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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902537 / 166쪽 15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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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나 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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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 21,600
- 19,800
- 20,700
- 18,000
반디앤루니스 리뷰
오늘날 새로운 미디어와 변화된 독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는 한국의 신문들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문의 역사를 되새겨보고 있는 이 책은, 신문 발행의 초창기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시기까지의 한국 신문의 역사를 정리해보고 있다. 신문의 과거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한국 신문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그 특성 형성의 역사적 맥락을 알아보고자 함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빛깔있는 책들’의 또 다른 시작 ‘역사’ 시리즈 지난 15년 동안 민속, 고미술, 불교문화, 한국의 자연 등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소개해온 빛깔있는 책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문물과 정신의 유입으로 혼란과 도약을 함께 겪어야 했던 개화기부터, 암흑의 시기인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의 혼란기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합니다. ‘역사’ 시리즈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혼란의 역사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다양한 문화와 인물들을 새로운 ... '빛깔있는 책들’의 또 다른 시작 ‘역사’ 시리즈 지난 15년 동안 민속, 고미술, 불교문화, 한국의 자연 등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소개해온 빛깔있는 책들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문물과 정신의 유입으로 혼란과 도약을 함께 겪어야 했던 개화기부터, 암흑의 시기인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의 혼란기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합니다. ‘역사’ 시리즈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혼란의 역사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다양한 문화와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할 것입니다. 신문, 진실을 시험당하다 우리나라의 신문은 역사적 배경만큼이나 격변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개화기와 일제시대의 신문들은 독립을 위해 또는 생존을 위해 투쟁하거나 일제와 영합해야 했다. 많은 신문들이 만들어졌으나 또 그만큼 폐간되었고 수많은 필화사건과 검거, 탄압이 있었다. 신문의 생명이 진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에 있다면 개화기와 일제시대는 신문들의 이런 역할에 대한 진정한 시험장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한성순보』로 시작된 신문의 역사는 시작부터 거대한 세력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다.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던 제국주의 세력들은 신문의 정확한 보도를 통제하기 위해 애썼다. 이어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신문들은 일제의 언론통제와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했다. 이 시기의 신문들은 신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일제에 맞서 진실 보도에 비교적 충실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신문들은 악화된 시대 배경 탓도 있지만 기업적인 확장을 위하여 일제와 일정 부분 영합해야만 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 등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제외한다면 이 시기 신문들은 진실의 보도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런 태도는 해방기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문의 굴절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의 신문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신문의 시작이라는 큰 의미와 더불어,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과연 신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는 즐거움 빛깔있는 책들 『신문』에는 신문의 역사 서술뿐 아니라 신문과 관련된 의미 있는 기록과, 진실을 보도하려는 기자들의 노고, 무너져가는 신문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독자들의 노력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초의 신문 광고와, 시사만화의 등장, 필화사건의 과정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한 독자 투고 속에 담긴 촌지를 찾아가라고 호소하는 독립신문의 기사와, 재정난으로 신문을 발행할 수 없어 원통해 하는 기자들의 호소, 신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기사 등을 원문 그대로 실었다. 또한 경품, 무가지, 광고 등을 이용해 재정을 확보하려는 신문들의 다양한 생존법도 소개되어 있다. 빛깔있는 책 『신문』을 읽다보면 험난한 역사를 헤쳐 온 신문의 고군분투한 땀방울과 동시에 진실을 외면한 부끄러운 얼굴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책 속으로 신문들이 독자 투고를 지면에 적극 활용한 것은 당시의 제작 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교통?통신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인력도 충분하지 못한 당시의 제작 여건에 독자 투고는 좋은 기삿거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서도 명분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실은 독자 투고를 하면서 편지와 함께 돈을 넣은 사례가 가끔씩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사연이 지면에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엽전 한두 푼씩 넣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곤 하는 언론 촌지의 역사적 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조선 후기부터 관료 사회가 부패하면서 관청에 민원을 청구할 때면 ‘인정미(人情米)’라고 하여 돈이나 쌀을 주어야 했던 당시의 풍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료들의 이러한 행태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독립신문』은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신문은 광고 외에는 돈을 받지 않는다면서 투고와 함께 촌지를 보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라고 가끔씩 지면을 통해 공지하곤 하였다. 혹시 신문에 내 달라고 누구든지 본사에 편지를 하면서 돈 몇 푼씩을 편지 속에 넣어 보내기에 이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우리 신문사의 규칙을 모르고 그렇게 한 듯하나 이는 신문사에 큰 실례라. 그 편지가 정직한 일이라면 어찌 돈을 넣으리오…… 편지 속에 넣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어 죄인들을 위해 쓰게 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55~56쪽) 일제의 신문 사전 검열이 만들어 낸 역사적 유물이 바로 ‘벽돌신문’이다. 일본군 사령부에 의한 사전 검열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있는 기사의 경우 삭제 처분이 이루어졌다. 이럴 경우 해당 신문들은 그 난을 다른 기사로 채워 넣지 않고 해당 기사란에는 활자를 뒤집어서 인쇄하였다. 따라서 지면에는 활자가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이 가지런히 인쇄되었던 것이다. 그 모양이 벽돌을 쌓아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 바로 ‘벽돌신문’이다. 이는 일제가 무력을 앞세워 부당한 언론 통제를 감행하는 것에 대한 우리 신문들의 저항의 표시였다. 최초의 벽돌신문은 1904년 2월 24일자 『황성신문』이 한일 의정서 조인 내용을 기사화 하였다가 삭제당한 것이었다. 이 사례를 시초로 하여 이 기간 중의 우리 민간지들은 적지 않은 수의 벽돌신문 기사를 게재하였다. 특히 1905년 7월 이후로는 검열이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벽돌신문의 발생 빈도도 매우 높아졌다.(70~71쪽)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은 1924년 1월부터 총독부의 후원 아래 각종 친일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이들은 “일선(日鮮) 양 민족의 혼연일체를 도(圖)하야 내(內)로는 민생의 강복과 외(外)로는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여 세계의 진운에 순응코자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11개 친일 단체의 유지 34명이 모여 3월 25일 발족하였다. 이 단체가 발족하자 『동아일보』는 3월 30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관민야합의 어리(漁利) 운동’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이 단체를 규탄하고 비난하였다. 이 사설이 공개되자 각파유지연맹의 간부인 박춘금이 『동아일보』의 사주인 김성수와 사장 송진우를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으로 불러내어 친일파를 공격한 것을 사과하고 돈 3천 원을 내라고 권총으로 협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협박에 대해 송진우는 “사담(私談)”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주장은 반대하나 인신공격한 것은 온당치 못한 줄로 인(認)함”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건네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 다음날 김성수는 박춘금이 요구했던 돈 3천 원을 전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111~112쪽) ☞ 저자 소개 채백(글, 사진) 서울대학교 신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박사)하였다. 현재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대중매체의 이해와 활용』, 『언론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출판학』, 『미국의 언론개혁』 등이 있으며 그 외 한국 언론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신문들이 독자 투고를 지면에 적극 활용한 것은 당시의 제작 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교통․통신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인력도 충분하지 못한 당시의 제작 여건에 독자 투고는 좋은 기삿거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서도 명분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실은 독자 투고를 하면서 편지와 함께 돈을 넣은 사례가 가끔씩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사연이 지면에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엽전 한두 푼씩 넣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곤 하는 언론 촌지의 역사적 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조선 후기부터 관료 사회가 부패하면서 관청에 민원을 청구할 때면 ‘인정미(人情米)’라고 하여 돈이나 쌀을 주어야 했던 당시의 풍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료들의 이러한 행태에 익숙해 있던 독자들이 신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행동을 취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독립신문』은 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신문은 광고 외에는 돈을 받지 않는다면서 투고와 함께 촌지를 보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라고 가끔씩 지면을 통해 공지하곤 하였다.
혹시 신문에 내 달라고 누구든지 본사에 편지를 하면서 돈 몇 푼씩을 편지 속에 넣어 보내기에 이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우리 신문사의 규칙을 모르고 그렇게 한 듯하나 이는 신문사에 큰 실례라. 그 편지가 정직한 일이라면 어찌 돈을 넣으리오…… 편지 속에 넣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어 죄인들을 위해 쓰게 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55~56쪽)
일제의 신문 사전 검열이 만들어 낸 역사적 유물이 바로 ‘벽돌신문’이다. 일본군 사령부에 의한 사전 검열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있는 기사의 경우 삭제 처분이 이루어졌다. 이럴 경우 해당 신문들은 그 난을 다른 기사로 채워 넣지 않고 해당 기사란에는 활자를 뒤집어서 인쇄하였다. 따라서 지면에는 활자가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이 가지런히 인쇄되었던 것이다. 그 모양이 벽돌을 쌓아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 바로 ‘벽돌신문’이다.
이는 일제가 무력을 앞세워 부당한 언론 통제를 감행하는 것에 대한 우리 신문들의 저항의 표시였다. 최초의 벽돌신문은 1904년 2월 24일자 『황성신문』이 한일 의정서 조인 내용을 기사화 하였다가 삭제당한 것이었다. 이 사례를 시초로 하여 이 기간 중의 우리 민간지들은 적지 않은 수의 벽돌신문 기사를 게재하였다. 특히 1905년 7월 이후로는 검열이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벽돌신문의 발생 빈도도 매우 높아졌다.(70~71쪽)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은 1924년 1월부터 총독부의 후원 아래 각종 친일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단체이다. 이들은 “일선(日鮮) 양 민족의 혼연일체를 도(圖)하야 내(內)로는 민생의 강복과 외(外)로는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여 세계의 진운에 순응코자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11개 친일 단체의 유지 34명이 모여 3월 25일 발족하였다. 이 단체가 발족하자 『동아일보』는 3월 30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관민야합의 어리(漁利) 운동’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이 단체를 규탄하고 비난하였다.
이 사설이 공개되자 각파유지연맹의 간부인 박춘금이 『동아일보』의 사주인 김성수와 사장 송진우를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으로 불러내어 친일파를 공격한 것을 사과하고 돈 3천 원을 내라고 권총으로 협박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협박에 대해 송진우는 “사담(私談)”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주장은 반대하나 인신공격한 것은 온당치 못한 줄로 인(認)함”이라는 내용의 쪽지를 건네주고 풀려날 수 있었다. 다음날 김성수는 박춘금이 요구했던 돈 3천 원을 전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111~112쪽)
목차
머리말 ... 6
개화기의 신문
근대 신문의 탄생 ... 12
조선 후기의 시대 상황
근대 신문 탄생의 배경
『한성순보』의 창간
『한성주보』와 광고의 출현
『독립신문』과 근대 신문의 발전? ... 28
『독립신문』의 창간
민간 신문의 민족 운동
근대 신문의 정착 ... 47
신문 발행의 다양화
독자층의 확대
신문사들의 경영과 판촉 활동
독자들의 신문 살리기 운동
러일 전쟁 이후 신문의 항일 운동 ... 69
일제의 신문 탄압
신문의 항일 운동
광무신문지법과 출판법의 제정
일제 강점기의 신문
무단 통치기의 신문 ... 88
한일 합병(韓日合倂)과 언론 통폐합
3.1운동과 지하 신문의 활동
식민 정책의 변화와 민간지 창간 ... 96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민간 신문 창간의 주체
민간 신문의 논조와 경영
신문계의 변화
1920년대 후반의 신문 ... 117
신간회의 결성과 『조선일보』
기자들의 항일 운동
잡지의 항일 운동과 신문 비평
1930년대의 신문 ... 128
일제의 언론 통제 강화
민간 3지의 상업적 경쟁
일장기 말소 사건
일제 말기의 친일 신문과 민간 신문의 폐간 ... 144
신문들의 친일 행각
민간 신문의 폐간
맺음말 ... 150
참고 문헌 ... 155
찾아보기 ... 157
신문 연보 ... 1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