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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민중의 축제를 찾아서

천규석 저 | 실천문학사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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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9207110 / 256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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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관치와 자본이 판치는 축제를 넘어
반란과 해방의 민중 축제로 신명나게 놀아보자!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이 제안하는 반란과 해방의 정치학, 축제!


전 인생을 걸고 국가와 자본에 맞서 자급자치공동체의 재발명을 주장하고 몸소 실험해 온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의 책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본 출판사를 통해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같은 논쟁적인 책들을 연이어 출간하며, 한국사회의 지배담론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일관되게 반국가-반자본적인 농촌-농민의 자급자치공동체 육성을 제시하는 근본주의자로 평가받아온 그는, 이번 책에서 ‘축제’를 그 핵심 무기로 들고 나온다. 천규석은 축제가 바로 민중의 자급자치이념과 실제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참조점임을 역설한다.

축제라고 다 같은 축제가 아니다!
질척한 음담패설 줄굿부터 신성한 마을 서낭당에서, 국가의 왕실의례까지
축제를 둘러싼 민중과 지배계급의 밀고 당기는 쟁탈전!


1960년대 4.19혁명과 6.3한일회담 반대투쟁을 경험하고, 1970년대부터 농촌자립자치운동에 몸담았던 천규석은 젊었을 적부터 한 가지 의문을 계속 품어왔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경험한 전통 굿과 청년 시절 반란적인 시위에서 동시에 경험했던 불안 속의 고양된 신명감이란 대체 무엇일까? 전통 굿과 오늘의 반란적 시위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이는 과거를 향수하거나 복고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 굿은 천규석에게 그러했듯 농촌에 살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그 당시,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상의 제도였으며, 동시에 묘한 해방감과 홀림을 안겨주는 마을 대축제였다. 바로 이런 경험을 똑같이 학생과 민중의 데모에 참여하며 발견한 천규석은 이 책에서 무엇보다 이 시대에 필요한 민중의 자립자치공동체의 이념과 작동의 근거를 오늘날 전근대적이고 미신이라 내다버려진 마을 굿(축제)에서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지를 탐구한다.

여기서 천규석은 오직 돈만 들고 와서, 차타고 눈요기하는 오늘날의 관치 축제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축제인지를 자문한다.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돈벌이에 혈안이 되 우후죽순처럼 생긴 1,000여 개의 축제장사에서 과연 민중의 자치이념과 자발적인 참여를 발견할 수 있는가 말이다. “지금의 축제는 국가나 특정 이익집단의 자기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매체일 뿐, 민중들의 자발적 일상 탈출이나 현실 전복 의례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과거 한반도 민중의 축제는 어떠했는가? 지배계급의 수탈에 맞서 민중은 어떻게 축제로써 이에 저항했는가?

천규석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한번쯤 들어봄직한 영고, 동맹, 무천 등 고대 한반도 부족국가들의 축제, 고려 시대의 팔관회와 연등회부터 조선시대 읍치성황제 등 국가의례화되는 마을 공동체 축제와 이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과 타협을 탐구한다. 그리고 일제시대와 근대화의 파고를 맞이해 축제의 국가 등록화와 자본화로 또 한번 부침하고 있는 축제들을 파헤치면서 반란과 해방의 씨앗이 잠재되어 있는 마을 축제(굿)를 복원하려 시도한다.

또한 천규석은 상업화된 국치행정의 손아귀에 흔들거리는 오늘날 수많은 축제 행렬에 따끔한 일침과 애정 어린 진단을 가한다. ‘도깨비 굿’, 디딜방아 액막이굿’, ‘줄굿’ 등 봇물 터지듯 음담패설이 쏟아지는 마을 축제부터, 제주도 탐라국 입춘굿놀이, 영산 문호장단오굿, 강릉단오제, 화천 산천어 축제 등 지역 축제들의 전개를 소개하면서 그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천규석에게 축제란, 그저 먹고 떠드는 한바탕이 아니라 민중 대 관치 및 자본과의 싸움이자 민중의 자립과 자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관된 입장에서 천규석은 오늘날 전근대적이고 개인적 출세만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있다고 비난과 오해를 사는 무속신앙의 본래 모습을 되돌려주려 시도한다.

저자 소개

천규석은 옹골진 농사꾼이다. 때로는 급진적인 근본주의자로, 때로는 철학자로, 때로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로 비치지만, 자신에게는 무섭도록 철저한 생활인이다. 그는 1938년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과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한 후 1965년 이농의 물결을 뒤로한 채 농촌공동체 건설의 꿈을 품고 귀향하여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사라져가는 전통농법을 살려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억제하고 유기농을 실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였으며, 새마을운동과 투기바람이 황폐화시킨 농촌을 재건하기 위해 ‘소농두레’의 방법론을 제창하였다. 1990년 도농직거래를 통한 지역자립자치두레를 부활시키기 위해 ‘한살림운동’에 참여,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를 만들고, 2백여 명의 모금으로 창녕 남지에 ‘공생농두레농장’을 열어 평생의 꿈을 일구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2대 공동의장을 지냈으며, 저서로는 『이 땅덩이와 밥상』(창작과비평사, 1993), 『땅 사랑 당신 사랑』(명경, 1996),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실천문학사, 1999), 『쌀과 민주주의』(녹색평론사, 2004),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실천문학사, 2006),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실천문학사, 2006),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가 있다.

책 속에서

‣ 자고로 축제에는 얼마쯤의 희생(犧牲)이 따른다. 그러나 마야 왕국과 같이 태양신에게 산사람을 대속용 제물로 바쳤던 원시적 고대축제 때도 전쟁 포로나 범죄자 중 몇 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데 그쳤다. 적은 희생을 사제가 대신 바치고, 많은 생명을 더불어 살려달라는 기원이 고전적 축제다. 그런데 화천의 산천어 축제에는 되풀이 되는 하천의 개보수 공사와 산천어의 양식을 위해(은폐되어 비가시적으로) 파괴되는 수많은 생명을 제외하고서도, 무려 44만 마리의 산천어를 해마다 희생 제물로 바치고 있다. 100만 생명이 44만 생명을 2대 1의 희생 제물로 잡아 바친다고‘죽임의 의식’이 결코 지속 가능한 살림의 축제가 될 수는 없다.(18쪽)

‣ 이 땅의 탈춤은 향리들에 의해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조선 후기부터 공연되었다. 탈춤의 풍자와 저항이 단순한 풍자에 그치고 반란성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사라진 계급에 대한 풍자였기 때문이다. 살아서 날로 위세를 더해가던 왕권이나 국가 관료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풍자한 탈춤은 물론 그 밖의 어떤 반란적인 전통 축제도 이 땅에는 없었거나 아니면 일찍이 사라진 것 같다. 전승 기록된 우리 전통 굿에는 풍농 주술적인 성적 은유와 탈춤을 통한 가벼운 풍자만 있었고 유럽처럼 반란다운 반란의 축제는 하나도 없었다. 이 땅의 전통 굿에는 왜 정치적, 혁명적 반란보다 풍농 주술적인 성적 반란으로 만족하는 순한 백성들과 지배자들이 좋아하는 세시풍습과 같은 미풍양속만 있었던 것일까? 왜 우리 전통은 반란 대신 장사와 통치에만 좋은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되었을까? (35~36쪽)

‣ 이제는 얼굴을 맞대고 몸을 부비는 마당의 시대, 마을 공동체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동일한 취미나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을 넘어 이합집산 하는 전자 공동체의 시대, 사이버 공동체의 시대라고 한다. 전자 공동체의 시대는 축제마저 기원을 비는 제사 마당을 버리고 과시적이고 위압적인 광장에서 시각적인 스펙터클을 추구하거나 스튜디오에서 그것을 연출, 획일적으로 조작할 뿐이다. 그래서 사이비 지방분권의 지방 단체장들과 시장번영회장의 주도로 소수 축제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연출해내는 1,000개가 훨씬 넘는 이 땅의 중상주의적‘축제 잡기’들 중에 농경 공동체에 기반 했던 전통 잡기는 구색 맞추기와 국가적 보존 차원이 아니면 설 자리가 없다. 오늘날의 모든 성공한(?) 현대 축제는 지역공동체 대신 호기심 많은 떠돌이성 타지인들의 감성을 직접 자극하는 희귀 상품 또는 첨단 상품의 피 튀기는 개발 시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관광상품으로서의 상업주의 축제는 차고 넘치는데 기원으로서의 축제, 일탈로서의 축제, 뒤집기로서의 진정한 해방, 치유의 축제 공동체는 영영 사라질 수밖에 없다.(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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