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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078105 / 564쪽 13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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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아주 특별한 세 여인, 그리고 헤르만 헤세와의 삶과 사랑
헤르만 헤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등 엄청난 대작을 인류사에 남긴 작가, 헤르만 헤세. 헤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였다. 헤세의 가슴은 어려서부터 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불타올랐고, 문학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삶은 그의 문학작품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 문학적 천재였던 헤세의 삶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평전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헤세의 삶을 동경하는 작가도 상당수 있다.
고전이 된 『황야의 이리』와 『싯다르타』가 매년 백만 부 이상 판매되고 사람들은 헤세의 개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만, 정작 헤세가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헤세는 어떤 여인을 사랑했고, 사랑한 여인에게서 어떤 문학적 영감을 얻어냈을까? 헤르만 헤세와 이혼하고 50년 뒤, 헤세의 두번째 부인 루트 벵거는 이렇게 썼다. “모든 평전에서 내가 그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는 축소되거나 삭제되거나 잊혀졌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에게는 아름다웠을지 모르지만, 헤세의 여인들에게는 너무나 비참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랑에 대해 추적한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진작가였던 마리아 베르누이, 성악가였던 루트 벵거, 미술사학자였던 니논 돌빈. 헤르만 헤세는 세 여인을 사랑했고 그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헤세와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지 못했다. 헤세와 각각 인생을 공유한 세 여인이었지만, 이들은 헤세와의 사랑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
헤세에게 세 여인은 삶의 일부분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헤세와의 결혼은 삶 전체를 난폭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재난과도 같았다. 헤세와 여인들이 서로에게 남긴 흔적 또한 역사에서 사라져갔다. 헤세의 첫번째 부인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인 마리아 베르누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더 이상 없어. 다시는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굴종하지 못할 거야. 이제 그런 건 없어. 그 사람은 그냥 작가일 뿐이야.” 그녀가 편지를 쓴 시점인 1925년 3월은 헤세가 스무 살이나 어린 루트 벵거와 결혼한 지 10개월이나 지난 때였다. 헤세는 2년 뒤 루트 벵거와도 이혼하고, 4년 뒤에는 니논 돌빈과 결혼한다. 루트 벵거는 법정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헤세를 변태적 인간, 노이로제에 걸린 불면증 환자, 정신병자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헤르만 헤세가 사랑했던, 하지만 결국은 헤세로부터 버림받은 여인들의 초상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헤세의 문학적 천재의 이면을 날카롭게 묘사해낸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저녁마다 한 여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머리카락이 검은, 매력적이면서도 거친 야생마 같은 여인입니다. (…) 나는 자유 시간을 그 여인과 함께 보냅니다. 기껏해야 내 턱수염에 닿을 정도로 자그마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열정적인 키스는 나를 거의 질식하게 만듭니다. 물론 나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혼에 대한 소질도 없는 거 같고요. 대신에 나는 이미 다 녹슬어버린 사랑의 기술을 다시금 되살리고 있는 중입니다.
1903년 6월 4일, 바젤에서 헤르만 헤세가 케스코 코모Cesco Como에게 보낸 편지 (25쪽)
헤세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마리아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진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이미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고 결혼 준비금까지 주기로 약속한 터였다. 마리아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결혼 사실을 빨리 알리려고 했다. 헤세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가을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청첩장을 인쇄하는 일도 뒤로 미루자고 했다. 5월 9일, 마리아는 헤세에게 편지를 보냈다. “청첩장은 좀 더 생각해보기로해요. 결혼하면 당연히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지요. 우리는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결혼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하는 거잖아요.” 오순절에 마리아는 칼프로 가서 헤세를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혼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46쪽)
마리아는 주위 사람들의 축하 인사와 화환, 선물을 받았다. 결혼 준비금도 미리 마련해놓았다. 그녀는 이불이 얼마나 길어야 할지, 솜털 이불이 좋을지 아니면 말털 이불이 좋을지 헤세에게 물어보았다. 헤세는 이종사촌 파울 군데르트에게 편지를 썼다. “축하해주어서 고마워. 어쩌면 결혼이 내 인생에 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 힘을 내서 잘 버텨보려고 한다네.” (47쪽)
사람들은 방랑자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말할지 모른다. 한때 가난했던 서점 수습생이 이제는 보덴 호숫가의 저택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과 나룻배, 엄청난 판매 부수. 그는 작가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성공했다. 마침내 그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기이한 인간의 내면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107쪽)
우리가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보금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가이엔호펜에 지쳐 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여행을 떠났다. 바깥세상은 무척이나 넓었다. 나는 마침내 인도까지 이르렀다. (…)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그런 걸 ‘도피’라고 규정한다. 물론 그런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세상을 넓게 조망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 이 모든 게 충분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적 원인뿐 아니라 외부적 원인도 우리의 불행을 재촉했다. (…) 우리는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이엔호펜의 결혼 생활이 한낱 일화로 남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 (127쪽)
헤세는 고독한 삶이나 일에만 몰두하는 삶도 현실도피처럼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겐 가정적인 문제와 과도한 업무 때문에 신경쇠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16년 3월 8일, 헤세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의 죽음은 헤세의 정신 질환에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헤세는 아버지의 부음을 접한 즉시 코른탈로 달려갔다. 경건주의와 신비주의가 숨 쉬고 있는 아버지의 세계로 다시금 돌아온 것이다. 헤세는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헤세에게 미해결로 남아 있던 예전의 갈등을 다시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헤세는 독일과 스위스 국경에 접한 뢰라흐에서 40여 시간을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에 신경 발작을 일으켰다. (142쪽)
발행인 피셔와 편집인 오스카 뢰르케, 헤트비히 피셔는 이때까지 헤세가 쓴 원고를 거의 다 읽었지만, 싱클레어라는 이름 뒤에 헤세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헤세는 『데미안』에서 기존 작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생 편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부모를 통해 알게 된 인도가 아니라 신비주의적인 아브락사스의 제례 의식을 받드는 동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면의 체험을 형상화하기 위해 꿈의 세계와 심리 분석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작품에서 랑 박사는 자아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을 주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로 형상화되었다. 전쟁의 카타르시스적 효과를 기대하던 헤세는 전쟁이 끝나기 1년 전에 이미 파국적 결말을 예견하고 있었다. (163쪽)
루트와의 관계도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건 그저 유희일 뿐이지요. 나는 여성이 육체적인 욕망을 분명히 요구할 때만 그걸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루트는 그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젊은 여자치고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녀는 나에게 동료 같은 존재입니다. 편하게 야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1920년 7월 10일, 몬타뇰라에서 헤르만 헤세가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에게 보낸 편지 (222쪽)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읽은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니논 돌빈이었다. 지금은 빈을 떠나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1920년 12월 22일, 그녀는 헤세에게 편지를 썼다. “이 무슨 놀라운 언어인가요! 집약된, 간결한, 육중한, 다채로운, 그리고 이글거리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내 안에 무언가 강렬한 힘을 느꼈답니다.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어요.” 편지 속에는 그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헤세가 그녀를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44쪽)
에미와 후고는 루가노의 가톨릭 모임에서 요제프 엥레르트를 만났다. 그들은 함께 미사에 참석하고 서로 책을 빌려 읽었다. 1920년 12월 2일, 에미와 후고는 카사라테에 사는 엥레르
트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그들은 또 다른 방문객을 만났다. 그가 바로 헤세였다. 에미는 그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에 그의 인도 시학 『싯다르타』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인도 시학의 영혼 같았다. 그는 나긋하고 섬세한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미소였다.” 오랫동안 무절제한 삶을 영위하던 그녀는 헤세의 금욕적인 모습과 종교적인 경륜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남편 후고도 마찬가지였다. 헤세는 그녀를 “육욕적 대상”으로 보지 않고 “경건한 몽상가”라고 여겼다. (257쪽)
사랑하는 친구 랑 박사에게.
나는 지금 이혼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주로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기술해주기 바랍니다. 의학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아내가 정신착란에 걸렸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923년 3월 8일, 몬타뇰라에서 헤르만 헤세가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에게 보낸 편지 (290쪽)
헤세는 두통과 안질 때문에 니논이 가까이 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헤세는 자신이 쓴 수필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루트가 그를 위해 수놓은 베개에 관한 이야기였다. 니논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그의 곁에 있는데 왜 과거의 여인을 떠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글을 읽고 난 니논은 서운한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 (382~383쪽)
서문
마리아
루트
니논
헤르만 헤세 부인
연보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