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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5548487 / 49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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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2010년 6월,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서 칼레드 사이드라는 청년이 경찰의 폭행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컴퓨터공학 및 MBA를 수료한 후 구글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책임자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 책의 저자 와엘 고님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안타까운 청년의 사진을 접하고 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 인터넷 페이지를 중심으로 이집트 젊은이들이 하나로 결집하여 광장으로 모이는 대규모 시위를 만들어내게 된다. 무바라크 정권의 30년 장기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2011년의 ‘이집트 혁명... 2010년 6월, 이집트 카이로 시내에서 칼레드 사이드라는 청년이 경찰의 폭행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컴퓨터공학 및 MBA를 수료한 후 구글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책임자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 책의 저자 와엘 고님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안타까운 청년의 사진을 접하고 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 인터넷 페이지를 중심으로 이집트 젊은이들이 하나로 결집하여 광장으로 모이는 대규모 시위를 만들어내게 된다. 무바라크 정권의 30년 장기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2011년의 ‘이집트 혁명’은 이렇게 인터넷의 소셜네트워크로 하나가 된 대중의 아이디어와 열정, 그리고 한 개인의 감동적이면서도 놀라운 투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저자 와엘 고님은 인터넷 사업 경험을 잘 되살려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의 힘을 모아 목표를 이루는 쾌거이자 감동의 시나리오를 쓴 장본인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에서 그가 보여준 진심어린 행동들을 생동감 있는 필체로 엮어낸 이 책은, 대중의 생각이 어떻게 자라나고, 스스로 보완하고 상승, 발전하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중동 ㆍ 북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대장정, ‘아랍의 봄’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중동지역들 중에서도 미디어 환경이 가장 열악했던 사우디에서 ‘트위터(twitter)’가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 모든 민감한 현안들이 실시간으로 논의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위터 사용자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사실인데 게다가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사우디 왕가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이 트위터를 통해 쏟아진다는 것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인들 중 290만 명이 트위터에 가입했는데,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가 ‘사우디 부패’, ‘정치범’ 같은 단어들이라고 한다. ‘아랍의 봄’을 비켜간 사우디에서도 최근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을 두고 세계는 소셜미디어의 잠재력에 매순간 놀라워하고 있다. (2012년 10월 21일자 에서 인용) 그렇다면 ‘아랍의 봄’은 어떤 사건이었던 것일까? 일명 ‘아랍의 봄Arab Spring’ 또는 ‘아랍의 자각Arab Awakening'이라고 부르는, 아랍 지역 민중의 반정부 시위들에 대해 위키피디아는 현재 아래와 같이 설명해준다. “전례가 없는 시위운동 및 혁명의 물결로,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들이다.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요르단,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예멘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 모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라크, 쿠웨이트, 모리타니,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에서도 규모가 작은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 반정부 시위에서는 파업 참여 운동의 지속, 데모, 행진과 대집회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조직, 의사소통, 인식 확대를 통해 광범한 시민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여러 반정부 시위 가운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으며, 이는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혁명이라는 말이 과거의 전유물처럼 퇴색되어 가는 시점에서, ‘아랍의 봄’은 21세기 최신의 기술혁명이 가져다 준 특혜를 평범한 사람들 스스로가 정치적 이슈에 접목시켜 승리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 중심에 이집트 국민과 이 책의 저자 와엘 고님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30년 장기 독재 체제를 무너트린 역사적 대사건 ‘이집트 혁명’이 있다. 경찰들이 마리화나 피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린 칼레드 사이드라는 청년은 경찰의 폭행으로 숨을 거두고, 이 청년의 사진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와엘은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낀다. 그의 행동은 다소 즉흥적인 것이었다. 더 많은 누리꾼들에게 이 부당한 사건의 전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를 즉흥적으로 개설한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전달한 비극적 현실은 와엘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의 방문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고, 모두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독재의 종식을 이끌어낸다. 이 책은 바로 그 드라마틱한 혁명의 과정 모두를 중심적 인물이 직접 육성고백으로 들려주는 보기 드문 정치적 혁명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이집트 혁명 1주기인 2012년 1월에 출간되어 주요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느 소심한 컴퓨터광의 자기반성적 고백이자 가치를 상실한 채 개인화된 동시대인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 페이스북을 매개로 삼아 2011년 혁명을 이끌어낸 그는, 그러나 혁명의 영웅이라고 불리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혁명의 상징으로 우뚝 선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특이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터넷 가상세계에 푹 빠져서 살던 바람에,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인터넷 통신에 들어가는 전화비를 감당하느라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했고 엉겁결에 경제적인 독립을 했다. 또한 이 인터넷 경험을 살려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해서 전문가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전 세계 청년들의 선망의 일터인 구글에 입사했으며,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게 된다. 그의 나이 채 서른 살도 되지 않을 때였다. 다른 이집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부모 세대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고 또 그렇게 살아왔지만, 주변에서 친구들이 일상적으로 독재정권의 사찰과 체포와 고문에 희생되는 걸 보면서 서서히 정치에 눈을 떴다. 그리고 역시 다른 이집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시작은 미미했다. 칼레드 사이드라는 청년이 경찰에게 구타당해서 참혹하게 숨졌지만, 살인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일이 일어났고, 이에 분개한 고님은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정의를 외치자고 목소리를 냈다. 처음 이 페이스북 페이지의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시민의 양심과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한 단계씩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자, 어느 사이에 이 페이지의 회원은 수십 만 명으로 불어났고, 또한 익명으로 그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던 고님도 어느 사이엔가 혁명의 물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2011년 이 선정한‘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중 첫 번째 인물, 존 F. 케네디 재단이 ‘용감한 시민상’수여, 노벨평화상 노미네이트! 그렇게 혁명은 그리고 와엘 고님과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역진(逆進)이 방지된 톱니바퀴처럼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2011년 2월 11일 혁명은 목표를 달성했고 고님은 꿈을 이루었다. 트위터는, 와엘 고님이 2월 12일 올린 ‘이집트여,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트윗을 2011년 최고의 트윗으로 선정했다. 또한 이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첫머리에 와엘의 이름을 올렸고, 케네디 재단이 수여하는 ‘용감한 시민상(’ 그는 이집트의 젊은 대중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집단 지성의 힘을 서서히 키워냈다. 그 과정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수십만 명의 대중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와 충돌과 연대의 잠재성을 현실감 있게 인용, 묘사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그 과정에서 감정만이 아닌, 이성의
◆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점점 까매졌다. 그러다 마침내 칠흑처럼 새까매졌다. 운전자는 샛길로 요리조리 좌회전과 우회전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잡혀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법임이 분명했다. 나를 납치한 자동차는 그렇게 한밤의 카이로 거리를 달렸다.
내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국가보안국State Security 소속 요원 두 명이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아서 내 팔을 꽉 잡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요원들은 내 셔츠를 위로 끌어올려서 머리를 덮고 목 부분을 허리띠로 묶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자동차 바닥을 향해 처박아야 했고, 요원 한 명이 억센 손으로 내 뒤통수를 눌렀다. 나를 연행하는 모습을 행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소지품은 이미 모두 압수당한 뒤였다.
(중략)
나는 그들이 무엇을 알고 있을지 짐작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이유로 나를 잡아다가 여기로 끌고 왔을까? 그 와중에도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욕질은 계속되었고, 내 안의 공포는 점점 커져갔다. 공포가 커진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심문을 하기 전에 나를 심리적으로 무력하게 만들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나가야 할 진도라면 빨리 지나가게 할 요량으로 무서워 덜덜 떠는 척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가 스멀스멀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구타를 당하는 동안 나는, 두바이에 있는 내 친구 나지브가 제발 페이스북 계정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도록 신께서 계시해 주기를 기도했다. 심문이 혹독해지면 내가 기어이 비밀번호를 불고 말 텐데, 그전에 나지브가 제발 그 비밀번호를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보안국 요원들이 내가 한 일을 몰라야 했다.
그리고 내 아이들, 이스라와 아담이 보고 싶었다. (프롤로그 전문)
◆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두바이의 집에 있었다. 작은 서재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왔다. 칼레드 사이드의 사진을 보여주자 아내는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나더러 그 사진을 보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방에서 나갔지만 나는 계속해서 울었다. 우리 조국의 참혹한 상황과 폭정이 낳은 비극적인 현실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칼레드 사이드의 참혹한 죽음은 이집트가 처한 끔찍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런 상식 밖의 불의에 침묵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기량과 경험을 동원해서 칼레드 사이드의 죽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의를 요구하리라 결심했다. 독재 정권의 사악한 오른팔인 내무부의 부패한 모습을 만천하에 당장 알려야 했다. (3장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 p.108)
◆ 오늘 그들이 칼레드를 죽였습니다. 만일 내가 그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내일 그들은 나를 죽일 것입니다. (좋아요 49 댓글 33)
2분이 지나자 페이지의 회원이 300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이여, 우리는 2분 만에 300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0만 명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압제자에 맞서서 뭉쳐야 합니다. (좋아요 64 댓글 44)
나는 이 페이지에 첫 번째 기사 “인간성을 상실한 너희들, 우리는 칼레드 사이드를 위해 정의를 이룰 것이다.”를 썼다. 이 글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었다. 나는 칼레드 사이드를 살해한 범인들이 처벌을 받기 전까지는 결코 칼레드를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고, 한 시간 만에 회원 수는 3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집트인이여, 내 정의는 그대들의 손에 달렸다. (좋아요 50 댓글 39)
나는 이 페이지에서 마치 내가 칼레드 사이드인 것처럼 일인칭 시점으로 글을 썼다. 나를 이렇게 밀어붙인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대신해서 말할 수 있다는 생각, 단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스스로를 방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칼레드의 목소리를 빌려 말함으로써, 엘바라데이의 공식적인,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공식적임을 가장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나는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설정은 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마치 칼레드 사이드가 부활해서 자기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을 테니까……. (3장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 p.110)
◆ 내가 우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쓸 때 늘 그렇듯이 이 글을 쓸 때도 나는 따로 초안을 잡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썼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더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썼다. 이 글에 대한 반향은 컸다. 내 글은 인터넷 공간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내가 이 글을 쓴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이 글을 자기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수많은 지지 댓글이 달리고 또 격려 이메일이 날아왔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회원들과 익명의 운영자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넷 가상세계 안, 그 안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시금석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피드백과 토론에 참가할 수 있는 게시물을 생산하려면 무엇보다도 페이지의 회원들에게 의지하는 게 중요했다. 칼레드 사이드의 대의를 유지하며 국가보안국이 자행하는 고문에 맞서는 싸움을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참여하라는 말을 모든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우리 페이지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어제 나는,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절도나 간첩질 등 어떤 범죄행위라도 그것을 폭로하는 데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씩은 바치겠다고 신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 나는 우리나라가 침몰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혼자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내 곁에 있어주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가 이집트를 바꾸어야 한다고 간절하게 느끼길 바랍니다. (좋아요 236 댓글 67)
글쓰기, 그림 그리기, 디자인, 영상물 제작 등의 재능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날, 이집트에서 고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수백만 명이 검은색 옷을 입고 나설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합시다. 시간과 노력을 기부해서 당신의 작업을 수천 명이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는 그날 모든 이집트인이 거리에 나서길 원합니다. (좋아요 221 댓글 70)
재능 기부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사람들은, 우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하는 수천 명이 자기가 만든 콘텐츠를 놓고 논의하는 과정을 즐겼다. 나는 우리 회원들이 만든 시와 글 그리고 디자인 등이 훗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도록 또 하나의 웹사이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엘샤히드닷오르그www.elshaheed.org였다. ‘엘샤히드’는 아랍어로 ‘순교자’라는 뜻이다 (4장 온라인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p.160)
목차
프롤로그
1장. 공포의 독재정권
2장. 구세주를 찾아서
3장. “쿨레나 칼레드 사이드”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다.
4장. 온라인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5장. 혁명 전야
6장. 2011년 1월 25일
7장. 내 이름은‘41번’
8장. 지하 감옥
9장. 파라오, 추락하다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