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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육아법 이스라엘 가정교육 전문가 이영희 교수의

이영희 저 | 몽당연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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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833765 / 304쪽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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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21세기형 맹모, 아기를 롤러코스터에 태우다
과거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등등의 품을 오가며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태어나자마자 간호사의 손에 잠시 맡겨졌다가 한 달쯤 지나면 어린이집 선생님께 맡겨집니다. 백일 기념으로 학습 교재를 선물 받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을 소개받습니다. 8개월이 되면 유아용 학습지를 시작해야 하고 27개월이 되면 글공부에 들어가야 합니다. 21세기형 맹모(孟母)는 아기가 걸음마만 떼도 당장 학원에 등록시키는 엄마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도나도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는 신형 롤러코스터에 아기를 태우고 있습니다.
아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물을 것 같습니다.
“엄마, 인생은 롤러코스터인가요?”
세상 교육에 쏟는 열심의 절반 아니 십분의 일만 내어도 신앙 교육이 지금처럼 위태롭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성경적으로 가르치거나 영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곳은 교회 말고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학교의 역할이 그만큼 무척 크고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학교, 힘차게 돌아가는 발전소
아기들의 소란스러움은 오히려 요동치는 생명의 충만함이요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입니다. 넘치는 에너지와 생명력이 고요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기들은 참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고, 제비처럼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의 장막에 ‘참새의 집과 제비의 새끼 둘 보금자리’를 허락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교회학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세포를 생산해 내는 발전소와도 같습니다. 힘차게 돌아가는 발전소는 당연히 그 소리가 큰 법입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알찬 책
영아부는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피조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곳이며 생명 창조가 끊임없이 순환될 뿐 아니라 유아세례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한 무리들이 모인 영의 산실입니다.
깨끗한 도화지 같은 아기가 선(善)을 먼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아부입니다.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아기 덕분에 세상 곁길로 나갔다가도 다시 정신 차리고 돌아오고 아기와 더불어 믿음을 배우는 곳이 바로 영아부입니다. 아기가 부모를 자극하는 교육의 역순환이 일어나는 곳, 어린아이가 어른을 바로 세워 인도하는 곳이 바로 영아부인 것입니다.
이처럼 영아부는 밭에 숨긴 보화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에 영아부 교육과 관련된 책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30여 년간 이스라엘 가정교육 전문가로서 영아부 사역을 감당해 온 이영희 교수의 《삼위일체 육아법》은 국내 유일한 영아부 전문 도서입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교육학적 이론과 현장에서 검증된 실제가 잘 어우러진 책으로 부모와 교사, 목회자가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자 소개

세계 교육의 유형을 연구하던 중, 새로운 유형의 교육법에 갈증을 느끼다가 유대인 교육법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1990년대 중반. 폭넓은 연구를 위해서는 이스라엘로 직접 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의 추천과 유대기구(Jewish Agency)의 심사를 받고 이스라엘의 키부츠 말키아(Kibbutz Malkiya)에 가게 되었다. 말키아에서 교육 과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공부할 때, 교육청장을 역임한 다비드의 집에서 머물렀다. 다비드와 그의 아내가 함께 하는 유대 전통식 태교를 접하면서 유대인의 임신과 태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세계 도처에서 이스라엘로 귀환한 유대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교육, 유다이즘, 성인교육, 스포츠 등의 훈련 과정을 거친 이스라엘 교육 전문가로서 유대인의 교육 시스템, 가정 교육, 임신, 태교 강의와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졸업(Th.M), 미국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D.Min), 이스라엘 히브리 대 울판(히브리 어 과정) 수료, 히브리 대와 키부츠 말키아에서 이스라엘 교육부가 주관하여 실시하는 ‘귀환 유대인 교육’ 과정(유다이즘과 유아교육 이론, 이스라엘 미취학 아동교육실습 및 참가) 수료, 총신대 평생교육원 이스라엘의 유아교육 책임교수 역임(2006~2014). 현재 이스라엘교육연구원 대표.


저서로는 《유대인의 밥상머리 자녀교육》 《토라 태교: 태교는 유대 부모처럼》 《침대머리 자녀교육》 《이스라엘 가정교육 전문가 이영희 교수의 삼위일체 육아법》 《공부 습관, 3세부터 확실히 잡아라: 미국을 움직이는 3%의 힘 유대인 학습법》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주의 장막이 어찌 이리 사랑스러운지요” 하고 노래한 시편 기자는 그 아름다운 장막 안에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음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에 참새와 제비가 종일 재잘대고 날아다니도록 허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새끼를 둘 보금자리 또한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날 성전에서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와 같은 존재가 누구일까요? 저명한 구약 신학자이자 주석가인 카일과 델리취는 이 말씀을 저자인 고라 자손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어린 자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쉴 새 없이 울고 웃는 아기들입니다. 새끼 제비가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얻듯이 우리 아기들도 교회에서 자라날 자리를 얻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제비도 새끼를 둘 보금자리를 얻는다”는 이 말씀이야말로 교회에 영아부가 있어야 할 근거를 제시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목축을 위해 요단강 동편에 머물기를 청했을 때 모세가 한 말을 떠올려 보십시오.

“너희는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민수기 32:24).
 
이스라엘 자손이 정착할 때 가장 먼저 서둘러서 해야 했던 일은 바로 어린아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은 레위기 19장 23절에서 25절 말씀을 히브리어로 ‘오를라(orlah) 법’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금지법입니다. 이 법에 의하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과목을 심어서 5년째 되는 해에야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농부들의 말을 들어보니, 처음 심긴 어린 나무의 성장 호르몬에는 인체에 해로운 독소가 있을 수 있어서 그 열매를 먹으면 인간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과 몸을 보호 하시려고 이를 금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 열매는 따서 땅에 묻어 버린답니다. 그리고 4년 미만의 어린 나무는 열매를 내려다가는 자칫 영양분을 온통 빼앗기고 나무가 채 자라지 못할 수 있어서 장차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에, 5년이 될 때까지는 나무를 정성스레 가지치기하여 바탕이 튼튼한 나무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법을 인간에 주셨을까요? 유대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이러한 금지의 법을 농부에게 주셔서 인내심과 자제력을 훈련하셨다고 말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기르는 데도 이렇듯 농부의 인내심이 필요하거늘 어린 묘목 같은 어린이를 기르는 부모에게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프롤로그 <제비도 새끼를 둘 보금자리를 얻나이다> 

교회학교에서 우리 아기들은 마치 밭 가장자리에 심긴 귀리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밭 가장자리에 귀리를 심을까요? 귀리는 벼과에 속하는 이년생 초본식물로서 들보리라고도 불리는데, 냉습한 기후나 척박한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길가에 뿌려져도 잘 자라는 종(種)인 것입니다. 마치 무엇을 뿌리든지 스펀지처럼 다 흡수해 버리는 아기들처럼 말이죠. 인간의 발달 과정 중에서 아기 때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는 시기도 없습니다. 
밭의 한가운데는 대맥과 소맥이 줄줄이 정한 곳에 심기고 가장자리에는 귀리가 심깁니다. 교회학교라는 밭에서 큰 아이들은 대맥처럼, 또 작은 아이들은 소맥처럼 심기어 자랍니다. 밭 가장자리에 심긴 귀리면 어떻습니까?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밭을 100% 활용하신다는 점입니다. 가장자리라고 해서 그냥 비워 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학교는 온전히 땅을 고르고 구석구석 씨를 뿌려야 하는 하나님의 밭입니다. 교회 공동체 언저리에 있는 아기들에게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아기들이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온갖 시중을 시키는 귀찮은 존재들로 여겨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찮아 보이는 귀리가 실은 뉴욕타임지 선정 세계 10대 건강 음식에 꼽힐 정도로 우수한 슈퍼 푸드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영아부의 아기들은 귀리와도 같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영아부가 실은 교회 공동체의 건강과 성장에 강력한 에너지원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인지발달 연구에 공헌이 큰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부르너는 이미 1960년대에 “연령에 상관없이 어린이에게도 어떤 교과과정이든 어떤 형태든 그 기초를 가르칠 수 있다”고 하여 조기교육의 가능성을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야말로 아무리 어린 아기에게라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밭 가장자리에 귀리를 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쳐 주시기”(사 28:26) 때문입니다. 
-Chapter 02 <밭 가장자리에 심긴 아기들> 밭 가장자리에 심긴 귀리처럼


갓난아기가 어떻게 성경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캐나다의 영문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마샬 맥루한의 “매체가 곧 메시지”라는 말을 인용하여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는 언어, 즉 의사 교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적인 정서의 영역을 통해 배운다는 뜻입니다.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를 표정과 몸짓을 통해 배웁니다. 
보링은 정서를 “많은 경험과 반응의 결과로서 다양한 요소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감정, 충동 등을 의미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이와 같이 정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합니다. 3살 미만의 영아기는 여러 가지 감정에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는 정서적으로 풍부한 시기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왓슨은 영아가 가진 기본 정서를 공포, 분노, 애정으로 보았습니다. 이중에서도 양육자인 부모가 베풀어 주는 사랑이 가장 기본이 되는 정서입니다. 영국의 아동정신분석학자 볼비는 아기가 어머니와 서로 사랑의 관계를 집요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을 가리켜 애착이라고 불렀습니다.
아기 예수는 자라며 “강하여졌다”(눅 2:40)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하여지다’라는 말은 심력을 뜻합니다. 심력이란 마음이 가진 독립적인 힘을 가리킵니다. 불안이나 공포에 휘둘리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심력이 강하다고 표현합니다. 신체가 잘 발달하고 건강한 아이가 심력 또한 강합니다.
그런데 심력을 약화시키는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과잉보호입니다. 과잉보호는 자녀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결국 겁쟁이를 만들고 맙니다. 아기 예수가 자라며 강하여졌다는 것은 마리아와 요셉으로부터 과보호를 받지 않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심력이 강해야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자랄 수 있습니다.
-Chapter 03 <아기 예수의 성장과 발달> 정서 발달-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더라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인간은 천성이 타락되어 있다. 모든 인류가 집단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서둘러서 어리석은 미치광이가 되었으므로 성령은 드디어 무서운 저주를 천둥처럼 내리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인간은 지옥의 저주를 받도록 태어났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아기는 죄를 짓기에 무능할 뿐이지 죄짓지 않을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영아들이 무흠하다면 이 세상에 소아과 병동이란 게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칼빈은 죽음에 관해서 “어린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아주 어린 아이까지도 남의 죄가 아닌 자기 죄에 빠져 있으며 엄연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 죄로 여겨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원죄의 대가이기 때문에 영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칼빈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아이가 비록 어떤 죄를 범한 것이 없다 해도 주 앞에서는 성인보다 더 의롭지 않다. 왜냐하면 죄책이 없으면 고소를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죄란 도덕적 의식보다 앞선 것입니다(롬 5:14 참고).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식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하고 질책하시면서 독사와 새끼를 같은 맥락에 두셨습니다. 영아를 하루 속히 주님께 인도해야 할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기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고 회개와 중보가 있어야 합니다.
아기의 구원 문제는 부모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발육이 빠르다 해도 자발적으로 방주에 기어오를 수 있는 아기는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나아왔을 때 무척 반기셨습니다.  
-Chapter 05 <교회의 아기 이해> 아기도 회개가 필요한가


영아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영유아의 신앙 발달을 위해 길버트 비어스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예수님-성령님-교회-성경-기도-찬양-예배’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교과 구성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신학적 개념에 비중을 둔 것이지요.
하지만 습관 형성기의 영유아에게는 신학적 개념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영유아기는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이며 인상적 시기이자 온전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시기로서 바탕을 키워 주는 태도 교육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적 습관을 형성하는 시기입니다. 바탕, 태도, 습관이 형성되는 이 시기에,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며 둘째는 정의롭게 살아감으로써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즉 말씀과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미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경외란 신학적 개념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상전이 종을 엄하게 부리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이웃을 속이지 않고, 과도한 이자를 받지 않고, 신체적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오히려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부모에게 순종하는 훈련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부모를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언 2:5)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3).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함을 삶 속에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십계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십계명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가르치라고 당부했습니다.
-Chapter 08 <삼위일체 육아법> 십계명이야말로 모범 교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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