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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심사정 조선남종화의 탄생

이예성 저 | 돌베개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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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6089 / 344쪽 / 654g / 175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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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현재 심사정, 그의 예술 세계를 통해 새롭게 만나는 조선 회화사의 앞과 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누가 있을까. 흔히 3원3재(三園三齋)라 하여 6대 화가를 꼽는다. 3원은 단원 김홍도(壇園 金弘道),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말하고, 3재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그리고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을 일컫는다. 다른 이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들에게도 현재 심사정의 이름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현재 심사정, 그의 예술 세계를 통해 새롭게 만나는 조선 회화사의 앞과 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누가 있을까. 흔히 3원3재(三園三齋)라 하여 6대 화가를 꼽는다. 3원은 단원 김홍도(壇園 金弘道),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말하고, 3재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그리고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을 일컫는다. 다른 이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들에게도 현재 심사정의 이름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선 시대를 조명하는 전시회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주 가는 이들이라면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림만큼은 눈에 익을 것이다. 아직 이른 봄, 다리를 건너 눈도 채 녹지 않은 산속으로 매화를 찾아 떠나는 인물을 그린 《파교심매》?橋尋梅, 심사정이 그림을 그리고 원교 이광사가 글씨를 써서 함께 만든 《현원합벽첩》玄圓合璧帖의 아름다운 화조화, 그리고 지난 6월 15일까지 서울 DDP에서 전시된 조선 최초의 산수장권山水長卷인 《촉잔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조선 시대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그의 그림은 아취가 느껴지는 단아한 것과 활달하고 거친 필선으로 그려진 호방한 것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작품들도 있다. 커다란 대작이 있는가 하면 손바닥만 한 작은 작품도 있어 정말 한 작가의 그림일까 싶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현재 심사정, 조선남종화의 탄생』은 심사정에 관한 국내 대표 연구자인 저자 이예성이 심사정 당시의 숱한 자료와 그에 관한 기록은 물론 그가 남긴 약 300여 점의 작품을 살펴 그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오롯이 담아낸 책이다. 그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저자는 당대 다른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과 심사정의 작품들을 함께 살핌으로써 심사정이 그 당시 다른 문인화가들과는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가를 생생하게 밝혔다. 또한 심사정이 중국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그것을 토대로 조선만의 특징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폈으며,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후대 화가들의 작품까지 비교함으로써 심사정을 기점으로 그 앞과 옆, 그리고 후대까지의 조선 미술사의 전후를 함께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대역죄인의 자손이 되어 평생 화가로서 외롭고 고단한 생을 살다 1707년(숙종 33년), 혼인을 통해 왕실과도 연계가 있었을 만큼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심사정은 그러나 조부 심익창(沈益昌)이 연잉군(이후 영조) 시해 미수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역죄인의 자손으로 전락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일생 불우하게 살아야 했으며 전문화가가 되어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야 할 만큼 곤궁하게 지내야 했다. 환갑이 가까운 58세 때 그를 만난 이덕무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하루 4점씩 그림을 그리며 살았고, 금강산에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인생 최대의 걸작 《촉잔도》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그는 63세로 세상을 떠난 뒤 장사를 치를 형편도 되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는 기록을 묘지명에 남겨야 했다. 그가 평생 얼마나 그림을 열심히 그려야 했고, 얼마나 곤궁하게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집안에 닥친 불행에 좌절하지 않았다. 세상의 냉대를 뒤로 하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했으며, 그림에 대한 타고난 자질을 평생 연마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을 만큼 스스로의 재능을 꽃 피웠고, 나아가 조선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자신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꾸준히 작품을 남긴 덕분에 약 300여 점의 작품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저자인 이예성은 이를 가리켜 “곤곤한 삶을 살다간 심사정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한국회화사에는 그럴 수 없는 행운”이라고 평한다. 심사정은 당시의 활동과 명성에 비하면 전하는 기록이 아주 적은 편이다. 확언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역모 죄인의 자손과 교유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꺼렸던 탓으로 보인다. 역모 죄인의 자손과 교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당시로서는 심사정과 교유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좋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가 남긴 작품, 그의 작품에 대한 당대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역모 죄인의 자손으로서 생업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그가 남긴 수많은 그림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삶과 인생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하고 있다. 그의 삶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그림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며 그리하여 그는 온전히 그림으로만 말하는 화가이다. 중국의 남종문인화를 토대로 우리만의 미감을 담은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키다 1707년에 태어난 심사정은 숙종, 경종을 거쳐 영조 대에까지 살았는데, 이 시기는 조선이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던 시기로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때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청과의 관계가 개선된 1700년 이후에는 회화 전반에 걸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아마추어 화가인 문인화가들이 각 시기마다 회화의 새로운 변화를 제시하고 이끌어 왔는데, 조선 후기 변화를 이끌었던 것도 바로 문인화가들이었고 심사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던 화가였다.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이었던 남종화풍은 17세기부터 조금씩 전래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수용되었으며, 그 결과 조선 후기 회화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조선 후기에 진경산수화풍 못지않은 영향을 끼친 심사정의 화풍 역시 중국의 남종화풍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심사정은 중국의 남종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화풍을 수립하는 한편, 이를 전통 화풍과 접목시켜 중국의 남종화풍과는 다른 고유색을 띤 조선남종화풍을 완성시켰다. 그가 조선남종화풍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데는 명문가의 자손이지만 직업화가로 살 수밖에 없던 그의 처지 덕분이기도 하다. 당시 신분에 따른 화풍의 선호도가 분명했던 문인화가들은 남종화풍은 선호하여 자신들의 그림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으나, 이른바 북종화풍으로 구분된, 직업화가들의 화풍이라고 여겨지던 절파화풍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신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심사정은 작품에 필요한 것이라면 절파화풍이나 기타 북종화풍으로 분류되던 기법도 주저하지 않고 사용했으며, 이를 응용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그를 통해 조선만의 새로운 화풍인 이른바 ‘조선남종화’가 태어난 것이다. 이는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창안해낸 것과 같은 것으로, 즉 실경산수화 분야에서는 정선이 우리의 산천을 대상으로 우리의 미감이 반영된 고유색 짙은 진경산수화풍을 만들어냈다면, 정통 산수화 분야에서는 심사정이 우리의 정서와 미감이 반영된 조선남종화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산수화는 물론 화조화와 도석인물화까지 모든 그림에 능했던, 나라 안 제일의 화가 어려서 겸재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한 심사정은 정신을 숭상한 나라 안 제일의 화가로, 유일하게 정선과 비교되고 때론 정선보다 높게 평가되었던 화가이다. 정통 산수화를 많이 그렸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훼(花卉)와 초충(草蟲)을 비롯한 화조화로도 유명했으며, 도석인물화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강세황이 그를 가리켜 “그림에 있어서 못하는 것이

저자 소개

 李禮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사정에 관한 국내의 대표적인 연구자로 꼽히며 여러 대학 및 문화 관련 기관 등에서 한국미술사에 관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현재 심사정 연구』(2000),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지도』(2005, 공저), 『조선왕실의 미술문화』(2005, 공저), 『한국의 미술가』(2006, 공저)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오로지 화가였던 사람, 조선남종화를 탄생시키다|저자의 말
1. 외로운 삶이 이끈 화가로서의 한평생
불우했으나 뛰어난 화가로 살다 | 태어날 때 이미 죄인의 자손 | 스스로 깨쳐 그림을 그리다 | 역적의 자?손이라는 멍에를 지고 | 되돌아갈 수 없는 사대부의 삶 |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리다
2. 화풍을 배우고 익혀 자신만의 것을 이루다
절파화풍과 남종화풍, 심사정 화풍의 큰 줄기가 되다 | 절파화풍,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화풍 | 어린 시절, 겸재 정선에게 그림을 배우다 | 중국의 화보를 통해 익힌 남종화 | 역적의 손자, 그 한계 속에서 나눈 사람들과의 교류 |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다
3. 산수화, 심사정 그림의 진수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담아 그린 산수화 | 왕유에서 심주까지, 그림의 원류를 탐구하다 | 중국 남종화를 조선남종화로 | 금강산, 생애 최초의 여행을 화폭에 담다 | 세상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워지다 | 《촉잔도》, 인생 만년의 걸작
4. 화조화,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담다
“현재는 그림에 있어서 화훼와 초충을 제일 잘하였다” | 돌과 풀, 꽃과 곤충을 맑고 담백하게 | 한폭에 어우러진 꽃과 새, 단아하게 또는 호방하게 | 사군자, 수묵으로 베풀어낸 선禪의 세상
5. 인물화의 변화를 이끌다
그를 통해 이어진 도석인물화의 맥 | 달마의 내면까지 담아낸 현재의 달마도 | 신선도에 펼쳐진 다양한 기법과 개성적인 인물들
6. 오로지 화가였던 사람
옛사람의 정신을 본받아 이룬 그만의 예술세계 | 평생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사람, 그림 속에 스스로를 담다 | 지두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다 | 화업의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촉잔도》
7. 국중제일國中第一 의 화가
“귀신도 감동시킬 정도의 경지” | 당대를 넘어 후대로 이어진 현재의 자취
*그림으로 절망을 견디는 한가닥 빛을 삼다| 책을 마치며
●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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