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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134208 / 27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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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전문가들에 의해 국내 최초로 시도된
한국 전적지 답사기!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했던 전쟁의 전적지를 찾아 살펴보고 여기서 얻은 정보를 남아 있는 역사기록들과 비교분석하여 현지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다수 수록하여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전문가들의 치밀한 현장답사를 통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황산벌 전투 이후 백제군이 백강전투에 합류했었던 사실, 처인성 전투의 실상, 탄금대 전투의 현장은 탄금대가 아니었다는 것, 우금치 전투의 위령탑과 전적지 표지판이 잘못된 위치에 세워진 점, 6.25 춘천전투에서 소양교가 돌파당하는 상황, 수원화성 복원의 잘못된 점 등이 새로이 밝혀진 것들이다.
출판사 리뷰
글로만 이해하는 역사와 현장감을 느끼는 역사는 많이 다를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 책은 현장을 돌아보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 책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전쟁이 일어났던 현장을 찾아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별로 없었다. 그보다 가보기도 어려운 외국의 전쟁, 특히 서양의 것을 소개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우리 땅에서 일어난 전쟁의 현장을 찾아 새로운 사실을 밝혀 보려 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러한 시도를 했던 얼마 안 되는 콘텐츠 중에서
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은 더더욱 없었다.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계백의 지휘 아래에 출동한 백제군은 신라군을 막는 데에 모든 것을 다 거는 ‘결사대’가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백제군은 방어선이 돌파당하자 병력을 철수시켰다.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정황을 보아 지연전을 펴는 병력은 남겨 두었던 것 같다.
황산벌에서 철수한 병력은 지금의 강경에서 백강의 물길을 타고 하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의 군산 쪽으로 상륙하는 당군을 저지하는 데에 투입되었다. 물론 여기서도 백제군은 이 한 번의 전투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았다. 한 번의 전투를 치른 후, 생존 병력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사비 외곽에서 또 한 번의 전투를 치렀다. (52쪽)
일개 병졸이 적의 최고 지휘관을 사살하는 공을 세우더라도, 그 병졸에게 군 최고 지위를 주려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그 병졸의 직속 상관이 지위에 걸맞은 포상을 받는 일이 흔하다. 김윤후의 경우에도 그가 직접 살리타를 사살했다기보다, 그 휘하에 있던 누군가가 혼전 중에 쏜 화살이 살리타를 사살하는 결과를 가져와, 그 포상을 집단의 지휘자 역할을 했던 김윤후가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63쪽)
문제는 단월역 앞은 신립의 병력으로 방어선을 치기 아주 애매한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8,000명 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치는 방어선 자체는 엷어질 것 같고, 그나마 정예인 기병을 활용할 공간은 별로 확보되지 않는 애매한 지형인 것이다. 그래서 압도적인 병력의 일본군이 몰려오자, 단월역에서 물러나 달천을 낀 평야지대로 나가는 입구로 물러난 것이다.
여기서 전투가 벌어진 곳은 물론, 신립이 전사한 곳도 탄금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114쪽)
우금치 전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는 데에는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감안해야 한다. 전쟁의 양상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근대전으로 전환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동학농민군의 패배에도 이러한 전환기에 부각된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기가 비슷했던 전근대 전투였다면, 동원 병력이 10배의 우위를 가진 상대를 격파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데 우금치 전투에서는 동학농민군이 그런 병력 우위를 가지고도 허무하다 싶을 만큼 쉽게 패배했다.(148쪽)
춘천-홍천 지구의 전투는 한국전쟁 초기 전투 중,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을 가진 북한군에 대해 국군이 거의 유일하게 선전한 경우이다. 보통 험한 산악이 많은 강원도 지역의 방어에 유리한 지형 덕분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현지에 와서 살펴보면 이 지역의 모든 지형이 방어에 유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군데군데 옥산포 지역의 평야나 엄폐물 하나 없는 춘천 말고개의 지형 등 모든 지형적 요소가 방어 측에 유리하게만 작용한다고 할 수 없는 지역이 섞여 있는 것이다.(190쪽)
당시는 세계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전환기에 수원 화성은 근대식 화기에 대비한 흔적이 어느 정도 보이기는 하지만, 근대적 무기를 동원한 공성전에 대비한 성이라고 하기는 곤란한 점도 있다. 그래서 문제점도 많이 드러난다.
그 문제점 때문에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전근대 개념의 성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일부의 경우, 원래 설계보다 복원 과정에서의 잘못 때문에 생겨난 문제일 수 있다.(2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