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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군처녀 유관순전

전영택 저 | 늘봄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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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550365 / 96쪽 132 x 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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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평양 사창(社倉)골에서 개화파 지식인 전석영과 강순애의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성중학에 입학해 도산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정 형편으로 인해 3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작은형 선택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접했고,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평양 남산현 교회의 설립자인 김창식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8년, 가우처(J. F. Goucher) 목사가 선교를 위해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문학부를 마치고, 신학부에 들어갔다. 일본 유학 시절 김동인, 주요한, 김환, 최승만과 교우하게 되어, 이들과 함께 1919년 2월에 최초의 종합 문예 동인지 ≪창조≫의 창간에 참여했다. ≪창조≫ 창간호에 단편 <혜선(惠善)의 사(死)>를 발표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천치? 천재?>(1919), <운명>(1919), <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화수분>(1925), <백련과 홍련>(1925), <후회>(1929) 등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전영택은 1923년 아오야마 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7년에는 아현교회 목사로 취임한 이후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흥사단과 연계를 맺고 있는 계몽적 독립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하지만 1937년 일제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81명의 지식인을 구속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 현제명·홍난파 등과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했다. 1944년에는 평양 신리교회 재직 중 설교 사건으로 한때 구금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 문교부장, 문교부 편수관,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한국복음신문≫ 주간을 지내다 1953년 귀국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독특한 기록 소설인 <김탄실과 그 아들>(1955)에 잘 나타나 있다. 귀국 후 기독교서회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외로움>(1955), <집>(1957), <해바라기>(1959),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1960) 등을 발표했다. 1961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근대문학 초기의 작가적 위상이 복원되었으며, 서울시 문화상(1961)과 대한민국 문화포상 대통령장(1963)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창작집 ≪생명의 봄≫(1926)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1958)·≪전영택 창작선집≫(1965)이 있고, 논설집으로 ≪생명(生命)의 개조(改造)≫(1926), 전기로≪유관순전≫(1953), 수필집으로는 ≪의(義)의 태양(太陽)≫(1955)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오천석
서문 - 전영택

1. 조선의 잔 다르크
2. 나물 캐는 소녀
3. 이 아버지 이 딸
4. 나라 없는 설움
5. 새로운 빛을 찾아
6. 이화학당으로
7. 이화의 꽃향기
8. 자유의 부르짖음
9. 산 위의 성녀
10. 붉은 피를 본 무리
11. 철천의 한
12. 독립만세의 화신
13. 충천의 의기
14. 순국처녀의 최후

유관순 연보
해설 - 홍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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