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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32223 / 414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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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금융강국 대한민국’을 향한 노력이 오히려 그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들로 인해 한국경제를 외환 금융 면에서 커다란 어려움에 빠뜨렸음을 파노라마처럼 기술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산업이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이라고 확신하고 대한민국을 금융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제반 정책을 추진하였다. 먼저,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형화 추진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인수합병(M&A)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하여 사활을 걸고 대출금 증대 및 외화영업 확대 등 외형 경쟁에 매진하였다. 금융감독 당국... 이 책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금융강국 대한민국’을 향한 노력이 오히려 그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들로 인해 한국경제를 외환 금융 면에서 커다란 어려움에 빠뜨렸음을 파노라마처럼 기술하고 있다. 정부는 금융산업이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이라고 확신하고 대한민국을 금융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제반 정책을 추진하였다. 먼저,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형화 추진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인수합병(M&A)시장에서 승자가 되기 위하여 사활을 걸고 대출금 증대 및 외화영업 확대 등 외형 경쟁에 매진하였다. 금융감독 당국은 다른 나라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에 둥지를 많이 틀게 하려면 금융규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금융규제 완화에 전력투구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금융허브로 만든는 명목으로 2005년에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는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헐어 넘겨준 외화자금 20억 달러로 메릴린치 지분투자에 나섰다가 투자금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버리는 큰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미국의 부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고 달려들다가 막판에 가서야 가까스로 중단하였다. 두 사례 모두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 및 ‘글로벌 플레이어’급 금융기관 출현이라는 정부의 금융강국 건설 목표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결국 이러한 정책들이 조급하고 무리하게 추진됨에 따라 우리나라 은행들은 취약한 자금조달 및 비정상적인 자금운용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예대율이 과도한 수준으로 치솟았고,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외채 규모가 급증하는 등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997년 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 임에도 당시 겪었던 위기의 원인에 관해 몇몇 단편적인 논문들만 발표되었을 뿐 이런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금융강국 건설이라는 신기루에 홀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제반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이 현저히 약화되고, 나라 전체가 거의 외환위기 국면에 봉착하게 되었던 상황에 대한 최초의 역사기록이자 엄중한 고발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저자의 30년 이상 재직한 한국은행에서의 실무 경험과 대학에서의 연구, 강의 경험을 살려, 딱딱한 경제 이야기이지만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차분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고 있음이 이 책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꼭 알아야 둬야할 정책들에 대해 알기 쉽게 읽을 수 있고, ‘금융강국 대한민국’의 허망한 꿈과 가혹한 현실에 냉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책머리에 필자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은행 워싱턴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워싱턴 D.C에 수없이 많은 민간연구소들이 둥지를 틀고 있음을 알고서 많은 것을 느낀 바 있다. 각종 연구소들의 명칭, 주소, 설립목적, 전화 및 팩스 번호 등을 반 쪽 정도로 정리한 수백 쪽의 연구소 명부(directory)가 출간되어 서점에서 판매될 정도였다. 이들 민간연구소들은 미국정부의 정책 수립을 폭 넓게 지원하는 한편 미국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당시만 하여도 한국에서는 정부나 재벌의 영향력 하에 있는 정부 출연 또는 재벌 산하 연구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을 뿐 순수 민간연구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워싱턴 D.C에는 브루킹스연구소처럼 매우 큰 규모의 민간연구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 인력이 한 두 사람인 민간연구소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작은 연구소들은 워싱턴 D.C 시가지 내의 옛날 가정집에 사무실을 두고 있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행의 중간간부였던 필자는 이처럼 한 두 사람이 운영하는 민간연구소들의 활동상을 보면서 필자의 은퇴 후 삶과 관련하여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곧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이후 필마단기로라도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원) 등 정부의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비판하는 일을 한다면 개인적인 여가선용은 물론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한국은행법이 개정되기 이전이어서 기획재정부장관(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등 기획재정부가 재정정책은 물론 통화정책에 대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관치금융을 철폐하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하려면 은퇴 후에는 기획재정부 등 주요 경제부처의 제반 정책 등을 추적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바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이처럼 오래 전에 구상했던 대로 은퇴 이후 자유롭고 홀가분한 입장에서 기획재정부 및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의 주요 경제정책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정부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 및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동북아금융허브 정책 및 금융 중심지 정책이 한국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 당시 정부가 우리나라를 금융 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추진하였던 정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경제를 거의 위기국면으로 치닫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필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필자가 한국은행을 퇴직한 직후인 2009년 출간한 『금리전쟁』의 제2탄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금리전쟁』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의 통화신용정책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한국은행과 재경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소재로 하였다. 당시 필자는 『금리전쟁』을 통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집요한 간섭이 어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짚어 보고, 이러한 간섭이 한국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바 있다. 필자는 『금리전쟁』을 출간하면서 앞으로 저술가의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학을 강의하는 데 재미를 붙이다 보니, 첫 책을 출간한 이후 5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제야 책 한 권을 더 내게 되어 필자의 불민함과 게으름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마다 꺼내 읽었던 다음의 글을 되새기면서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각고면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이 글은 필자의 조부(김경종)께서 오래 전에 쓰셨던 문집 『백수여음』의 서문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뜻하는 바가 원대하고 바라는 바가 높다. 스스로 학문, 사업, 문장, 저술로써 앞길을 기대하여 마음을 쓰고 기질을 갈고 닦는다. 그러나 또한 타고 난 재주와 분수에 막히고, 일의 형편에 그르침을 당하여 끝내는 뜻하고 바라던 곳에 이르지 못하고 몸은 이미 백발이 되어 버린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길에서 머뭇거리던 사람이, 묻건대 얼마인가? 아무개(나)의 평생의 일이 바로 이런 유인 것 이다. 뜻은 있었으나 용감히 나아갈 수 없었고, 바램은 있었으나 계획하여 마칠 수 없 었다. 도중에서 망설이다 빈궁한 오두막에서 헛되이 보내버렸다. (그렇지만) 다시는 옛 날의 뜻하고 바라던 바에 이를 수
책 머리에
필자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은행 워싱턴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워싱턴 D.C에 수없이 많은 민간연구소들이 둥지를 틀고 있음을 알고서 많은 것을 느낀 바 있다. 각종 연구소들의 명칭, 주소, 설립목적, 전화 및 팩스 번호 등을 반 쪽 정도로 정리한 수백 쪽의 연구소 명부(directory)가 출간되어 서점에서 판매될 정도였다. 이들 민간연구소들은 미국정부의 정책 수립을 폭 넓게 지원하는 한편 미국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당시만 하여도 한국에서는 정부나 재벌의 영향력 하에 있는 정부 출연 또는 재벌 산하 연구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을 뿐 순수 민간연구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워싱턴 D.C에는 브루킹스연구소처럼 매우 큰 규모의 민간연구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 인력이 한 두 사람인 민간연구소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작은 연구소들은 워싱턴 D.C 시가지 내의 옛날 가정집에 사무실을 두고 있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행의 중간간부였던 필자는 이처럼 한 두 사람이 운영하는 민간연구소들의 활동상을 보면서 필자의 은퇴 후 삶과 관련하여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곧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이후 필마단기로라도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원) 등 정부의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비판하는 일을 한다면 개인적인 여가선용은 물론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한국은행법이 개정되기 이전이어서 기획재정부장관(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등 기획재정부가 재정정책은 물론 통화정책에 대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관치금융을 철폐하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하려면 은퇴 후에는 기획재정부 등 주요 경제부처의 제반 정책 등을 추적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바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이처럼 오래 전에 구상했던 대로 은퇴 이후 자유롭고 홀가분한 입장에서 기획재정부 및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의 주요 경제정책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정부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 이 책은 노무현 정부 및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동북아금융허브 정책 및 금융 중심지 정책이 한국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 당시 정부가 우리나라를 금융 강국으로 만들기 위하여 추진하였던 정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경제를 거의 위기국면으로 치닫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필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구구절절 보여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필자가 한국은행을 퇴직한 직후인 2009년 출간한 『금리전쟁』의 제2탄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금리전쟁』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의 통화신용정책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한국은행과 재경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소재로 하였다. 당시 필자는 『금리전쟁』을 통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집요한 간섭이 어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짚어 보고, 이러한 간섭이 한국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바 있다.
필자는 『금리전쟁』을 출간하면서 앞으로 저술가의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학을 강의하는 데 재미를 붙이다 보니, 첫 책을 출간한 이후 5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제야 책 한 권을 더 내게 되어 필자의 불민함과 게으름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선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마다 꺼내 읽었던 다음의 글을 되새기면서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더욱 각고면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이 글은 필자의 조부(김경종)께서 오래 전에 쓰셨던 문집 『백수여음』의 서문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뜻하는 바가 원대하고 바라는 바가 높다. 스스로 학문, 사업, 문장, 저술로써 앞길을 기대하여 마음을 쓰고 기질을 갈고 닦는다. 그러나 또한 타고 난 재주와 분수에 막히고, 일의 형편에 그르침을 당하여 끝내는 뜻하고 바라던 곳에 이르지 못하고 몸은 이미 백발이 되어 버린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길에서 머뭇거리던 사람이, 묻건대 얼마인가? 아무개(나)의 평생의 일이 바로 이런 유인 것 이다. 뜻은 있었으나 용감히 나아갈 수 없었고, 바램은 있었으나 계획하여 마칠 수 없 었다. 도중에서 망설이다 빈궁한 오두막에서 헛되이 보내버렸다. (그렇지만) 다시는 옛 날의 뜻하고 바라던 바에 이를 수 없음을 비탄하면서 어찌 빈손으로만 돌아가야 하겠 는가?
이 책이 나올 때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박영렬 전 원장(현재 경영대학장)님과 이연호 원장님, 백기범 부장님은 천학비재한 필자를 객원교수로 받아주시어 쾌적한 연구공간을 제공하여 주시고 각종 지원을 원활하게 해 주셨다. 이 분들의 호의와 배려가 없었다면 청운의 꿈을 키웠던 연세동산에 다시 돌아와 이 책을 쓸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출간 자체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마고우인 곽재선 학형과 김성집 학형, 그리고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민준규 차장 등은 이 책의 원고를 숙독하여줌은 물론 비판적인 시각에서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제안을 많이 해 주셨다. 이 분들의 소중한 코멘트에 힘입어 이 책의 완성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이 책에 남아있을지 모를 오류 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필자의 책임이다.
원고의 편집과정에서 많은 조언과 노력을 기울여주신 김학민 선배님과, 사상 최악의 출판 불황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선뜻 출간을 결정해 주신 학민사 양기원 대표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으로 5남2녀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계신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부족한 남편을 인내하며 지켜봐 준 아내. 늘 따뜻한 우정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오랜 친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고양 꽃우물 동네에서 지은이
우리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11월 2일 902원이었던 대달러 환율은 국내에 유입되었던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2009년 3월 3일에는 1,574원까지 급등하였다. 2007년 10월 말 2,06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던 종합주가지수는 2008년 10월 24일 939로 반 토막이 났다. 결국 2008년 10월 30일 한국은행과 미 연준 간 통화스왑계약 체결을 통해 미 연준의 보호막이 드리워진 데 힘입어 우리나라 금융·외환시장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당시 외환 및 금융 면에서 우리나라가 처한 입장은 매우 곤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1997년 말과 같은 외환위기가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였다.
그때로부터 6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8년 당시의 위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당시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러더스 투자은행의 몰락으로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은 대체적으로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나타났던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등의 사태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발이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점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모든 신흥시장국들이 예외 없이 우리나라처럼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곧 싱가포르,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상당수의 신흥시장국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환율급등 등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어떤 특수한 취약요인이 있었기에 한국경제가 유독 상당수의 신흥시장국들과 달리 위기에 버금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일까?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다수의 신흥시장국들과 달리 외환과 금융 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이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있었음을 밝히고, 이를 제대로 기록하여 후대에까지 전하고자 하는 데 있다.
당시 한국경제의 위기가 전적으로 외부요인에서 비롯되었다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로서는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별로 없게 된다. 대신 당시 한국경제의 위기가 외부요인에 의해 점화되었지만 정부 정책의 실패에 따라 파생된 우리 내부의 취약요인 때문에 그 어려움이 증폭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 이득이 있다. 그러므로 외환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당시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우리나라가 2008년 위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에 대해 정부가 백서를 발간하거나 국회가 청문회를 개최하여 그 결과를 보고서로 채택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행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그런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감사원도 해당 경제부처의 정책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특별감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의 위기가 2008년 초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초기의 정책 실패는 물론 그 직전에 5년 동안 집권하였던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발생하였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이었는지 야당인 민주당은 당시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환위기라고 규정하지도 않았으며, 이를 초래한 정부정책 실패의 문제를 끈질기게 추궁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 여당에 대해 국회 청문회의 개최 등을 요구하지 않았다. 여당인 한나라당으로서도 집권 초 환율정책 등의 실패로 발목이 잡혀 있었던 데다 위기 극복을 위한 국회에서의 법안 처리 등을 위해 야당의 협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 있게 네 탓 내 탓을 따질 계제가 되지 못하였다. 이처럼 여야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일치하였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청문회나 감사원의 특별 감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이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보니 학계 및 언론 등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도 당시 위기의 원인 및 배경을 본격적이고 입체적으로 규명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 결과 당시 우리나라가 겪었던 위기의 원인에 관해 몇몇 단편적인 논문들이 발표되었을 뿐 아직까지도 이런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 또는 처음부터 끝까지 2008년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 및 배경 등을 천착한 단행본은 출간되지 않았다. 이것은 정작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관한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다수 출간되어 온 추세와 비교하면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나라 전체로 보아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경제가 위기에 이를 만큼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 결정적 요인으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공통적으로 추진하였던 금융강국 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정책들이 2008년 한국의 외환위기를 가져오는 데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인 2003년부터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강도 높게 추진하였다. 2008년 초 집권한 이명박 정부도 이를 계승하여 금융중심지 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하였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꼭 같이 연 7%의 성장률 목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공약인 높은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신성장동력의 확보가 긴요하였다. 이때 일부 경제 관료들과 관변 경제학자들은 금융산업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임을 설파하였으며, 두 대통령도 결국 이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3년부터 우리나라를 금융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제반 시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되었다.
당시 정부는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 시책을 추진하였다. 금융감독 당국이 직접 나서서 대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대형화가 되지 못하면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따라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 최우선의 정책목표를 두어야 할 감독당국이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몸집을 불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는 한편 필사적으로 대출경쟁 및 외화 영업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은행들의 예대율이 과도한 수준으로 치솟았을 뿐 아니라 단기외채를 중심으로 외채 규모가 급증하게 되었다.
더욱이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규제 완화를 위해 전력투구하였다. 다른 나라 금융기관들의 지점 및 사무소가 우리나라에 둥지를 많이 틀게 하려면 금융 규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은 한국의 감독 규제수준이 ‘금융기관들을 가볍게 툭 건드리는 정도(light touch regulation)'로 낮아졌다고 자평하였다. 외국 금융인들 앞에서 “한국의 감독 규제수준이 영국 등 금융허브 국가의 규제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자랑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정부는 우리나라를 자산운용업에 특화된 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 2005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하였다.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KIC는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헐어 넘겨준 외화자금으로 메릴린치 지분투자에 나섰다가 투자원금의 절반 가까이를 날려버리는 손실을 입었다. 더욱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위기에 봉착한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려고 통 크게 달려들다가 막판에 가서야 당국에 의해 제지당하는 추태를 보였다. 두 경우 모두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 및 ‘글로벌 플레이어’급 금융기관의 출현이라는 정부의 금융강국 건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기업이 동원된 대표적 사례였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들은 한국이 외환보유액의 수익성 증대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서라면 위험한 투자에 기꺼이 나설 수 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국제금융계에 심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금융계의 인식은 결국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가 발표하는 것만큼 온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불씨가 되었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다 보면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에 역점을 두었다.
첫째, 금융강국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서 수립되었으며, 어떤 부처 및 기관들이 거기에 관여했는지 정책의 수립 및 결정 과정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은 당시 위기가 초래되는 데에 어떤 부처 또는 기관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를 공정하게 평가하여 기록함으로써 후대 사람들이 이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둘째, 가능한 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평이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독자들이 경제나 금융 외환 등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참을성 있게 이 책만 따라 가면 2008년 한국경제가 겪었던 어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딱딱한 경제 이야기이지만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차분하게, 그리고 박진감 넘치도록 생생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도록 노력하였다.
셋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경제적 어려움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극복했는가 하는 것보다 당시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게 된 원인과 배경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방점을 두고 이를 소상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정부 및 한국은행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제반 정책에 대해서는 제7장에서 간략하게 다루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참여하였던 인사들이 추후 당시의 제반 정책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한편 정책 입안 과정에서 있었던 비화들을 소개해 줄 것을 고대해 본다.
한편 우리나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2008~09년 한국경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지에 대해 아직까지 통일된 견해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곧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에는 ‘외환위기’라고 지칭하는 견해가 제기된 바 있으나 그 이후에는 ‘외화유동성 위기’ 또는 ‘외화자금 조달 상의 어려움’ 등을 겪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견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2008~09년 한국경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지칭할 때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적용하였다. 첫째, 본문을 서술할 때에는 ‘외환 금융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표현하였으며, 간략한 표현이 필요할 때에는 ’위기‘라고 썼다. 둘째, Part 제목에서는 그 역사성을 강좋기 위해 ’위기‘라고 하였다.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Part 01 _ 동북아 금융허브와 금융강국의 꿈
1.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2.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결정 과정
3. 절실하였던 성장률 제고 및 신성장동력 확보
4.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에 대한 평가
5. 이명박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계승
Part 02 _ 금융의 새판 짜기와 은행들의 대형화 경쟁
1. 은행 간의 치열한 자산경쟁
2. 금융기관 대형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
3. 금융기관 간의 인수 합병(M&A) 열풍
4. 대형화 및 총자산 증대를 위한 은행장들의 집념
5. 자산경쟁의 전개와 예대율 급등
6. 자산경쟁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대응
Part 03 _ 자산증대를 위한 외화영업 경쟁
1. 매입외환 증대 경쟁
2. 외화대출 증대 경쟁
3. 해외 펀드 가입시 일률적으로 환 헤지 유도
4.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제안
Part 04 _ 한국투자공사(KIC)의 설립과 무모한 투자
1. KIC의 설립 배경
2. KIC 설립에 대한 한국은행의 대응
3. 국회 심의과정에서 제기된 KIC 설립의 문제점
4. KIC 법안의 국회 통과와 KIC 설립
5. 메릴린치에 대한 KIC의 무모한 투자
6. 몇 가지 교훈
Part 05 _ 금융규제 완화와 정책의 오류
1. 금융규제 완화에 앞장 선 감독기관 수장(首長)
2. 은행의 수익중시 풍조, 증권사와 외은 출신 영업통 은행장 발탁
3. 또 하나의 정책 실패 : 외화유출 촉진책
4. 숫자놀음에 그친 외화유동성 규제
Part 06 _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 추진
1. 의아스러운 리먼 브러더스 서울대표의 산업은행장 임명
2. 리먼 인수 시도 : 무능과 도덕적 해이의 극치
3. 국회 등에서 제기되었던 비판
4. 몇 가지 교훈
Part 07 _ 외환위기의 전개와 수습
1. 위기의 시작과 9월 위기설
2. 위기의 전개와 수습
3. 2008~09년 한국경제가 겪었던 위기의 성격
4. 금융? 외환 상황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시각과 홍보
5. 우리나라 위기대응 시스템의 취약성
에필로그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