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67351380 / 436쪽 160 x 22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유시민
-
김성대
-
배기성
- 17,010
- 26,010
- 20,700
- 21,600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예술을 향한 탐닉과 집념은 역사를 어떻게 이끌었나 정치적 난국과 삶의 황폐함 속에서도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이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숨결을 빚어낸 후원자들을 조명하다 ·가야국 우륵의 정치적 투항을 받아들여 신라의 가야금 음악을 꽃피운 진흥왕 ·초월적 권력자 최충헌·최이가 이뤄낸 고려 예술의 절정 ·은거하며 조선 후기 걸출한 문화적 경지를 이끌어낸 안동 김문 ·조선시대 풍류가들이 길러낸 음악인들 ·개성 3인방이 일군 한국 미술의 토양 예술후원자를 조명해 2000년 예술사를 새로 쓰다 실생... 예술을 향한 탐닉과 집념은 역사를 어떻게 이끌었나 정치적 난국과 삶의 황폐함 속에서도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이천 년 역사를 관통하는 예술가의 숨결을 빚어낸 후원자들을 조명하다 ·가야국 우륵의 정치적 투항을 받아들여 신라의 가야금 음악을 꽃피운 진흥왕 ·초월적 권력자 최충헌·최이가 이뤄낸 고려 예술의 절정 ·은거하며 조선 후기 걸출한 문화적 경지를 이끌어낸 안동 김문 ·조선시대 풍류가들이 길러낸 음악인들 ·개성 3인방이 일군 한국 미술의 토양 예술후원자를 조명해 2000년 예술사를 새로 쓰다 실생활의 비속한 산문을 견디지 못해 창작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흔히 맞닥뜨리는 것은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며, 이로 인해 작품활동은 지속시키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생활인들은 삶을 지탱하는 문제에 골몰하느라 예술의 결여 속에서 황폐한 터전을 일궈나가곤 한다. 이렇듯 예술과 생활이 서로 침투되지 못하는 가운데 그 가교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후원자’(메세나인)들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공히 예술지상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가 있을 만큼 미적 인식과 활동은 인간 욕구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술사는 역사의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가장 탁월한 미의식을 드러내는 활동과 정신이 응축된 영역일 것이다. 그런데 기존 예술사는 항상 창작자를 중심에 놓고 다루다보니, 그 창작을 가능케 했던 후원자를 조명했던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후원자 없이 예술활동을 펼치기는 힘들었다. 긴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예술가들이 혹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해도 그것을 ‘유통’시키고 ‘소통’시키는 일은 그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고대 신라에서 고려, 조선,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한국사를 예술후원자로 꿰뚫어 읽는 작업을 시도한다. 로마제국의 귀족 마에케나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등 서양의 메세나인들은 일찍이 예술을 활짝 꽃피운 주역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가야금곡과 극사실 회화작품들이 남겨지도록 예술후원을 한 신라의 국왕들에서부터 무武보다 문文을 더 장려했던 고려 최절정의 권력 최충헌 일가, 조선의 외척 세력으로 권력을 누리다가 암흑의 시대 한가운데서 인문과 예술을 지원했던 한 벌열 가문, 탁월한 음률 감각으로 관직에 근무하면서 예인들을 키우거나 왕족으로서 풍류를 알아 음악후원자가 된 인물들, ‘깍쟁이’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들으며 오로지 부富를 쌓는 것만을 최고 목표로 삼았던 부모 세대에서 벗어나 장사꾼으로서 쌓은 부를 사회에 되돌려준 개성상인들, 물려받은 부와 타고난 감식안으로 국외로의 문화재 유출을 막고 나선 간송과 현대의 기업인들에 이르기까지 역사 전체를 통틀어 예술후원자를 조명한 적은 그동안 없었다. 그러므로 후원자를 통한 예술사 읽기는 칼과 힘을 쥐었던 권력이 어떻게 가장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정치권력과 다툼이 어째서 오히려 인문활동을 꽃피웠으며, 나라를 잃거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처지 속에서 왜 문화재 수집활동이 더 단호하고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었는지를 밝혀줄 것이다. 예술을 후원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향유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준다는 의미에서 권력이나 재력과 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 일찍이 서구에서도 “부자의 변덕을 섬기는” 예술을 비판해왔고, 가령 고려 무신정권만 해도 예술에 대한 지원은 그들 권력의 빈틈을 메우고 공고히 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셈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의 예술 후원활동 역시 세제 혜택을 바란다거나 재산 은닉의 방편으로 보는 시선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한켠으로 제쳐두고 예술가와 예술후원가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작업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았던 20세기의 터널을 뚫고 지나온 우리에게 21세기, 즉 문화의 세기가 나아갈 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상업의 터전 위에서 꽃피운 개성상인의 문화재 수호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극적인 역사를 살아냈고,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도 하며, 또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개성 3인방부터 살펴보자. 고려 역사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빛바랜 고도 개경은 조선 건국과 함께 차별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벼슬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농업에 종사할 여건도 갖추지 못했던 개성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장삿길에 나섰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근대 시기 개성인들은 가장 화려한 상업의 꽃을 피우게 된다. 한편 거부를 손에 쥔 개성 사람들은 “인색하다” “깍쟁이다”라는 폄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런 가운데 문화의 기반을 굳게 세운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개성 3인방이라 불리는 이홍근, 이회림, 윤장섭이다. 이 땅에서 자본주의가 싹을 틔울 때 부를 쌓은 이들은 다른 한편 끊임없이 노력한 수장가였고, 가진 모든 것을 문화로써 사회에 환원한 인물들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4000~5000점의 유물을 남긴 동원 이홍근은 1900년 개성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스물여섯 살에 상인으로서 독립했다. 그는 일찍이 30대에 인삼 경작으로 거부를 쌓았고 일제강점 말기 국내 30위 안에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으로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졌는데, 남한으로 내려와 다시 부를 축적한 이홍근은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고미술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선다. “난 그땐 돈 버느라고 누깔이 선했는데, 아 일본 놈들은 시시한 놈들도 차완 하나쯤은 즐길 줄 안단 말야.”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자극이 컸고, 월남하면서 미처 데려오지 못한 장남 일가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견딜 수도 없어 문화재 수집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속기도 많이 속고 가짜도 많이 샀다. 전쟁 때 200만원짜리 화병을 손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20만원 값어치밖에 안 되는 물건이었다. 결국 “제 돈 주고 병신구실한” 이런 경험들을 쌓으며 그는 수장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거래를 항상 현금으로만 해 상인들에게는 최고의 고객이었고, 연구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골동계에서는 그를 드문 인물로 꼽았다. 그는 특히 온전한 도자기가 아닌 청자 파편 수집에도 열성이었는데, 이는 투자가 아닌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알아봤던 대수장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1960년부터 자신이 모은 문화재의 사회 환원을 고민했던 이홍근은 “내 수집 문화재는 자식들한테 단 한 점도 상속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그가 작고한 뒤 모든 수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돼 오늘날 우리와 만나고 있다. 문화재 수집뿐 아니라 미술사와 고고학 연구자들 지원에도 아낌없었던 그는 “대수장가의 윤리를 투철하게 체득하고 끝까지 실천한 사람”(최순우)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이회림은 1917년 개성 만월동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점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주인한테 인정을 받았던지,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주문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한 그는 7년의 사환생활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고는 해방 뒤 장사에 본격 투신한 이회림은 1968년 인천 남구 학익동 앞 바다를 매립해 공단 부지를 조성하고 화학산업에 매진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OCI로 이름을 바꾼 동양제철화학, 유니드, 삼광글라스 등이다. 그의 문화재 수집 동기 역시 ‘일본인의 문화재 약탈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보니
목차
서장 탁월한 예술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송지원
1장 신라의 독보적 예술을 완성시킨 국왕들│박남수
2장 무신 집정 100년, 가장 세련된 예술품을 빚어내다│류주희
3장 조선의 으뜸 가문, 안동 김문이 펼친 인문과 예술 후원│조규희
4장 삶의 황폐함을 음률로 가꿔놓은 조선의 음악 후원자들│송지원
5장 상업의 터전 위에서 꽃피운 개성상인의 문화재 수호│양정필
6장 간송, 탁월한 심미안으로 우리 문화의 정수를 지켜내다│정병삼
7장 문화대국을 꿈꾼 경영인, 호암 이병철│김경한
8장 박성용, 메세나를 뿌리 내리게 한 ‘큰 별’│김경한
에필로그 새로운 메세나인의 출현을 기대하며
주註
참고문헌 및 더 읽어볼 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