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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처럼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만나다

김병일 저 | 글항아리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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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준 퇴계의 삶을 그의 일상과 인간관계 속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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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7350345 / 216쪽 145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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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여성을 받든 유학자, 조선 유학의 종장이 되다
퇴계 이황의 삶을 통해 ‘섬김의 리더십’ 재조명

구전되어온 다양한 일화를 종합해서 백성과 함께 했던 한유寒儒의 삶을 되살리고
퇴계의 삶에 대한 명언, 지침 등을 현장을 보존한 풍부한 도판과 곁들여 그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고, 인간은 만남에서 성숙된다

몇 년 전부터 국학 관련 인문교양서로 대중들과 활발하게 만나고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2013년 새롭게 기획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시리즈를 선보였다. 시리즈의 첫 작품은 『퇴계처럼: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만난다』(김병일 지음)이다. 이 시리즈는 과거 조상들의 ‘오래된 만남’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지혜를 엿보고자 한다. 만남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의 만남’ ‘시대와 시대의 만남’ ‘사물과 인간의 만남’ 등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열린 관점에서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줬던 다양한 만남을 발굴하려는 것이 시리즈의 목적이다. 『퇴계처럼』은 그 첫 번째 만남으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최고의 리더십을 보여준 퇴계의 삶을 그의 일상과 인간관계 속에서 살펴본 책이다.

△겸손과 배려 그리고 희생정신이 바로 퇴계였다는 깨달음
퇴계 이황은 그가 살았던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어린아이들조차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이니, 이로써도 그의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퇴계 관련의 도서가 수백 권, 논문은 수천 편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주로 퇴계의 학문과 사상을 집중적으로 다루거나 혹은 쉽게 설명해놓은 것들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에게 그는 조선시대 대유학자로서의 모습으로 주로 각인되어 있다.
반면, 이 책은 퇴계와 여성의 만남을 통해 유학자 퇴계가 아닌 자연인 퇴계의 인성에 깃든 섬김의 리더십을 발견하고자 한 시도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공직에 있다 몇 년 전부터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과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병일 원장이다. 그는 서울대 사학과 재학시절 가졌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오랜 관심과 안동을 비롯한 지방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되살려내는 현장 지휘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 책의 앞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놀랍게도 안동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퇴계의 새로운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지금껏 책 속에서만 만나던 이론가로서의 퇴계, 거대 사상에 파묻힌 대유학자로서의 퇴계가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의 퇴계였다. 그가 평소 실천했던 겸손과 배려, 희생정신이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하루에도 수차례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문객을 정성 가득 담아 대해주는 팔순을 넘긴 퇴계 종손의 삶은 그야말로 자신보다는 타인을 우선하는 경敬에 입각한 삶을 살았던 퇴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가 하면 선비문화를 체험하러온 교육생들 역시 심오하고 거대한 성리학적 이론보다는 일상적 삶에서 보여준 퇴계의 인품에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나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이곳을 찾아온 이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하나는 이론(강론) 중심의 당위론적 가르침보다 일상의 실천적 삶에서 존경심이 자연스레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가 여자이든 비천하든, 그 누구든지간에 자신을 낮춤으로써 결국은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현명하고도 진실된 퇴계의 삶에 대한 존경심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퇴계의 이론보다 남이 하기 어려운 그의 실천을 배우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이 가장 설득력 있으려면 현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선비정신 역시 책이 아니라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즉 퇴계가 보여준 실천적 삶의 현장이 여기저기 남아 있고 그런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받고 있는 후손들의 삶에서 선비정신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퇴계와 여인’의 만남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학자의 삶에서 여성은 보통 조용한 배경이거나 일탈의 표상이거나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퇴계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성’이라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그 다리 너머에 퇴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퇴계와 여성의 만남을 “퇴계가 섬긴 여인들”과 “퇴계를 만든 여인들”로 크게 구분해서 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이 되어줄 것이다.

대부인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들이 ‘아이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아이를 별로 가르치지 않았지만,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고 다리를 뻗고 앉거나 기대거나 눕거나 엎드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퇴계의 어머니가 평상시 했던 말이다. 위의 기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퇴계의 아버지 이식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마흔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당시 퇴계는 7개월을 막 넘긴 갓난아기였으며, 어머니 춘천 박씨는 33세였다. 그래서 퇴계는 모친의 가르침 속에 자라났다. 춘천 박씨는 “아이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비록 아버지의 가르침은 받지 못했지만 퇴계는 유학을 존숭하는 나라 조선의 선비로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듯하게 자랐다. “나는 이 아이를 별로 가르치지 않았지만”이란 말에는 더욱 많은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식이 일곱 딸린 서른셋의 과부가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막내인 퇴계를 공부시키는 것에 큰 열의를 보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자 한자 육신에 새기는 공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실제로 춘천 박씨는 농사와 양잠으로 식솔을 거두는 일만으로도 고된 삶을 살았다. 퇴계에게는 늘 편모슬하의 자식으로서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을 하면 안 된다며 매우 엄하게 가르쳤다. 퇴계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삶을 직접 겪으면서 깨달은 생생한 현장 가르침이었고, 틈날 때마다 자식을 앉혀놓고 훈계하는 말 속에 담긴 걱정과 우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조선시대 양갓집 아녀자의 평균적인 철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퇴계를 일찍부터 책으로 이끌었고 역대 성현들의 육성을 직접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고생하는 어머니 곁에서 읽는 책의 구절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어린 퇴계의 정신을 벼려주었고,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가볍지만 단단한 생을 살다 간 선현들의 삶을 더욱 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최근까지 퇴계의 이러한 유년 시절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불행으로 여겨졌다. 퇴계는 거의 유복자나 마찬가지였고, 어머니 춘천 박씨가 갖은 고난 속에서 7남매를 키워내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인이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마치 공자처럼 퇴계 또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학업에 힘써 대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 유사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부성의 부재’는 ‘모성의 확장’으로 이어져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 즉 부성의 부재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큰 자리’, 즉 모성이 확장되는 모습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듯하다. 퇴계의 삶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 할머니, 어머니, 첫째 부인, 둘째 부인,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로 이어지는 ‘퇴계의 여인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 여인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대유학자의 삶을 되돌아보려는 가장 큰 이유는 퇴계가 죽는 순간까지 보여준 타인을 향한 겸양과 섬김의 자세,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아낀 평등사상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퇴계와 여성의 만남을 보면 유학자 퇴계가 아닌 자연인 퇴계의 인
성에 깃든 섬김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지배하기보다는 섬김으로써 오히려 다스릴 수 있는 고차원의 윤리와 철학은 구체적으로 그의 삶을 만들고 영향을 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장 ‘퇴계가 받든 여인들’, 2장 ‘퇴계를 만든 여인들’을 통해서 퇴계와 여성의 관계를 재규명해본 다음, 3장에서는 이러한 것이 어떻게 백성들의 삶 깊숙한 곳에서 그들과 같은 밥과 반찬을 먹고 아랫사람 을 먼저 받드는 한유寒儒의 삶으로 완성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시리즈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시리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새롭게 기획한 교양총서로 과거 조상들의 ‘오래된 만남’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지혜를 엿보고자 하는 시도다. 만남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의 만남’ ‘시대와 시대의 만남’ ‘사물과 인간의 만남’ 등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러한 열린 관점에서 우리 조상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줬던 다양한 만남을 발굴·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만남으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결국 조선 최고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던 퇴계의 일상을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 『퇴계처럼』을 선보인다. 시리즈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상도 유림과 호남 유림의 만남과 교유를 미시적으로 살핀 책 등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01 『퇴계처럼: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만난다』 김병일 지음
02 『호남 선비들은 왜 경상도 땅을 밟았을까』 이상하 지음 (가제, 근간)

저자 소개

194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학과와 행정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1971년 행정고시를 거쳐 30년 넘도록 경제관료로 봉직하며 국가재정경제정책 추진에 참여하였다. 통계청장, 조달청장, 기획예산처 차관, 금융통화위원,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거쳤다.
2005년 퇴직 후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2008.2~)과 한국국학진흥원장(2009.8~2014.8)을 맡으면서 선비정신의 확산과 국학의 진흥을 위해 힘써왔다.
지금은 도산서원 원장을 비롯해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조직위원장, 영남대 석좌교수 등을 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안동 퇴계 종택 뒤 산기슭에 위치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머무르며 섬김의 리더십, 바른 인성 등 선비정신을 전파하며 착한 사람이 많은 사회를 만들고자 힘을 보태는 중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 “조선왕조 청백리에 관한 연구”(1976),《고객을 위한 변화는 아름답다: 연설문집》(2000),《퇴계처럼: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만난다》(2012)가 있다.

책 속에서

권질은 부름을 받고 달려온 퇴계를 향해 “자네, 3년 전 상처를 하고 나서 재혼은 했는가?” 하고 물었다. 퇴계가 아직 둘째 부인을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위해 던져본 말이었다.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이보게! 자네는 우리 집 사정을 잘 알지 않는가? 집안이 잇달아 참극을 당하는 바람에 내 여식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네. 그러니 누가 데리고 가겠는가? 내가 이곳에 온 지 10년이 되어가고 또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처지에 혼기를 넘긴 여식을 그저 보고만 있자니, 가슴이 먹먹하네. 그래서 오늘 자네에게 내 여식을 부탁하려고 이렇게 불렀네.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를 해봐도 자네밖에는 믿고 맡길 사람이 없으니, 어찌 하겠나?”
퇴계는 말없이 한참을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맞이하겠습니다. 어머님께 허락을 받은 다음 예禮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시고 아무쪼록 기력을 보존하십시오.” (23~24쪽)

조부의 제삿날에 식구들이 온혜에 있는 큰형 집에 모였다. 제사상을 차리느라 모두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상 위에서 배가 하나 떨어졌다. 그러자 권씨 부인은 재빨리 배를 집어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본 큰형
수가 동서를 나무랐다.
“이보게, 동서! 제사상을 차리는데 과일이 떨어진 것은 우리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네. 그런데 그것을 치마 속에 감추면 어찌하겠단 말인가.”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인들은 차마 뭐라 할 수 없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뿐이었다. 바깥 대청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자 퇴계는 밖으로 나와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서둘러 큰형수에게 가서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제가 잘 가르치겠습니다. 그리고 손자며느리의 잘못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도 귀엽게 보시고 화를 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러고는 권씨 부인을 따로 불러 치마 속에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배가 먹고 싶어서 숨겼다고 하자, 퇴계는 치마 속에 감춘 배를 달라고 한 뒤 손수 껍질을 깎아 잘라주었다. (25~26쪽)

대개 옛날에는 칠거지악을 범한 부인을 쉽게 내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부인들은 대체로 일부종사一夫從事하여 일생을 마치게되니, 어찌 그 정의情義가 맞지 않는다고 길 가던 사람처럼 또는 원수처럼 대하듯 하며, 또 부인을 천 리 밖으로 내쳐서 가정의 도리를 망가뜨리고 자손을 끊기게 하는 불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66쪽)

우리는 여기서 행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이렇다. ‘퇴계는 가문이 한미하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했지만 조금의 동요 없이 오히려 며느리를 감싸주었고, 이에 감동한 며느리는 죽어서도 시아버님을 모시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모욕을 당했지만 이를 문제삼지 않을 정도로 관대한 포용력을 지닌 퇴계의 인품’이다. 범인凡人들은 쉽게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큰 도량을 지녔다는 말이다. 이에 감동받은 며느리가 죽어서도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두 사람의 무덤이 지척에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77~81쪽)

퇴계가 회고하는 춘천 박씨는 억척스러움(용기)과 지혜로움을 겸비한 어머니였다. 억척스러움은 “길쌈을 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며 조금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라는 퇴계의 기억에서 엿볼 수 있고, 지혜로움은 “아랫사람을 엄하게 대하면서도 은혜를 베풀어 스스로 신뢰하도록 했다”라고 한 대목에서 묻어나온다. 33세의 젊은 아녀자가 홀로 7남매를 데리고 살아가야 했으니, 억척스러움이 없었다면 헤쳐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춘천 박씨는 농사와 누에치기, 길쌈 등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던 듯하다. 특히 누에치기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매우 고된 노동이 동반된다. 춘천 박씨는 양잠으로 가계를 일으켜 세웠고, 그러했기에 혹독한 부역과 세금에 시달린 나머지 파산해버리는 이웃들과 달리 흔들림 없이 가업을 유지해나가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퇴계 또한 말년에 고향에 있을 때는 모친이 일군 양잠업을 이어나가며 누에치기의 중요성을 가족들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제자들은 퇴계가 50세 이후 한서암寒栖庵에서 짚자리와 갈대를 깔고 보통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생활을 자족하게 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는데, “퇴계가 서당에서 돌아오면 누에를 쳐서 집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 다른 데로 피신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누에치기와 퇴계의 일상적 삶을 연결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100~102쪽)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문집 등을 보면 간혹 기우제문이 실려 있곤 하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일률적인 형식과 내용을 취하고 있는 반면, 퇴계가 지은 기우문은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특히 “당장 입에 넣을 것이 없고 가을 수확도 희망이 사라지니, 애절한 우리 백성 모두 굶어 죽어 골짜기를 메울 지경”이라는 표현에서는 백성의 삶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면서 걱정하는 퇴계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 “고을을 지키는 수령이 죄 있으면 당연히 그 벌을 받아야겠지만, 죄 없는 백성들의 울부짖음 이것이 시급하다오”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관리의 진정한 책무가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배곯은 백성들을 쳐다보다가 하늘에 대한 원망이 솟아났는지 어투에 답답함과 야속함이 묻어나 있기도 하다. (121쪽)


목차

책을 펴내면서
여는 글

제1장|퇴계가 받든 여인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 권씨 부인과의 만남 | 제사 음식을 집어먹다 | 흰 도포 자락을 빨간 헝겊으
로 꿰매다 | 죽령에서 부인의 영구靈柩를 맞이하다 | 처가의 제사를 모시다 | 장모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다 | 군자의 도道는 부부에게서 시작된다 | 서로를 손님처럼 공경하라 | 시아버님 묘소 가까이에
묻어달라 | 청상과부 홀로 빈소를 지키니 어찌 할꼬

제2장|퇴계를 만든 여인들

어머니 춘천 박씨 | 동안학발의 할머니 영양 김씨

제3장|퇴계, 백성을 받들다

백면서생, 농사를 염려하다 | 향촌의 질서를 바로잡다 | 귀천을 가리지 않고 존중하다 | 남의 자식을
죽여서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 대장장이에게 배움의 길을 터주다 | 의롭지 않은 것은
멀리하라 | 출처와 명분이 확실치 않은 물건은 사양하다 | 혐의를 경계하다 | 가난할수록 더욱 즐겨
라 | 가짓잎·무나물·미역으로 차려진 밥상 | 비석 대신 조그마한 돌을 세워라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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