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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6640 / 296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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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어느 날 교실에서 루쉰은 러시아군 스파이 노릇을 한 어느 중국인이 중국인 관중이 보는 가운데 일본군 병사에게 목이 잘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처형되는 자나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나 루쉰의 동포들은 모두 체격은 건장했으되 대체로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루쉰은 의학전문학교를 자퇴하고 도쿄로 향했는데, 그는 훗날 그것에 대해 “‘어리석고 힘없는 국민’은 설사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잘못의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재료나 그 관객 정도밖에 될 수 없다. 따라서 먼저 그들의 정신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는 문학예술을 택하겠다고 결심했다”라고 회상했다. (73~74쪽)
이러한 문예 논전 와중에 루쉰은 반독재 좌익 문단의 기수가 되어갔다. 그 때문에 여러 도시를 편력한 후 상하이에서 겨우 손에 넣은 루쉰의 중산계급으로서의 안정된 삶은 항상 붕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1930년대의 루쉰은 정치적 이유로 네 번이나 피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63쪽)
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어머니 고이시小石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시아 작가 중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타고르와 루쉰이에요. 겐자부로는 그들에 비해 한참 떨어집니다.” (178쪽)
2000년 12월에 한국현대중국문학학회의 초청으로 서울대학교에 머물 때 일인데, 하루는 낮에 심포지엄 일정이 없어 도서관 견학에 나섰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뜻밖에도 이 이와나미문고판을 만난 것이다. 서가에서 살짝 빼서 펴 보니 한국인 기증자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아마 전전의 애독서를 전후에 모교에 기증했던 것인 듯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동아시아에 커다란 불행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체제에 굴복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강요받은 ‘국어’인 일본어를 활용해 루쉰을 읽으며 저항정신을 길렀던 것이다. 세련되고 총명해 보이는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오가는 대학 도서관에서 나는 깊은 감개를 느꼈다. (188쪽)
루쉰 문학의 조선어 번역은 1927년 8월에 「광인일기」가 번역된 것이 최초의 일인데, 역자 유수인은 베이징에 이주해 있을 때 루쉰과 면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루쉰 문학 최초의 일본어 역은 1922년 6월 베이징의 일본어 주간지에 저우쭤런이 번역해 실은 「공을기」이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1927년 10월에 「고향」이 번역·소개된 것이 최초이기 때문에 중국 국외에서 외국인에 의한 번역으로는 조선어 역이 일본어 역을 2개월 정도 앞서 세계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234~235쪽)
‘청포도의 시인’ 또는 ‘광야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는 1936년 10월의 루쉰 서거에 즈음하여 ≪조선일보≫에 「루쉰 추도문」을 연재했다. 이육사가 중국에서 활동 중이던 1933년 6월에 국민당에 의해 암살당한 민주파 지식인 양싱퍼楊杏佛(1893~1933)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루쉰을 만났다는 감동적인 회상에서 시작해, 루쉰을 이해하려면 「아Q정전」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일찍부터 조선의 사대부들은 주자학 이데올로기하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고 명이 멸망한 뒤로는 자기들이 중세적 질서의 체계인 ‘중화’의 정통적 후계자라 하여 ‘소중화’라 자임해왔다. 식민지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러한 전통이 조선 근대화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었는지를 깊이 자각하고 있었고, ‘아Q적 인간’에 대해 중국인 이상으로 공감과 외포畏怖를 느꼈을 것이다. (236쪽)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비평가 리영희(1929~2010)는 “내가 이 사회의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뭔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루쉰의 정신과 문장을 간접적으로 전했기 때문이다”라고 루쉰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238쪽)
1970년대 말 중국이 덩샤오핑 시대를 맞아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면서 간행된 학술서적이 홍콩을 거쳐 한국에도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만약 중문과 학생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그때 중국 서적을 소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어 ‘불온서적 소지죄’가 추가되곤 했다. 그 때문에 서울대학교 중문과에서는 김시준 교수가 담당하는 중국현대문학 과목을 개설하여, 학생이 ‘불온서적 소지죄’ 혐의로 체포되면 김시준 교수가 경찰서를 찾아가 그 책이 연구 목적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학생의 보증인이 되어 데리고 나오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40쪽)
마오쩌둥은 1957년에 상하이에서 문화인 그룹과 회견한 자리에서 “만약 루쉰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고 자문하고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글을 쓰려 하고 있거나, 아니면 대세를 알고 침묵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는 마오쩌둥 자신이 성인으로 만든 루쉰의 모습이 루쉰의 진면목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247~24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