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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영혼에 위로가 필요하다면 성자의 마을 아시시 순례기

홍솔, 전화식 저 | 고즈윈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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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975803 / 237쪽 155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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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불안해하지 마라, 안심하라.’
지친 내면을 파고드는 가슴 따뜻한 위로의 목소리

성 프란치스코의 흔적을 따라 걸은 열흘간의 소중한 치유의 여정과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사진 작품이 어우러진 아시시 이야기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에 위치한 인구 2만 6천여 명의 농촌마을 아시시. 이 작은 지역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는 성인 프란치스코가 태어나서 활동하고 죽은 곳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답고 중세시대의 모습이 살아 있는 역사가 숨 쉬는 마을로 치마부에와 마르티니, 로렌체티 등 유명 화가의 그림들이 모여 있는 예술의 요람이다.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탁발 수도승으로서, 부와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청빈과 형제애를 실천하며,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설립해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을 받아들였던 성 프란치스코. 그가 떠난 지 7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만나기 위한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아시시로 향한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만일 그대의 영혼에 어떤 다른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대여, 나에게 오십시오!”라는 성인의 말에 이끌려 아시시로 떠난다. 흔히들 그렇듯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공허함에 지쳐 있던 저자는 ‘마음에 평화를 주겠다’ 약속하는 듯한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직장인으로서는 내기 어려운 열흘간의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써 보기로 한다.
아시시에서 저자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신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거듭난 순서대로 그 발자취를 따르는 것을 여행의 목표이자 출발점으로 삼고 영화 같은 성인의 삶을 반추하며 걸어 나아간다. 카니발을 맞은 아시시 코무네 광장에서 시작한 여정은, 성 프란치스코가 신의 음성을 들은 회심의 장소 스폴레토, 카르체리 은둔소, 성 다미아노 성당,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녀 클라라 대성당을 거쳐 성인이 신에게 받은 은사로 고해와 보속 시 모든 여죄에 면죄부를 주도록 허락받은 전대사 성당 포르치운쿨라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에서 만난 성인의 모습은 길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치열하게 살다간 인간이었다. 타고난 성인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을 이겨 낸 증거자였다.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존경하고 따르는 일을 소명으로 삼고 있는 수녀님을 만나면서, 또 성인이 몸소 실천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형제애와 지극한 사랑에 대해 들려준 지리산 수도공동체의 프란치스코 수사님 목소리를 상기하면서 저자는 성인의 영혼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대물림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침묵이 신에게로 가는 길임을 깨닫고, 고난마저 깨달음을 주는 신의 이정표이며 감사한 선물이라 여기게 되면서 기쁨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다.
저자가 바라본 아시시의 생생한 표정들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화식의 사진 작품으로 실체를 얻는다. 사진가 전화식은 지금까지 전 세계 반 이상의 나라를 누비며 사진 취재를 해 온 베테랑이다. 그 노련함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시시만이 간직한 찰나의 빛과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비, 하늘, 새, 인간이 오묘한 빛으로 감싸여 공존하는 그의 사진은 신과 함께 만든 공동 작품이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순간, 그 장소, 그 빛이 아니면 탄생하지 못했을 사진들이다. 이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은 이 책의 특별한 여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음성音聲과 순례巡禮. 아시시에 가고 싶었던 이유, 가야 했던 이유였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내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아픈 이가 병원을 찾듯,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누구 혹은 무엇이 나를 병들게 했는지, 다시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그리고 내면으로부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치유의 여정이었다. “그분을 찾아라, 만나 주실 때가 되었다. 그분을 불러라, 옆에 와 계실 것이다.” (10쪽)

성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순례자의 시간
모든 것을 놓고 온전히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담은 열흘간의 여정


아시시 코무네 광장
아시시, 그곳은 수많은 성인들이 배출된 성자의 도시,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쉼 없이 머무는 곳, 가장 고독하고 낮고 비천한 자를 끌어안는 신의 품이다.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코무네 광장에서 저자가 우연히 보게 된 카니발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나고 자라 카니발을 즐겼을 성 프란치스코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기사가 되는 영예를 꿈꾸던 성인은 전쟁터로 가던 중 ‘너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홀변하여 가진 것을 다 버린 채 수도자가 되어 청빈과 고난의 길을 걷는다.

나는 성문을 통과하여 아시시에 발을 들였다. 마치 내가 와야만 하는 곳, 오래전부터 이미 오기로 내정되어 있던 곳에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나는 빨려 들 것만 같은 신비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멈춰 섰다. 내 걸음이 멈추자 시간도 따라 멈췄다. 정지한 시간 속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끄는 신비로운 거울의 방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인간의 역사 속에 흘러가는 일 초, 일 분, 한 시간처럼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조물주가 나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라 생각되었다. (25쪽)

순례자의 경당.스폴레토
저자는 자신만의 소명을 찾고자, 또 성 프란치스코와 같이 자신에게도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축복이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 프란치스코가 신의 음성을 들었던 장소인 스폴레토로 향한다. 그러나 비, 공포, 막다른 길이라는 여러 어려움과 마주하면서 여로의 중반 패잔병의 몰골로 돌아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저자는 기막힌 우연으로 프란치스코 성당 앞마당에서 말을 탄 채 고개 숙인 프란치스코의 동상과 마주한다. 회복 불능의 축 늘어진 어깨와 상실된 자존감의 잔해들이 자신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음을 느끼고 성인 역시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길을 찾고 방황하고 고뇌한 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날 때부터 성인의 품성과 운명을 지닌 분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로 살기 위해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며 인간의 본능을 이겨 낸 증거자였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프란치스코와 나환우
회개의 삶을 살기 전 성인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환우를 지옥이라며 역겹게 여겼다. 눈이 내려앉고 코가 삐뚤어졌으며, 문드러진 손이나 살이 썩는 냄새가 나는 나환우는 그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죄를 뉘우치며 기도하고 돌아가던 성인은 길에서 마주친 나환우에게서 참을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껴 바로 말에서 내려와 그를 포옹하고 입을 맞춘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곧 지옥이다”라 말했다. 그러나 성인은 지옥 같은 타인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음을 회개를 통해 알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산다. 지금도 나환우에 대한 봉사는 프란치스코회에서 전통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 수도회에 입회하는 이들은 누구나 일정 기간 나환우를 돌봐야 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 곧 회개와 거듭남의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대로 살기 위한 순명의 증표가 되고 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환우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떠나올 때는 역겨웠던 그것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유언 1-3) (77쪽)

카르체리 은둔소
성인이 동굴 속에서 머무르며 기도하던 카르체리 은둔소를 찾아가는 길, 저자는 비와 눈으로 자신을 비우며 하늘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내는 구름을 바라본다. 성인은 무소유 그 자체인 구름과도 같이 몸이 가난해질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삶으로 자신을 하나씩 비우며 걸어 나아갔다. 모든 피조물을 형제이자 자매라 부르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성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은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베푸는 길임을 고통과 인내의 삶으로 몸소 증명하며 완전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 허탕 친 하루였다. 하지만 곧 그것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허탕을 치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가 이루어지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그 여정이 험난할지라도 길을 가고 있는 과정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고 기뻤고 행복했다. 결과의 성패에 상관없이 어려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체험했다. 내가 마음을 여니 두려움의 상대가 사랑으로 바뀌는 경험도 있었다. (110쪽)

다미아노 성당.성녀 클라라 대성당
성녀 클라라의 생전 흔적이 남아 있는 다미아노 성당, 그곳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성체 현시’ 예식은 허를 찔리는 만남이었다. 조물주의 시간과 현세의 시간이 교차되어 맞은 결정적 만남을 통해 모든 순간이 기적이고 모든 것이 사랑임을 알려 주는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를 느낀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성녀 클라라 대성당에서 성인?성녀의 유해, 유물들을 직접 보고 숨결을 느낀 경험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밀랍 처리된 성녀의 유해는 발견 전에도 부패하지 않은 생전 모습 그대로여서, 빵 조각 수를 불리는 기적이나 성광을 들고 나가 사라센 대군을 물리친 일 등 클라라 성녀의 성스러움을 생각하게 한다. 타고난 동반자였던 이 두 분은 전기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같은 숙명을 띠고 같은 삶을 살았다. 극심한 가난과 극도의 고행, 영양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며, 그마저도 음식의 맛을 없애기 위해 재를 섞어 먹었던 성인은 시체처럼 깡마른 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사랑은 어미 새가 알을 품듯이 항구하게 감싸 안는 온기와도 같은 사랑이었다.

순례는 기도와도 같은 것임을 미어지는 가슴으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가라앉아 잊혔던 나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했다. 행복했던 시절이든, 불행했던 시절이든, 비록 다른 사랑이 상처를 주어 봉인해 버린 기억이라 해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움, 실망, 죄책감의 실체에 물음을 던지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이 이끌어 주고 계심을 믿어야 했다. (132쪽)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이탈리아 예술의 요람’이라 불릴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기적을 프레스코 화풍으로 그린 지오토의 유명한 그림 28폭은 물론, 치마부에와 마르티니, 로렌체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가들의 벽화가 성당 내부에 가득 차 있다. 지하 무덤에는 야고바 부인의 유해함과 프란치스코 성인, 그리고 루피노 등 네 명의 형제가 잠들어 있다. ‘가난 부인’을 신부로 맞아 모든 시련과 고통을 기쁨으로 인내하며 말년에는 심한 눈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고, 죽기 2년 전 예수님과 같이 오상을 받아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한 성인은 신의 음성을 듣고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된 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그중 피에트로 로렌체티의 <석양의 성모>는 놓치면 안 되는 볼거리이다. 그 유명세답게 아시시 거리를 걷다 보면 모자이크로 만들어 거리 곳곳에 붙여 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림에는 성 요한, 성 프란치스코, 아기 예수님, 성모님이 등장하는데, 아기 예수님이 성모님께 ‘요한과 프란치스코 중 누가 더 어머니를 사랑합니까’ 하고 질문하자 성모님께서 살그머니 프란치스코를 가리키셨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74쪽)

포르치운쿨라 성당.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남은 여죄까지 전부 사면되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포르치운쿨라 성당, 여기에 얽힌 전설은 프란치스코가 심한 육욕을 물리친 데서 시작한다. 한밤중 성인이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덤불에서 알몸으로 뒹굴었을 때 신이 나타나 그의 몸에 닿는 가시를 없애 주고 대신 그 자리에 장미를 피웠다. 신이 성인에게 은사를 내리자 성인은 죄를 고백하고 보속한 다음 성체를 영하고 전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 뒤 사람들은 성지를 포함한 작은 형제회의 성당을 방문하여 주님의 기도와 사도신경을 바치고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교황의 지향에 따른 기도를 바침으로써 자신은 물론 죽은 이를 위한 전대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순례자들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정갈한 사색의 시간 속에서 침묵을 빌려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때문에 아시시에는 가장 낮고 아프고 불안에 머무는 영혼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치유를 찾아 모여든다. 삶의 막다른 길에 놓인 순간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마음은 신에 대한 원망이다. 하지만 순례가 끝나는 길에서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 또한 나를 정해진 길로 인도하는 신의 뜻이었음을 깨닫는다.

온갖 역경 속에 놓아두시고 고통과 버림도 불사하시는 나의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전에는 그 아프고 쓰린 고통과 버리심에 투정 부리며 피해 가기를 청했다. “차라리 저를 잡아가세요. 저보고 어쩌라는 말씀이세요.” 하며 포기와 절규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길이 있고, 당신의 음성과 응원, 그리고 사랑이 숨어 있음을 믿게 하는 신의 섭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래, 고통은 신이 건네준 사랑의 증거라 하지 않던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선물임을 잊지 말라고 주시는 사랑의 고통이다. (216∼217쪽)

기적은 가장 멀리 있다고 느낀 순간 네 곁에 있다.
잊지 마라, 너를 이루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저자 소개

아프리카, 유럽, 터키, 이스라엘 곳곳을 여행했다. 대학에서 경영을 공부했으며,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여행 에세이를 게재해 왔다. 사소한 몸짓이라도 그것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작품을 이룬다고 믿는다. 삶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하루하루를 내가 가진 무언가로 채워 가는 것. 그래서일까. “심장의 고동이 멈추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늦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가슴 뛰는 삶을 만드는 묘약”임을 믿으며.

책 속에서

아시시 여정은 내게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거듭난 순서대로 그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 과정에서 하느님은 항상 나와 함께하심을 알게 되었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보살핌으로 나를 이끄셨음에 감사하고 또 놀라워했다.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다는 믿음을 놓지 않을 수 있었고, 순례 중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들도 모두 의미 있는 선물로 여길 수 있었다. (10쪽)

난 고요함과 침묵이 신에게 들어가는 문이며, 인간 영혼과 신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소음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경질적인 행위를 낳는 소음은 인간의 영적, 정신적 근본 구조에 변화를 일으켜 고요함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 몸과 영혼이 불안한 상태였기에 고요함으로 들어가기를 어려워했던 것이다. (57쪽)

성인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내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흔히 ‘성인’이라 하면 위인다운 초월적인 행적과 성스러운 삶을 떠올리게 되고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카르체리를 오가며 기도했을 당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상상해 보면, 그 마음이 지금 앞길을 몰라 헤매는 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 또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많은 이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주님 음성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도에 전념한 것이다. (83쪽)

간소한 식탁이지만 아시시의 태양과 물, 바람과 초록이 ‘순례자의 메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확실히 ‘먹는다’는 것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함 이상이다. 마음이 담긴 음식을 통해 나는 마음을 먹고 있다. 사랑을 먹고 있다. 음식은 분명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에는 단순히 요리 이상의 온기가 배어 있음을 나는 안다. (120쪽)

그림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에 등장하는 성인의 모습은 누가 봐도 거룩한 분임을 알 수 있도록 머리 뒤에 황금빛 후광이 그려져 있다. 모자 달린 수도복을 입고 있으며 맨발이다. 성인 옆 수사는 성인의 기적에 감탄하고 있는데 그 표정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 지금 보면 표현이 서툰 부자연스러운 그림이지만 당시에는 새 시대가 도래하는 획기적인 그림이었다. 수사가 놀라는 표정이나 새들이 앉아 있는 나무의 묘사, 입체감 있는 수도복 주름의 붓 터치 등은 오늘날 3D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의 충격에 비한다고 한다. (172쪽)

이제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미미한지 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셔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나의 때에 당신이 계획하신 일을 이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아니 믿게 하여 주신다. 그래서 늦지 않았다고, 초조하게 여기지 말라고, 나의 길을 가라고 말씀해 주신다. (216쪽)

목차

추천의 글

서문 _왜 당신을, 왜 당신을, 왜 당신을

1. 카니발
_로마 테르미니 역·아시시 코무네 광장

2. 너 어디로 가고 있느냐
_순례자의 경당·스폴레토

3. ‘타인’이 지옥이라면 ‘타인 없는 나’야 말로 지옥이다
_프란치스코와 나환우

4.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
_카르체리 은둔소

5. 순례자 메뉴
_via S.Agnese의 레스토랑

6. 신의 은총이 있기를
_성 다미아노 성당

7. 깁고 또 깁다
_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8. 그곳은 참 평화와 기쁨의 세계
_성녀 클라라 대성당

9. 그대 영혼에 위로가 필요하다면
_포르치운쿨라 성당·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사진가 후기
_빛은 어둠 속에서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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