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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광훈 저 | 김영사 | 2015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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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69976 / 47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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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가 선포하는 삶의 미학 선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보다 깊고 넓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과 마음의 심미주의를 탐구해온 한국의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의 삶에 대한 절실한 탐색이 빚어낸 역작! 비예술의 시대 반교양의 사회 무반성의 삶이여, 성찰하라 사유하라 실천하라! 이성으로의 길은 마음을 통해 열린다. 마음은 아름다움을 통해 쇄신된다.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색,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인문학의 가장 빛나는 사유인 ‘삶의 심미성’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통찰을 만나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소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가 선포하는 삶의 미학 선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보다 깊고 넓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과 마음의 심미주의를 탐구해온 한국의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의 삶에 대한 절실한 탐색이 빚어낸 역작! 비예술의 시대 반교양의 사회 무반성의 삶이여, 성찰하라 사유하라 실천하라! 이성으로의 길은 마음을 통해 열린다. 마음은 아름다움을 통해 쇄신된다.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 책소개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가 선포하는 삶의 미학 선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보다 깊고 넓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성과 마음의 심미주의를 탐구해온 한국의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의 삶에 대한 절실한 탐색이 빚어낸 역작! 비예술의 시대 반교양의 사회 무반성의 삶이여, 성찰하라 사유하라 실천하라! 이성으로의 길은 마음을 통해 열린다. 마음은 아름다움을 통해 쇄신된다. 심미적 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게 하는가?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심미주의적 삶의 기술을 탐색,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인문학의 가장 빛나는 사유인 ‘삶의 심미성’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통찰을 만나다. 출판사 리뷰 이성과 마음의 심미주의를 견고하게 탐구해온 한국의 미학자 문광훈 교수의 깊고 치열한 사유가 빚어낸 역작! 비예술의 시대, 반교양의 사회, 무반성의 삶에 선포하는 심미주의 선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보다 넓고 깊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의 좁고 비루한 삶은 무엇으로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운명의 악순환을 끊고 더 넓고 깊은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한국의 심미적 인문학자 문광훈 교수의 삶에 대한 절실한 탐색이 빚어낸 역작 《심미주의 선언》(김영사 出刊)이 출간되었다. 비예술의 시대 반교양의 사회 무반성의 삶에 항거하며 성찰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심미주의적 삶’을 선언한다. 책의 저자인 문광훈 교수는 한국 인문학계에서 독창적이고도 이채로운 지식인으로 통한다. 문학, 철학, 역사, 사회학, 미학 등을 넘나드는 통합적 지식과 성찰적 지혜는 그를 심미적 인문학자로 불리게 한다. 그의 깊고 치열한 사유와 예각의 감성으로 인간과 세계 사이의 ‘삶의 심미성’을 통찰한 놀라운 저작을 마침내 내놓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카라바죠와 푸코를 거쳐 윤두서, 이태준, 백석 그리고 바를라흐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보다 높은 보편적 삶과 세계의 가능성을 심미주의적 삶에서 탐색했다. ‘삶의 심미성’이라는 인문학의 가장 빛나는 사유를 담은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내면적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심미주의 선언》은 보다 나은 삶을 어떻게 나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한 글이다. 그것이 선한 것은 좋은 삶의 추구가 아무런 강제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즐거운 것은 그 추구에는 감각을 쇄신하는 기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진전, 행동의 변화는 감각의 신선한 기쁨 바로 곁에 자리한다. 감각과 사고의 부단한 쇄신 속에서 개인은 시민으로서 보다 이성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미주의 선언》은 정치 적대적 담론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드넓은 가능성을 예술경험적 차원에서 모색한 시도다. (…) 이 책이 전통미학의 재해석을 겨냥하는 논증적인 글이 아니라, 생활에 뿌리박은, 그러니까 지금 여기의 고민과 열망에 닿아 있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실존적으로 내밀하면서도 현실의 전체에 열려 있는 하나의 성찰이 되길 희망한다.” (저자의 글에서) ‘심미주의 선언’은 무엇에 대한 촉구이고 요청인가? 개인과 공동체, 지식인 집단과 사회문화 전반의 심미적 각성을 촉발한 문제작!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명령조나 당위적인 말이 넘쳐나는 걸까? 사람들은 왜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한 몸짓으로 가득 차 있을까? 왜 인간의 삶은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지식이나 정보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 삶의 고양은 어떻게 가능할까? 기술의 계량적 전진이 아니라, 일상의 질적 충일은 언제쯤 실현되는 것인가? 그래서 내실 있는 삶을 스스로 사는 가운데 사회적 갈등도 줄여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 문광훈 교수는 이 문제를 ‘심미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왜 심미적인 것의 잠재력이 오늘날 하나의 긴급한 요청이 되는 것인지, 왜 예술경험이 개인의 각성과 사회의 합리화를 동시에 실현하는 데 불가결한 것인지를 깊고 넓게 펼쳐보인다. 시와 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가? 예술경험은 어떻게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할 수 있게 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삶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시켜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가장 설득력 높은 그러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방식을 암시해주는 것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심미적 능력은 예술작품의 생산과 감상을 넘어 보다 넓은 지평으로 작용한다. 즉 사물의 일반적 지각이나 세상의 경험에서 그것은 미화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주고, 이 분별력을 구성하는 감수성과 논리를 단련시킨다. 이성으로의 길은 마음을 통해 열리고, 그 마음은 아름다움을 통해 쇄신된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여기 이 세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심미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실천적이지만 행동주의적인 것이 아니며, 성찰적이지만 사변적인 것은 아니다. 심미적 개입은 사유와 실천 사이를 삶 속에서, 지금 여기의 현존성 아래, 오직 이 살아 있는 오늘의 육체와 경험과 세부를 존중하는 가운데 부단히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운명의 악순환 고리를 끊으면서 우리를 더 넓고 깊은 행복으로 이끌고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예술이나 예술작품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심미주의 선언》은 이 시점에 과연 적절한가? 이 책의 중반이 채 넘어가기 전에 저자의 아내가 한 말이 ‘각주’로 첨부되어 있다. “여기까지 읽은 아내는, 촌평을 부탁하는 나에게, “답답하다, 글의 출발점 자체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한국은 사회적으로 너무 헝클어져 있어요. 한국에서 예술이나 심미적인 것은 전혀 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 그것은 이들에게 너무 고차원적이거나 허황되거나 비현실적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내실 있게 자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이 사람들마저 사실은, 우리 사회의 전체 구성원으로 보면, 희귀하거든요. 그렇다면 당신 같은 이는 희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희귀한 사람이죠. 예술이나 심미성을 말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 땅의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특별히 세속적인 욕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물질적 풍요나 몸의 안락함 그리고 생활의 편의이지, 예술이나 예술작품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 예술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나머지 한가한 시간에, 그러니까 ‘별다른 할 일이 없거나 지루하고 심심할 때 잠시 돌아보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그것이 현재적 ‘실상’이지 않나요? 그런 점에서 예술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드문, 희귀한, 소수의 그리고 특권적인 일이지요.” (본문 중에서) 저자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는 ‘전방적위적 막막함’을 무릅쓰고 한 외로운 정신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무모한 사투를 벌이기로 한다. 예술사의 근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예술이념의 민주화’를 경험하고, ‘예술항유의 평등주의’에 환호하며, ‘예술적 엘리트주의의 극복’ 같은

저자 소개

고려대학교 독문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현재 충북대 독문과 교수.
『구체적 보편성의 모험』(2001), 『시의 희생자 김수영』(2002), 『숨은 조화』(2006), 『김우창의 인문주의』(2006), 『아도르노와 김우창의 예술문화론』(2006), 『교감』(2007), 『렘브란트의 웃음』(2010), 『한국현대소설과 근대적 자아의식』(2010), 『사무사思無邪』(2012), 『페르세우스의 방패 —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읽기』(2012), 『가면병기창 — 발터 벤야민론』(2014), 『심미주의 선언』(2015) 등의 저서가 있다.
“산문집을 내는 것은 청년 시절 이후 내 오랜 열망이었다. 그 열망 하나가 이제 이뤄진 것이다. 아무런 강요나 명령 없이도 스스로 쇄신해 가는 삶의 어떤 가능성을 나는 글로 모색하고 싶다.”

책 속에서


왜냐하면 자신을 돌보는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고, 나는 스스로 기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돌볼 때, 우리는 우리자신의 영혼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바로 영혼의 돌보는 이런 일과 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영혼을 돌보는 철학의 시간이 곧 행복의 시간이고, 이 행복 속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철학을, 그것도 평생, 해야 한다고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120p)




우리는 지금 현실과는 뭔가 다른 것을 꿈꾸기 때문에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며 음악을 감상하지 않는가? 보다 나은 인간과 더 이성적인 질서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왜 예술을 할 것이고, 왜 그 작품을 감상할 것인가? (240p)

공재의 <자화상>을 나는 오랫동안 명상해왔다. 어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책상에 앉을 때나 그렇게 앉으며 노트북을 켤 때,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막히거나 단락을 구분하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문득 느낄 때, 혹은 연이어 솟구치는 생각들의 광풍 속에서 살아 있는 의식과 이 의식의 요동치는 움직임에 나를 맡긴 채 그 궤적을 기록해갈 때, 이 기록을 실행하는 글자판과, 이 자판이 만들어내는 문자 하나하나를 확인하면서 표현의 열기를 실존적 탈각(脫殼)을 위한 어떤 통과의례처럼 겪은 후 잠시 숨을 돌릴 때, 나는 이 그림을 쳐다본다. (244~245p)

여기 낡은 사진이 한 장 있다. 그것은 작가 이태준이 1942년 성북동 집에서 아내와 2남 3녀의 아이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당시 경성부 성북정(町) 248번지에 있던 이곳으로 그는 1933년에 이사했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의 일이다. 이 장면은 인간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은 우리 삶에 어떻게 자리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아마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한 이미지가 아닐까 여겨진다. (293p)

제가 말하는 심미주의는 모순과 선과 아니러니를 같이 끌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에 “내가 사랑하는 식구와, 나의 적과, 적들의 적과, 함께 가자”는 게 있습니다. 껴안고 같이 가야 합니다. 왜? 인간의 삶은, 크고 작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무조선 용인해야 하는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부정적인 것들을 중화시키고 줄여가고, 끊임없이 쇄신시켜가야 합니다. 심미적인 것의 비판적 성찰적 반성적 계기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별책부록_저자와의 만남>에서)

목차

목차
머리글: 예술경작의 험난한 경로를 시작하며
프롤로그: 껍질을 벗기다_“허명(虛名)과의 혈투”
1장 미켈란젤로의 허물
2장 ‘자화상’이라는 장르
3장 운명과의 놀이, 운명에의 저항

심미적 경험I: 오?늘의 삶과 예술_“아름다움은 여기 이 세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1장 혼종현실
2장 예술의 진리
3장 심미적 대응법-내가 선택한 방식
4장 심미적 형성력
덧붙임: 미학사/지성사는 규범위반의 역사
심미적 경험II: 예술의 자기형성술_“선함-아름다움-행복의 길”
1장 푸코, 자기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자기전향-자기인식에서 자기배려로 | 주체의 ‘자기관계방식’ | ‘배려의 배려’, 현존적 초월
덧붙임: 권력과 주체와 진실과 자유와 예술
2장 플라톤, 영혼이 아름답게 하라: 자기 앎의 아름다움 | “경탄할 만한 길” | 아름다움의 사다리
3장 아리스토텔레스, 성격과 습관의 실천문제: 선의 실천 | 성격이란 무엇인가? | 다섯 가지 실천방식 | 성격-품성-인격 | 고귀함을 위한 연습
4장 공재 윤두서, 고요한 가운데 자기를 지킨다: 공재의 궤적 | 공재의 《자화상》
덧붙임: 예술-대안질서
심미적 경험Ⅲ: 서정적 모음곡_“느리고 고요하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의 기록”
1장 삶의 리듬, 세계의 화음
2장 행복의 시적 순간-이태준의 사진 한 장
3장 슬픔과 자비
4장 카라바조, 카라바조-심미적 정언명령
5장 모순과 설움과 아이러니-백석의 고향
6장 아주 미세한 틈새들-바를라흐의 조각
7장 혁명의 피로, 고갈된 기억-실패한 혁명가 루바쇼프께 보내는 편지
덧붙임: 나에게 현실이란 무엇인가?
8장 사랑하는 독자여
에필로그: 이 입김 같은 먼지별에서_“삶의 예술, 예술의 삶”
심미주의자를 위한 7가지 삶의 원칙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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