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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절로 가는 길

고원영 저 | 홍반장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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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354238 / 476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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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한국의 절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오래되고 더 깊은 명상을 제공하는 길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저자는 ‘저 절로 가는 길’을 찾아 도반들을 모아 길을 나선다. 도반들이 모이는 이름은 ‘서울불교산악회’와 ‘저절로가는길’. 사람들이 ‘저 절로 가는’ 목적이 절에 도착해서가 아니라 ‘그 길을 가는 동안 저절로 해결되면 더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걷기 모임의 이름을 ‘저절로가는길’로 지었다. 그러기를 7년, 700여 곳의 절을 탐방, 순례, 참배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글들 중 일부를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는 서른 여섯 개의 절에 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찾아가는 절들은 서울과 수도권, 전남, 경남, 강원까지 골고루 아우르고 있지만, 그것 외에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택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저자도 설명하지 못하리라. 조계사, 봉원사, 상원사 등 누구나 아는 유명한 절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찾아가는 대부분의 절들은 금선사, 일락사, 불갑사 처럼, 특별히 기도처를 찾아다니는 신심깊은 불자들이나 부근에 사는 주민이 아니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자신이 불자이고, 절에 도착하면 도반들의 법회를 인도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범위를 불교 이야기에 한정짓지 않는다. 저 절로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느껴주고 그들의 소원을 이루고 고민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준다고 생각되면 이야기의 소재가 불교나 부처가 아니라고 망설이지 않는다.

대문이 닫힌 성벽을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뛰어넘는 출가에서부터, 불붙지 않던 장작이 마하가섭에게 관 속에 있던 부처가 발을 내밀어 보여 준 뒤에야 활활 타오른 다비에 이르기까지 부처의 일대기와 사상이 띄엄 띄엄 나타나고, 경허 아래서 함께 공부하던 수월과 만공의 일화, 그리고 법정스님의 맏상좌였던 덕조스님의 근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교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어느 날 소수서원을 나와 국망봉 아래에 있는 석륜사를 찾아가서 소백산을 샅샅이 유람할 요량으로 거기서 사흘을 머물렀던 퇴계 같은 유학자와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북한강변의 본가로 돌아와 어릴 때 오르 내리던 운길산을 바라보며 늙어 기력없음을 슬퍼하는 시를 지었던 다산 정약용, 1890년에 깎아지는 벼랑길로 북한산 중흥사를 찾아갔던 기록을 남겼던 영국 여행가 아놀드 새비지 랜도어, 그리고 다산 유배길 중 ‘뿌리의 길’을 시를 지어 찬탄한 정호승 시인까지 종교와 시대를 뛰어 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저 절로 가는 길’을 걷는 저자의 머리 속에 동행한다.

부처와 다산 같은 역사적 인물들 만이 아니다. 그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는 더 중요한 등장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늦게 일어났다면서, 지하철 노조가 파업했다면서, 휴대폰 액정이 깨져 시간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면서 제각각 지각한 이유를 둘러대고, 목정굴 안내판 앞에서는 누군가 개탄조로 “내가 요즘 산에 다니면서 죽기 살기로 살 빼는 이유가 뭔지 압니까? 울 마누라가 무겁다 캅니더. 지가 올라오면 될낀데,”하고 운을 떼면 그 말을 받아 “와아, 아직 밑에 있나베? 울 마눌은 벌써 올라와 버렸는대. 그 육중한 몸매로 말이시. 오늘은 정말 죽인다, 이래야 살아남아요. 천장에 도배 새로 해야겠네, 이랬다간 크게 다칩니다” 대꾸하고, 그 말에 콩 자루가 터진 듯 와르르 웃음을 쏟아내는 도반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함께 저 절을 찾아가는 길이 마냥 이처럼 만만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내에게 살 빼라는 지청구를 듣지 않겠다는 그런 애교스런 소망을 가진 이들만 동행하는 등산 모임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이야기만 기대하고 이 책을 집는 분들은 예기치 않은 스토리에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오세암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배낭을 내리자 마침내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방사에서 곰팡내가 심하게 풍겨왔다. 방바닥은 습기를 머금었고 이불은 눅눅했다. 순례자들이 서로의 신변을 묻거나 법담을 나누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방사 봉창으로 사선을 그리며 내리는 빗줄기가 보였다. 피로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눈을 감았으나 비가 지붕을 치고 벽을 때리는 소리에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이따금 가벼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봉창을 긁고 지나갔다.
선잠에서 깨어나 봉창을 보니 빗줄기가 수직을 긋고 있었다.
…
새벽녘 봉정암으로 떠날 채비였던 사람들은 빗줄기를 보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세암까지 왔으니 내는 직여도 봉정암에 갈랍니다. 봉정암 갈라꼬 일년을 기다렸어예.”
경상도 노보살을 필두로 의견이 둘로 갈렸다. 봉정암만큼은 가야 한다는 불심론과 비 오는 날은 모든 산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원칙론. 산행대장인 나는 선택해야 했다. 아니, 결정해야 했다.
“갈 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으시지요.”
사실 나는 간밤에도 그랬고 새벽녘에도 순례자들 앞에서 산행을 포기하자는, 설득력 있는 말을 준비했었다.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경상도 보살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무엇에 홀린 듯했다.
봉정암행을 포기한 사람들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얼굴은 밝지 않았다. 몇몇은 돌아서면서 혀를 찼다.
“아무리 봉정암이지만 이 비에 뭔 산행이여. 산행대장이면 말려야지.”
그들이 백담사로 가고 나서도 남은 사람들은 빗줄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걸음을 떼놓지 않았다. 각자 무얼 생각했을까. 나는 숲에서 수행하는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우기 때면 나뭇가지나 풀을 엮어 만든 움집에 들어선다는 안거安居를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 속에 들어 앉아 선정에 들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생각에 잠긴 눈꺼풀 밖에서 내렸던 천오백 년 전의 비를 상상하며 나는 천천히 우비를 입었다.
…
나는 오세암 공양간 옆에 표시된 이정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준비라도 한 듯 나머지 사람들도 내 뒤를 따랐다. 그중에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기를 봉정암 사리탑에 간절히 기도하려고 뒤따르는 학부모도 있었다.
…
시냇물을 건너 숲길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진다. 역시 설악산이다. 큰 산은 일정한 기후와 온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산에서는 몰아쳐 내리는 소나기를 만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물론 내리기 전에 몇 차례 징후를 보인다. 먼저 먼지와 낙엽을 날리며 지나는 바람이 공기를 긴장시킨다. 숲이 슬그머니 몸을 뒤챈다. 이윽고 빗줄기가 잎사귀에 쏴아 쏴, 내리꽂히고, 땅에 깔린 돌멩이들도 덩달아 들썩일 때 내 눈은 허둥지둥 피할 곳을 더듬고, 내 손은 배낭 속에 든 우비를 뒤지게 된다.
…
어디만큼 올랐을까. 잠시 다리를 펴고 나무 밑에 쉬는데도 경상도 노보살은 휘어휘어 산길을 오른다. 남들 쉴 때 같이 쉬지 못하는 건 당신의 몸을 알아서이다. …
앞서 가던 경상도 노보살이 하염없이 뒤처지고 있었다. 나는 선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노보살을 부축했다. 노보살이 고맙다면서도 당신의 늙은 몸을 한탄한다.
노보살의 몸도 비에 젖어 있었다. 더 이상 관리되지 않는 살과 뼈가 젖은 옷에 드러나서 제멋대로 덜렁거린다. 살과 뼈가 다른 살림을 차린 모양새이고, 내 집이 아닌 다른 집에 내가 살고 있다고 늙은 몸은 말하고 있었다.
…
오세암을 통해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유난히 구불구불했다. 뒤에서 보니 길이 비구름과 안개를 번갈아 드나드는 것 같았고, 순례자들이 배낭 대신 비구름의 집을 등에 짊어지고 힘겹게 걷는 것 같았다.
…
선두가 봉정암으로 넘어가는 ‘깔딱고개’ 앞에 멈추었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쉬었다가 봉정암으로 갈 요량인가 보았다. 경상도 노보살은 더 참지 못하고 바위에 박은 쇠파이프 손잡이를 두 손에 거머쥔 채 털썩 주저앉았다. 하얗게 세다 못해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져나간 정수리를 보이면서 노보살은 겨우 말했다.
“하이고, 내는 이자 봉정암 올라가삘면 더는 몬 올라가예.”
“그래도 내려가면 생각이 달라지실 걸요.”
내가 웃었지만 노보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감이 아파서 올라왔어예. 영감 저승 가뿔기 전에 부처님께 인사 대신 드릴라꼬예. 전엔 봉정암에 노상 같이 왔지예.”
…
이제 우리는 일어나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사는 일은 얼마나 힘든 고갯길이었나. 그러나 굳이 깔딱고개를 넘어 사리탑에 이르지 않아도 산행대장으로서의 범계를 무릅쓰고 봉정암에 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눈이 밝아지고 가슴이 훤히 열렸다. 나는 비에 젖은 파이프를 움켜준 경상도 노보살의 쪼글쪼글한 손에서 부처를 보았다. 그 순간, 비가 개었다.’

때때로 저자의 순례길에 동행했던 산악인 엄홍길은 이렇게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고원영 작가의 글을 읽으니 작년에 안데스 산맥을 종주하면서 잉카 문명의 발원지를 돌아봤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적도에서 파타고니아까지, 8,000km에 이르는 그 길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로 국경이 갈라졌지만, 국경을 통해 다시 이어지기도 하는 길이었다. 그 기나긴 길에서 75일 동안 숙식을 해가며 걷는 일이 히말라야 등정 못지않게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산을 넘을 때와 마찬가지로 길에서도 삶의 여러 의미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인생이 왜 길에 비유되는지, 종교가 왜 길에서 생겨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잉카문명은 남미의 오랜 신앙이 바탕했으므로 불자인 내게는 자연스레 1,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불교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 가도 절이 있고, 절로 가는 길이 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있지 않겠는가. 그때 내가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평소 불연을 맺어온 고원영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으면서도 우선은 매우 기쁘다.’

저자가 찍은 사진들이 가끔씩 등장해서 저 절로 가는 길의 풍광을 그려보려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힘을 보태준다.

저자 소개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토 전체가 성지순례길임을 깨닫고, 7년 째 순례 중이다. 등산과 걷기여행 모임인 ‘서울불교산악회’와 ‘저절로가는길’ 회원들이 함께 한 700여 차례의 등산과 걷기여행을 통해 전국 각지의 여러 절과 불교유적지를 참배했다. 그 길에 스님, 산악인, 주부, 할머니, 법조인, 시인, 대졸 미취업자, 공무원, 구두닦이 등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사람들이 ‘도반’으로 참여했다. 
2010년 장편소설 ‘나뭇잎 병사’를 발표했다.
Email: rainytrees@naver.com 

책 속에서


1 출가    조계사 가는 길

부처는 칸차카라는 말을 타고 성벽을 넘는다. 부처의 생을 여덟 가지로 표현한 그림 중 유성출가상이 그러하다. 사실은 마부 찬다카가 경비병 몰래 성문을 열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기엔 출가를 단행한 부처의 뜻이 너무 크다.
부처는 서류봉투를 들고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현대인과 달리 거꾸로 집을 나왔다. 빈손으로 집을 나와서야 마음이 편안해졌으니, 거리와 숲이 오히려 집이었다. 싯다르타는 자연에서 배운 진리와 질서로 세상을 뒤바꾼 정신혁명가였다.  
도시, 항상 도시가 문제이다. 모든 고통의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것은 그런데도 도시가 끊임없이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부도시와 위성도시를 거느리는 도시의 팽창은 넝쿨식물처럼 탐욕스럽다. 도시는 이처럼 끊임없는 욕심을 부추기지만 당신을 알고 있다. 시골보다는 도시가 먹고 사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당신, 아니 우리를 통찰하려면 동물과 다름없었던 저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고 해온 일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동국대 김성철 교수는 말한다.

머리를 가다듬고 옷으로 몸을 가려서 그렇지 인간은 동물과 거의 차이가 없다. 매일매일 먹어야 살고, 생각날 때마다 교미한다는 점에서 그저 포유류의 하나일 뿐이다. 모든 야생동물이 아침에 눈을 뜨면 먹이를 찾아 헤매듯이 당신도 이른 아침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도시를 헤매야 한다.

여기에 번뇌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도시를 헤매도 먹이를 얻기 어려울 때가 있다. 배고픔이 모든 야생동물의 보편적 고통이듯이 인간은 늘 ‘먹지 못할 우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이것이 봉투를 들고 집에 가야 하는 사람에게 짐 지워진 가혹한 현실이다. 부처의 출가는 이보다 훨씬 가혹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은 단지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만 생각한다. 그리하여 의문을 품는다.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는데, 싯다르타는 왜 집을 떠나야 했을까?
싯다르타의 출가는 왕자의 지위와 가족, 경작지와 국가가 모두 고통스럽다는 것을 일찌감치 예감한 젊은이로서의 선택이었다. 그는 수많은 부족국가가 몇 개의 고대국가로 재편되는 시기에 살았으며, 그의 나라 카빌라바투는 마가다와 코살라라는 강대국에 낀 약소국이었다.
경전은 약소국 왕자의 불안을 어느 봄, 파종식에 참관한 싯다르타가 가난한 농부와 소, 소가 끄는 쟁기에 달려 나온 벌레, 어디선가 날아와 벌레를 쪼아 먹는 새를 보았다고 기록함으로써 약육강식의 역사를 비유한다. 싯다르타 왕자의 미래는, 그가 누리는 현재의 복락을 오래도록 보장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이 태생적 불안 앞에 팔상도의 하나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 펼쳐진다. 성문 바깥에서 병자와 노인과 주검을 발견한 그때부터 싯다르타의 관심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쏠린다. 왕자는 늙음을 봄으로써 젊음을, 질병을 봄으로써 건강을, 죽음을 봄으로써 삶을 회의했다. 또한, 이 세 가지 슬픔을 잉태한 태어남을 잠부나무 아래에서 회의했다. 잠부나무의 그늘이 왕자의 생각 너머에서 흔들렸다. 중아함경은 깊어가는 싯다르타의 회의를 기록한다.

나라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는 것은 실로 늙는 법이고, 죽는 법이고, 근심 걱정하는 법이고, 더러운 법인데, 까닭 없이 늙는 법, 죽는 법, 근심 걱정하는 법, 더러운 법을 구한다.

어찌해야 생로병사를 회피하는 동시에 추구하는, 이 기묘한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는 이 의문을 출가를 통해 풀어보고자 했으며, 어떻게든 장벽을 뛰어넘으려 기회를 엿보았다. 부처의 출가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오랜 계획의 결과였다. 첫 핏줄의 이름을 라훌라, 장애로 지은 것만 봐도 그렇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이런 아들을 우려하여 서둘러 이웃나라 공주인 야소다라와 결혼시키고, 아들의 별궁에 온갖 산해진미와 기생을 보낸다. 식욕과 음욕으로 장벽을 쌓아 그 안에 아들을 가두려 했다.
결혼에 대해서도 분명히 회의적이었을 그에게서 나는 19세기 문학자 프란츠 카프카가 본다. 결혼이 문학에 장애가 되리라 생각한 카프카는 기차를 타고 시골약혼녀를 찾아가는 대신, 기차화물 편으로 입던 옷을 보낸다. 결혼이란 어차피 삶의 요식행위이므로 껍데기인 옷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학이냐, 결혼이냐. 카프카는 문학을 선택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싯다르타의 선택은 출가였다.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자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부처를 태우고 카필라 성벽을 넘은 칸타카는 출가에의 간절한 염원을 상징한다. 유성출가상은 부처가 오랜 망설임 끝에 현실 세계에서의 장애를 단번에 뛰어넘는 모습이다.
출가수행자가 되리란 부처의 결단은 크고 성스러웠다. 생로병사의 문제를 인간 실존의 문제라 인식했으며, 인류가 안고 있는 보편적 문제를 생로병사로 인식했다. 성문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부처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리라고 선언한다.
큰 뜻을 품고 성 밖으로 나온 부처가 농경과 살육의 들판을 용맹스레 가로질러 미지의 세계로 가는 모습을 2,600여 년 후 사람인 나는 상상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인구가 많고, 훨씬 과학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생로병사에 끄달릴 수밖에 없고,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집을 나선다. 부처를 만나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는 길을 묻고 싶다. 부처는 2,600여 년 전에 죽었는데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을까. 부처의 제자 아난다는 후생에 태어난 사람들이 건넬 질문을 미리 했다.
“이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어찌 부처를 찾으오리까?”
“아난다야, 나를 찾으러 올 때는 너 자신을 등불 삼아 너 자신에 의지하여야 한다. 너 자신 바깥의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너 자신에 전념하라.”
길을 묻는 제자에게 부처는 자등명이라는 마음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마음, 부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지만 그 길처럼 요원하고도 구불구불한 미로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아주 오래전 이 세상에 절을 세우고 그 안에 불상을 앉힌 뜻은 부처에게로 가는 길이 그만큼 멀고 아득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찰순례는 마음 바깥으로 부처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중생의 습기에 물든 우리가 무명에서 벗어나고자 걷는 길이다. 무명은 문명의 다른 이름이다. 도시 문명에서 벗어날수록 무명의 두께는 얇아진다.
그러나 출가자가 아닌 당신은 어딜 가든 단지 가출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일탈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알면 설악산 봉정암이나 여수 향일암에 가야만 부처의 가피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당신은 알아야 한다. 부처를 찾아 너무 먼 길을 가려 할수록 길은 더 멀어지고 미로를 닮아간다는 것을. 당신이 꿈꾸는 부처는 아주 가까운 데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이 답답하고 나를 둘러싼 시멘트벽이 감옥처럼 견고해 보일 때 나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소재 조계사로 간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냐고?  나만의 길이 있다. 나는 우선 혜화문을 출발지로 삼는다. 거기에서 숙정문으로 이어지는 북악산 성곽길을 걷고, 삼청공원을 지나 가회동 언덕을 넘는다. 내가 걷는 그 길을 아름답기로 소문난 문경새재길에 어찌 비교할까만, 그 길에도 우주가 있고, 그 길만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다. 내가 처음 혜화문을 떠나 성북동 산동네로 접어드는 건 어느 봄날이었다. 성곽을 쌓아올린 화강암 벽돌 사이로 푸르게 떠는 풀 한 포기를 나는 보았다. 힌두스탄 대평원에 그늘을 드리운 한 그루 거대한 나무가 그 여린 풀 위에 어른거렸다. 겨울을 이겨낸 잡초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그만 홀로 존귀했다. 
서울성곽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왕이 축성하여 역대 왕들이 개축하거나 수축한 한양도성을 말함이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서울을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성곽으로 이어 수도를 방위하고자 했으니, 역설적이게도 외부 세력을 차단하고자 축성한 성이 길이 된 셈이다. 혜화문에서 시작되는 성곽길은 한 차례 끊어지다 이어지면서 북악산으로 나를 이끌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성벽 너머로 차츰 조망이 트인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라는 성북동에 눈길이 가다가 이내 회색 건물군에 머문다. 평지도 모자라 가까이는 북악산, 멀리는 불암산, 수락산 기슭까지 넝쿨을 뻗은 아파트 군락지를 보는 순간 내가 천착해온 도시에서의 삶이 진저리를 친다.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더 많은 회색 넝쿨들이 여전히 세상을 차지할 기세였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집. 이 집을 얻거나 잃지 않으려고 절절매다시피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집 밖에서도 나는 항상 집을 달팽이처럼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성곽길을 따라 올라가니 성벽에 뚫린 작고 네모진 통로가 보인다. 암문이라 부르는 그 문을 허리를 굽혀 지나간다. 문 바깥에 만해의 심우장(尋牛莊)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처음 심우장을 찾아갔을 때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나라 안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알려진 성북동에 느닷없이 정체를 드러내는 오래된 골목이라니. 지붕이 날아가거나 문짝이 떨어진 집이 한두 채가 아니었고,  깨진 창문으로 얼핏얼핏 가재도구가 보였다. 측량 구역을 표시하는 붉은 페인트 글씨가 담장에 선연했다. 개인택시나 바퀴가 빠진 폐차들이 주차한 공터 아래에는 재개발지역임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언덕 아래에서 마이크 소리가 났다. 과일을 파는 트럭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산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마이크에 입을 댄 장사꾼의 목소리가 무성영화시대의 변사 같았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너스레에 정신을 팔려 어느새 나는 일곱 살 어린이의 걸음으로 골목을 걸었다. 내 집이 심우장인 양.
만해는 총독부가 있는 곳을 등지려고 동북쪽에 창을 냈다. 안채에 들어가서 만해가 내다보았을 창밖 세상을 내다보았다. 거기서도 이내 서울이 아파트에 잠식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파트 군락지의 수많은 창문이 씨 빠진 해바라기의 텅 빈 눈들 같다. 세상에는 총독부가 너무 많구나!
심우장을 나와 다시 성곽길에 따라붙었다. 길은 삼청공원과 숙정문이 내려다보이는 말고개로 이어졌다. 숙정문 부근이나 말고개에서 감사원 언덕으로 내려가는 길에 총을 멘 초병들이 보이고 컬리버50이 하늘을 겨누고 있다. 이런 살풍경 때문인지 숲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삼청동에 사는 사람들은 말한다. 삼청동천(三淸洞天)은 북악산 골짜기뿐 아니라 사대문 안쪽 내사산(內四山)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 중 가장 맑은 물소리라고.
삼청동천, 청계천의 상류인 중학천 부근에는 숨은 듯 존재하고, 존재하는 듯 숨은 절이 하나 있다. 내가 목적지로 삼은 조계사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은 칠보사란 절이다. 이 절의 유래를 묻자 요사채 스님은 잘은 모른다고 했다. 그의 은사인 석주 스님이 1960년 다 쓰러져가는 암자였던 절을 중창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에는 별 특징이 없었다. 석주스님의 한글역경사업을 드러낸 ‘큰법당’이라는 현판도 내겐 그닥 별스럽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절의 대웅전에 기대있는 거목이었다. 그 모습이 조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회화나무보다 몇 배는 웅장했다.
“종로구청 사람들이 그러는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랍니다. 이 절을 지키는 수호신장이지요.”
나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내게 스님이 건넸다. 목소리에는 아까와 달리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수호신장에 붙들린 듯 스님이 요사채로 들어간 뒤에도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조계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굳이 조계사에 가려고 기를 쓰지는 않는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무는 것이 여행자의 기질 아닌가. 그러나 여행자의 기질이란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기도 한 것. 어디로든 가야 한다. 성 밖으로 나섰지만 부처는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던 거 같다. 동쪽으로 무조건 말을 몰아 밤새 세 왕국을 지난 그는 어느 강가에 닿았다. 기록을 보면, 그때까지 마부 찬다카가 싯다르타를 동행했다. 싯다르타는 마부에게 강 이름을 물었다.
“최후의 승리를 뜻하는 아노마입니다.”
“그래 그럼, 나도 아노마가 되리라.”
찬다카와 칸타카를 성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걷기로 결심한 부처는 무소의 뿔처럼 힌두스탄의 대평원을 홀로 가로지른다. 맨발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였다.  어디로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여행의 출발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행위이다. 여행을 꿈꾸는 자여,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선은 그곳을 떠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걷는 길     한성대역 6번 출구 촮 혜화문 촮 심우장 촮 말고개 촮 삼청공원 촮 칠보사 촮
안국선원 촮 선학원 촮 조계사
거리와 시간   7.5km 정도, 3시간 예상

목차

■들어가는 말 ...6

서울의 절길

1. 출가 / 조계사 가는 길 ...14
2. 낮은 데로 임하소서 / 금선사에서 승가사 가는 길 ...30
3. 중생이 절에 가는 법 / 화계사 가는 길 ...46
4. 니사길을 아시나요? / 청룡사 가는 길 ...57
5. 지옥과 극락 사이 / 봉은사 가는 길 ...69
6. 그리움이 찰랑거리는 물병 / 길상사 가는 길 ...78
7. 야만인과 함께 절에 가다 / 문수사 가는 길 ...90
8.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 청계사 가는 길 ...106
9. 여름의 절길 / 진관사에서 삼천사로 가는 길 ...119
10. 달의 길, 용의 길 / 망월사 가는 길 ...132

경기도의 절길

11. 도둑과 미륵이 함께 쓰는 일기 / 칠장사 가는 길 ...146
12. 저절로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 보문사 가는 길 ...158
13. 누가 용을 보았는가? / 신륵사 가는 길 ...166
14. 죽음이 삶을 내려다보는 집 / 수종사 가는 길 ...179
15. 나무 곁을 지나다 / 봉선사 가는 길 ...194

충청도의 절길

16. 산에서 바다를 찾다
/ 일락사와 개심사, 보원사지, 서산마애삼존불 가는 길 ...204
17.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 / 장곡사 가는 길 ...219

전라도의 절길

18. 새해 일출을 보러 가다 / 향일암 가는 길 ...232
19. 삶이 힘겨운 당신, 다산유배길을 걸으시라
/ 다산유배길 걸어 백련사 길 ...244
20. 질마재길에서 피어오르는 신화 / 선운사 가는 길 ...255
21. 누구나 이 절에서 한 소식 얻어 가리라 /
/ 월명암에서 내소사 가는 길 ...268
22. 굴목재길을 걸어 서역에 가다
/ 송광사에서 선암사 가는 길, 혹은 선암사에서 송광사 가는 길 ...281
23. 그리움이 피워낸 길 / 불갑사에서 용천사 가는 길 ...294
24. 달마가 도솔암에 간 까닭은? / 미황사에서 도솔암 가는 길 ...305
25. 손오공도 덕유산을 넘었다 / 백련사 가는 길 ...319

경상도의 절길

26. 꿈에서 깨어나 울다 / 쌍계사 가는 길 ...328
27. 모든 길은 사이에 있다 / 칠암자 가는 길 ...338
28. 도마뱀이 내게 말을 걸어왔네 / 연화사 가는 길 ...347
29.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산이 소백산이다
/ 초암사에서 비로사 가는 소백산자락길 ...359
30. 인문학이 날개를 편 가을산 / 청량산 가는 길 ...369
31. 불국토는 동쪽 나라에 있었다
/ 경주 남산, 삼릉에서 칠불암 가는 길 ...384

강원도의 절길

32. 물속에 절이 있네 / 청평사 가는 길 ...402
33. 바람의 화두 / 보현사 가는 길 ...415
34. 거기에 부처는 없었다
/ 선재길 걸어 오대산 적멸보궁 가는 길 ...427
35. 거울, 겨울 / 유일사에서 망경사 가는 길 ...440
36. 혼자 오르되, 남을 위해 오르는 길 / 봉정암 가는 길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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