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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186129 / 384쪽 148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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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비판적 사회이론의 최전선을 읽는다! 진보와 보수, 디지털과 자아, 폭력 범죄와 우울증… 오늘의 사회 문제에 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과 대안 2012년 첫 호가 출간되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프랑크푸르트학파 공식 저널 『베스텐트』 한국판 2호가 출간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적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모임인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자본주의 사회, 나아가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이번에 출간된 『베스텐트 2013/1』은 공허한 이념으로 전락한 진보 비판, 폭력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 비판적 사회이론의 최전선을 읽는다! 진보와 보수, 디지털과 자아, 폭력 범죄와 우울증… 오늘의 사회 문제에 대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과 대안 2012년 첫 호가 출간되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프랑크푸르트학파 공식 저널 『베스텐트』 한국판 2호가 출간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적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모임인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자본주의 사회, 나아가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이번에 출간된 『베스텐트 2013/1』은 공허한 이념으로 전락한 진보 비판, 폭력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 인터넷 시대의 자아 정체성 문제, 현대인의 세기병인 우울증 등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담겨 있다. 오늘날 비판적 사회이론은 형이상학적 담론이나 초역사적 주장이 아니라 실증적인 사회조사와 철학적 논의가 결합된 학제적인 사회 비판을 지향한다. 『베스텐트 2013/1』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새로운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는 진보와 보수의 허황된 이념 논쟁을 벗어나 실질적인 사회복지를 추구하는 진보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온라인 게임 속에서 새로운 디지털 자아 정체성이 탄생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러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기존 사회체제와 지적 담론이 봉착한 한계를 밝히고 대안적 사회상의 기본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보수의 시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 이데올로기를 넘어 퇴행을 예방하는 ‘실질진보’로 2012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분열 속에서 최근 눈에 띄게 나타나는 진보 세력의 위축은 진보 개념에 대해 여러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을 뜻하며, 진보가 사회복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가? 과연 진보의 이념은 더 나은 삶을 가져왔는가? 클라우스 오페는 ‘논단’의 첫 번째 글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 진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오페가 우선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진보에 애매하고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보라는 개념 속에는 사회 해방의 열망만이 아니라 개발과 발전을 통해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더 좋은 사회가 도래한다는 신념이 들어 있다. 이는 진보라는 명목 아래 현재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결국 진보 이념에 대한 맹목을 낳았다.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진보적 전략은 실제로는 퇴행적일 수 있으며, 개발독재국가나 사회복지국가가 만들어낸 환경 문제들이 보여주듯이 진보 이데올로기는 진보의 ‘비용’을 등한시해왔다. 오페는 ‘명목진보’와 ‘실질진보’를 구별하면서 진보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발전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명목진보 모델을 폐기하고 사회적 퇴행에 대비하는 ‘정지표지판’을 세워야 함을 역설한다. 또한 그는 ‘예방적 진보’ 개념을 주창하면서 모든 시민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불안정과 빈곤으로부터의 위협을 예방하는 것이 진보 정치의 과제라고 말한다. 실질진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진보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어놓은 진보의 결과를 완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대안은 파국과 문명의 퇴행을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집단 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26쪽) 이러한 실질진보 모델은 이념 논쟁에만 정신이 팔려 실질적인 사회복지를 이루는 데 무관심했던,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암암리에 공유해온 ‘진보 이데올로기’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충분하다. 디지털의 시대, 사회적 자아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인터넷에 대한 낙관과 비관을 넘어 ‘디지털 자아’를 사유하기 1부 ‘논단’의 클라우스 오페의 글이 당면한 정치적 과제를 다루고 있다면, 2부 ‘쟁점’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회적 과제인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바꾸어놓은 세상은 새로운 디지털 정체성의 탄생이라는 낙관적 전망과 사회적 자아의 해체라는 비관적 전망을 함께 낳고 있다. 그러나 낙관론과 비관론 어느 한쪽으로는 디지털 변화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 머물 수밖에 없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디지털 자아’의 고유성을 사유하려 한다. 『베스텐트 2013/1』은 자아의 디지털 확장이 갖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컴퓨터 게임, 온라인 데이트, 컴퓨터-기본권, 디지털 소외 등 디지털 자아가 갖는 여러 측면을 탐구한다. 여기서 디지털 자아는 단지 기술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주관적 정체성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동안의 기술 편향적 관점이 기술 예찬이나 기술 거부로 귀결되었다면,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관계와 하이브리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기술에 의한 자아의 소외를 넘어 인간과 기술의 상호인정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30여 년 전부터 디지털 문화와 자아의 관계를 연구해온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을 통해 펼쳐지는 가상 세계에 주목한다. 터클은 우리가 가상 세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의 단면을 발견하고 이를 시험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 자신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는 것을 풍부한 인터뷰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컴퓨터 게임에 의한 자아 통제와 정체성 변형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디지털 자아가 현실 세계의 실천적 자아와 인간 간 상호작용의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터클의 결론이다. 문화사회학자 카이 드뢰게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에서 온라인 데이트라는 새로운 현상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온라인 데이트의 이용자들은 신체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친밀하고 극히 개인적인 상호관계에 놓인 낭만적 주체로 경험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친밀성 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해 서로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기업가적 주체이기도 하다. 드뢰게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낭만주의적 경영자’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온라인 소통이 갖는 낭만성과 합리성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법사회학자 바이오스 카라바스는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에서 디지털 시대에 기본권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결합된 컴퓨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여기서 카라바스는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하이브리드 이론을 적극 차용한다. 디지털 수사와 검열이 활발해지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개인정보가 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인터넷 게시글 등과 같은 인간과 컴퓨터 간의 결합체(하이브리드)에 대한 인격 보호가 필수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적 접합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은 의미가 깊다. 문화사회학자 올리비에 부아롤은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에서 조지 허버트 미드의 상호주관적 모델에 근거하여 ‘디지털 자아’관을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부아롤은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유혹이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디지털 시대의 자아 정체성 변동을 인정과 소외라는 틀로써 분석하며, 디지털 소외에 저항하는 사회적 실천이 개인정보의 이용방식을 둘러싼 사용자와 기관 간의 접근성 투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인식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
우리는 이미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서 진보란 자본주의적인 변화를 뜻하며, 보수란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뜻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국민의료보험을 개혁하는 것이 진보이고, 총기협회에 편드는 것은 보수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의 정서를 말하는 것은 더 이상 진보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때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오페는 이론가답게 매우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립니다. ‘퇴행적 잠재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진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놓여 있는 퇴행적 징후와 위험성들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선, 「한국판 서문」, 11쪽)
내가 여기서 숙고하고자 하는 수정된 진보 개념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간다”는 은유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정반대로 적절한 은유는 개인으로서 또 사회 전체로서도, 우리를 퇴행적 경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지표지판일 것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을 둘러싼 많은 다툼들은 방어적 숙고로 구조화되어 있다. 가령 어떻게 하면 피고용인, 연금생활자 등등의 권리를 유럽과 전 세계 신자유주의적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을까라고 진보의 옹호자들이 물을 때 그러하다. (…) “좋은” 사회는 긍정적 결과의 목록을 통해 정의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나에게/우리에게) “X”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회 구성원의 근거 있는 확신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X”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가 의도치 않게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막을 기회를 놓친 현저한 폐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사회는 충분한 완충장치와 정지표지판 그리고 제동력을 갖추고 있으며, 사회의 작동방식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사회적, 물리적 귀결에 안전조치를 취하는 주권으로 특징지어진다. (클라우스 오페,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29~30쪽)
아마도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1970년대 중반/말 이후의 불평등과 빈곤 위험의 단계적 증가이다. 이 증가는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가속화되었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상호성 원리를 인정하고 “공평한 연대”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공통성에 대한 복종”은 더욱더 불안정해진다. 그 밖에도 불평등을 자연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으로 제시하고, 빈자를 실패자로 낙인찍으며 “부등가 이데올로기”를 변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거나 강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내재하는 폭력 촉진적 함의들이 예를 들어 “독일 상황”에 대한 다층적 조사를 통해 자세히 연구되었으며 입증되었다. 예전처럼 복지국가 조치들은 시장에 의해 산출된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조정한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보상 요구 증가로 인해 더욱더 과도하게 요구된다. 기술 혁신과 시장의 지구화에 의해 경제적 경쟁은 엄청나게 첨예화되었다. 이를 통해 진척된 “사회의 경제화”는 다른 무엇보다 (감옥의 부분 민영화와 사적 보험의 팽창에까지 이르는) 공동체적 생계 구조의 “사법화”(私法化)에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시민은 조직된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 및 정치적 의지 형성을 위한 공적 토론의 참여자에서 고객과 소비자의 역할을 하도록 내몰린다. (헬무트 토메,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 101~102쪽)
이는, 사회적 모더니티가 빠른 속도로 일소(一掃)해버린 초월적 가치들과 대상들, 즉 사유의 타자들을 문화적 모더니티의 영역에서 생존시키려는 일종의 전략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신은 죽었지만, ‘죽은 신’은 하나의 형식으로 살아남고, 예술도 죽었지만 ‘죽은 예술’은 하나의 이상으로 살아남는다. 총체성은 소멸했고 모든 것이 잡다한 기호의 소용돌이지만, 소멸한 총체성은 가능성의 범주로서 살아남는다. 이들 앞에서 우리는 우울하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울한 자들에게만 이러한 가치들은 부재하는 현존이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살아남게 된다. 사회적 모더니티의 표면적 세계에서 죽고, 소멸하고, 사라진 모든 근원적 가치들은 문화적 모더니티의 지배적 정조인 멜랑콜리의 전략 속에서 이처럼 보존되고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향수(鄕愁)가 아닌 것은, 이러한 초월적 가치들이 더 이상 이 세계의 내재적 질서 속에 구현될 수 없다는 우울증적 인식의 엄격함에 의해 증명된다. 이들을 아직도 신앙하는 자는 우울하지 않다. 또한 이들이 완벽하게 소멸되었다고 믿는 자 역시 우울할 수 없다. 우울자는 그 중간에 머물면서 ‘소멸됨으로써 살아 있는 어떤 것’을 끝없이 추구한다. 이는 파편적이고 몽환적인 세계 속에서 오직 식인증적 육화를 통해서만 끝없이 가야 하는, 그러나 도달할 수 없는 소실점에 거처하는 타자성의 형상으로 기능한다. (김홍중,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 318~319쪽)
목차
한국판 서문 / 디지털 정체성과 멜랑콜리
논단
오늘날 우리에게 정치적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클라우스 오페
오늘날의 리얼리즘: 예술, 정치 그리고 재현 - 율리아네 레벤티쉬
폭력 범죄현상의 전개: 뒤르켐의 현재적 의미 - 헬무트 토메
쟁점 / 디지털 자아: 인터넷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컴퓨터 게임 - 셰리 터클
사이버 공간에서의 낭만주의적 경영자 - 카이 드뢰게
컴퓨터-기본권: 정보기술 환경하에서의 인격 보호 - 바이오스 카라바스
디지털 자아: 인정과 소외 - 올리비에 부아롤
한국판 특집 / 비판의 멜랑콜리
한국판 특집에 부쳐
근대성과 심미적 현상으로서의 멜랑콜리 - 최문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 - 김홍중
만해의 ‘기룸’과 하이데거의 ‘멜랑콜리’ - 김동규
베스텐트 독일판 차례
저역자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