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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5075 / 33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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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잊혀진, 그러나 기억해야 할 이름 월북미술가 정현웅 1988년 월북, 납북 문화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거나 표기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정○웅, 또는 정×× 등, 복자(伏字)로 이름의 일부가 감취어진 채 등장해야 했다. 해금이 된 이후에도 그를 떠올려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잊고 산 사람들이 많아 그는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18세의 나이로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1927)에 입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며 서양화가로서 뛰어난 재능... 잊혀진, 그러나 기억해야 할 이름 월북미술가 정현웅 1988년 월북, 납북 문화예술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거나 표기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정○웅, 또는 정×× 등, 복자(伏字)로 이름의 일부가 감취어진 채 등장해야 했다. 해금이 된 이후에도 그를 떠올려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잊고 산 사람들이 많아 그는 그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18세의 나이로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1927)에 입선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며 서양화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신문사의 삽화가로, 수많은 책의 표지화와 장정을 도맡아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자유자재로 오갔고, 나아가 잡지의 편집자이자 수많은 예술비평을 발표했던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인 예술인 정현웅이 우리 앞에 다시 등장했다.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은 바로 이러한 예술인 정현웅의 삶과 예술세계를 그가 펼친 각 분야의 대표적 활동을 중심으로 정리한 책으로서, 두 명의 젊은 연구자가 약 3년여에 걸쳐 그에 관한 자료와 작품 등을 토대로 서술한 것이다. 특히 아직 생존해있는 정현웅의 아내 남궁요안나 여사와의 구술채록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나 기억으로 존재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에게나 독자, 나아가 우리 문화예술사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술평론가 최열은 “정현웅의 생애를 되살린다는 것은 단지 한 인물을 되살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정현웅의 복권은 지난 김복진, 이쾌대, 김용준의 복권에 뒤이은 네 번째 사건이다.”라고 이 책의 출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격동의 시대, 이 땅에서 경계인처럼 살았던 한 사람 정현웅에게는 또하나의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정현웅은 군국주의 체제가 강화되던 1940년대 들어 친일잡지 『반도의 빛』, 『방송의 벗』, 『신시대』, 『소국민』 등의 표지화와 삽화를 그렸다. 이런 행적은 “일제 말기시국미술가로 변절하여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지적과 함께 한때 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발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경력을 문제 삼아 수록예정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것이 전문삽화가로서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였으며, 정현웅은 일제 말기 친일미술단체와 전람회 등에 일체 참여하지 않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는 유족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그의 이름의 수록이 보류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21일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취소했다. 아울러 지난 11월 2일 열린 제2회 정현웅기념사업회 연구기금 수여식장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정현웅에 관하여 “화가이자 삽화가, 표지 장정가, 만화가, 아동화가, 역사화가였던 선생은 근현대 한국 화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계의 지도급 인사였다. 이 훌륭한 화가의 업적과 작품이 재현된 것은 우리 미술계의 경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삽화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그가 꺼림칙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재능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던 점은 시대의 아픔이자 식민지 지식인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에게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또하나 남아 있다. 1943년《조선미전》에 입선한〈흑외투〉가 일제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궁지에 몰린 일제의 핍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정현웅은 비록 총독부의 강요에 의해, 혹은 생계를 위해 친일잡지에 표지화를 그렸지만 《조선미전》에 출품할 작품만큼은 신중을 기해 제작했다. 그는 조선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화폭에 담으려 애썼다. 그런 작품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고 난 뒤 정현웅은 더 이상 유화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담은 사실주의 미술이《조선미전》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일제의 핍박에 대한 항의로 붓을 꺾어 버린 이러한 행동은 그동안 서양화가로서 쌓아온 명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단이었다. 일본 식민지 시기 예술가로서 순수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해방 이후 우익과 좌익의 혼돈 속에서 미술가들의 조직을 꾸려 조선 미술인들의 동맹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6?25전쟁 당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러했듯, 잠시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길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 땅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예술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든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일지 모르나,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넘어간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듯 격동의 시대에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가 정현웅의 삶과 예술세계를 종합적으로 다룬 책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은 정현웅이라는 한 사람의 월북미술가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일제강점기 문학과 미술 등 예술계 전반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양화가이자 삽화가로, 장정가이자 편집자로, 만화가이자 비평가로, 조선화가이자 역사화가, 아동화가로 살았던 전방위 예술가 고교생 화가로 시작, 삽화계의 혜성으로 등장하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 의 입선으로 세상에 등장한 정현웅은 이후 수차례 입선과 특선으로 작품을 출품했으나 서양화가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정현웅이 활발히 활동했던 1930∼40년대는 언론문화의 전성기였다. 일본이 1919년 3·1운동 이후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조선일보』,『 동아일보』등의 민영신문이 발행되었고, 이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다양한 잡지가 등장하면서 대중매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게 증대되던 시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등장한 신문과 잡지의 삽화와 표지화는 새로운 시각문화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살고 싶어했지만 정현웅은 먹고살기 위해 1935년 신문사에 취직해 삽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비록 생계의 방편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의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되고, 말년까지 계속되었던 분야는 바로 삽화였다. 그는 삽화를 텍스트의 보조장치로서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예술장르로 인식하고 작업을 해나갔다. 그로 인해 그는 우리나라 삽화계에 혜성 같은 존재가 되었고,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정간이 된 뒤 옮긴 조선일보사에서도 삽화가로서의 그의 활약은 수많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우리 근대사의 책 장정과 표지화 그는 또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꾸준히 발행하던 우리나라 잡지의 수많은 표지화를 그린 주역이기도 했다. 『문장』, 『소년』, 『여성』, 『조광』 등 당시 발간되던, 우리 잡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이 잡지들의 표지화에 정현웅의 손길이 미쳤다. 표지화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오늘날의 북디자인이라 할 수 있는 장정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실제로 많은 문인들이 그가 자신의 책을 장정해주기를 희망했고, 그의 손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김광섭의 『동경』, 이광수의 『사랑』, 오기영의 『사슬이 풀린 뒤』와 『삼면불』, 한하운의 『한하운 시초』 등의 책들을 비롯한 수많은 단행본과 전집 등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 벽초 홍명희, 그에게 편집자의 길을 권하다 책의 외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장정가의 역할이라면 그는 아울러 책의 내용을 만드는 편집자이기도 했다. 해방 후 서울신문사에서 펴내기 시작한 『신천지』의 편집을 맡기 시작한 것은 평소 돈독했던 벽초 홍명희의 권유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신천지』는
목차
책머리에┃우리 근대미술사의 아주 특별한 존재 정현웅, 그를 만나다
서장┃시대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 미술가, 정현웅
분단이 만든 상처, 월북예술가│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다│다양성을 대중성으로│미술?의 틀을 깨다
제1부┃소년, 화가가 되다 그림자놀이를 즐기던 소년│화가로의 첫걸음│바뀌어 가는 풍경의 기록│정현웅 예술의 근원│매동공립보통학교 시절│경성제2고보의 스승들│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는 세상│6개월간의 일본 유학과 무대미술│생명감 넘치는 온실 풍경│독학으로 일궈낸《조선미전》입선작들│드디어 특선에 오르다
제2부┃삽화계의 혜성 다재다능한 문학청년│동아일보사 광고부에 입사│혜성처럼 등장한 삽화가│일장기말살사건의 진실과 오해│시간과 양심의 딜레마│쓰레기 속의 미술, 삽화│조선일보사에서 만난 사람들│시인 백석과의 만남과 우정
제3부┃책을 디자인하는 화가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 표지화│책에 옷을 입히는 작업, 장정│다정하지만 단호한 비평│멋을 내지 않아도 멋있는 노총각│여성 패션의 조언, 연애 색채학│그녀를 향한 프러포즈│검소한 결혼식을 꿈꾸며│동양의 전통과 고전의 계승『조광』의 표지화
제4부┃격동의 시대, 예술가로 산다는 것 우수 어린 자화상, │뚝섬에서의 신혼생활│사랑이 꽃피는 가정│생계의 방편이 된 삽화와 표지화│식민지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철거된 │광복의 기쁨│적산가옥의 불하를 거절하다│궁정동으로 이사하다│미술조직의 중심에 서서│살기 위한 선택
제5부┃잡지의 편집자로, 한국 만화의 선구자로 어린이를 사랑한 화가│아동미술에 관심을 갖다│한국 만화의 선구자│벽초 홍명희가 제안한『신천지』의 편집인│『신천지』, 해방 후 지식인의 종합교양지│『신천지』를 거쳐 간 문인들│“기자는 만인의 교사다”252│주선이라 불리던 애주가│돌아오지 못할 땅으로 떠나다
제6부┃월북 그리고 조선 예술의 재발견 꿈에도 생각 못한 이별│미술가로서의 새 출발│고구려고분 벽화의 모사를 시작하다│숙청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다│새로운 가정을 꾸리다│출판미술의 개척자│고전소설을 희화화한 삽화│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화│기지와 위트로 가득한 아동화│조선화의 시도와 성취│ 북한 미술계의 삼정│조선미술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다│생애 마지막 나날
책의 일독을 권하며┃다시, 우리 앞에 돌아온 정현웅, 그. _최열(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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