. 다도해를 지난 지 한참을 지났으니 제주도에 가깝게 왔을 것이고, 멀리서 보이는 그 산이 바로 한라산임에 틀림없었다.
― 39~40쪽, ‘‘늘 봄’ 같은 제주와의 첫 만남’ 중에서

K양이 안내해 준 목포보다는 그녀가 묘사한 목포가 훨씬 더 정감이 갔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자기가 근무하는 X-ray실의 필름을 싸는 오렌지색 종이에 쓴 글을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 글이 내 필드노트에 남아 있어서 그 일부를 옮겨 본다.
목포 가시내들 고동색 피부를 갖고 기름기 바랜 머리털과 풍만한 유방을 가졌소. 갯내가 밴 얼굴엔 언제고 쾌활한 웃음이 머물고 있고, 때로는 담배연기에 젖어 있기도 하며, 또 때로는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술’에 취해 있기도 하오.…그 후 몇몇은 고향을 뛰쳐나갔소. 그리고는 고향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오.
―95~96쪽, ‘미련을 남긴 목포’ 중에서

이번에는 젊은 아주머니의 차례였다. 바다로 향한 아담한 집은 마루가 깨끗하고 바다로 향한 전망이 시원했다. 마루를 가로질러 매어 놓은 요람 위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기를 깨울세라 조심조심 얘기를 나누었다. 바다를 마주 대하고 사는 사람 같지 않게 얼굴색이 투명하고 깨끗한 여인이었다.
소매 없는 겉저고리인 소데나시 차림이라 좀 부끄러운지 시선은 그 넓은 바다로 향했다. 젊은 외간 남자와 마주 보기가 민망하고 수줍은 듯한 태도였다. 꾸밈없이 소박한 차림이 그토록 매력적인 줄 처음 알았다.
파도는 마을 둘레에 부드럽게 선으로 그으며 쓰다듬는 것 같았다.
―317쪽, ‘임의 도하(渡河)를 기원하는 석남사 여신도’ 중에서

“아버지 어디 가셨니?” 캐러멜 덕분인지 그 아이는 대단히 협조적이었다. “우리 아버지예? 직장에 가셨는데예.”
“직장이 어딘데?” “내 따라 오이소.”아버지의 직장으로 나를 안내하겠다는 것이었다.
한참 고부랑길을 돌아 전차표 파는 가게 옆에 다다르자 꼬마아이는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부지예!”
그 소리에 한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일어섰다. 그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인 듯했다. 꼬마가 이야기했던 아버지의 ‘직업’은 날품팔이 지게꾼이었고, ‘직장’은 전차역 앞 길가였던 것이다.
그는 마침 일거리가 없어서 지게 위에서 낮잠 한숨을 자는 중이었는데 꼬마 딸에게 들켜 민망한 기색이었다.
―326~327쪽, ‘해운대 모래에는 발자국만 남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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