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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 열반 20주기 추모 에세이

김형호, 한승원 외 저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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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4965619 / 392쪽 145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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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 8년 장좌불와長座不臥, 삼천 배의 만남, 열반 20주기, 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이 다시 살아온다! 성철 스님 떠나신 지 20년. 암자를 막고 동구불출과 장좌불와로 수행?의 최고경지를 이룬 불교계의 큰산맥 성철 큰스님. 학계, 종교계, 문화계의 중진 및 원로들이 인연을 따라 오늘에 되살린 성철 큰스님의 깊은 발자취.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자신을 바로 봅시다’ 등 큰스님의 가르침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궁구하며 살아온 스물일곱 저자의 글 속에서 성철 스님을 만난다. 한 편의 소설처럼 ... 10년 동구불출洞口不出, 8년 장좌불와長座不臥, 삼천 배의 만남, 열반 20주기, 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이 다시 살아온다! 성철 스님 떠나신 지 20년. 암자를 막고 동구불출과 장좌불와로 수행의 최고경지를 이룬 불교계의 큰산맥 성철 큰스님. 학계, 종교계, 문화계의 중진 및 원로들이 인연을 따라 오늘에 되살린 성철 큰스님의 깊은 발자취.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자신을 바로 봅시다’ 등 큰스님의 가르침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궁구하며 살아온 스물일곱 저자의 글 속에서 성철 스님을 만난다. 한 편의 소설처럼 성철 스님의 정신을 추억하는 소설가 한승원의 글은 마음을 서늘하게 하고, 속세의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이계진의 목소리를 적막하다. 한겨울 성철 스님의 다비식에서 길어올린 시인 정호승의 마음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큰스님과의 인연의 깊고 얕음을 떠나 성철 스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화두로 남으셨는지 다시금 생각한다. 성철 스님1912-1993 성철 스님의 속명은 영주(英柱)이고 법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徹)이다. 1912년 음력 2월 19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부친 이상언과 모친 강상봉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까지 배운 뒤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학문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늘 ‘영원에서 영원으로(From Eternity to Eternity)’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그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건네준 영가대사의 증도가(證道歌)를 읽고 캄캄한 밤중에 밝은 횃불을 만난 것처럼 홀연히 심안(心眼)이 밝아짐을 깨달았다. 그 길로 지리산 대원사로 가서 서장(書狀)을 읽고 ‘개에게는 불성(佛性)이 없다’는 무(無) 자 화두를 들고 불철주야로 정진하였다. 정진 40일 만에 화두가 동정일여(動靜一如)에 이르게 되었다. 1936년 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여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던 하동산(河東山)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受戒得度)하고, 이듬해 봄 범어사에서 운봉(雲峰)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봉암사결사를 추진하였다. 이 결사는 한국불교의 종풍을 바로 세우고 옛 총림의 법도를 되살리는 일로서, 오늘날 한국조계종의 형식과 질서가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통영 안정사 골짜기에 초가삼간 토굴을 짓고 천제굴(闡提窟)이라고 이름하고 머물렀다.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처음으로 삼천 배를 시키고, 누구든 스스로 기도하고, 참회하고, 그 공덕은 남에게 베풀라고 가르쳤다. 1955년 해인사 초대 주지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철망을 두르고 절문 밖을 일절 나오지 않았다. ‘성철불교’라고 하는 독보적인 불교이론과 실천논리가 이때에 확립되었다. 10여 년 동구불출을 마치고 1965년 김용사에서 최초의 대중법문을 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방장에 취임하고, 그해 겨울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사부대중을 위해 하루에 두 시간씩 법문을 하니, 이것이 그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이다. 백일법문은 불교의 근본 진리가 선과 교를 통해서 중도(中道)에 있음을 밝히고 선종의 정통 종지는 돈오돈수임을 천명하고 현대 물리학 이론을 통해 불생불멸의 진리를 밝히는 대법석이었다. 18년 동안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퇴설당과 백련암에 머무르며 서릿발 같은 선풍(禪風)의 기강을 드높여 가야산 호랑이로 불렸다. 1981년 1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한국불교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종단의 안정을 가져왔다. 1993년 11월 4일 새벽, 삭발득도하고 성철이라는 법명을 받은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한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세수 82세, 법랍 58년이었다. [출판사 리뷰] 한 위대한 인물이 서거하여도 그 자취는 뭇사람에게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들 또한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성철 스님은 한국 불교인 중 가장 강력한 지도력으로 칭송 받고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존숭을 받은 스승이다. 1967년 '자기를 바로 봅시다'로 대중을 향한 가르침을 시작한 성철 스님은 이미 깨침을 이룬 산승이었다. 암자를 막고 10년간의 동구불출과 8년간의 장좌불와로 수행의 최고경지를 이룬 스님은 뭇사람의 추앙을 받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한 발자국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짧은 법어를 내려 세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니, 곧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였다. 삼천 배가 아니면 만남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검소 투철하지 아니한 수행은 가차 없이 내리치는 가르침은 이후 한국불교의 큰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그 신선한 충격은 30년이 지나도록 세인의 가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 《참선 잘하그래이》는 그 시대의 숭고한 느낌을 스님이 열반한 지 20주기를 맞는 오늘 되살려 보여주기 위해 마음을 일군 이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문단, 예술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등 사계의 저명인사 스물일곱 명이 내뿜는 큰스님에 대한 추모는 마치 너른 평야의 들꽃처럼 다양하다. 그 글을 읽으며 만년도 중년도 청년도 사뭇 뜨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오랜 기간 이 기획을 추진했으며, 그동안 성철스님 관련 책자를 꾸준히 발간해온 김영사가 공을 기울여 마무리를 지었다.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 스님의 출가시 중에서 이 책의 필자들은 사계의 저명인사이다. 크게 분류하여 본다면 큰스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과, 뵙지는 못하고 출판이나 언론, 방송을 통해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아 흠모했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을 삼천 배를 다 못해 뵙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고인을 찾아 가르침을 청함에 소홀히 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야기들이 전편에 깔려 있다. 감동하고, 그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감사해하며 쓰인 이 글들은 깨침의 세계를 향한 진지한 노력은 모든 이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는 성철 스님 문하에서 3년을 수행하고 산문을 나선다. 이룬 것이 없는 듯 허탈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가 천신만고 끝에 뉴욕 스토니부룩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서는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책자를 앞에 놓고 제자들과 함께 그 가르침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정리한다. 그 세월이 30년에 이르렀다. 소설가 남지심 선생은 삼천 배를 하고도 큰스님을 먼발치에서밖에 뵐 수 없었던 회한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반의 소식을 듣고는 다비장에 가서 합장으로 스님을 보내면서 그리움 속에 그 섭섭함도 불태운다. 김희중 대주교는 종교의 지도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성철 스님은 몸으로 행동으로 철저한 가르침을 주신 분임을 강조하고, 화가 이호신 선생은 예술가의 생로에서 큰스님이 스스로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크고 깊은 인연사를 이루었음에 감동하는 등, 이 책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인연이야기를 읽다보면 성철 스님께서 다시 우리 곁으로 살아 돌아오신 느낌이다. 인연의 깊고 얕음을 떠나 생존 당시 성철 스님께서 우리에게

저자 소개

  • 저자 : 김형호, 한승원 외

책 속에서

삼천 번의 절은 꼬박 하루 동안 해야 하는데, 그 절을 하는 동안에 바보가 아닌 한에는 성철 스님을 만나뵙고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고가 모두 스스로 풀릴 터이다. 그게 풀렸다면 스님을 뵈어야 하는 이유가 소멸되는 것 아닌가.
-27쪽(한승원 <성철 스님과 삼천 배는 나에게 하나의 화두였다>)

 

성철 큰스님은 한평생 바루 하나와 옷 한 벌로만 자신의 몸을 건사하셨다. 그리고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도 손수 양말을 기워 신었으며, 한겨울이라도 땔감의 양을 결코 지나치게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화장지 한 장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승복이 누더기가 될 때까지 평생 옷 한 벌로 지내신 것은 결코 청빈에 관한 가르침만은 아닐 것이다. 구도자로서 물질에 대한 절제의 태도와 외향적인 모습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내적인 수련에 더욱 정진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41쪽(김희중 <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 현대사에서도 박정희 쿠데타 이후 신군부의 노태우정권까지 삼십일 년 동안은 무신정권이라 할 만하다. 지눌선사는 정혜결사를, 성철 스님은 봉암사결사를 주도했다. 정혜결사와 봉암사결사는 수사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두 스님은 변방에 머물며 서울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철 스님 또한 불법으로 나태한 한국불교를 찔렀다. 수행으로 자신을 일으켰다. 지눌의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성철의 외침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채찍이었다. 성철 스님은 산중에 물러나 있으면서 세상에 가장 깊숙이 나아가고 있었다. 불교의 면목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것이었으니 제자리를 지켜 현실과 불교계를 깨웠던 것이다.
-89~90쪽(김택근 <나 같은 중한테 속지 마라>)

 

밤이 깊어가자 늦가을 산속은 갑자기 겨울이 찾아온 듯 무척 추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둘 불길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도 너무나 추워서 점점 불길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지금 이 불길이 무엇인가. 바로 스님의 법체를 태우는 불길이 아닌가. 스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태워서 나를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227~228쪽(정호승 <시를 쓰려면 천 번을 써라!>)

 

성철 스님은 그런 보조지눌 국사를 엄청 비난했다. 그 유명한 돈점 논쟁은 그중에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 논쟁은 육백 년 만에 일어난 제대로 된 교리논쟁이기도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법상에 올라갈 때마다 반복해서 집요하게 이야기했다. 심지어 보조 스님 때문에 “조계종 법맥마저 유야무야되었다”는 극언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그날은 법회 분위기까지 싸늘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성철 스님이 혹여 보조 스님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보조의 오류가 아니라 당신의 오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조의 오류를 바로 잡으려고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보조 스님의 후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리도 자신있게 또 모질게 비판할 수 있었겠는가?
-286쪽(무비 <백일법문을 듣는 일이 일상사였다>)

 

목차

목차
1. 山僧, 겨레의 스승이 되시다
성철 큰스님의 각령으로부터_고은|산은 산, 물은 물_김형효|성철 스님과 삼천 배는 나에게 하나의 화두였다_한승원|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을 바라보며_김희중|철 상인을 회고하다_이은윤|나는 부처가 될 수 없음에_이계진|나 같은 중한테 속지 마라_김택근|위대한 포기를 일깨워준 스승의 길_이호신|참선하다가 죽어버려라_고영섭|결곡한 의의와 절욕의 큰 수행자
2. 깨달음,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은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 서언》_박성배|참선 잘하그래이_남지심|둥근 달, 내 마음의 등불_정종섭|‘산은 산, 물은 물’과 《벽암록》_박제천|밥값과 내 안의 부처_홍신선|시를 쓰려면 천 번을 써라!_정호승|하늘을 넘치는 죄업_고형렬|어느덧 화두처럼 다가온 성철 스님_박정진|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_김호성
. 그립습니다, 스님, 성철 큰스님
을 듣는 일이 일상사였다_무비|아름다운 얼굴_김성동|이 뭣고?_고준환|도적아 도적아_송준영|변두리에서 부치는 편지_강대철|세 번의 삼천 배, 한 번의 만남_박석|길 위의 사람들_최태만|나의 유학과 성철 스님_황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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