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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8388617 / 25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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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소설 징비록 [4]
출판사 리뷰
● 통합과 소통으로 위기를 극복한 난세의 영웅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은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삼아 앞으로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뜻이다. 류성룡은 위기수습의 큰 책임을 맡아 7년 동안이나 계속된 왜란의 진행과정을 자신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기록하여 남겨놓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류성룡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 그의 전기(傳記)보다는 <징비록>을 실록역사소설로 꾸미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고, 이해하기 쉬우며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 류성룡과 그의 리더십을 알려면 결코 <징비록>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관련해서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활약상, 해전(海戰)상황 등은 영화, 드라마, 소설, 전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그보다는 철저하게 <징비록>을 바탕으로,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임금과 조선정권의 급박한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과정, 전쟁 중에도 여전했던 당쟁 그리고 육지에서 벌어진 각종 전투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아울러 이해를 돕고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이나 다른 자료들을 인용, 되도록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실록이 되도록 애썼다. 일반적으로 사극이나 역사소설은 역사를 바탕으로 작가의 주관에 의해 창작되지만,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창작성을 최소화했다.
이 퇴계 선생의 제자로 당시 동인(東人)이었던 그는 국익을 팽개치고 아무런 소신도 없이 당론에 따라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매몰된 치열한 당파싸움 속에서도 ‘올바름(正)’을 신념으로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통합과 소통과 포용으로 국난을 극복한 그는 진정한 난세의 영웅이었다.
●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이었다
류성룡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나라를 사랑하고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세독충정(世篤忠貞)을 신념으로 삼아 그것을 스스로 실천했다. “정치인과 관리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은 밥 굶으며 나라를 걱정한다.”는 우국충정의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국난극복의 지혜가 나올 수 있었다.
사학자 한명기 교수가 어느 강연에서 지적했듯이, 류성룡은 무엇보다 ‘적개심’을 경계했다. 적개심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큰 혼란에 빠뜨려 마침내 국가위기를 가져 온 끊임없는 붕당(朋黨)과 당쟁, 그리고 가혹한 보복은 타당성이나 합리성을 외면하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만으로 감정 대응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며, 적과의 싸움에서도 오직 적개심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류성룡은 붕당정치에서 필연적으로 동인(東人)일 수밖에 없었지만,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서인(西人)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옳은 것을 수용하려고 했으며,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중용과 관용, 타협과 배려, 그리고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정국에서 항상 온건한 입장을 견지했다. 우리는 그것이 류성룡의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누구보다 먼저 왜란의 위기를 예감하고, 국방태세 강화에 온힘을 쏟는가 하면 과감하게 미관말직에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해서 중용한 그의 통찰력과 병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도체찰사 등의 중책을 맡아, 걷잡을 수없이 무너지는 왜란에 맞서 진두지휘해서 마침내 절망적인 위기를 극복한 그의 지도력은 오늘날의 우리 정치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일 아닐 수 없다.
그가 퇴계의 문하생이었을 때, 퇴계는 그를 가리켜 “이 젊은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장차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듯이 그는 국가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늘이 낸 인물이었으며, 어느 노교수의 지적처럼 류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이었다.
류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도 없고 권율도 없었을 것이다. 왜란이 끝나고 이순신은 충무공(忠武公), 류성룡은 문충공(文忠公) 시호를 받았다. 무신 이순신과 문신 류성룡이 없었다면 조선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였던 왜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이 책이 우리 사회의 소통과 화합, 분노와 적개심의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으며, 지금 우리는 류성룡과 같은 난세의 영웅을 기다린다.
선조가 류성룡의 주청을 받아들여 두 나라 사신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동평관으로 그들을 찾아갔다. 구실은 이제 출발이 머지않았으니 일본 사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어 주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잡담과 여러 차례 술잔이 돌고 났을 때, 김성일이 슬쩍 곁에 있는 현소에게 물었다.
“요즘 일본의 정세는 어떻습니까? 일본 국왕께서 통일을 이룩하신 뒤에는 이렇다 할 전쟁도 없고 태평성대를 맞고 있겠지요?”
“국내에서 정복전쟁은 끝났습니다만, 중국이 오랫동안 일본과 국교를 끊고 조공을 통하지 못하게 해서, 국왕께서 이 일을 마음속으로 분개하고 부끄럽게 여기시어 싸움을 일으키고자 하니, 조선에서 먼저 이 말을 중국에 알려 조공할 길이 통하게 된다면 조선도 별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일본 66주의 백성들도 전쟁의 고통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현소가 은밀하게 말했지만 김성일은 불쾌했다.
“우리 조선이 일본왕의 심부름이나 하라는 게요? 더구나 그런 심부름을 안 하면 조선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것은 조선과 전쟁을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겠소이까?”
“옛날 고려 때, 고려가 원(元)나라 군사를 인도해서 일본을 공격했으니, 일본이 그 일 때문에 조선에 원수를 갚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현소는 지지 않고 점점 거칠게 대들었다. 결국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김성일은 다음 날 류성룡에게 그대로 전했다.
마침내 조선통신사는 무척 오랫동안 기다렸던 종의지 일행과 함께 1590년 3월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대마도주 종의지는 기뻐하며 공작새 두 마리와 조총 두 자루, 칼과 창 등을 선조에게 선물했다. 선조는 공작새는 바닷가로 나가 날려 보내도록 하고, 조총은 군기시(軍器寺)에 두게 했다. ‘군기시’란 각종 병기, 군 장비를 제조하는 관아이다.
조총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일본에 처음으로 조총이 전래된 것보다 50년 가까이 늦은 셈이다. 어찌했든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조총을 목격하게 됐지만, 그것이 최신무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 위력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조총을 분석해서 이용가치를 찾거나 개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그냥 병기 창고에 보관하는 무관심한 실정이 되고 말았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