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휘말림의 정치학 - 부커진 R 4호

시리즈 : 부커진 R [5]

정정훈 외 저 | 그린비 | 2012년 11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40.00
판매가
$22.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44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76827654 / 312쪽 170 x 25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책(book)의 깊이와 잡지(magazine)의 넓이를 결합한 새로운 매체형식을 통해 소수성과 타자, 혁명에 대하여 이야기해 온 ‘부커진’ 󰡔R󰡕이 이번 4호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휘말림’이다. 2002년 이후로 광장은 휘말림의 공간이었다. 미선․효순 추모 촛불집회,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대중들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집회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평택 대추리와 새만금, 5차에 걸친 희망버스, 두리반과 명동 마리,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제주의 강정마을까지. 이렇게 수많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과 연대의 모습을 󰡔R󰡕 4호는 ‘휘말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살피면서, 이 휘말림들이 보여 주고 있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서 모색해 보고자 한다.

출판사 리뷰

‘휘말림’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촛불집회부터 나꼼수까지, ‘휘말림’의 사건들에 대한 고찰!


책(book)의 깊이와 잡지(magazine)의 넓이를 결합한 새로운 매체형식을 통해 소수성과 타자, 혁명에 대하여 이야기해 온 ‘부커진’ 『R』이 이번 4호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휘말림’이다. 2002년 이후로 광장은 휘말림의 공간이었다. 미선. 효순 추모 촛불집회, 탄핵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대중들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집회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평택 대추리와 새만금, 5차에 걸친 희망버스, 두리반과 명동 마리, 그리고 해군기지 건설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제주의 강정마을까지. 이렇게 수많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과 연대의 모습을 『R』 4호는 ‘휘말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살피면서, 이 휘말림들이 보여 주고 있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서 모색해 보고자 한다.
‘휘말림’이라는 주제는 2011년 ‘수유+너머N’이 일본 오사카대학의 ‘횡단하는 대중문화 연구단’과 진행했던 ‘국제워크숍’에서 촉발된 것이다. 오사카대학 연구단의 좌장인 도미야마 이치로는 이 워크숍의 발표문에서, 오키나와 문제를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하면서 ‘올바른 연대를 위해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올바른 지식’에 대한 강조가 ‘연대를 말하면서도 휘말려들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며, 운동의 가능성은 ‘휘말려 들게 할 수 있는 말’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곧 『전장의 기억』과 『폭력의 예감』 등의 저서를 통해 도미야마가 말하고 있는 ‘예감’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미 남의 일이 아니라는 감각, 타자와 내가 포개어지는 신체감각으로서의 예감이 바로 휘말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예감’할 때, 우리는 휘말려 든다.
생각해 보면,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휘말림’의 사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혹독함 속에서 살아 나가야 했던 이들이 느낀 이런 ‘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던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예감,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안전하지 못한 먹거리를 내가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그것은 또한 이미 쫓겨나고, 해고되고, 병들고 있다는 자각일지도 모른다. 『R』 4호는 이렇게 휘말려든 자리에서 대중은 기존과는 완연히 다른 저항과 삶의 방식을 창안해 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저항이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이래, 많은 저항의 장들은 일회적인 항의가 아니라 상시적인 예술과 삶의 장소로 변환되었다. 홍대의 독특한 문화와 결합해서 문화와 예술을 저항의 장으로 끌어들였던 두리반의 사례나, 평택 대추리나 강정마을처럼 휘말려든 이들이 그곳에서 ‘살아버림’으로써 투쟁의 장을 삶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들에서,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계획하거나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지의 영역을 부단히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혹과 휘말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도미야마 이치로의 첫번째 글(「휘말린다는 것」)이 2011년 워크숍에서의 발표를 체계화한 것으로, 프란츠 파농의 논의와, 서독 적군에게 동조하여 “우리가 과격파다”라고 외치며 제발로 탄압의 상황 속에 휘말려 들어간 ‘사회주의 환자집단’(SPK)의 사례를 통해 ‘휘말림’에 대한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면, 이진경의 글(「정치적 사건화와 대중의 흐름」)은 희망버스에 ‘휘말린’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한국사회에서 ‘휘말림의 정치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진경은 우선 어떤 사건에 누군가가 ‘매혹’될 때 ‘휘말림’이 발생하며, 그것이 증폭되고 확산되면서 하나의 ‘사건’은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정치적으로 파급력을 갖는 ‘사건화된 사건’이 된다고 말한다. 전태일의 분신이 노동자의 조건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누구든 감응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된 것처럼, 김진숙의 타워크레인 농성이 수천 명이 희망버스를 타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이 증폭과 확산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진경은 전국적인 방송망이나 보급망을 갖는 대중매체를 통한 “공명하는 방식의 증폭”과 구분하여, “횡단적으로 전파되는 방식의 증폭”을 말한다. 유언비어나 인터넷,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와 같이 중심화된 증폭장치를 갖지 않고 옆에서 옆으로 전달되는 증폭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 방식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초기에는 불가피한 지체가 발생하지만, 일단 전염의 흐름이 형성되면 체증적인 속도와 강도로 확산?증폭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확산?증폭되는 과정은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다.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넘길 때, 메시지뿐만 아니라 감각과 시선 또한 함께 전달되는 것이며, 이렇게 신체적 감각이 전염되고 혼합되는 과정이 마치 ‘하나인 것과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복합적인 신체로서의 대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증폭의 과정이란 탈정체화와 탈개체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정정훈은 자신의 글(「탈정체화된 연대와 탈개체화된 연대, 그리고 인민의 생성」)에서 ‘휘말림’이란 “개인의 고유성을 규정하던 정체성과 개체성을 벗어난 존재들이 서로에게 일정하게 함입하게 되는 운동, 서로가 서로에게 휘말려 들어가는 어떤 사건”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무리-존재’로서의 ‘인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특집에 함께 실린 와타나베 후토시의 글(「동일성의 병리학」)과 가게모토 쓰요시의 글(「고바야시 마사루의 삶에서 두 번의 휘말림」)은 각각 호시노 도모유키의 소설 『오레오레』와 고바야시 마사루를 사례로 하여 탈정체성?탈개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수많은 ‘나’들의 등장과 ‘나’들 상호간의 살육을 그리면서 현대 일본사회를 배경으로 동일성과 타자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는 호시노 도모유키의 소설을 다룬 와타나베 후토시의 글과, 재조일본인 2세라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운동에 휘말려 들어간 고바야시 마사루를 그려내고 있는 가게모토 쓰요시의 글은 모두 ‘휘말림’의 계기로서, ‘무리-존재’로서의 대중의 형성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정체성과 개체성의 해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대중의 흐름의 좌우는 존재하는가!

이진경은 대중에게서 ‘혁명적인’ 혹은 ‘반동적인’ 벡터만을 읽어내는 것은 아직 대중을 알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선험적으로 혁명적인 존재가 아니며 선험적으로 반동적인 존재도 아니다. 대중이란 하나의 흐름이며, 그 방향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때로는 극한적인 혁명의 방향으로, 때로는 파시즘과 같은 극단의 반동으로 흘러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의 흐름에 정치적인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대중의 흐름에 대해 좌우를 구별하게 해주는가?”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치학일 수 없다. 이진경은 그의 글에서 두 가지 층위의 기준을 통해, 대중의 흐름이 혁명적인 것인지 반동적인 것인지를 구별하려고 한다. 그 하나는 “감성 내지 각각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의 층위는 “인식 내지 지성의 차원”이다. ‘감성의 차원’에서 보수적인 대중정치학은 대중이 지니고 있는 기존의 감성이나 감각에 편승하고 그것을 증폭.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끌고가려 한다면, 혁명적인 대중정치학은 현재적 감각의 흐름 속에서도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포착하고 그것을 증폭시켜 새로운 주도적 감각으로 확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이나 안철수의 부상에 대해 보수적인 대중정치학은 그런 대중적 흐름의 부당성과 순진함을 지적하지만, 진보적 대중정치학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낸 ‘대중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그 지혜가 함축하고 있는 것을 더욱 밀고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대중정치학에 있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두 번째 층위인 ‘인식 내지 지성의 차원’에서의 구분이다. ‘인식의 차원’에서 우파의 대중정치학을 특징짓는 것은 대중을 촉발하기 위해 진실과 거짓에 상관 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과장하여 부각시키고 대중의 감각에 끼워넣고자 한다는 점이다. 반면 감각적 판단에 머무르지 않고, 사태의 진실과 대면하고 그 진실을 향해 나아가도록 촉발한다는 점이 좌파적 대중정치학을 특징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모든 현실적인 우파와 좌파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분이 아니라는 점에 어려움이 있다. 현실 속의 많은 좌파들이 대중의 감각이나 환상에 함축된 것을 놓치고 비난에 머무르거나, 탁월한 대중적 감각을 가지고 대중의 환상에 충실히 따라가면서 그것을 증폭시키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이는 우파적인 대중정치학과 구별 불가능한 것이 되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이진경은 이러한 위험성을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진중권과 ‘나꼼수’의 입장 차이를 통해 드러내 보여 준다(본문 54~55쪽). ‘나꼼수’를 비롯해 진영적인 논리에 기반한 이들이 「부러진 화살」을 이명박 정부 이후 사법부의 정치적인 성향과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위해 ‘다큐멘터리적인 사실’로 간주하여 대중에게 밀어 넣었다면, 진중권은 영화가 재판 과정의 ‘진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중적인 감각에 반하는 선을 탔는데, 이것이 좀더 좌파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나꼼수’처럼 대중의 감각화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이른바 ‘진영의 논리’에 따른 정치적 판단에 힘을 싣기 위해 그것을 증폭하는 것은 우파의 대중정치학과 구별되는 지점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점에서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휘말림의 공간!

‘나꼼수’에 대한 열광에 대한 이런 비판적 지점에도 불구하고, 최진석은 그의 글(「“쫄지마!” 또는 정치화의 새로운 명령-어」)에서 ‘나꼼수’ 열풍이 만들어 낸 실질적인 효과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글의 끝에 붙은 ‘추기’를 통해 “쫄지말고 투표해”로 끝나는 ‘나꼼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134쪽) 최진석은 ‘나꼼수’가 정해진 답이 없는 지식담론의 공간을 열어냈다는 점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욕망하는 대로 떠들어댈 수 있는 공간, 어떤 형식으로도 변형 가능한,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스타일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는 것. 한계를 설정하고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감히 맞서고, 웃고 떠들라”라고 말하는 격려와 박수를 던지는 것이 ‘나꼼수’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꼭 ‘나꼼수’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공간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통치체제가 다수의 인민을 ‘적’으로 상정하고 점점 더 가혹하고 억압적인 통치를 행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더라도(「헤게모니에서 시큐리티로」),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대중들이 ‘히키코모리적 주체’ 속에서(「히키코모리적 주체에게 고함」), 혹은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해충의 존재론」) 강퍅한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든 휘말림의 계기가 존재한다. 강퍅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크게 전달되고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뉴스 한 마디, 트위터 한 줄에서 나에게 닥칠 일을 ‘예감’하게 될 때, 어느 순간 휘말려서 옆에 있는 자들과 감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정훈 외
지은이 : 정정훈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의 연구원이다. 문화연구를 전공했고, 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랜드마크 삼아 정치철학이라는 영토를 탐구해 오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현재 내가 하는 공부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지식-기계를 만들고, 현실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유-활동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인권운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과 결합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사회론, 문화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동안 『인권과 인권들』(2014),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2011)을 썼고, 동료들과 『불온한 인문학』(2011), 『코뮨주의 선언』(2007) 등을 썼다.  

지은이 : 도미야마 이치로 (富山一郞)
1957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베외국어대학, 오사카대학을 거쳐 현재 도시샤대학 글로벌스터디즈 교수로 있다. 프란츠 파농과 이하 후유伊波普猷를 사상적 준거점으로 삼아 오키나와 사상사와 이민을 연구하며 일상과 함께 있는 전장과 폭력성을 묻는다. 아울러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는 말에 대한 사유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근대 일본사회와 ‘오키나와인’』(1990), 『전장의 기억』(1995: 한국어판 2002), 『폭력의 예감』(2002: 한국어판 2009), 편저로 『포스트 유토피아의 인류학』(2008), 『현대 오키나와의 역사 경험』(2010) 등이 있다.  

지은이 : 신지영
연세대학원에서 「한국 근대의 연설 좌담회 연구」(2010)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외국어 대학에서 포스트 닥터를 하고, 현재 쓰다주쿠 대학, 니쇼가쿠샤 대학, 무사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2011년 히토쓰바시 박사과정에 다시 입학하여 “식민지기 말기~전후의 동아시아(조선·대만·일본)의 담론공간 : 접촉사상과 발화행위”라는 주제로, 1945년을 전후한 동아시아의 이동과 이족/난민의 코뮌을 둘러싼 사건, 모임, 소문 등을 살펴보고 있다. 2000년부터
<수유+너머>
활동에 참여해 왔고, 4년간 『수유+너머 위클리』에「해외통신 ― 일본에서 마을 만들기」라는 에세이를 연재하여 일본의 코뮌적 시공간과 활동을 소개했다. 저서로는 『마이너리티 코뮌 ― 동아시아 이방인이 듣고 쓰는 마을의 시공간』(갈무리, 2016), 『不부/在재의 시대 ― 근대 계몽기 및 식민지기 조선의 연설·좌담회』(소명출판, 2012),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일본 비정규 노동운동가들과의 인터뷰』(이진경·신지영 공저, 그린비, 2012), 『일제 식민지 시기 새로 읽기』(공저, 혜안, 2007)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저 여기 있어요』(이치무라 미사코, 올벼, 2009)와 『주권의 너머에서』(우카이 사토시, 그린비, 2010) 등이 있다. 현재 『다니가와 셀렉션 1,2』(이와사키 미노루·요네타니 마사후미 편, 2009)와 『이방의 기억』(이연숙, 晶文社, 2007)을 번역 중이다.  


지은이 : 이진경
본명은 박태호. 지은 책으로 『파격의 고전』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미-래의 맑스주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 『노마디즘 1?2』 등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이자 수유너머104 회원이다.  

지은이 : 최진석
러시아인문학대학교에서 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국가를 생각하다』(공저), 『불온한 인문학』(공저)이, 옮긴 책으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해체와 파괴』 『러시아 문화사 강의』(공역)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수유너머104 연구원이며, 서울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이 : 손기태
신학과 종교학을 공부하였다. ‘수유너머 104’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고 강의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오랜 관심을 이어 가고 있다. 스피노자를 만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바울, 칼 바르트, 벤야민, 아감벤 등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가 있고, ‘수유너머’의 동료들과 함께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불온한 인문학』, 『욕망, 고전으로 생각하다』 등을 썼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로 있다.  

지은이 : 가게모토 쓰요시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태어나 교토에서 느긋하게 학생 시절을 보냈다. 현재 대학원생으로 한국에 머물면서 조선근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은이 : 권은혜
경희대학교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전문사에서 공부중이다. 학부와 석사의 단절을 설명해 주는 곳이
<수유너머n>
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공부를 하고 싶다.

  


지은이 : 김은영
<수유너머n>
연구원. 직장생활 5년 차에
<수유너머n>
을 만나 N진에 ‘음악과 정치’ 시리즈를 연재했다. ‘미드의 사회학’(2010), ‘에로스의 경제와 섹슈얼리티의 정치’(2011)를 동료들과 함께 강의했으며, ‘90년대 록을 위한 변명’(2010), ‘19세기 군중의 시학’(2012) 등을 발표했다. 현재
<수유너머n>
인문사회연구원 디플롬 과정을 수료중이다.



  




지은이 : 모리사키 가즈에
1950년대부터 규슈의 탄광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일본의 대표적 사회운동가. 1927년 조선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난 재조 일본인 2세로 귀환 후 일본의 민족성에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차별당하는 이족집단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상을 전개했다.
  

지은이 : 박은선
<수유너머n>
회원이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로 활동중이다. 예술과 액티비즘 그리고 도시의 관계에 관심이 많으며 내성천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다.

  



지은이 : 오하나
<수유너머n>
에서 공부하며 통역과 번역을 하고 있다. 사카이 다카시(酒井隆史)의 『자유론』을 번역했다.

  


지은이 : 와타나베 후토시
전공은 문화사회학·종교사회학. 오사카국제대학교 강사. NPO 법인 ‘지역 문화에 대한 정보와 프로젝트’, NPO 법인 ‘일본 슬로우 워크 협회’, ‘국제 탈락자 조합’(International NEET Union)에도 관여하고 있다. 문화 실험을 통한 공동성의 구축, 사회 운동 네트워크,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 생기는 왜곡과 꼬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사랑과 유머의 사회 운동론』, 『컬트와 영성』 등이 있다.
  

지은이 : 정상희
인디포럼 작가회의 사무국장. 영화와 록 음악, 책을 좋아하며,
<수유너머n>
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이 : 정행복
전직 전교죠 교사.
<수유너머n>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잠시 게으름 피우며 휴식 중이다.

  


지은이 : 홍서연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철학 박사 과정(DEA)을 수료하고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음식에 대한 연구로 역사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강정마을에는 자신의 일상을 규정하던 질서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2012년 3월 구럼비 발파 소식을 듣고 단 며칠만이라도 강정의 싸움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 비행기를 탔던 많은 이들이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을에 남아서 지킴이로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이들은 작년에 있었던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 앉은 경우도 있다. 강정마을의 지킴이들 가운데는 이렇게 예기치 않게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이탈하여 예외적 상황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한 단지 강정마을의 지킴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우발적인 마주침에 이끌리어 이러저러한 싸움에 휘말린 이들이 있어 왔다. 평택 대추리에서, 새만금에서, 용산 남일당에서, 두리반에서,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에서 그들은 늘 존재해 왔다. _ 정정훈, 「머리말」, 본문 5~6쪽.

확실히 좌파들의 정치학이 ‘진실’이란 관념과 쉽게 이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는 순간, 대중정치학은 좌우의 방향이나 애초의 목표를 상실한 채, 대중의 흐름 속에 부유하거나 그것에 편승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대중이 가령 전쟁이나 파시즘, 소수자의 학대나 외부자의 배제 등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대중의 외면을 받거나 대중의 공격과 대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과 대결하고 그 방향을 바꾸거나 저지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진보적’이라거나 ‘좌파적’이라는 말과는 무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진실’이 중요하다고 할 때 그 ‘중요함’이란 거짓된 것을 폭로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상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정치적 개입이란 그 진실이 대중적인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폭로와 의식화만으로 진실은 힘을 갖지 못한다. 문제는 그 진실이 대중의 흐름을 타고 감각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단지 대중의 환상을 깨고 ‘진실’을 드러내고 의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을 대중의 감각 속에서, 혹은 감각적 환상이라고 하면 그 환상 속에서 작동하도록 끼워 넣는 것이고, 그 ‘진실’이 그 감각의 흐름을 타고 흐르게 하며 그 감각을 끌어당기는 특이점이 되게 하는 것일 게다. _ 이진경, 「정치적 사건화와 대중의 흐름」, 본문 55쪽.

정작 문제는 이제 지식(지적 담론)이 권력(현실 정치)과 만나자마자 흡사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듯 해체되었다는 점에 있다. 하버드 대학 교수가 떠들고 대중과 지식인들이 한참 시시비비를 따졌어도, MB가 한번 나서서 ‘농치고 나니’ 정의든 뭐든 죄다 순식간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된 것이다. 지식이든 정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지식은 권력에 추종하고 봉사했기에 비난받았지만, 이젠 아예 공중분해되는 운명만 남았다!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은 잠꼬대에 불과했다는 듯한 이런 사태의 귀결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모든 가치의 허무주의’를 가장 적절히 보여 주는 게 아니면 또 무엇일까? MB의 공정 사회론에서 ‘유머에의 의지’를 찾아내 한바탕 웃었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와중에 지금껏 한국의 지식 사회를 지탱해 오던 가치 담론이 완벽히 허물어졌다는 사실만은 일단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공정 사회라는 한 마디에 갑자기 ‘지옥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문은 서서히 이미 절반 이상 열린 상태였다. _ 최진석, 「“쫄지마!” 또는 정치화의 새로운 명령-어」본문 126~127쪽.

기획사에서 일했던 자활 참여자 최○현 씨에 의하면 요즘의 대학 총학생회나 과학생회들은 기획사를 통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MT를 기획한다. 기획사가 장소를 선택해 예약하고 버스를 대절해 준다. 필요한 물품들과 자료집 등의 교육안을 준비하고, 1박 2일 이상의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발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기획사의 역할이다. 돌발 사태란 예를 들어 새벽 시간에 심하게 취한 신입생을 응급실로 옮기거나 사라진 과대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현재의 학생회 간부들 중에는 학생회 업무에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쏟으려 하는 이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80년대의 학생회 임원들이 그랬듯이 그러한 행사들을 스스로의 기획 하에 치러 낼 만한 충분한 인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행사를 기획하고 업무를 조직하고 진행을 총괄하는 일은 더 이상 20대들이 관심을 갖고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자활에 지원하는 20대들은 그들 스스로가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거의 부재하는 대학 내의 환경에서, 취업을 위해 단순히 ‘스펙’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이다. _ 홍서연, 「‘나는 행운아’ 만들기」 본문 195쪽.

목차

머리말 _ 『부커진 R』 4호 휘말림의 정치학을 발간하며 _ 정정훈 … 4

특집 _휘말림의 정치학
01 휘말린다는 것 _ 도미야마 이치로
02 정치적 사건화와 대중의 흐름?―?매혹과 휘말림, 혹은 센세이션의 정치학에 관하여 _ 이진경
03 동일성의 병리학―호시노 도모유키 『오레오레』에서 자기증식과 해체에 대하여 _ 와타나베 후토시
04 고바야시 마사루의 삶에서 두 번의 휘말림 _ 가게모토 쓰요시
05 탈정체화된 연대와 탈개체화된 연대, 그리고 인민의 생성 _ 정정훈

기획 _ 문화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그 만남과 어긋남
01 “쫄지마!” 또는 정치화의 새로운 명령-어―샌델에서 나꼼수까지 진보적 담론공간의 변환 _ 최진석
02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태도에 담긴 열망 _ 손기태
03 카페와 문화 실천 _ 와타나베 후토시
04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예술과 직접행동의 만남 _ 박은선
05 ‘나는 행운아’ 만들기―이진원 추모공연을 둘러싼 2011년 인디음악신의 문화기술지 _ 홍서연

분석과 비평
01 또 하나의 전장, 일상―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 _ 정행복
02 해충의 존재론―편혜영, 『저녁의 구애』 _ 김은영
03 히키코모리적 주체에게 고함 _ 권은혜
04 헤게모니에서 시큐리티로―신자유주의 통치체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_ 정정훈

기획번역 _모리사키 가즈에를 읽는다
01 두 가지 말, 두 가지 마음 _ 모리사키 가즈에
02 민중이 지닌 이질적인 집단과의 접촉 사상―오키나와·일본·조선의 만남 _ 모리사키 가즈에

필진소개 … 312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