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케인스 하이에크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원제 : Keynes Hayek: The Clash That Defined Modern Economics (2011)

니컬러스 웝숏 저 | 김홍식 역 | 부키 | 2014년 03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60.00
판매가
$33.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66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60513761 / 632쪽 158 x 232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까지,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백악관까지
경제학의 오늘을 만들고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결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학계 숙명의 라이벌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100년에 가까운 대격돌을 담았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들과 전개 과정, 개인사와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둘의 대결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원전들을 충실히 분석해 두 사람의 대결을 훌륭하게 재구성한다. 균형 있는 관찰자의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논쟁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 인물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까지 곁들여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화제를 뿌리며 미국 아마존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까지,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백악관까지 경제학의 오늘을 만들고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결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학계 숙명의 라이벌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100년에 가까운 대격돌을 담았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들과 전개 과정, 개인사와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둘의 대결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널리스...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까지,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백악관까지 경제학의 오늘을 만들고 세계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결 오늘날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학계 숙명의 라이벌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100년에 가까운 대격돌을 담았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들과 전개 과정, 개인사와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둘의 대결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는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원전들을 충실히 분석해 두 사람의 대결을 훌륭하게 재구성한다. 균형 있는 관찰자의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논쟁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 인물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까지 곁들여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화제를 뿌리며 미국 아마존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우린 여전히 케인스 하이에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각각 세상을 떠난 두 경제학자. 운명적인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경제학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해 왔고, 그들의 독자적인 사상이 경제학계는 물론 정치권으로까지 번져 각국의 경제 정책을 좌우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벌어진 이 두 죽은 천재 학자들의 리턴 매치는 오늘의 세계가 여전히 그들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금융 위기가 닥치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시장이 경기 침체를 소화할 때까지 지켜볼 것인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수조 달러의 정부 차입금을 지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하이에크냐 케인스냐의 갈림길에서 부시는 결국 케인스를 택했다. 2008년 10월 23일자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은 “돌아온 케인스”라는 기사를 내보내며 케인스의 화려한 재기를 선언했다. 부시에 뒤이은 오바마 새 행정부도 막대한 예산을 경제에 주입했다. 하지만 국가 채무를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불리는 일이라는 ‘티파티 운동’ 측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정치 평론가 글렌 벡은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동안 잊혔던 하이에크의 책 『노예의 길』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했고, 이 덕분에 『노예의 길』은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의 2010년 6월 9일자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1위를, 세계 최대 오프라인 서점 체인 반스앤드노블의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출간된 지 66년 만에, 저자가 사망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책이 온?오프라인 최대 서점을 석권한 것이다. 왜 아직도 케인스 또는 하이에크인가? 이 책 『케인스 하이에크』는 이 경제학의 두 맞수가 벌인 세기의 대결을 조명함으로써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시도다. 지난 100년의 경제학은 이 두 천재의 대결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에 불황의 해법을 놓고 치열한 지상 논쟁을 벌였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 두 사람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일목요연하게 살핀 책은 그동안 없었다. 100년에 가까운 대결을 연대순으로 담은 이 책은 논쟁을 단순히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배경부터 논쟁이 촉발되고 격화하며 전개된 과정, 후예들과 학계로 번지고 각자의 진영이 형성되어, 급기야 각국 정부의 경제 정책의 토대로 발전하기까지의 단계들을 차근히 되짚는다. 케인스의 시대, 하이에크의 시대를 각각 맞이하며 엎치락뒤치락하다 2008년 금융 위기와 더불어 다시 두 사람의 논쟁이 재조명되는 최근의 흐름까지 살펴보고 있다. 논쟁의 세부적인 정황과 개인사 같은 구체적인 부분부터 두 거장의 충돌이 경제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사상과 이념, 정치관으로 확산되는 큰 흐름까지, 한마디로 ‘케인스 vs 하이에크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한데 아우른 책이다. 저자 니컬러스 웝숏은 《타임스》 창간 편집인, 《뉴욕 선》 수석 편집자를 지낸 노련한 언론인으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광대한 문헌을 명료하게 정리해 냈다.(케인스가 남긴 저작은 편집을 거쳐 출판된 문헌만 20권이 넘는 수준이다.) 로이 해러드, 로버트 스키델스키, 앨런 에번스타인 등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전기에서 따로따로 단편적으로 서술된 부분도 치밀하게 연결해 새롭게 재구성했다. 마치 두 거장의 전기를 두 사람의 충돌과 대립에 초점을 맞춰 교차 서술한 듯한 구성이다. 특히 주요 주장과 논박은 두 인물의 실제 발언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 줌으로써 독자는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양쪽 의견을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영미권 독자들조차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대결을 이처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에 목말라 있었는지, 이 책은 출간 직후 화제를 뿌리며 미국 아마존 경제 부문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 두 라이벌의 전기를 동시에 읽는 색다른 경험 저자 웝숏은 레이건, 대처 등의 전기를 쓴 작가답게 등장인물의 심리나 개인적 처지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케인스와 하이에크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역사 및 경제 이론 대결과 더불어 주요 등장인물의 흥미진진한 일화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들이 한가득 담겨 있어,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전기이자 20세기 역사서로 읽어도 손색없다. 예컨대 이 책은 두 학자의 대립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어떤 경제학 책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이다. 케인스는 앨프리드 마셜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케임브리지 대학 중심의 영국 경제학파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하이에크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설파하는 자본 투자 이론 중심의 유럽 대륙 경제학파가 뿌리였다. LSE(런던 정경대학) 측은 케임브리지를 누르고 영국 경제 이론의 산실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케인스를 “경제학계의 돌팔이”로 여겼던 LSE 학장 윌리엄 베버리지와 LSE 정치경제학부 교수였던 라이어널 로빈스가 합심해 케인스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한 소장 경제학자를 물색했고 이때 오스트리아학파의 새내기 하이에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로빈스가 주관한 몇 차례의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하이에크는 LSE 교수로 임용됐다. 그리고 1931년 여름 로빈스가 편집 주간으로 있었던 학술지 《이코노미카》에 케인스의 『화폐론』을 비판하는 서평을 기고함으로써 운명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사랑에 있어서도 그들의 경제학 이론만큼이나 통이 크거나(케인스) 자유주의적(하이에크)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동성애자로 살았던 케인스는 러시아 발레리나 리디야 로푸호바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두 사람이 날마다 서로에게 쓴 장문의 편지 뭉치가 수북하게 남아 있는데, 서로의 사랑이 얼마나 정열적이었는지 노골적인 성애 묘사까지 그대로 담겨 있다. 둘 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리디야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인스는 불임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나중에 귀족 작위를 수여받았을 때 케인스는 자신을 가리켜 본래 작위명인 ‘Baron Keynes(케인스 남작)’ 대신에 발음이 같은 다른 말 ‘Barren Keynes(불임의 케인스)’라고 부르곤 했다. 한편, 하이에크는 옛사랑을 찾아 조강지처를 버린 케이스였다. 하이에크는 1946년 빈을 방문했다가 젊은 시절의 연인을 만나게 됐다. 이혼을 원했지만 아내가 동의하지 않자 LSE의 교수직을 내놓고 이혼 소송 비용이 저렴한 미국 아칸소 주로 거주지를 옮겼다. 전 아내와 두 자녀, 새 아내까지 부양하게 된 하이에크는 결국 미국 시카고 대학,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저자 소개


영국 언론인, 저술가. 《타임스》 창간 편집인, 《뉴욕 선(New York Sun)》 수석 편집자를 지냈으며, 현재 뉴욕에 살면서 《로이터》 등 다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인스 하이에크(Keynes Hayek: The Clash That Defined Modern Economics)』(2011),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Ronald Reagan and Margaret Thatcher: A Political Marriage)』(2007)를 비롯해 정치인 및 학자를 집중 분석하는 책을 주로 썼고 『캐럴 리드(Carol Reed: A Biography)』(1994) 『렉스 해리슨(Rex Harrison)』(1991) 『중간에 선 남자(The Man Between: A Biography of Carol Reed)』(1990), 『피터 오툴(Peter O'Toole: A Biography)』(1981) 등 유명 인사의 전기도 다수 썼다.

역자 소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국제경제팀, 삼성전자 국제본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경제/금융/투자 분야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경제학자들의 목소리』,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시장변화를 이기는 투자: 랜덤워크』(공역) 외에 리처드 세넷의 『장인』과 클라이브 해밀턴의 『성장숭배』, 니컬러스 웝숏의 『케인스 하이에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케인스는 전쟁 배상금 문제를 거론했다. 케인스는 독일을 시골 가난뱅이들이 사는 나라로 밟아 놓자는 것이 프랑스의 주목적이라고 폭로했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파산 상태의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제 자금을 마련하려는 부가적인 의도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독일 자체가 파산 상태라는 사실, 이미 파산했기에 항복했다는 사실, 또 독일이 세금이나 융자로 배상금을 마련할 처지가 못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인스는 복수욕에 불타는 연합국 국민에게도 “독일의 향후 지불 여력을 고려한 배상 금액은 세간의 기대에 크게 미달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사실상 잉여 생산물 전체를 영구적으로 연합국에 양도하기로 약속한 셈”이기 때문에 베르사유 조약이 고집하는 배상금은 독일이 마련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케인스는 베르사유 조약을 두고 “독일을 매년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꼴이며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잔인한 승전국이 범한 가장 충격적인 행위”임이 곧 드러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 본문 41쪽 “패전국의 영웅이 되다” 중에서

 

하이에크는 주머니 사정이 너무 빠듯해 편도 운임만 챙겨 대서양을 건너는 배에 올랐다. 게다가 전보 보낼 돈을 절약하려고 젱크스에게 도착 일자를 알려 주지도 않고 출발했다. 1923년 3월 하이에크는 단돈 25달러만 손에 쥔 채 뉴욕 맨해튼 서안의 여객선 부두에 내려 젱크스의 뉴욕 대학 연구실로 찾아갔다. 하필이면 그때 젱크스가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했다. 돈도, 아는 사람도 없이 낯선 땅에 홀로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이에크는 젱크스가 돌아올 때까지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맨해튼 6번가의 한 식당에서 접시 닦이 일거리를 하나 구했다. 그가 개수대에 손을 담가야 할 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젱크스가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이에크가 육체노동을 하게 될 뻔했던 거의 유일한 기회가 그렇게 사라졌다. 하이에크는 92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민간 부문에서 일해 본 적이 없었다. - 본문 67쪽 “가난한 ‘미국 나들이’” 중에서

 

하이에크는 케임브리지에서 내놓는 해결책들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논리적 결함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줬다. 아무리 선의에서 나온 정책이라도 그것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 경제 불황을 돈을 차입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면 사태는 더욱 나빠질 뿐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그 대신 하이에크는 냉정하지만 진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즉 신속한 해결책을 포기하라는 것, 달갑지는 않지만 균형을 상실한 경제는 시간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것, 케인스처럼 듣기 좋은 말로 신속한 처방을 제시하는 의사들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 그런 사람들은 사기꾼이고 엉터리 약장수이며 돌팔이라는 것, 지름길이라고 해서 애써 가 봐야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 손쉬운 선택지는 없으며 장기적 과정을 거쳐야만 진정한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는 것, 시장은 그 자체의 논리, 그 자체에 맞는 자연적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케인스 같은 정치적 선동가가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진정제를 제시하는 역할은 하지 않았다. - 본문 154쪽 “인위적인 저축과 개입은 악영향만 끼친다” 중에서

 

케인스는 자신과 대립하는 분석이 아무리 얼토당토않더라도 늘 본능적으로 비판에 정면으로 맞섰다. 논쟁을 통해 배우는 것, 이것이 케임브리지의 분위기를 지배한 집단 정서였다. 케인스가 논쟁에 끼면 토론은 언제나 화려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전개됐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논쟁가인 그는 적수와 자신의 차이점을 극적으로 부각시키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기라성 같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조차 케인스의 놀라운 지능에 움찔할 때가 있었다. “케인스의 지력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예리하고 선명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는 러셀은 이런 말도 했다. “케인스와 논쟁할 때면 내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논쟁이 끝날 때면 내가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일 때가 많았다. 그 정도로 영리한 사람은 반대로 깊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지만 내 짐작이 옳았다고 보지 않는다.”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도 같은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의 전조등 불빛은 희미해지는 적이 없었다.” 전기 작가 해러드도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 시대에 케인스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케인스 본인보다 세상이 더 숨기려고 했다.” - 본문 187쪽 중에서

 

영국에서는 『노예의 길』을 평가하는 의견이 대체로 평형을 유지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소설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서평이다. 오웰은 야금야금 파고드는 권위주의 문제에 대해 결코 잠자코 있을 사람이 아니다. “하이에크 교수의 논증에서 비판적인 부분은 큰 진실을 담고 있다. 집산주의가 꼭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산주의는 스페인 종교 재판관들조차 꿈꾸지 못한 막대한 권력을 소수 독재자들에게 안겨 준다.” 하지만 오웰은 다른 견해도 표명했다. “그런데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 경쟁으로 돌아가는 것은 십중팔구 그보다 더욱 나쁜 폭정을 뜻한다. 자유 경쟁의 폭정은 국가의 폭정보다 더욱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 교수는 이 점을 모르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경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을 독식하는 누군가가 나온다는 점이다. 하이에크는 자유 경쟁이 필연적으로 독점을 초래한다는 점을 부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유 경쟁이 다다르는 곳은 독점이다. 불황이나 실업보다 국가가 엄격하게 조직하고 통제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쪽이 압도적 다수일 것이므로 이 문제에서 대중이 발언권을 가진다면 집산주의로 쏠리는 움직임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 본문 367쪽 “극과 극의 뜨거운 반응” 중에서

 

레이건은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누진 세제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또 다른 사실을 체험했다. 영화배우로서 한 해 500만 달러가 넘는 큰돈을 벌게 되니 1937년에는 소득의 79퍼센트나 되는 혹독한 세금을 물었다. 1943년에는 이 소득 세율이 94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레이건은 당시의 일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물어야 할 세율이 고율 소득세 구간에 도달하고 나니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아도 거절하게 됐다. 1만 원을 벌어 600원만 남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할리우드의 유행이 레이건처럼 말쑥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배우에서 윌리엄 홀든처럼 강인한 영웅 이미지의 배우로 바뀌자 레이건을 찾는 영화감독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큰돈을 벌던 시절 못지않게 거액의 세금을 내야 했다. 재무 상태가 붕괴될 지경에 몰린 레이건은 세금은 필요악을 넘어 순전한 악이며 낭비와 의존을 부추겨 부패한 시스템을 조장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본문 451쪽 “레이건, 보수파의 총아로 떠오르다” 중에서

 

1986년에 닉슨의 경제자문위원장 허버트 스타인은 1930년대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싸움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다.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케인스를 자유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작정한 어두운 악의 세력이라고 여겨 왔다. 하지만 사실 자유 경제 체제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변화를 주창하는 심각한 도전이 일었을 때 그 자유 경제 체제의 구원을 도왔던 사람이 바로 케인스다.” 스타인이 이 말을 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케인스의 해결책을 실행하는 데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다 하이에크의 고통스러운 처방이 더 좋다며 도박을 하려는 미국인이 늘어나는 것 같다. - 본문 518쪽 “자본주의의 진정한 수호자, 케인스” 중에서

 

목차

목차
이 책에 쏟아진 찬사 | 서문
1 매력 넘치는 영웅 : 케인스는 어떻게 하이에크의 우상이 되었나 (1919~1927)
무명 경제학자, 세계적 학자에게 편지를 띄우다 | 압도적인 풍모, 황홀한 음색의 소유자 | 전시의 특수한 경제 상황에 흥미를 느끼다 | 평화 회의는 어디로 귀결되는가 | 패전국의 영웅이 되다
2 제국은 사라지고 :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물가만이 상승하다 (1919~1924)
전선에서 접한 경제학 | 사라진 것은 제국만이 아니었다 | 오스트리아학파의 새내기 | 케인스의 경고가 맞아 들어가다 | 길 잃은 자유방임 | 가난한 ‘미국 나들이’
3 싸움의 전선이 형성되다 :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연적’ 질서란 없다 (1923~1929)
낭비하더라도 쓰는 게 낫다 | 자유방임의 종언을 선언하다 | 금 본위제로 복귀하기로 한 영국 | 인위적인 개입이 문제다 | 토끼와 거북이, 경주가 시작되다
4 케인스의 고군분투 :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첫 대면 (1928~1930)
로빈스, 하이에크를 점찍다 | 정신없이 보낸 7년의 산물, ‘미완성작’ 『화폐론』 | 저축과 투자는 다르다 | 공공사업을 두고 재무부와 대립하다 | 새로운 열변의 장, 맥밀런위원회 | 영국이 수입 관세를 부과해야 하는 이유 | 케인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던 두 사람
5 총잡이 하이에크 : 케인스의 대항마가 등장하다 (1931)
케임브리지의 열렬한 추종자들 | 싸늘하게 식어 버린 첫 강연 | 통화량은 경제의 작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인위적인 저축과 개입은 악영향만 끼친다 | 로빈스의 기대에 십분 부응한 하이에크
6 선제공격 : 하이에크, 『화폐론』을 거세게 혹평하다 (1931)
케인스의 고견을 구하려는 미국인들 | 결국 금 본위제에 발목 잡히다 | 도마에 오른 『화페론』… 난도질이 시작되다 | 안토니우스의 가면을 쓴 키케로 | 케인스는 과연 미끼를 물 것인가
7 반격 : 케인스와 하이에크, 험악한 충돌 (1931)
분노한 케인스, 무자비하게 반박하다 | 상처 입은 하이에크의 재반론 | 논쟁의 2라운드, 서신 왕래 | 런던 vs 케임브리지로 번진 대결
8 스라파의 출격 : 케인스, 용병을 기용하다 (1932)
로빈스와 하이에크의 전략적 실수 | 싸움꾼 스라파 | 이탈리아 용병, 하이에크에게 쓴맛을 보여 주다 | 약 오른 하이에크 vs 독 오른 스라파 | 뭔가 거대한 것의 충돌
9 고지를 향하여 : 세기의 저술을 위한 대장정 (1932~1933)
『일반 이론』 저술에 착수하다 | 『일반 이론』의 핵심 참모진 | 승수라는 새로운 착상 | 『일반 이론』의 전초전, 『번영으로 가는 길』 | 새로운 금 본위제와 새로운 세계 금융 질서를 제안하다
10 천재가 쓴 책 : 고전파 경제학, 집중 포화를 맞다 (1932~1936)
지금은 개입이 아니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 ‘영국인’ 하이에크 | 마침내 빛을 본 『일반 이론』 | 왜 지금 전통적 경제학이 문제가 되는가 | 개인과 자유 시장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에 대하여 | 눈만 껌뻑이는 하이에크
11 케인스, 미국을 접수하다 : 루스벨트와 젊은 뉴딜 경제학자들(1936)
백기사인 줄 알았으나 돈키호테였던 윌슨 | 루스벨트에게 보낸 ‘구애’ 편지 | 케인스주의, 뉴딜의 심장부에서 길을 찾다 | 케인스 혁명의 물결로 미국이 출렁이다 |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룩한 혁명
12 하이에크의 불발탄 : 『순수 자본 이론』의 출간 (1936~1941)
로빈스 감독이 선택한 대타자, 피구 | 반세기 만에 풀린 미스터리 | 사상의 새로운 물꼬가 트이다 | 하이에크를 떠나 케인스에게로 | 『일반 이론』의 대항마가 되지 못한 『순수 자본 이론』
13 어디로 가는 길인가 : 자유인가 폭정인가 (1937~1946)
전쟁과 평화 | 자유 시장에 바치는 찬가, 『노예의 길』 |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어야 하나? | 극과 극의 뜨거운 반응 | 성인이 된 케인스
14 광야를 헤매는 세월 : 영국,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1944~1969)
혐오의 시선과 따돌림의 세월들 |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몽펠르랭에서 뭉치다 | 사랑지상주의자 하이에크 | 나는 자유주의자다 | 기대 밖의 혹평 | 낙향의 길
15 케인스의 시대 : 미국, 30년 대세의 번영을 달리다 (1946~1980)
미국 정부의 공식적 도구가 된 거시경제학 | 케인스주의 바람을 타고 풍요가 확산되다 | 신중한 케인스주의 대통령, 케네디 | 미국 경제, 케인스주의에 중독되다 | 제동이 걸린 경제 성장 | 케인스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린 스태그플레이션
16 하이에크의 반혁명 :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대반전 (1963~1988)
든든한 지원군 프리드먼의 등장 | 레이건, 보수파의 총아로 떠오르다 | 노벨상이라는 날개로 다시 비상하는 하이에크 | “하이에크교”의 열렬한 신도, 대처 | 레이거노믹스의 두 얼굴
17 싸움은 다시 시작되고 : 민물 경제학자와 짠물 경제학자(1989~2008)
탈케인스주의 시대의 도래 | 클린턴의 제3의 길 | 위기에 봉착한 하이에크적 처방 | 케인스, 화려하게 컴백하다 |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은 여전히 논쟁 중
18 승자는 누구인가 : 다시 찾아온 세계 불황 (2008~)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 하이에크 | 자본주의의 진정한 수호자, 케인스
감사의 글 | 주 | 인명사전 | 참고 문헌 | 인명 찾아보기 | 용어 찾아보기 | 사진 출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