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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판 정보
세종 대마도를 정벌하다 권오단 저 | 어문학사 | 2008년 07월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80973576 / 312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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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세종대왕이 정벌한 조선의 땅, 대마도 우리가 해양으로 진출하여 쾌거를 이룬 300일 간의 이야기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세종대왕 즉위 초기에 단행한 대마도 정벌은 대마도가? 경상도의 속주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 외에 세종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부국강병 정책과 민본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된다. 세종은 아버지 태조를 몰아내고 힘으로 정권을 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태종과는 달리 문경무위의 치국원리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 따라서 대마도 정벌은 군사적 토벌 이외에 상반된 정... 세종대왕이 정벌한 조선의 땅, 대마도 우리가 해양으로 진출하여 쾌거를 이룬 300일 간의 이야기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세종대왕 즉위 초기에 단행한 대마도 정벌은 대마도가 경상도의 속주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 외에 세종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부국강병 정책과 민본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된다. 세종은 아버지 태조를 몰아내고 힘으로 정권을 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태종과는 달리 문경무위의 치국원리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 따라서 대마도 정벌은 군사적 토벌 이외에 상반된 정치론을 가진 두 사람의 정치적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봉유설》·《택리지》·《해유록》 등 많은 고문헌에는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에도 대마도의 소유권은 문제가 되었다.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국회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었다. 지금 대마도는 어떠한가? 이 책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2015년 4월 7일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격)'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한 시점에 우리의 영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덤으로 세종과 태종의 치국이념과 국정운영에 관하여 대비되는 점들을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다. 문헌으로 살펴본 우리 땅 대마도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鷄林, 신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돼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들 나라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 『세종실록』 대마도는 신라에 속했던 땅인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했는지 알 수 없다. 세종 기해년 5월에 왜선 30여 척이 비인·해주 등지에 노략질하러 왔었다. 임금께서는 이틈을 타서 무찌르시려고 영의정 유정현을 도통사로, 최윤덕을 도절제사로 명하시고, 몸소 한강까지 납시어 전송하셨다. 그리고 경상·전라·충청도 등지의 병선 227척에 17,000명을 내어 65일치의 양식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대마도의 두지포에 다다랐다. 적들은 모두 도망갔으므로 적선 129척을 빼앗고, 적의 소굴 2,000여 곳을 불태우고 적의 우두머리 200여 명을 목 베었다. 이 정벌은 5월 스무 하루에 출정하고 6월 열 이레에 닻을 올려서 초사흘에 돌아왔다. 『지봉유설』 옛날에 장헌대왕(세종)이 장수를 보내어 대마도를 토벌하였으나 관원을 두어 지키지 않고 다시 도주에게 돌려주었다. 이 섬은 원래 왜국에 속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있어서 왜국을 빙자하여 우리에게 요긴한 체하고 또는 우리를 빙자하여 왜국에게 중하게 보이는 박쥐 노릇을 하여 그 이익을 취하고 있으니 마땅히 토벌하여 복종케 하는 것이 상책이다. 『택리지』 대마도는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조선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해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의 의리가 있다. 『해유록』 책 소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교과서가 15종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세종이 정벌한 대마도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015년 4월 7일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격)'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외무성이 작성한 외교청서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비추거나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기술을 담았다. 또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은 현행 역사·공민·지리 교과서 18종 중 모두 9종에 들어가 있지만 이번 검정을 통해 15종(역사 5종·공민 6종·지리 4종)으로 늘어났다. 《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봉유설》·《택리지》·《해유록》 등 많은 고문헌에는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에도 대마도의 소유권은 문제가 되었다.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국회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영토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58-59페이지
“과인의 생각은 다르오. 좌상과 예판은 송양(宋襄)의 고사를 모른단 말이오? 춘추에 의전(義戰)이 없다는 말이 있소. 전쟁에 의로움이란 없다는 말이오. 병(兵)은 이김으로써 공(功)이 되는 것이오. 한고조가 항우를 배신하여 죽인 것이 후세에 비웃음을 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우리가 이미 왜구를 벌할 대의명분이 확실한 데 이제 왜구들의 편의를 봐 주어 병사들의 희생을 크게 하고, 좋은 때를 놓쳐버린다면 천하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오.”
좌의정 박은이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문제가 있사옵니다. 지금은 농번기인데 이때에 군사들을 징집하면 백성들의 원성이 높을 것입니다. 더구나 가뭄이 심하여 백성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옵니다. 이대로 가뭄이 계속되면 기민들이 늘어날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세종이 박은에게 말하였다.
“정유년에 큰 가뭄이 있었지만 다행이 무술년에는 큰 풍년이 들었소. 광흥창에 묵은 쌀과 콩을 팔아 기민을 구조하면 될 것이 아니오?”
말없이 서 있던 영의정 유정현이 입을 열었다.
“다 좋습니다만은 문제는 재정이지요.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역사를 상고해 보면 왕조는 대개 전쟁으로 인한 국가재정 악화로 망해 왔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가의 재정이 악화되어 돌이킬 수 없는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돌다리를 두드리듯 깊게 깊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일순간 근정전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256페이지
세종은 모든 방식이 자신과 달랐다. 모든 일을 신하들과 상의해서 결정하였다. 그것이 누구든 가리지 않았다.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던 정적까지도 감싸 안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권한을 주겠다고 하였다. 상왕이 보기에 세종은 신하들과 권력을 나누려는 것 같았다. 권력은 왕의 것인데 어째서 반대하는 신하들을 중용하고 신하들의 힘을 키우려는 것인가? 그것은 왕의 입지를 악화시키겠다는 말이었다.
상왕은 세종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박실의 패전 책임을 물어 세종에게 주었던 권한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이다. 상왕은 세종을 믿을 수 없었다.
“아버님, 저를 한 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아버님!”
272-273페이지
“대마도가 경상도의 속주가 되는 것이오. 과인이 원하는 것은 도도웅와의 거짓 항복이 아니라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편입시키는 것이오. 대마도가 원래 우리 땅이지만 왜구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으니 마땅히 새롭게 우리 땅이라는 결정을 지어야 할 것이오. 어지에 대마도가 경상도 땅이라는 구절을 넣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 아니오? 그들이 머리가 없다면 몰라도 두 번이나 보낸 어지에 대한 대답이 그렇게 무성의하다면 진심으로 항복하였다 볼 수 없는 것이오. 이번 일은 예전처럼 흐지부지 해 버려서는 아니 되오. 거짓 항서에 속아 넘어가서도 아니 되오. 우리는 이번 기회에 대마도 왜구의 일을 반드시 결정지어야 할 것이오. 생각해 보시오. 대마도가 경상도의 속주가 되면 도성 바깥에 따로 왜관을 지을 필요도 없을 것이며, 역마의 피해도, 접대의 불편함도, 예조에서 무례를 범하는 왜인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 아니겠소?”
신하들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세종에게 물었다.
“말씀은 지당하십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악한 왜구들은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경들은 어찌 안 된다고만 하시오? 가만히 앉아서 우리 것을 빼앗기겠단 말이오? 제발 된다는 생각을 해보시오.”
300-301페이지
“대제학, 대체 왕도정치란 무엇이란 말이오? 짐은 아직도 잘 모르겠구려.”
“왕도정치란 하늘을 거스르지 않듯이 순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눈이 오는 것처럼, 백성들의 살기 좋도록 눈과 귀를 열어 바른 제도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독단적이지 아니하고 모든 정책을 합리적으로 결정하여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어진 정치, 그래서 백성들이 아무런 근심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치, 그것이 왕도정치인 것입니다.”
말없이 듣고 있던 상왕이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응시하다가 한 곡조 읊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나니,
꽃이 좋아야 열매가 많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하나니
시내로 흘러 바다로 내려가는구나.
상왕이 고개를 돌려 세종에게 말하였다.
“주상, 이 노래의 뜻을 아시겠소?”
세종이 고개를 숙여 읍하며 말하였다.
“나무라 함은 이 나라요, 뿌리는 백성이옵니다. 백성들의 민의를 듣고 백성을 섬기듯 나라를 이끌어 가면, 외세의 침입에도 흔들리지 않은 굳건한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말은 깊은 샘의 물과도 같은 것이니, 백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정사를 행하면 큰 바다와 같이 융성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옵니다.”
목차
문헌으로 살펴본 우리 땅 대마도
급보(急報)
북소리
시험(試驗)
출정(出征)
검객(劍客)
난관(難官)
동정(東征)
패전(敗戰)
화해(和解)
반간계(反間計)
귀환(歸還)
항서(降書)
낙천정(樂天亭)
작가의 말
세종의 대마도 정벌 일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