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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9869682 / 360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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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독서인’으로서, ‘한미하고 세력 없는 선비’로서
자신의 양심과 자존을 견지한 지조 있는 지식인 윤기에 관한 연구서
|무명자 윤기는 어떤 인물인가?
무명자(無名子) 윤기(尹?, 1741~1826년)는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가학(家學)을 통하여 부형에게 학업을 전수받았으며, 유년기에 이미 문재(文才)가 뛰어나 가문의 주목을 받았다. 20세가 되던 해에 연로한 성호(星湖) 이익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켜야 하는 책무를 지고 과거 공부에 전념하여 우여곡절 끝에 33세에야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무려 20여 년을 유생으로 생활한 끝에 52세에야 대과(大科)에 급제하였고, 거의 노경에 접어든 시기에 현감을 역임했지만 영광보다는 치욕이 많았다. 이후 조금씩 벼슬이 올라 80세에 호조 참의가 되고, 86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시고 6책과 문고 13책으로 총 19책의 적지 않은 분량의 『무명자집(無名子集)』을 남겼다.
윤기는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독서인(讀書人)’으로서, ‘한미(寒微)하고 세력 없는 선비’로서 자신의 양심과 자존을 견지한 지조 있는 지식인의 형상이다. 교유(交遊)한 인물들은 벽파(僻派)들이 많았고, 대체로 관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로서 문학적으로 볼 때 일군의 사단(詞壇)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유의 측면을 보면, 역사에 대해 “사실대로 기록”하면 선악과 시비와 치란(治亂)을 살펴서 알 수가 있다고 했다. 교육에 대해서는 순리에 따라 아동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방법을 제시하였다. 풍수설(風水說)과 미신을 논리적으로 부정하고, 당면한 상황에 대하여 상대성(相對性)을 인정하는 유연한 사고를 하고 있다. 경제에 대해서도 빈부에는 그만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법에 대해서는 그 죄에 맞는 엄격한 시행을 강조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가문의 전통인 ‘졸렬(拙劣)한 규모를 지키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가르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았다.
|무명자 윤기의 작품 세계는?
윤기는 문학의 가치를 ‘진실을 전하고 세상을 풍자하고 경계하는 것’으로 보아, 음풍농월(吟風弄月) 부류의 시문(詩文)보다 시대의 현실을 묘사하거나 고발하는 작품이 많다. 따라서 표현이나 내용에서도 난해하고 기이한 것을 지양하고 표현의 순조로움을 추구하였다. 시문의 평가에서도 시문 이외의 요소에 구애되지 않아야 하며 사람을 우선하여 그 문장을 평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여러 편의 혈육에 대한 애사(哀詞)로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독자의 공감을 일으키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당대 현실의 모사(模寫)를 핍진(逼眞)히 하여 한 시대의 실상과 생동감 넘치는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역사에 대한 평소의 많은 관심이 거편(巨篇)의 영사시(詠史詩)를 쓰는 것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무명자에 대한 선행 연구는 1977년 『무명자집(無名子集)』 간행에 덧붙인 이병도(李丙燾) 박사의 해제에서 『무명자집』의 서지적(書誌的) 측면과 내용을 일별하고 몇몇 작품에 대해서는 간단한 평가도 덧붙인 것이 최초의 언급이다. 이후 20년 이상이 경과된 1999년에 이민홍(李敏弘) 교수가 반중잡영을 번역하고, 그 해제에서 반중잡영의 편찬 동기와 내용, 의미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 반중잡영의 내용이 한국 교육사 연구의 참고 자료로 더러 인용되었다. 그러나 반중잡영 뿐만 아니라 『무명자집』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무명자 윤기는 연암 박지원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이 서울에 주로 거주하였으며, 성호 이익의 문하에도 출입하였지만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당세에도 윤기라는 인물이 그 정도로 소외되었으며, 문학적인 성취와 인격적인 면모도 주목받지 못하였을까? 이것은 18~19세기 문학사가 노론(老論)의 연암 계열이나 남인(南人) 시파(時派)인 성호 계열의 인물과 그를 계승한 다산 정약용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무명자의 일생이 올곧은 독서인(讀書人)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킨 참다운 인물이었음과 그의 문학적 성취 역시 이른바 실학자들에 못지않고, 오히려 뛰어난 점도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18~19세기 벽파 계열 인물들의 삶과 문학적 성취를 심도 있게 고찰하여 문학사의 연구 대상을 다면화하며, 풍성하고 완전한 면모를 파악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무명자 윤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첫 작품이다. 그의 사유 방식은 사대부의 한계를 넘는 과격하고 진보적인 언사나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정론을 펼치지는 않았다. 그는 주로 자신이 직접 견문한 사실에서 진실의 소재를 추구하고, 상대성을 인정하며, 개인적인 도덕성과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인 지식인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그의 참된 면모가 학계에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