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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목걸이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원제 : Chain of Amber

메리 린리 테일러 저 | 송영달 역 | 책과함께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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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735334 / 47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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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호박 구슬을 꿰듯 엮어간 삶의 목걸이 … 배우, 인도, 결혼, 한국, 딜쿠샤, 금강산, 시베리아 … 이 책의 지은이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1889~1982)는 어린 시절 집안의 귀중품 중에서 따뜻한 빛깔을 지닌 호박 목걸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생일이나 평소에 비해 얌전히 지낸 날이면 어른들이 그 목걸이를 걸어볼 수 있게 허락하셨다고 한다. 호기심 많고 모험을 좋아하던 메리 테일러는 호박 목걸이와의 기이한 인연을 삶의 갈피마다 떠올린다. 그중 가장 극적인 사건은 한국에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광산업을 하던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 Albert Wilder Taylor)와의 만남과 결혼이었다. 호박 목걸이를 소중히 간직하던 메리에게 브루스는 한국의 호박 갓끈을 선물한다. 결혼 후 메리는 미국인 남편과 친구 플로렌스를 통해 자신의 영국 집안과 다른 개척정신과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를 경험한다. 안전하게 확립된 관습과 질서 속에서 살아온 자신과 다르게 그들은 강인함과 용기와 끈기, 창의적인 기발함을 갖고 있음을 함께 생활하며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메리 또한 남편이 운영하는 광산촌에서 영웅적이고 기발하던 옛 여인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개척자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메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선택한 나라 한국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백계 러시아인 친구들을 통해 강렬한 자부심과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 예민함과 비현실성 등 성장 환경에서 기인한 특징을 경험하고, 그들과 새로 파견된 소련 외교관들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목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일본이 제공한 효율과 사업 기회와 위생과 법과 질서를 빼버린 한국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그친다. 메리가 살다간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이었던 것이다. 예술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메리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인과 한국의 자연 등에 관해 다채로운 기록을 남겨놓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보면서 ‘억겁의 시간 동안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말없는 어떤 신에게 구원을 간청하며 뻗어 올린 기도하는 손들’로 묘사하고, “간섭하지 말 것, 불가피한 일은 받아들일 것, 가능하면 질문하지 말 것, 최대한 견뎌보다가 더 이상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할 것,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할 일과 져주어야 할 때를 알 것, ‘슬쩍 빼돌리는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경비에 포함시킬 것, 체면 차리기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니 인정해줄 것, 거짓말은 많은 경우 예의상 하는 말임을 이해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 말 것!”이라는 남편의 한국 생활에 관한 유머러스한 조언을 기록하기도 한다. 호기심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이방인 여성의 20세기 초 한국살이에 관한 기록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역사와 겹치면서도 식민지민의 생활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1917~1942년까지 그리고 1948년의 한국 생활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 역사의 빈 페이지들을 더 촘촘히 메워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용과 특징 모험을 사랑한 메리의 인생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메리는 프랑스 신부학교를 거부하고 꿈에 그리던 연극배우가 되었다. 동양 각지를 순회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브루스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메리는, 1917년에 한국으로 왔다.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백계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며, 3?1만세운동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직접 목격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광산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을 따라 광산촌을 방문하고, 소련이 점령한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메리 가족은 일제에 의해 송환선에 실려 강제 추방되었다. 그녀는 그 뒤 1948년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남편의 유골을 묻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딜쿠샤를 짓고 살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림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한국에서 거주한 외국인의 시선 여인의 집안은 인도와 인연이 깊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때로부터 선조 중 한 명은 성난 군중들로부터 충성스러운 토후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할아버지는 딜쿠샤 궁전에서 적들을 물리쳤다. 인도와의 인연은 나중에 미국 남성 브루스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남성은 아버지와 동생과 한국에 와서 광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브루스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원래 광산 기술자였다가 한국으로 골드러시를 감행하여 알렌이 따낸 광산개발권을 인수한 인물로, 그 배경에는 고종에게 전기시설을 해준 대가였다는 설이 있다.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운산광산은 그야말로 풍부한 금이 생산된 곳으로, 이로 인해 ‘No Touch!’, 즉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메리는 광산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살았다. 이때는 이미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시기로, 두 사람이 추방된 1942년은 그 전 해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국내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거세져 거의 모든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 때였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들이 교류한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당시는 외국인들이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지인인 에먼스는 중국 궁가 산(민야콩카)을 정복한 이야기를 담아 ≪구름에 맞선 사나이들≫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또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언더우드 가문의 2대와 3대와 교류했고, 주한 공사 핍스의 딸 조이스는 나중에 메리 부부의 아들 브루스(아버지의 애칭과 같은 이름)와 결혼을 한다. 윌리엄 C. 커는 한국에 개신교를 뿌리내린 인물로, 개신교 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자 나가사키 구라바엔의 주인 미국 군인과 일본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제물포에서 양행을 운영하고 명예 영사를 지낸 조지 베넷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상하이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를 진행하던 올콧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국을 일정 기간 여행하거나 취재차 잠깐 들렀던 사람들과 다르다. 메리 부부는 한국에 딜쿠샤라는 저택을 짓고, 탄광마을을 방문하고, 금강산과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영국과 미국, 일본을 다니고, 외국 통신사 특파원을 겸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과 일제 만행을 해외에 알리고, 무역업을 통해 조선호텔 근처에 상점을 운영하였다. 또한 선교사부터 사업가와 광산업자, 교사, 게다가 골수 모험가들까지 관심사가 크게 다른 이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모임을 만들어 교류했는데, 메리의 표현에 의하면 “동양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우리 회원들만큼 속물적인 우월의식이 없고 소박한 이들도 드물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의 용광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지냈다”고 한다. 서구 열강이 조선의 빗장을 강제로 열고 마구 들어오던 시기에 광산업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이 땅에 살았던 테일러 집안,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 브루스 테일러, 남편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자신은 가택연금 된 채 이름 모를 한국인들이 가져다 준 달걀과 꿩고기 등으로 어려운

저자 소개

1889년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연극배우가 되어 동양 각지를 순회 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미국인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에 한국으로 왔다.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 그 후 남편의 유언에 따라 1948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시아버지 무덤 옆에 남편을 묻었고, 1982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생을 마쳤다. 시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한국에 온 최초의 금광사업가로서 아들과 함께 운산금광을 운영했다. 1992년에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메리의 유고를 정리하여 자서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를 출간하였다. 

역자 소개

193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1960년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62년에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1967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행정학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한 뒤 명예교수로 은퇴하고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거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한국 관련 서양 고서(古書)와 서양인 화가들이 그린 한국 소재 그림 수집에 전념하고 있다. 그중 특히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미술사적 중요성을 인식해, 키스의 책 《올드 코리아》와 《동양의 창》을 우리말로 옮겨 펴냈고,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과 미국의 여러 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키스 전시회를 열었다. 또 메리 테일러(Mary L. Taylor)의 일제 강점기 서울 생활기인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번 완전 복원판에서 그는 《올드 코리아》를 우리말로 옮겼을 뿐 아니라 키스의 한국 관련 작품 일체를 제공하고, 키스의 삶과 그림에 관한 여러 글을 썼다. 

책 속에서

둘이 함께 웃었지만 내 웃음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는 그동안 겪은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자기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포로로 잡혀 있는 한은 금광을 팔지도 않을 것이며 일본인들과 사업에 관한 협상도 하지 않을 거라고 버텼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그에게서 금광을 빼앗아갔고, 약탈도 반드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에 따라 그 대가로 남편의 계좌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항구를 떠난 후,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잔뜩 짊어지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유의 여신상은 조금 무서운 데가 있었다. 자유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우리는 미국 당국자들이 배에 올라와 우리를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아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FBI에게서 한 사람씩 몇 시간에 걸쳐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우리의 성(姓)인 테일러는 알파벳 순서로 뒤쪽에 있기 때문에 브루스와 나는 2 ~3일이 지나서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우리는 오랜 세월 한국에서 살았고 좋든 싫든 우리 집은 한국에 있었다. 미국에서 우리가 하던 일도 끝이 났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편안함도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딜쿠샤와 한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브루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고 묻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절한 친구들의 말에 질색을 했다. 자기 마음과는 정반대로 대답함으로써 커다란 갈망을 감추려 하는 브루스의 청개구리 기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브루스도 한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도쿄에 있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 브루스가 한국의 광산국 국장에 임명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던 것이다. 그 편지는 “친구, 석면방화복을 준비하고 있게. 사방에서 불꽃이 튀고 있네!”라는 희망찬 말로 끝났다. 브루스가 진정으로 행복해하 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구슬 하나 - 깊어지는 전운, 1941
구슬 둘 - 불안한 정세
구슬 셋 - 일본과의 불화가 가져다준 시련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구슬 일곱 -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구슬 여덟 - 배우의 꿈을 이루다
구슬 아홉 - 일본에서 주고받은 마음
구슬 열 ? 청혼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구슬 열둘 -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구슬 열셋 - 한국에서 시작한 신혼생활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구슬 열다섯 - 황금의 나라를 찾아온 이방인들
구슬 열여섯 - 익숙해져가는 한국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구슬 열여덟 - 만세 소리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다
구슬 열아홉 - 전국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구슬 스물 - 한국인과의 충돌
구슬 스물하나 - 갈마 해변에서 보낸 여름
구슬 스물둘 - 원산의 백계 러시아인
구슬 스물셋 - 우리 집을 짓기로 하다
구슬 스물넷 -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구슬 스물다섯 - 폐허가 된 딜쿠샤
구슬 스물여섯 - 서울살이의 친구들
구슬 스물일곱 - 사랑과 우정의 나날들
구슬 스물여덟 - 시베리아 횡단 여행
구슬 스물아홉 ? 캘리포니아에서
구슬 서른 - 광산 사업가의 아내로서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구슬 서른둘 -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구슬 서른셋 - 조선의 양반 김 주사
구슬 서른넷 - 6년 만의 서울 방문, 1948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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