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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김의 메모아 내가 사랑한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들

김정준 저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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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007661 / 272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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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위대한 한국 예술가들과의 조우,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다!

『마태 김의 메모아: 내가 사랑한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들』은 저자가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여류소설가 김말봉, 김환기를 비롯하여 시인 김기림, 이상, 박산운, 정지용, 이은상, 공중인, 김광섭, 김동리, 손소희, 조각가 한용진, 화가 김하건, 문미애, 김병기, 김창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성악가 김자경, 목사 김재준 등 다양한 문학인, 예술가와 종교인들의 개인적이고 치밀한 삶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저자의 중학교 담임이었던 시인 김기림과의 에피소드에서 시작하여 여류소설가 김말봉을 통한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만남, 주치의와 환자로 만난 김환기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만나고, 교류하면서 느낀 인상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한국 예술가들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또한 시인 이상의 아내이기도 했던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본명 변동림)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통해 위대한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또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여류소설가로 한국 근현대사의 한 장을 수놓았음에도 업적이 잘 드러나지 않아 국문학 연구사의 불모지였던 김말봉의 삶과 문학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 많은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저자가 지인들과 직접 찍은 사진들과 환기미술관에서 제공한 김환기 작품들도 본문에 함께 수록하여 당시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마태 김정준의 회고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교류한 예술가들이 우리나라 근대 예술계를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기록으로 남겼지만, 그 속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근대 예술가들의 진솔한 삶이 함께 녹아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회고록을 단순한 개인의 회고록으로 폄하할 수 없다. 그의 개인의 역사가 우리나라 근대 예술의 역사와 오버랩되고 있다. 숨겨진 우리나라 근대 예술의 역사가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예술가들 다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 나타나는 그들의 일화는 자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의전을 졸업한 부친이 함경북도 경성鏡城에 병원을 개업한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부친이 1939년 미국에서 GM사의 시보레 승용차를 구입할 정도였으니 그 부유함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가족에게도 비극이 연달아 일어났는데, 저자의 동생들이 병사했고, 형마저도 병원 조수의 실수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저자는 경성 중학교를 다녔는데, 1학년에 재학 중일 때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저자와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의 인연은 일찍이 중학교에 재학할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편석촌片石村 김기림金起林(본명 인손仁孫, 1908~미상)이 수학과 영어 담당 교사로 경성 중학교에 부임한 것이다. 1930년 니혼日本 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한 김기림은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김유정金裕貞ㆍ이태준李泰俊 등과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하며 창작에 전념하다가 1939년 토호쿠제대東北帝大 영문과를 졸업한 후 다시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학예부장을 지냈고, 1941년에 경성 중학교에 와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얼마 후에는 화가 김하건이 미술교사로 경성 중학교에 부임해와 저자는 두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 저자는 1990년 김기림과 그의 친구 이상李箱(1910~1937)의 문학비가 두 사람의 모교인 서울 보성고등학교에 세워지는 것을 직접 볼 정도로 문인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이는 이상의 아내 김향안이 2004년 타계할 때까지 그녀의 주치의로서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 화가 김환기와의 친밀한 교류에 의해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된다. 경성 중학교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학교였다. 저자와 동문수학한 사람들로 시인 김규동金奎東(1925~2011), 공중인孔仲仁(1923~1965), 영화감독 신상옥申相玉(1926~2006), 만화가 신동헌申東憲(1927~) 등이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근대 여류소설가 끝뫼 김말봉金末峰(1901-61)의 딸 전재금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므로 김말봉과 사위의 관계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장모를 통해 많은 문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 언급되는 많은 문인들의 에피소드들은 저자가 가까이서 보고 겪은 것들이다. 김말봉의 첫째 사위 금수현金水賢(1919~92)은 작곡가로 금난새의 부친이 된다. 저자는 주변에 많은 예술가를 두는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그의 생애는 자연히 예술가들과 어우러진 삶이 된 것이다. 저자와 가까운 친구로 이규호李奎浩(1926~2002), 맹의순孟義淳, 박재훈朴在勳(1922~) 등이 있다. 이규호는 국토통일원장관, 문교부장관,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대통령비서실장, 주일본대사 등을 역임했으며, 박재훈은 찬송가를 많이 작곡한 작곡가로 유명하다. 저자의 약혼식에 주례를 본 사람은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1901~1987) 목사였고, 축사를 한 사람은 시인 유치환이었다.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1903~1982) 김동리金東里(1913~1995)는 김말봉이 아끼는 후배 문인들이었으므로 저자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 책에 담겨 있어 그들에 대한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유익한 정보가 될 것이다.
저자는 1952년 서울 대학교 의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집은 미국을 방문하는 예술가들의 마을이 되었다. 1964년 외과전문의로 개업하고 1997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리고 1984년부터 현재까지 뉴욕 한국음악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저자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왔다.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오페라 가수 김자경金慈璟(1917~1999)과 그녀의 남편인 화가 심형구沈亨求(1908~1962), 성악가 김복희와 그녀의 남편 백선기, 유엔대사 임병직 등이 있다. 김복희는 소설가 김팔봉의 딸이다. 목사들로는 김재준 외에도 김정준, 조선출, 문익환, 문동환, 정대위, 김관석, 장원, 강원용 등이 있다. 저자가 특별히 자주 만난 목사는 강원용姜元龍(1917~2006)이었다.
저자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건 화가 김환기金煥基(1913~74) 부부와의 관계에 관해서이다. 김환기는 이상의 아내였던 김향안과 재혼했다. 저자가 김환기 부부를 처음 만난 건 부산 피난시절인 1951년 광복동 거리에서였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33년 도쿄 일본 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하여 1936년에 졸업한 뒤 대학 연구과를 수료하고 1937년에 귀국한 김환기는 해방 후 유영국ㆍ이규상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 그룹인 ‘신사실파’를 조직하고 그룹전을 열었으며, 서구의 회화양식을 실험하는 한편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50년대에 그가 선호한 주제는 달, 도자기, 산, 강, 나목裸木, 꽃, 여인 등이었고, 그는 한국적인 미와 풍류의 정서를 표현하면서 특히 백자 항아리의 멋에 깊이 심취하여 도자기는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부각되었다. 김환기는 1963년 10월 제7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하고 뉴욕으로 가 11년에 걸친 뉴욕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는데 그때부터 저자는 그의 주치의 겸 후원자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그의 여생에 동반자가 되었다. 김환기의 여생 11년 동안에 달라진 그의 회화와 이국에서의 어려운 생활상 등이 이 책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김환기가 타계한 후에는 그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데 앞장을 섰고 그리하여 환기미술관이 서울에 문을 열게 된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예술가들의 활약상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작품세계와는 달리 예술가들의 삶의 현장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을 무명씨의 과거에 대한 낭만적 애착으로만 여길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근대 예술가들의 진솔한 삶이 그의 과거 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로 끝나지 않고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저자 소개

마태 김정준은 1928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고, 경성에서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을 받았으며, 1952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5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2년 후 전재금과 결혼하고 1964년에 외과전문의로 개업했다. 1997년에 외과전문의를 은퇴했으며, 1984년부터 뉴욕 한국음악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 테너로서 성악적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미술 애호가로서 유명 미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내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한국이 자랑하는 예술가와 종교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김말봉 장모님, 화가 김환기, 중학교 시절의 김기림, 시인 이상, 박산운, 정지용, 이은상, 김동리, 김광섭, 손소희, 공중인, 화가 김하건, 한용진, 문미애, 백남준, 김병기, 김창렬, 성악가 김자경, 김재준 목사 등 많은 문학인, 예술가와 종교인들의 모습이 나의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내가 만나고, 교류하고, 느낀 인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내 생애의 일부분을 차지한 그분들을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그분들 덕택에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서문, 5-6쪽

 

그 순간이 나의 일생을 변화시킬 결정적인 동기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김말봉과 K군이 방으로 들어왔다. 여사는 몸이 부한 편이고 얼굴이 둥글었다. 이따금 입가에 미소를 띠며 영어를 종종 사용하며 말하는 유명 소설가와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그때 받은 여사의 인상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변치 않고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서울에 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강한 함경도 사투리가 나의 말 속에 남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접하는 사회는 매우 협소했다. 그날에야 나는 비로소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젊은 여학생과 함께 방문한 나는 여사의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갔던지 통행금지가 원수와도 같았다.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다시 방문할 생각뿐이었다.
2. 끝뫼 김말봉과의 인연, 52쪽

 

내가 김환기 부부를 처음 만난 건 1951년이었다. 재금이와 김말봉 여사를 따라 광복동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미군 군복을 입은 안경 낀 키 큰 분이 안경을 낀 아내 김향안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여사의 소개로 그 부부와 미소로 인사를 나눴다. 김향안의 안경은 도수가 높았는데, 훗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경을 착용했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광복동에서 그 부부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당시 동란 중 이전한 의대가 근처에 있었고, 나는 졸업 후 의사자격증을 받은 때였다. 김향안이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안 건 그 후였다. 이상이 나의 중학교 담임인 김기림 선생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도 몰랐다. 당시 김기림 선생은 납북 후 고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3. 평생 이어진 김환기와의 인연,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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