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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시리즈 :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90]

김현승 저 | 시인생각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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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047863 / 112쪽 13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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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기도의 제단으로, 고독의 세계로 안내하는 시 절대 고독의 시인 김현승 시인의 대표시 50편이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묶여 나왔다. 가을의 기도 , 플라타너스, 눈물 등 깨끗하고 정갈한 시어들?로 감성의 찌끼기를 남기지 않는 걸로 유명한 그의 시는 우리를 기도의 제단으로 또는 고독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은 외롭기는 하지만 어두운 곳은 아니다. 그의 시는 우리를 시심의 높은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 시인의 말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인간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 ... 기도의 제단으로, 고독의 세계로 안내하는 시 절대 고독의 시인 김현승 시인의 대표시 50편이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묶여 나왔다. 가을의 기도 , 플라타너스, 눈물 등 깨끗하고 정갈한 시어들로 감성의 찌끼기를 남기지 않는 걸로 유명한 그의 시는 우리를 기도의 제단으로 또는 고독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은 외롭기는 하지만 어두운 곳은 아니다. 그의 시는 우리를 시심의 높은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 시인의 말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인간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 사회적인 임무까지도 깨달아 알게 되므로.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독신자 나는 죽어서도 무덤 밖에 있을 것이다. 누구의 품안에도 고이지 않은 나는 지금도 알뜰한 제 몸 하나 없다. 나의 그림자마저 내게서 기르자 그리하여 뉘우쳐 머리 숙인 한 그루 나무같이 나의 문 밖에 세워 두자. 제단은 쌓지 말자 무형한 것들은 나에게는 자유롭고 더욱 선연한 것……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오면, 나의 친구는 먼 하늘의 물 머금은 별들…… 이단을 향하여 기류 밖에 흐르는 보석을 번지우고, 첫눈이 내리면 순결한 살엔 듯 나의 볼을 부비자!

저자 소개

金顯承, 1913~1975
1913년 4월 4일, 부친 김창국(金昶國)과 모친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신학 유학지인 평양에서 태어나 6세 때까지 부친의 첫 목회지 제주읍에서 자랐다. 1919년 4월, 부친이 전남 광주로 전근을 가자 따라서 이주, 미션계인 숭일학교(崇一學校) 초등과에 입학해 1926년 3월에 졸업했다. 1927년 4월, 부친의 권유로 친형 현정(顯晶)이 유학하고 있던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 1932년 4월,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4월 위장병으로 1년간 광주에서 휴양했다.
1934년 5월, 당시 시인이며 문과 교수였던 양주동의 소개로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35년, 시 <아침>, <황혼>을 ≪중앙일보≫에 발표했다.
1936년 3월, 숭실전문학교 문과 3학년을 수료한 후 숙환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광주로 귀향해 모교인 숭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듬해 3월, 교회 내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이 신사 참배 문제로 확대되어 사상범으로 광주 경찰서에서 검거, 물고문과 재판 등을 받았다. 1심은 무죄였고, 2심에서는 벌금형을 받았다.
1938년 2월, 교육자, 기독교 장로인 장맹섭(張孟燮)의 딸인 장은순(張恩淳)과 혼인했다. 그해 4월, 신사 참배 문제로 숭실전문학교가 폐교되어 광복 때까지 학업을 중단했다. 한편 교직에서도 해고되고 시작(詩作) 활동도 중단하게 되었다. 평안북도 용강군 사립학교에서 교직을 맡았다. 이후 황해도 흥수원, 전라남도 화순 등을 전전하며 금융조합에 몸을 담기도 했다. 이 기간에 모친상을 당했다.
1945년 8월, 광주 호남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했으나 곧 그만두었고, 1946년 6월에 다시 문을 연 모교 숭일학교에 초대 교감으로 취임했다. 1948년에 교장으로 승진 발령이 났으나 사퇴했고, 1949년 6월에 교직에서 물러나 시작 활동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1951년 4월, 조선대학교 문리과 대학 부교수에 취임하고, 1959년까지 재직했다. 광복 후 초기작으로 <내일>, <동면(冬眠)>, <푸라타나스>, <내가 가난할 때> 등 민족적 낭만주의 경향이 짙은 시를 발표했다.
1953년 5월에는 광주 지방의 문인을 중심으로 한 계간 동인지 ≪신문학(新文學)≫을 창간하고 주간이 되었다. 1955년 4월, 한국시인협회 제1회 시인상에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같은 해 5월에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에 임명되었고 7월에는 전라남도 제1회 문화상 문학 부문상을 수상했다.
1957년 시집 ≪김현승시초≫를 발간했다. 한국문학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다.
1960년 4월 모교의 후신인 숭실대학에 부교수로 취임했다. 이 무렵 전직 조선대학교에서 문리과 대학장 취임 교섭을 받았으나 사절했다. 1961년 12월에 한국문인협회 이사에 당선되었다. 이후 1966년 12월에는 시분과위원장, 1970년 1월에는 부이사장직을 맡게 되었고, 이 기간 중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고독≫(1970) 등을 발간했다.
1972년 3월, 숭전대학교 문리과 대학장에 임명되었다. 한 달 뒤인 4월, ≪한국 현대시 해설≫을 간행했다.
1973년 3월, 고혈압으로 졸도했다. 병세는 호전되었으나, 이후 그의 시 세계는 급격히 변모했다. 같은 해 5월, 서울특별시문화상 문학 부문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김현승 시 전집≫을 간행했다.
1975년 4월 11일, 숭전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수색동의 자택에서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사후인 1975년 11월 15일에는 ≪마지막 지상에서≫가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되었고, 1977년 3월 25일에는 산문집 ≪고독과 시≫가 지식산업사에서 간행되었다. 

목차

목차
1
가을의 기도
플라타너스
견고한 고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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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산까마귀 울음소리
고백의 시
가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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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등차
우리는 일어섰다
절대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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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리석은 갈대
평범한 하루
이 어둠이 내게?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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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기의 의미1
희망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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