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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대기람 개성상인의 홍삼로드 개척기

공성구 저 | 박동욱 역 | 태학사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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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666423 / 188쪽 210 x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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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향대기람>, 개성상인들의 42일간 홍삼 판매 개척기 1928년에는 4월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개성의 대표적인 실업가 손봉상과 관료이자 기업인이었던 공성학, 그의 사촌 동생인 공성구, 미쓰이사의 직원 아마노 유?노스케가 홍삼 판로를 시찰을 위해 홍콩과 대만으로 여행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부차적으로 주요 명승지도 관광하며 기록하였다. 이때의 이야기가 바로 <향대기람(香臺紀覽)>이다. 그들의 행로와 기록을 따라가다보면 위태롭던 근대 동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생생한 기록 1928년, 개성상인들은 홍삼을 판매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들은 삼업조합의 조합원들로 조합장 손봉상과 부조합장 공성학, 공성구 등이다. 조합원들은 일본의 미쓰이사와 함께 홍삼 시찰 길을 떠났는데, 삼업조합과 미쓰이사의 끈끈한 협력 관계가 일기 곳곳에 드러난다. 삼업조합과 미쓰이사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홍삼 판로를 개척하여 실행에 옮겼고, 공성구를 비롯한 삼업조합의 조합원들이 미쓰이사의 지원 아래 동아시아 곳곳에 퍼져 있는 미쓰이 지사를 방문하며 시장조사를 한다. 미쓰이사 직원들 또한 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여행길을 점검한다. 개성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부산과 시모노세키, 대만, 홍콩, 마카오, 상해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그들이 곳곳에서 마주한 근대 동아시아는 혼란스러웠다. 중국 각지에 배일 감정이 격화되어 엔화도 받지 않는 지경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등 그들의 여정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개성의 큰 상인이었던 그들의 관심사는 신문물과 현대 문명이었다. 그들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대만과 홍콩, 마카오에 감명을 받는다. 특히 5월 4일부터 14일까지 대만에서의 일정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대만의 원주민 번인의 안타까운 역사보다는 번인이 어떻게 개화되어 문명화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또한 대만의 신목(神木) 홍회목(紅會木)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원시림의 거대한 목재를 운송하는 철도 시설이나 각판산의 ‘대차’라는 이동수단에 주목하고, 오고갈 때 타던 배의 정보와 묘사 또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그들은 조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운송 및 교통수단이나 기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주요 도시의 인구와 주요 산업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기록하며 홍삼 판매량을 계산하기도 하는 철저한 상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역사보다 경제와 시장이었다. <향대기람>, 근대 한문학의 마지막 자취 1928년에 쓴 <향대기람>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한문학의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문헌사적, 역사적 사료로서도 손색이 없다. 원문을 부록으로 수록하여 그들의 여행기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홍콩과 대만을 여행한 기록도 드물다. 몇 편의 기행문이 있지만, 이처럼 일기 형식으로 상세히 묘사하고 기록한 문헌은 찾기 쉽지 않다. 20세기 식민지 조선에서 발행한 <향대기람>은 조선과 대만과의 무역에 첫 포문을 열었고, 문화적 교류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박동욱 교수가 선별한 사진과 그림들은 그들의 생생한 여정의 묘미를 더해주며, 공성구의 설명과 곁들이면 대만과 홍콩을 여행할 현대인에게도 든든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그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확인할 수 없으나, 1920년대 개성 삼업조합에 근무했다. 『향대기람』은 그가 개성 홍삼의 판로를 뚫기 위해 대만과 홍콩으로 시찰 갔다가 일본을 경유해 오면서 쓴 여행 일기이다. 이 노정에 동행한 사람들 중 하나인 사촌 형 공성학(孔聖學, 1879~1957)이 관장하는 고려인삼 주식회사 등 여러 사업을 돕기도 했다. 1929년 개성 고려청년회 이사장을 지냈다.

역자 소개

한양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조교수이다. 2001년 <라쁠륨> 가을 호에 현대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기억으로 남겨야 할 옛것과 옛사람들의 흔적을 현재의 공간으로 꺼내와 삶의 근원적인 비의(秘意)를 탐색하는 데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향대기람》, 《승사록》과 《동국산수기》가 있다. 그 밖에 함께 옮긴 책으로 《혜환 이용휴 시전집》,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이가환 시전집》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와 《아버지의 편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선장이 가운데에 앉고 선객(船客)은 마음대로 자리에 앉으니, 서양요리가 올려졌다. 급사가 생선과 채소, 고기 등 여러 음식을 큰 쟁반에 담고 서양 스푼 하나를 놓았다. 손님들은 차례대로 소반 가운데로 나아가 먹고 싶은 것을 스푼으로 덜어 개인 그릇에 옮겨 담아 먹었다. 또 다른 음식이 계속 차례로 올라왔는데 대략 20종쯤 되었다. 각자 스스로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몸가짐을 바로 했으니, 그 엄숙한 태도가 공식적인 연회 모습과 같았다.(p.23)

오후 1시에 점심밥을 먹고 선장에게 배 구경을 청하자, 선장인간 겐타로(管源三郞)가 직접 안내하였다. 처음에는 쇠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기관실로 들어갔다. 앞뒤에 모두 8개의 화덕이 있는데 날마다 석탄 120여 톤을 소비한다. 그런데 각 기관이 서로 부딪치고 찧고 충격을 주면서 우르릉우르릉 돌아가는 소리를 냈는데, 그 옆에 서 있으면 사람들의 말소리조차 구분하기 어려워 선장의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타진기(舵進機)는 운전하는 데 중요한 기관이며, 부속기관인 발전기와 양수기와 냉각기 등도 현란해서 눈길을 빼앗았다. 바로 사다리를 타고 선장실과 기사장실 을 거쳐 다시 높은 돈대로 올라가니 지휘침과 방향전환기, 속력측량기와 우중망원기, 일영측정기와 침수격단기, 선내통신기와 전화기, 표준시계 등이 모두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p.25)

대북시는 대만의 수도로 총독부와 주청(州廳) 등 여러 관청이 있는 곳이며 학교와 병원, 박물관, 도서관, 식물원 등 문화 시설도 모두 갖춰져 있었다. 도로는 넓으면서도 깨끗하고, 건물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하였으며, 쌀과 차 등의 산물이 유통되는 중심지였다. 그래서 점포가 번창하여 상업도 번성하였다. 담수가 뚫고 흘러서 풍경이 수려하였으며, 인구는 20만 명이나 된다고 하였다.(p.29)

그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하였는데, 전체 길이는 45리이고 운반해 내려오는 목재는 해마다 20만 석에 달한다고 한다. 높은 고개를 휘어잡고 오르니 터널은 모두 85개소나 되었다. 수레가 터널 하나를 겨우 빠져나오면 또 다른 터널로 들어간다. 구불구불한 것이 마치 소라껍데기와 같았으며, 한 바퀴를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조금 전에 올라왔던 길이 곧 발아래에 있다. 두 바퀴를 돌아 올려다보면 가야 할 노선이 또 머리 위에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를 돌아 올라가 아래 세계를 내려다보니 아득하고 까마득하게 보이는 것이 거의 태고(太古), 즉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과 같아서 하늘과 땅이 다만 하나의 길일 따름이다. 황홀함은 마치 날개가 돋아나 신선이 된 것만 같았다.(p.42)

대개 마카오와 광동의 입구는 네덜란드인들이 처음에 동양으로 와서 무역을 하려고 거주하던 곳이었다. 오늘날에는 네덜란드의 영토가 되었으나, 할양(割讓)한다는 계약이 없었으니 임시로 사람들이 섞여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상업의 상황은 볼 만한 것이 없어서, 한 해 들어오는 세입 중 도박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다만 시내가 깨끗하고 도로가 완전해 주택이나 유원으로 알맞았다. 그곳의 현재 인구는 대략 10만 명쯤이라고 한다.(p.71)

이른바 사면은 영국인의 조차지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한다. 시내의 동남쪽 모퉁이를 점유하고 있어서 동서로 겨우 480여 칸, 남북으로 100여 칸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구역이었다. 시내와 접하고 있는 곳에는 굴을 뚫어서 물을 대고 있었다. 그곳에는 철조망을 둘러치고 그 안을 드나드는 입구에 군인과 경찰이 교대로 중국인의 무단출입을 허락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중국의 치욕이요, 광동지역에 난 혹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사면을 포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제 그 실상을 보니 가슴을 찌르는 감회를 금할 수가 없었다.(p.78)

홍콩과 구룡 지역의 토지는 모두 국가 소유였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토지와 가옥 사용료 이외에는 다만 인지(印紙)와 아편과 담배와 주류 등의 세금만 부과하였고, 소비세와 소득세, 차량세와 가옥세, 토지세 등의 잡세(雜稅)는 없었다. 그리하여 한 해 동안 세금을 거둔 것이 매년 2000여만 불에 이르러 홍콩 정청(政廳)의 세출을 충당하고 있다.(p.88)

지금 타고 있는 타이요마루는 1만 4,000여 톤이나 되었다. 일등객실은 3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화원·오락실·유희실·술 마시는 곳·부인실·소아실 등이 질서 정연하게 완비되어 있었다. 이 배 또한 본래 독일의 소유였는데 세계대전의 결과로 일본 소유가 된 것이었다. 11시 반에 식당으로 돌아가니 남녀 선객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엄숙하고 단정하였다. 막 수저를 들려고 할 때 서양 음악을 연주하여 식사를 도왔다. 풍부하고 정갈한 음식과 온화하고 점잖게 받듦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p.89)

목차

손봉상 서문
저자 서문

4월
30일 아마노 씨와 만나서 부산으로 출발하다

5월
1일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다
2일 요시노마루를 타고 대만으로 출발하다
3일 선장의 안내로 배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4일 대북역에 도착하다
5일 대북의 여러 명소를 두루 다니다
6일 각판산에 가다
7일 번인을 직접 만나보다
8일 아리산 풍경
9일 구니노미야의 소식을 듣다
10일 항춘과 아란비를 구경하다
11일 고웅과 대남역 일대를 구경하다
12일 마조를 기리는 행렬을 구경하다
13일 대만의 이모저모를 기록하다
14일 중국 각지에 배일 감정이 팽배해지다
15일 하문대학교와 남보타사를 구경하다
16일 안전상의 이유로 배에서 머물다
17일 홍콩에 도착하다
18일 기녀가 부족해서 추첨을 하다
19일 남당주루에 오르다
20일 마카오에 도착하다
21일 비 내리는 시내를 구경하다
22일 섬을 두루 구경하다
23일 손문의 유적을 방문하다
24일 더위에 고생하다
25일 구룡시에 가다
26일 연회에 초대받다
27일 아편을 피우다
28일 귀국에 앞서 직원들에게 술을 사다
29일 타이요마루에 승선하다
30일 배 안에서 무료하게 지내다
31일 배 안의 운동기구를 사용하다

6월
1일 상해에서 사람들과 만나다
2일 귀국 선편을 알아보다
3일 4명의 중국인과 만나다
4일 미쓰이사 지점장 집에 초대받다
5일 여러 사람과 작별을 고하다
6일 아마노 씨를 남겨놓고 먼저 떠나다
7일 일본에 도착하다
9일 일본 여기저기를 두루 구경하다
10일 드디어 경성에 도착하다

옮긴이 해제
<향대기람>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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