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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885641 / 276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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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죄 많은 천사들의 도시, 필리핀 앤젤레스 시티에서 벌어지는
백전백태百戰百殆 진화 생존기
피나투보 화산 폭발 이후 미군 기지가 이주하면서 덜렁 유흥 단지만 남게 된 이곳,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필리핀의 앤젤레스 시티. 제임스 박으로 통하는 나는 한국에서 사기를 당한 후 이곳에 들어와 자리 잡은 지 10년이 넘었다. 대외적으론 한국대사관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고 있지만 실은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대니와 함께 한인들을 상대로 소소한 사기나 치며 생계를 연명하는 사기꾼이다. 어느 날 골프 부킹을 하다 한 노인과 아들 내외를 만난 나는 유산을 노린 며느리로부터 노인을 죽여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녀가 제시한 사례금은 무려 35억!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다.
나와 대니는 마침내 노인을 납치하는 데 성공하고 살인을 계획하는데, 자기는 작은 사기나 칠 뿐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다는 겁 많고 마음 약한 대니 때문에 계획은 번번이 난관에 부딪힌다. 게다가 이 노인, 뛰어난 입담과 운동신경, 임기응변까지 고루 갖춘 고수가 아닌가!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야자수 밑에서 떨어지는 야자열매에 맞게 하기, 피나투보 화산의 호수에서 찢어진 보트에 태우기, 경비행기에서 떨어뜨리기, 옷을 홀딱 벗겨 사탕수수밭에 버리기 등 각종 기상천외한 살인 계획들을 실행에 옮겨보지만 그때마다 노인은 ‘빠레, 살라맛 뽀’(친구, 고맙네)를 연발하며 환호할 뿐 죽지 않고 살아난다. 급기야 노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몰리고 마는데…….
“너 지금 삶이라고 했냐?
살과 삼 사이를 교묘히 발음하는…
나는 그 삶이라는 단어가 싫다!”
나는 사생아로 태어나고 가진 것이 없어 한국에서도 불법체류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다 쫓기듯 필리핀으로 이주했지만, 카지노 꽁지돈을 빌린 대가로 살생부 명단에 올라 있고 비자 문제로 이민국 직원에게 건네는 떡값이 자꾸 커지는 등 이곳에서 살아남기 또한 만만찮다. “한국이든 필리핀이든 ‘못 가진 자’는 똑같이 불행하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못 가진 자’였던 이 남자의 눈을 통해, 상부기관의 악을 볼 수 있게 되고 하층민의 피로를 볼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어떠한 주의주장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려는 남자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사회 풍자에 성공한다.”(문학평론가 정실비)
그러던 찰나 들어온 35억짜리 청부 살인 제의는 나와 대니가 한몫 챙겨 한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노인을 쉽사리 죽이지 못하고 노인의 입담에 정신을 못 차리며 쩔쩔매더니 누가 인질이고 누가 인질범인지 모를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휘말린다. 노인에게 한식을 사다주고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주는 사기꾼들이라니!
노인은 두 사람에게 시종일관 ‘궁즉통’을 횡설수설한다. 더 갖으라 하지 않고 궁하면 통한다 한다. 이루라 하지 않고 비우는 게 더 큰 성공이라 한다. ‘가진 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살인꾼이 되기를 선택한 제임스 박에게, ‘비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캐릭터는 처절한 생존의 과정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기대하는 작가의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태생부터 불법이었고 여전히 불법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저버리지 않는 나와 대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이 아직 인간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다. 둘은 다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는 연약한 미모사 같은 존재일 뿐이다.
참다못한 내가 벌떡 일어나 애원하듯이 절규한다.
“참 죄송하지만, 조금만 일찍 죽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글쎄, 나를 두 달만 살려주면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스스로 죽겠다니까 그러네.”
“그러면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긴단 말입니다.”
“자네들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지만 나는 인생 막바지에 아무런 마무리도 못하고 죽게 되었으니 어느 쪽이 더 억울하겠는가?”
“피해자는 언제나 억울한 법입니다. 우린 이 일이 성공하면 이 나라를 뜰 겁니다.”
“이보게, 언제나 성공한 순간부터 위기가 시작된다네. 자네가 날 죽인 순간부터 자네 인생은 위기에 봉착할 거란 말일세. 내 손에 거액이 들어온 순간부터 그 일을 성공시킨 내 애인에게는 위기가 시작된 셈이었지. 자네들은 아직 젊지 않나? 이 늙은이 말을 들어서 손해 볼 일이 없을 거네. 비우고 또 비우면 길이 보인다고 했지 않은가.” _64~65쪽
“형님, 우리 이거 때려치우고 다른 사기나 칩시다. 아무래도 사람 죽이기는 애초에 글렀습니다. 인간은 다 자기 식의 삶이 있는 법입니다.”
“삶? 너 지금 삶이라고 했냐?”
“예, 삶이오.”
“나는 그 삶이라는 단어가 싫다.”
살과 삼 사이를 교묘히 발음하는 것도 그렇고 왠지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_123쪽
“(……)그 말에 부끄러움을 견디다 못한 미모사는 그 자리에서 한 포기 풀로 변하지. 손을 대면 움츠러드는 건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해서 꽃말도 부끄러움이래.”
“그런 말 들었다고 다 풀로 변해버리면 이 세상은 벌써 숲으로 변했겠네. 집집마다 풀이 무성해지면 환경엔 좋겠네.”
장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뜬다. 저런 시선에도 면역이 생겼는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장군이 미간을 모으고 상을 찡그린다. 그 바람에 눈썹이 살짝 붉어진다.
“형, 미모사는 신경초야. 그래서 밤에도 잎을 접고 오므라들어. 알겠어? 식물도 자기보호본능이 그렇게 뛰어나.”_154쪽
나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새카만 눈동자가 반짝이면서 흔들리는 듯하다. 그 눈동자에 백오십 평 하늘이 고스란히 떠 있고 그 하늘 가운데 내가 보인다. 초조와 체념을 칠 대 삼으로 섞어 버무린 얼굴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아이는 나를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한참 후에 아이가 눈을 깜박이더니 내게 괜찮냐고 묻는다.
“힘들지요? 많이 아프고.”
무당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었다면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자기 속내를 알아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모든 게 서러워 흐느끼게 되듯이. 나는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눈 속에 비친 내가 정말로 힘들고 아파 보인다. _196쪽
슬쩍 건드리거나 입김만 불어도 금방 잎을 접는 것이 신기해서 그 근방의 미모사들을 갖은 방법으로 건드리며 시간을 죽였다. 처음에는 그저 바라보다가 입김을 불어보았다.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고 손으로 만져보다가 옷깃으로 스쳐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찌르다가 발길질에 이단 옆차기 그다음에는 침도 뱉으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해에도 가속도가 붙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꼴을 본 캐디들이 깔깔대며 지나갔다. 외압이 가해지면 수분이 재빨리 밑동으로 내려가서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이라며 캐디 하나가 아는 체를 했다.
그런데, 한인협회 이사라는 작자가 나를 “미모사보다도 못한 놈”이라며 마닐라까지 떠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밥 빌어먹다가 형편 좀 피니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더라”는 부연 설명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그런 놈은 그냥,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놈이다. 찾아가서 냅다 돌려차기를 하려다가 참았다. 밥 빌어먹던 내가 이 동네 유지 행세하는 것이 배가 아픈 모양이지! _3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