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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현순 목사의 아들 피터 현이 기억하는 삼일운동과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

피터 현 저 | 임승준 역 | 한울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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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49857 / 296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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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가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한 ‘가족 서사’이자 색다른 ‘역사 교과서’ 피터 현의 『만세!』는 때로는 저자 개인, 때로는 가족이나 집단 속에서 식민지 조선 민중의 꿈과? 희망, 독립을 위한 헌신과 투쟁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개인’ 속에서 경험과 희망을 재현한 책들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이 지니는 독자성이 아닐까 싶다. _옮긴이의 글 현순 목사의 아들 피터 현이 기억하는 삼일운동과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 이 책은 감독이자 재미 한국인들에 대한 연대기 작가였던 피터 현(P...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가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한 ‘가족 서사’이자 색다른 ‘역사 교과서’ 피터 현의 『만세!』는 때로는 저자 개인, 때로는 가족이나 집단 속에서 식민지 조선 민중의 꿈과 희망, 독립을 위한 헌신과 투쟁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개인’ 속에서 경험과 희망을 재현한 책들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이 지니는 독자성이 아닐까 싶다. _옮긴이의 글 현순 목사의 아들 피터 현이 기억하는 삼일운동과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 이 책은 감독이자 재미 한국인들에 대한 연대기 작가였던 피터 현(Peter Hyun)의 Man Sei!: The Making of a Korean American(1986)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피터 현이라는 이름이 낯선 이들이라도 삼일운동에 적극 참여한 독립운동가 ‘현순(玄楯)’ 목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피터 현은 현순 목사의 장남이다. 최근 한 사학자의 책(『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에서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으로 그려진 앨리스 현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큰누나 앨리스, 작은누나 엘리자베스, 피터 현은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삼일운동 직전의 서울 생활 그리고 그 직후 상하이에서의 망명 생활에 관한 이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피터 현은 일제 식민통치하 한국에서 서서히 자라난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의 아들인 피터 현은 독립의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소규모 한인 혁명가들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은 거의 모두 잊히거나 무시되었기에, 목격자로서 피터 현이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피터 현은 1975년 하와이에서 잠시 귀국해 국립서울현충원에 부모의 유해를 안장하는 행사를 한 후의 감동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가슴 뭉클한 행사 때문에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안장식을 마친 뒤 아내와 나는 버스를 타고 대구, 경주, 부산을 방문하고, 한반도 곳곳을 여행했다. 구불구불한 강을 낀 고속도로 양측의 농촌과 산은 믿기 어려울 만큼 푸르고 아름다웠다. 내게 이 여행은 한국 고대 문화의 역사 무대와 귀중한 유산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들이 더욱 생생해졌다.” 열다섯 살이던 1920년 한국을 떠나 55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피터 현의 심경은 과연 어땠을까? (1945년 미군 통역관으로 서울에 온 적은 있으나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1970년대 근대화를 향해 맥박 치는 한국의 모습은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가 없이는 있을 수 없기에 피터 현으로서는 역사를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만 했을 것이다. “방문한 곳에서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생기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으나,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유산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나쁜 점은 그들이 자신들의 최근 역사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독립운동, 독립 국가로서의 자랑스러운 자긍심을 보존하기 위한 수많은 선조의 투쟁과 희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동포들의 자유를 위한 그들의 불후의 투쟁에 대해 말할 책임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체험하고 목격한 그 이야기를 나는 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가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록한 ‘가족 서사’이자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될 것이다. ‘만세!’는 한국인들을 결집하는 외침이었다 어디서나 한국인들에게 격정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투쟁인 독립운동을 이해할 기회를 가진 서구인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와이, 캘리포니아 그리고 미국 다른 곳에서 한국 이민자들의 삶에 의미와 목표를 주었던 대의였다. 그것은 다른 아시아 집단들의 것과는 매우 다른 이주 경험을 형성했다. 한국인들은 망명 임시 정부를 자유와 높은 이상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만세!’는 그들을 결집하는 외침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한국인들의 정신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간직하기 위한 것이다. 예속, 저항, 적에 대한 증오, 빈곤, 조국을 떠난 고통이라는 보편적 주제들이 소풍, 시 낭송, 설날, 옛날이야기, 신나는 모험 등의 즐거운 장면들과 균형을 유지한다. 저자는 쓰라림이나 상실감이 아니라 재치와 익살로 책을 쓴다. 아버지의 혁명 활동, 어머니의 비전통적인 역할, 대가족이면서도 활기 넘치는 가족 등 모든 것이 그에게 흔치 않으면서도 기억에 남을 어린 시절을 만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어린 시절에 대해 호기롭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출판사 서평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이 책에는 1980년대 초까지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외국인에게 알리고 싶었던 피터 현의 ‘계몽적 소명’이 반영되어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풍습이나 자연환경까지도 외국인처럼 낯설게 바라보아야 가능하다. 피터 현은 ‘첨성대’를 신라의 고도 경주에 천문대로 세워진 화강암 탑, ‘요령 소리’를 애도 노래의 반주, ‘경회루’를 왕이 가장 좋아하던 놀이터인 수상 궁전, ‘색동옷’을 무지개 소맷자락이 있는 전통 아이 옷, ‘약수터’를 바위산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지점, ‘한약’을 매우 진귀한 약초의 쓰디쓴 즙 등으로 표현했다. 이 책 15쪽에 넣은 피터 현의 자필 연설문 사본으로도 알 수 있듯이, 열다섯 살 때 한글 공부를 중단했어도 그는 우리말을 충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이 표현한 것은 현대 한국의 젊은이를 포함해 한국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피터 현이 선택한 서술 방식이라고 본다. 아울러 연극을 한 그가 선택한 무대 장치이자 의상이요 지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그들은 말 위에 높이 올라앉아 마치 한 무리의 분노에 찬 동물들처럼 골목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이 광경을 보고 몸이 얼어붙은 나는 마치 미친개가 사람들 속으로 맹목적으로 내달리듯 긴 칼을 좌우로 휘두르는 것을 꼼짝 없이 바라보았다. 쓰러뜨리는 사람과 쓰러지는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뒤 기마대는 갑자기 말의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방향을 틀어 또다시 군중을 가차 없이 베어나갔다. 그들은 살아 있는 조선인을 전부 칼로 베려고 작정을 한 듯 이러한 동작을 되풀이했다. 깜짝 놀란 사람들에 휩쓸려 나는 조금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나는 살기 위해 내달렸다. 너무나도 겁을 먹은 나는 더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달렸다.”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간 운동의 방대함에 당황했던 일본 경찰은 삼일운동이 발발하고 사흘 째 되던 날부터 진압을 시작했다. 당시 열두 살의 소년으로 그 현장에 있었던 피터 현은 위와 같이 그날의 상황을 묘사했다. 어린 소년을 비롯해 ‘만세!’ 소리에 이끌려 시위에 참가한 평범한 민중들로선 너무나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지적 시선이 아닌 낮은 시선으로 바라본 삼일운동은, 이렇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굴하지 않고 전개된 것이기에 더욱 뜻 깊게 다가온다. “임시 정부의 재원은 계속 줄어들어 최고 지도부조차 버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국 빈민가의 더 싼 곳으로 이사했다. 그랬는데도 우리는 항상 근근이 살아갔다. 엄마가 시장에 가는 횟수가 점점 드물어졌고, 결국 회계 담당자의 집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우리는 하루에 한 끼만 먹었고, 먹을

저자 소개


1906년 하와이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자랐다. 아버지 현순 목사는 일본의 강점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다. 피터가 참여했던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에 그의 가족은, 다른 애국자들과 함께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한 아버지 현순 목사와 합류하기 위해 상하이로 도피했다. 피터가 열일곱 살 때 가족은 다시 하와이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피터는 카우아이(Kauai)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인디애나 드포(DePauw) 대학교에 입학한 피터는 철학과 무대 예술을 전공했고, 이후 미국 연극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뉴욕에 있는 에바 르 갈리엔 시민 레퍼토리 극장의 매니저, 뉴욕 연방 극장의 어린이 극장 감독, 그리고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스튜디오 플레이어스를 조직하고 감독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태평양 극단 소속의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몇 번의 사업을 시도한 후 캘리포니아 옥스나드에 정착해 아시아계 이주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은퇴 후 전업 작가로 활동했으며, 1993년 여든일곱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역자 소개

광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국가인권위원회 등 인권과 관련된 곳에서 일했고, 현재도 인권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책 속에서


“만세! 만세!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베드로야, 그것은 우리가 자유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더는 일본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단다.” (28쪽)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나 자유의 불길은 밝게 타올랐고 조선인들은 그 불길이 꺼지는 것을 거부했다. 온 나라의 지하에 숨어 모든 조선인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시장에 자신들의 농산물을 가져가는 농부, 자신들의 물건을 거리에 내다 파는 노점상, 장돌뱅이, 학생과 선생, 수사와 선교사, 중매쟁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비밀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전단과 신문을 인쇄해 배달하고, 가장 훌륭하게는 돈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속시켰다. (36쪽)

때때로 그녀는 딸 은임을 나와 함께 눕혔다. 아, 얼마나 기쁜가! 솜이불을 덮고 내 손은 천천히 은임에게 다가가 그녀를 만지며, 아주 조심스럽게 그 애의 몸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 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누비이불 속에서 처음으로 소녀의 매혹적인 비밀을 발견했다. (65쪽)

소녀가 이 정중한 인사를 잘하려면 민첩함과 균형감이 있어야 했다. 매우 느리게, 소녀는 무릎을 구부리며 뒤로 넘어지지 않고 바닥까지 몸을 낮춰야 했다. 동시에 손은 다리 옆에 두어야 했는데, 당연히 다리는 손이 천천히 내려와 바닥에 닿을 때까지 헐렁한 치마에 가려져 있었다. 그 뒤 소녀는 머리를 숙이고 손을 아래로 향했다. 계속 균형을 유지한 채, 이제는 역순으로 움직여서 리듬을 잃지 않으면서 일어섰다. 절은 하나의 꽃이 피는 듯한 우아한 동작으로 행해졌다. (70쪽)

겨울 저녁에 나는 잠을 자다가 돌아누웠는데 잘못하여 할아버지의 성기를 만졌다. 잠을 자고 있었지만 깜짝 놀란 나는 재빨리 손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이제 의식적으로 다시 만져질 때까지 손을 조금씩 밀어보았다. 유쾌하기는 했지만 안방 할머니의 가슴만큼은 아니었다. 나의 호기심은 충족되었고, 흥미를 잃고는 다시 잠들었다. 편안함과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조부모 사이에서 내가 편하게 드러누웠던 그 겨울밤들은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77쪽)

어쩌면 결코 되돌아오지 못할 한국 땅을 우리 가족이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일본 경찰의 시달림을 더는 견딜 수 없었고, 매일 음식을 구걸해야 하는 창피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 아빠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미지의 땅으로의 한밤중의 출발은 필사적인 탈출, 괴로운 망명이자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 (120쪽)


압록강은 사나운 만큼 위풍당당했다. 나는 기차 끝으로 걸어가서 거대한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슬프지만 극적인 한국과의 작별이었다. 건너는 데 오래 걸렸고, 우리가 다른 쪽 끝의 땅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중국 펑톈(奉天)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중국에 도착한 것이다! (134~135쪽)

바로 그 위엄 있는 사람이 지금은 상하이에서 혁명가, ‘삶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서 있다. 그렇지만 어떤 차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혁명가로서의 그의 역할은 기독교 목사로서의 그의 활동만큼이나 헌신적이었다. 기독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예수가 부처보다 더 전투적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150쪽)

며칠 만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땅에서 다른 사람들의 땅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한국에서 농담과 조롱의 대상이던 중국인들이 이제 자기 땅에 있고 우리가 불청객이었다. 이러한 반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새로운 생활 방식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모두 낯선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시급한 문제였다. (164쪽)

삶의 무거운 짐이 항상 엄마를 힘들게 했을지라도, 엄마는 결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엄마는 계획을 세우고 힘들게 일하고,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낯선 도시에서 한국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엄마는 우리에게 한국 음식을 먹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한국 관습과 전통을 상기시키며 가르쳤다. (167쪽)

물론 우리의 치열한 애국심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지만, 그것은 상하이의 모든 한국 청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혁명가들이 설립한 인성학교(仁成學校) 교실에서 육성되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한국 독립 학교였기 때문에 재입학했다. …… 이제 나는 처음으로 한국의 예술, 역사, 업적에 대해 배웠다. 인성학교에서의 이러한 배움은 우리에게 애국심을 고취했고, 우리는 애국심을 고귀한 감정만이 아니라 삶의 임무로 고려하라고 배웠다. (193~194쪽)

나는 열네 살 때 처음으로 내 조국의 역사와 풍부한 유산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의 삶을 자유와 독립을 다시 얻는 데 바치는 것이 우리가 상하이 인성학교에서 배운 모든 과목의 중심 주제였다. 소년혁명단은 우리가 배운 것의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모든 회원은 망명을 온 한국 혁명가들의 아들들이었다. (198쪽)

희곡을 쓰고, 연출하고, 공연한 이 첫 번째 당당한 모험은 실수, 미숙함, 많은 서투른 문제투성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약점, 우리의 순수함과 소박함은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믿게 만들었다. 내 청년 시절의 이 연극들은 흐뭇하고 재미있었다. 이러한 연극에 대한 정서적 끌림이 평생 동안 나와 함께할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208쪽)

이제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우리가 중국 학교에서 받고 있는 교육의 질이었다. 항상 존재하는 배고픔과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교실은 교육 수준에 비하면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교육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비통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능한 해결책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다음 해에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아이들은 고등 교육을 위해 러시아로 가려고 한다는 꿈을 털어놓았다. (224쪽)

한국 대표로서 아버지의 임무는 소련이 어떤 도움이라도 제공하고 한국인과 식민지 민중의 세계 총회가 연대를 약속하도록, 한국의 대의를 모스크바에서 주장하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아버지는 일본 경찰과 첩자를 피해 만주를 건너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다. 그것은 느리고 매우 위험한 여행이었다. 수많은 철로가 후퇴하는 차르의 군대인 ‘백군’과, 볼셰비키와 싸워 신생 소련을 전복하려는 단호한 노력을 하는 미국의 원정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방해 공작으로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245쪽)

상하이 몰락의 또 다른 피해자는 우리 청년 혁명 모임이었다. 모든 체육 및 연극 활동을 그만두는 것도 매우 슬펐지만, 더 큰 비극은 고등 교육에 대한 우리의 꿈이 산산조각 난 것이었다. 우리는 길을 잃은 아이들이 되었다. 우리에게 열려 있는 구원의 길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만주의 한국 게릴라 부대에 합류해 일본과 싸우는 것이었다. (258쪽)

신랑은 낯선 사람이었다. 앨리스 누나에게 근대 교육을 시키겠다고 결정한 일 년 전, 엄마는 일본 학교로 보낼 만큼 충분한 돈을 몰래 모아두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앨리스는 대학 졸업생 ‘정’을 만났다. 처음 우연히 만난 이후 그들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곧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누나 앨리스는 가족에게 그를 선보이고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정’을 상하이로 데려왔다. ‘정’은 잘생겼고 정말 유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나는 박(헌영) 선생이 매형이 되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263쪽)

배가 항구에서 빠져나와 탁한 황푸 강의 물살을 뚫고 마침내 바다로 들어선 것은 늦은 밤이었다. 내 주위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것은 내가 정기선 프레지던트 윌슨이라고 불리는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윌슨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에 맞서는 저항심을 불어넣은 사람이지만, 막상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자 등을 돌리고 어떠한 도움도 거부했다. 이제 대통령 윌슨이 그의 조국 미국으로 한국 봉기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의 가족을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277쪽)

 

목차

목차
옮긴이의 글
책머리에
글을 시작하며
Chapter 1 3월 1일
Chapter 2 왕의 장례식
Chapter 3 어린 시절
Chapter 4 증조할머니
Chapter 5 아버지 없는 생활
Chapter 6 일본인
Chapter 7 중국으로?의 도피
Chapter 8 혁명가
Chapter 9 상하이 시절
Chapter 10 어린 혁명가들
Chapter 11 미국 파견
Chapter 12 위기
Chapter 13 발견
Chapter 14 새로운 세계
피터 현과 그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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