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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평전 신화가 된 화가, 그 진실을 찾아서

최열 저 | 돌베개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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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6171 / 932쪽 / 1,212g / 153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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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화와 미궁 속을 헤매는 이중섭의 생애, 끊어진 다리를 이어, 그 생애의 실체와 마주하다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들이 범람한다. 그와 그의 그림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가, 미술작품을 꼽을 때마다 예외 없이 앞 순위를 차지한다. 그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신화가 되었고, 그는 천재화가로, 불행한 생을 살다 간 고독한 예술가로, 때로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고정된 이미지의 틀 안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호출된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끊어진 다리의 연속이다. 그에 관한 온갖 기록과 기억은 난무하되 이 시기와 저 시기가 맞지 않고,... 신화와 미궁 속을 헤매는 이중섭의 생애, 끊어진 다리를 이어, 그 생애의 실체와 마주하다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들이 범람한다. 그와 그의 그림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가, 미술작품을 꼽을 때마다 예외 없이 앞 순위를 차지한다. 그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신화가 되었고, 그는 천재화가로, 불행한 생을 살다 간 고독한 예술가로, 때로 애절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고정된 이미지의 틀 안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호출된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끊어진 다리의 연속이다. 그에 관한 온갖 기록과 기억은 난무하되 이 시기와 저 시기가 맞지 않고,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투성이다. 거기에 추측과 과장이 보태져 그의 생애는 미묘하게 어긋난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그 때문에 더욱 더 그의 삶은 미궁 속을 헤맨다. 지금까지 회자되어오는, 이중섭에 관한 숱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그의 실체에 가 닿아 있을까.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미술사학자 최열이 쓴 『이중섭 평전』은 바로 그런 물음표에서 출발했다. 우리 미술사에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된 화가 이중섭을 이대로 허상 속에 머물게만 할 수 없다는 저자의 의지는 한 인간에 대한 밝혀진 모든 기록을 들추게 했고, 그것은 원고지 약 4천 매 분량으로 거듭났다. 이로써 우리는 이중섭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족적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삶의 고비에 마주할 때마다 겪었을 이중섭의 고뇌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숱하게 흩어진 수많은 기록과 기록 속에서 발견한, 이중섭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가 왜 신화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이제 이중섭을 알고 싶다면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펼쳐야 한다. 그 속에 지금껏 감춰진 이중섭 생애의 실체와 그의 예술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중섭에 관한 명실상부한 정전의 탄생, 우리 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가 등장하다 약 40여 년 전 열일곱 나이에 이중섭 작품과 우연히 만난 저자 최열은 세월이 흘러 우리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인으로 살면서 이중섭을 늘 마음 한켠에 두고 살았다. 불분명한 것들 투성이인 우리 미술사 연구의 한복판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문헌과 기록 그리고 남아 있는 작품만을 바탕으로 그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는 대표적인 연구자인 그는 언젠가 이중섭에 관한 기록을 완성하겠노라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섭렵했고, 흩어진 퍼즐을 짜맞췄다. 그렇게 만난 이중섭에 관한 주요 문헌은 약 500여 종에 이르고, 그는 그 모든 기록을 총망라하여 앞뒤의 모순과 맥락의 불일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정확한 기록을 선별하되 그것에 대한 감상적인 추측과 불확실한 과장은 극도로 경계했다. 이러한 그의 치밀한 노력은 이중섭 생애 전반을 복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동안 이중섭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숱한 에피소드의 진실이 무엇인지까지를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참고문헌의 리스트로만 수록하는 대신 해당 문헌과 기록의 구체적인 출처 정보를 약 70여 페이지의 빼곡한 주(註)로 밝혔다. 또한 약 500여 종의 문헌 가운데 시와 소설, 희곡 작품이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제외한 약 150여 종을 따로 선별하여 그것의 목록을 책 뒤에 모아놓음으로써 이중섭 아카이브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하였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완전하다. 때문에 저자 최열은 이중섭이 어릴 때 자라고, 유랑하듯 지냈던 도시의 당시 문화계 지형을 살피는 것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세심하게 살핀, 이중섭의 족적과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이중섭이 머물렀던 도시들의 문화계 풍경은 한 사람의 예술가의 생애만이 아니라 식민지 치하, 전쟁의 와중에 우리 문화계가 어떠한 지형을 구축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보고서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이중섭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좀더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한 연구자의 집요하고 치열한 노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책은 그러므로 이후 이중섭 연구의 새로운 기준점이 되는 것은 물론, 이중섭에 관한 명실상부한 정전(正典)이자, 나아가 우리 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추측과 사실, 상상과 진실이 교차된 이중섭 생애의 정확하고 거의 완전한 복원 1916년에 태어나 1956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마흔의 생애를 살았던 이중섭은 동시대를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한동안 선명하게 살아 있었다. 그 기억들은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그의 생을 증거하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었고 그 기록들은 새로운 기록 탄생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기억이란 때로 왜곡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는 법. 기록과 기록은 어긋나 있었고, 막연한 추측과 환상이 사실로 둔갑하여 그의 생을 대표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남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동안 이중섭이 오산고보에 진학한 것은 민족정신을 추구하는 오산고보의 이념과 맞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중섭은 평양 제2고등보통학교에 두 차례 연이어 낙방하고 난 뒤 외할아버지 이진태와 오산고보 설립자인 이승훈과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산고보에 진학한 것으로 볼 수 있다.(본문 39쪽) 또한 도쿄 유학 시절 도쿄미술학교가 아닌 제국미술학교로, 뒤이어 문화학원으로 옮긴 까닭은 그가 민족정신이 투철하거나 또는 관학파를 싫어하고 재야파를 선호하는 자유로운 기질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유학을 갈 시기 도쿄미술대학의 입학 규정이 까다로워져 상대적으로 입학이 쉬운 제국미술학교로 간 것이고, 부진한 성적으로 정학 처분을 받아 문화학원으로 옮긴 것이다.(본문 82쪽, 본문 95쪽) 서귀포에서 지낸 기간 역시 그동안 6개월부터 1년까지 의견이 분분했으며(본문 262쪽) 통영에서의 체류 기간 역시 불분명하던 것을 기록을 통해 바로 잡았고,(본문 424쪽) 그가 정신병력을 보인 것은 가문의 내력이라는 설부터 서울 개인전 당시부터라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1955년 7월 이후라는 것 역시 밝혔다.(본문 624쪽) 자신의 작품이 MoMA에 소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대수롭지 않은 척 반응했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며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의 작품이 MoMA에 소장된 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난 것(본문 705쪽) 역시 드러났다. 이외에도 그의 불불명했던 생일부터 몇 차례 열었던 개인전의 경위, 사망의 시점, 기존 저술들의 불확실성 등을 숱하게 바로 잡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동안 미묘하게 어긋나 있던 무수한 사실들의 재발견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1916년 9월 16일에서 1956년 9월 6일까지 살았던 그는 물론이요 사후부터 지금까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식을 되돌아보다 1956년 9월 6일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 311호실에서 이중섭은 외롭게 홀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간장염으로 사망한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영안실에 이틀 동안 홀로 있어야 했다. 사흘째가 되어서야 그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 지인들이 그의 장례를 치렀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뒤 그를 추모하는 기사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최열의 『이중섭 평전』은 생전의 이중섭의 생애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 사후 쏟아지듯 뜨거워진 그에 대한 관심의 현상 역시 고스란히 담았다. 후일담에 그치지 않고 ‘외전-그 떠난 후’라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서 그의 불명확한 사인을 밝히고, 그를 추모하거나 회고하는 모든 기록을

저자 소개

1956년 덕유산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림과 글쓰기를 좋아했고, 자라면서는 떠돌기를 즐겨했으니 낭인시절이다. 명산대천 유람을 좋아하던 스승 김복진과 마찬가지로 산천과 그 사이 마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 듣는 일이 좋았다. 그래서 땅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에 빠져들었고, 끝내 옛 그림에 숨어있는 사람 이야기를 드러내는 글쓰기에 탐닉하고 있다. 학인시절이다. 
조선대, 중앙대를 나와 가나아트센터를 다녔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현대미술운동사》, 《김복진》,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한국현대미술비평사》를 비롯한 여러 저작으로 대한민국학술원, 문예진흥원,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었고, 한국미술저작상, 간행물문화대상, 월간미술대상, 정현웅연구기금을 수상했다. 
오래 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인물미술사학회, 오월 회원 및 김복진, 이경성, 정현웅 선생을 기리는 일과 고려대, 국민대, 서울대, 중앙대, 홍익대 강사로 나가는 가운데 옛 그림, 옛 사람 이야기에 전념하고 있다. 

목차

목차
* 책을 펴내며|홀로 천리 길 걷다 떠난 그의 생애를 그리다
* 마지막날
01 평원ㆍ평양ㆍ정주 1916-1935
포근한 나날들 탄생의 날|소년, 티 없이 자라다|평양에서 화가로서의 싹을 틔우다|고분벽화, 이중섭 예술의 첫 번째 운명 *그의 생일은 언제인가
빛나는 학창 시절 낙방, 그리고 오산과의 만남| 타잔 같은 남학생, 미성을 지닌 사람|오산고보 미술부|미술교사 임용련, 백남순|생애 최초, 공모전에 입선하다 *평양의 미술계
휴학과 복학, 그림에 빠져 살다 휴학, 가족이 있는 원산으로|휴학 중 공모전 입선|“소에 미치다”|복학, 공모전 입선|졸업, 대한해협을 건너 도쿄로 *오산고보 방화사건의 진실은?
02 도쿄ㆍ원산ㆍ도쿄 1936-1943
도쿄에서의 첫 해 낯선 땅 도쿄|제국미술학교를 선택한 까닭은|제국미술학교에서 보낸 일 년|원산으로 귀향, 프랑스냐 일본이냐
다시, 도쿄로 두 번째 거처, 분쿄구|문화학원으로 옮긴 까닭|문화학원 신입생, 아고리 이중섭|루오와 피카소, 서구 근대문학에 심취하다|자유미술가협회전 응모의 시작|그녀, 야마모토 마사코 *화가, 츠다 세이슈
졸업, 귀국 대신 진학 문화학원 연구과에 들어가다|“우리 화단의 일등 빛나는 존재”|이중섭은 루오, 구상은 예수|대향, 20대 이중섭의 유쾌한 결단|화가 이중섭의 화창한 봄날 *‘중섭’을 ‘둥섭’으로 쓰는 까닭
소 도판으로만 남은 《소》, 소 그림의 원형|소묘로 그린 또다른 원형|《서 있는 소》, 아름다운 애린|초현실의 신화를 담은 《망월 1》|사랑의 유혹을 그린 두 작품|정령 연작, 범신론의 세계관을 드러내다|다가설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절망
치닫는 사랑, 불안한 도쿄 글 없는 그림 편지|그림에 담긴 그녀|불안으로 뒤덮인 도쿄|사랑하는 여인을 뒤로 하고, 귀국 *미술사의 축복, 이중섭의 엽서화
03 원산ㆍ서울ㆍ원산 1943-1950
이별ㆍ해후ㆍ결혼 1943년 8월의 이별, 도쿄에서 경성 그리고 원산으로|어둡고 무거운 나날|벗들과의 조우|조선에 온 직녀|5월의 신부, 야마모토 마사코가 이남덕으로
해방을 맞이하다 해방 직후의 원산 미술계|11월에는 경성, 12월에는 평양|독립미술협회를 결성하다|집 안팎의 사정들 |원산미술동맹 결성과 이중섭의 작품 활동|이중섭의 그림을 평한 소련인 비평가|첫아이의 죽음, 둘째아들의 탄생|원산미술소를 열다|제자 김영환, 그가 남긴 이중섭 어록 *강원도의 박수근과 한묵
‘인민의 적’? 시집『응향』사건, 문학과 정치의 충돌|『응향』의 표지화, 억압 받은 ‘표현의 자유’|『나 사는 곳』의 속표지화를 그리다|“이중섭의 작품은 인민의 적”?|1947년 8월 서울과 평양, 이중섭은 어디에?|해방공간에서 창작에 몰두하다|월북한 오장환과의 해후|셋째아들의 탄생|박수근과의 만남 *벌거벗은 가족?
남쪽으로 전쟁, 전시체제에서의 이중섭|원산 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다|영원한 이별이 되어버린 월남
04 부산ㆍ서귀포ㆍ부산 1951-1953 상
월남, 그후 배를 타고 부산으로|부산에서 한 달여, 다시 따뜻한 제주도로
서귀포 시절 서귀포 서귀동 512-1번지|전쟁과 제주도|제주와 부산을 오가다|오페라 「콩지팟지」의 무대장치와 소품 제작|제주, 고통과 환상의 땅 *서귀포행, 1월인가 4월인가 *피난지 제주도 화가들
제주에서 그린 그림 서귀포의 화공이 되어 그린 제주 풍경|그림에 담은 아이들과 바닷게|최초의 은지화, 그리고 그가 그린 제주 사람들
다시, 부산 범일동 판잣집|전쟁을 전후한 부산과 부산 미술계|김환기와의 해후, 다른 화가들과의 인연의 시작|분주한 나날들, 종군화가단 가입과 전람회와 작품전 출품|삽화를 그리다|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두 아들 *범천동의 낭인설 *신화의 기원
홀로 부산 혼자 남은 나날들|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의 시작|야마모토 마사코, 서적 무역 사업의 실패|표지화를 그리다|부산 월남미술인작품전 출품|이 시절 이중섭을 만나고, 함께 했던 사람들 *구상의 『민주고발』*대구 월남화가 작품전과 부산 월남미술인 작품전 개최를 둘러싼 논란?
전설이 된 은지화 은지화의 기원|아이들부터 현실 세계까지 아우른 은지화 속 세상|이 시절 그린 다른 그림들
1953년 봄날 새해, 새봄, 진해와 통영으로 떠난 여행|여행을 마치고 다시 부산|활력소가 된 제3회 신사실파전
도쿄로 보낸 편지 “나는 약간 신경질이 되어 있소”|“새로운 회화예술을 창작하고 완성해가겠소”|“대향은 반드시 남덕을 행복하게 해 보이겠소”|“마씨의 건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요”
05 도쿄ㆍ통영ㆍ마산ㆍ진주 1953 하-1954 상
일본행 일주일을 위한 준비|일본에서의 일주일|돌아온 뒤, 여전한 괴로움|부산을 떠나 통영으로
통영, 행복한 시절 자신만의 양식을 완성하다|통영에서 보낸 6개월, 눈부신 나날들|잘못 만들어진 이중섭의 모습 *통영의 문화예술계
대향양식의 성취 꿈결 같은 통영을 그리다|구성계열과 표현계열, 이중섭만의 세계 완성|곧 이중섭 자신이었던 들소|두 점의 양면화|가족, 새와 꽃, 끈과 아이……|소묘 그리고 유사도상|삽화 양식의 정립
남도와의 이별 마산 출입|박생광과의 해후, 진주에서의 개인전|진주의 진주, 《진주 붉은 소》|허종배, 이중섭을 찍다, 걸작을 남기다|“일본에 가는 것을 찬성해주시오”|남도와의 이별
06 서울ㆍ대구 1954 하-1955 상
남도에서 서울로 제6회 대한미술협회 전람회 참가, 외국 진출의 희망|그림만을 그리는 나날|『저격능선』의 표지화, 『한국일보』의 삽화 *전후 서울 풍경 *정치열 형에게
최후의 절정 서울 시절의 교유 관계|지친 나날들|“당신 곁에서 1년 만이라도 머물 수 있다면”|누상동을 떠나 신수동으로|사진, 새로운 소통의 수단
개인전 준비 “지금부터는 목숨을 거는 겁니다”|전시장은 미도파화랑으로|“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작품”|자화상, 탐닉하는 스스로를 그리다|그림에 담은 그리운 가족들|닭을 그린 까닭|절정의 걸작, 《흰 소 1》의 탄생|풍경과 추억을 소재로 삼다 *개인전을 둘러싼 여러 설 *작품 《닭》의 제목과 제작 연대 변천사
드디어, 개인전 새해, 새 희망|1955년 1월 18일 이중섭 작품전 개막|작품전의 작품들|평판과 판매에 깊은 관심을 갖다|작품의 철거, 수금의 실패|작품 판매를 위한 대구에서의 개인전 *《통영 들소 2》와 《흰 소 1》은 어떻게 판매되었는가
개인전을 둘러싼 비평 이활의 비평, 언론계의 첫 공식 반응|정규와 이경성, 상반된 시선으로 작품을 평하다|이중섭의 값진 면모를 발견한 맥타가트
07 대구ㆍ칠곡ㆍ왜관 1955 상
마지막 희망 대구에서 다시 개인전을 준비하다|개인전을 위해 태어난 눈부신 걸작|1955년 4월 11일 이중섭 작품전 개막|실패, 자학의 시작 *1950년대 대구 풍경
절망의 노래 대구와 칠곡, 왜관을 오가다|왜관에서 그린 그림|그림을 불태우다|절망의 노래, 구원의 갈망
발병, 그에 관한 기록 구상의 기록|조정자의 기록|고은의 기록|대구에서의 마지막 아침
08 서울 1955 하~1956
투병 병원 생활의 시작|병원에서 그린 그림|그에 관한 이대원과 한묵의 기록|“동경에 가는 것은 병 때문에 어려워졌소”
퇴원 그후 눈 덮인 정릉으로|삽화에 몰두하다|정릉에서 남긴 작품
최후 치료 방식에 관한 오류|다시 입원|병원을 옮기다|퇴원, 다시 입원
*다시, 마지막날
외전 |그 떠난 후 사인|요절 천재가 되다|떠난 뒤 9월|떠난 뒤 10월|떠난 뒤 11월|떠난 뒤 12월|유작|신화의 탄생|찬사와 비판|이중섭미술관|끝나지 않은 전설 *MoMA에 소장된 은지화
부록 주註|이중섭 주요 연보 1916-1956|이중섭의 주요 작품|이중섭에 관한 주요 문헌|
이중섭과 관련한 주요 인물|찾아보기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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