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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307895 / 28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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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아! 이 산이 중국에 있었다면 반드시 이백과 두보가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 지식인이자 산 매니어인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북 봉화의 청량산에 오른 뒤 남긴 찬사다. 그가 주목한 것은 빼어난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청량산에 흐르는 인문적 가치를 발견하고서다.
'해동의 서성(書聖)'인 통일신라 김생이 10년간 공부했고 최치원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지금은 청량사 하나만 남았지만 불교가 흥성했을 때는 절과 암자만 작은 산에 33곳이 있었다. 또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의 산성을 증축하고 군사를 훈련했다. 산 꼭대기에는 공민왕당이 남아 있고 골골이 노국공주 등 왕의 가족을 모시는 당이 있다. 유학자 주세붕은 산을 오른 뒤 열두 봉우리의 불교식 이름을 모두 유교식으로 새로 붙인다.
퇴계 이황은 열네 살에 청량산을 처음 오른 이후 49년 동안 틈만 나면 찾았다.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는 청량산을 아예 '우리집 산(吾家山)'이라 부르고 '청량산인'으로 자처했다. 그가 간 길은 '예던 길'이 되었고 낙동강 물길 구곡을 거슬러 올라가 닿는 청량산은 주자를 이은 퇴계의 학문적 시원이 됐다. 퇴계 사후 선비들은 청량산을 찾아 퇴계의 자취를 더듬고 글을 남기는 게 유행이 되었다. 그런 글만 100여 편이 전한다. 나라가 위태로울 땐 의병이 근거지로 삼았고, '광야'의 민족시인 이육사는 이곳에서 노래의 씨를 뿌리고 북경의 차디찬 감옥에서 쓸쓸히 숨져갔다.
지금도 인문과 예술 정신은 이어져 청량산을 소재로 한 노래와 뮤지컬, 그림이 만들어지고 산사음악회도 열린다.
신문기자인 저자는 올해만 수십 차례 청량산을 오른 뒤 청량산의 이런 인문 흔적을 길어올렸다. 그는 \"퇴계 선생이 왜 그토록 청량산을 자주 찾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발걸음을 뗐다\"며 \"청량산은 그 답을 생각하게 하고 힐링까지 덤으로 주는 인문의 산\"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