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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5663125 / 702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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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현대 중국의 틀을 만든 ‘신청년’의 정신과 사상 천두슈·후스·첸쉬안퉁·저우쭤런 등 문학혁명을 통해 시대를 밝히고자 한 청년 지식인들의 ‘자각’과 ‘분투’의 기록! “오늘날 정치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그 정치가 기반하고 있는 정신계의 문학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두슈 “사상을 개혁하기 위해 왜 반드시 문학을 거론하는가? 이는 문학이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 차이위안페이 『신청년』동인들이 신문학을 제창한 것은 단순한 문학적 충동에서 비롯되거나 문학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 현대 중국의 틀을 만든 ‘신청년’의 정신과 사상 천두슈·후스·첸쉬안퉁·저우쭤런 등 문학혁명을 통해 시대를 밝히고자 한 청년 지식인들의 ‘자각’과 ‘분투’의 기록! “오늘날 정치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그 정치가 기반하고 있는 정신계의 문학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 천두슈 “사상을 개혁하기 위해 왜 반드시 문학을 거론하는가? 이는 문학이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 차이위안페이 『신청년』동인들이 신문학을 제창한 것은 단순한 문학적 충동에서 비롯되거나 문학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문학적인 현실 요구와 사상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19세기 말 이래 중국 지식인들의 국가부강 · 민족부흥에 대한 기본적인 희구에서 연원하며, 새로운 시대조건 아래서 정치개혁을 수행하기 위한 ‘국민 각성’(覺民)과 ‘신민’(新民)의 계몽 요구로부터 비롯되었다. ▣ 편역자 김수연 5ㆍ4신문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유산 중국 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주창자로 꼽히는 베이징 대학 장이우(張?武) 교수는 「신문학의 종결」이라는 글에서 5ㆍ4신문화운동 시기의 ‘신문학 담론’이 그동안 20세기 중국문화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근대성의 유일한 기준으로 문화적 상상을 지배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말은 이제 5ㆍ4의 유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국을 상상할 때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만, 역으로 사상ㆍ문학ㆍ언어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이 시기 담론들, 특히 신문학 담론이 오늘날 중국문화에 미친 심원한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천두슈(陳獨秀), 후스(胡適), 저우쭤런(周作人) 등 대표적인 인물들의 일부 공통성을 신문학운동의 선언으로 간주해온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이 아무리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5ㆍ4신문학운동이 하나의 ‘운동’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논자들의 참여와 논쟁,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특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몇 대표 인물의 관점만이 아니라 당시 논쟁과 토론의 핵심공간이었던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실린 다양한 필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탐구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신청년』은 1915년 9월 15일 천두슈가 상하이에서 창간한 잡지이다. 당시는 위안스카이가 복벽을 도모하며 국회를 훼손시키고 악법을 만드는 등 역사의 역행을 보여주는 암울한 시기였다. 특히 출판ㆍ집회ㆍ언론의 자유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정치상황에서 『신청년』은 사상문화운동의 기치를 들고 나와 청년들에게 사회개혁의 역사적 주체임을 각성시키는 한편, 공교(孔敎)로 대표되는 전통사상과 그에 기반한 중국의 정치체제ㆍ사회제도를 비판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문학운동은 『신청년』의 가장 중요한 기치이자 주요 목표의 하나였다. 차이위안페이는 『중국신문학대계』 서문에서 “사상을 개혁하기 위해 왜 문학을 거론하는가? 이는 문학이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문학혁명을 제창했던 『신청년』 동인들의 공통된 생각을 반영한다. 비록 시국정치를 비평하는 데 뜻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사상문화교육이라는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인 토대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신청년의 신문학론』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과 한길사가 함께 펴내고 있는 고전번역 및 주해 사업인 문명텍스트 시리즈 제 10권으로, 『신청년』이 5ㆍ4신문화운동과 문학혁명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1916~21년 사이 지면에 발표된 글 가운데 문학개혁 논의와 관련된 39편을 선별하여 번역하고 주석과 해제를 달았다. 관련 자료 번역이 단 몇 편에 그치는 국내 실정을 볼 때, 5ㆍ4운동의 다양한 문제의식과 폭넓은 인식의 스펙트럼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국 신문학과 그 현대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접근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신문학 제창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후스의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과 천두슈의 「문학혁명론」을 비롯해 창나이더(常乃德), 첸쉬안퉁(錢玄同), 쩡이(曾毅), 류반눙(劉半農)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던 필자들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통신란’을 통해 서신 형식으로 발표된 아직 여물지 않은 사상의 초안과 진솔한 고민들을 육성 그대로,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편역한 김수연 서울대 HK연구교수의 깊이 있는 보론과 충실한 해제는 ‘신청년’들의 의도와 주장을 이해하는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수연 교수는 보론에서 5ㆍ4신문학논쟁의 주요 쟁점을 신구新舊 문학논쟁ㆍ백화문논쟁ㆍ장르개혁논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읽으면 많은 논자들의 서로 다른 주장과 ‘신문학’ 이념의 형성 과정,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복잡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구新舊 문학논쟁: 중국 수천 년 문학사 다시 쓰기 프로젝트 문학혁명사상은 후스가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에서 제시한 이른바 ‘팔불주의’(八不主義)에 잘 나타나 있다. “①말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어야 한다 ②옛 사람을 모방하지 않는다 ③반드시 문법을 중시해야 한다 ④병도 없이 신음하는 글을 짓지 않는다 ⑤ 진부한 상투어를 없애는 데 힘쓴다 ⑥전고를 인용하지 않는다 ⑦대구를 따지지 않는다 ⑧속자ㆍ속어(백화)를 기피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당시 중국은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아 ‘백화’로 말하고 ‘문언’으로 글을 짓는 이원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으며, 전례와 고사를 인용하는 글쓰기 규범이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시대의 말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을 담아 쓰라”는 후스의 선언은 당대 신문학운동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문학을 위해 우선 요구된 것은 푸쓰녠(傅斯年)이 문학혁신의 첫걸음으로 제기한 “과거문학에 대한 신앙심 파괴”였다. 천두슈는 「문학혁명론」에서 “한유로부터 증국번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재도(載道)의 문장들은 공맹 이래의 지극히 피상적이고 공허한 말들을 베껴 쓴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으며, 첸쉬안퉁은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산문영역의 복고파인 동성파와 문선파를 “문선파 요괴” “동성파 잡놈”으로 폄하했다. 이러한 논의는 수천 년의 중국문학사를 다시 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특히 후스는 역사진화론적 관점에서 이 작업에 착수해 문언문학ㆍ귀족문학을 거부하고 일상생활의 언어로 쓴 백화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으로 문학사를 해석하였고, 이에 따라 당송이 아닌 원대를 중국문학의 중흥기로 바라보았다. 문학사 서술의 주변부에 위치하던 백화소설은 중심부로 소환되며, 그동안 ‘정전’으로 호명된 역대 작품들은 신청년 동인들에 의해 재평가되기 시작한다. “초상을 치르는 자는 호의호식하고 지내면서도 부고에는 반드시 남을 속여 “거적대기에서 지내어 마음이 혼미하다”라고 적는다. 의사에게 액자를 증정할 때는 “의술이 기백과 황제를 능가하다”라고 쓰지 않으면, “한번 손을 대면 바로 낫는다”라고 쓴다. 궁벽한 촌구석의 조그만 두부가게에도 음력설에 나붙어 있는 대련에는 항상 “장사는 흥성해서 온 세계로 통하기를, 재원은 넘쳐나서 온 삼강에 이르기를”라고 씌어 있다. 이처럼 국민들이 응용하는 문학의 꼴불견은 모두 아부하고 허위적이며 과장적인 귀족ㆍ고전문학에서 온 것이다.” -천두슈, 「문학혁명론」 백화문논쟁: 죽은 문자는 살아 있는 문학을 낳을 수 없다 신문학운동의 주축은 백화문운동이라 할 만큼 논쟁이 가장 집중되고 찬반 양론으로 나뉘는 과열 양상을 보였다. 5ㆍ4시기 백화문운동은 그 이전 시기와 중요한 변별점을 지닌다. 청말 백화문 운동은 주로 식자문제를 해

저자 소개

(陈独秀, 1879~1942)
안후이 성 출신으로 언론인, 교육자, 문필가, 혁명가, 공산당 지도자로서 20세기 중국혁명의 한복판에서 활동했던 실천적인 지식인이다. 신문화 운동과 오사운동을 모두 주도한 인물로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공산당 창당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초기 5년간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활동하면서 국공합작 및 중국혁명의 정세 등에 대한 판단에서 코민테른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었으며, 쑨원과 장제스가 주도하는 북벌을 통한 국민혁명 방식에 대해서는 시종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1927년 4·12 쿠데타의 책임을 떠안고 당서기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929년에는 코민테른의 결정에 맹종하던 중공 지도부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당적마저 잃게 되었다. 이후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트로츠키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짧은 기간 트로츠키파로 활동하다가 1932년 체포되어 5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1937년 항일전이 본격화되면서 보석으로 석방되어 나온 뒤에는 잠시 항일선전운동에 가담했으며, 이내 충칭 근교인 장진으로 거처를 옮겨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 은거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
본명은 나이잉(乃瑛),자는 옌성(燕生),필명은 판민(凡民), 핑성(平生) 등. 1916년 북경고등사범학교 사지부(史地部) 예과(預科)에 입학하였다. 5ㆍ4신문화운동 기간에 [신청년]에 글을 다수 기고하였으며, 5ㆍ4 이후에는 [국민잡지](國民雜志), [평민교육](平民敎育) 등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사학자·교육사상가로 활동하였다. 
중국의 5.4문학혁명을 제창했던 사람으로, 사상가요 교육자요 현대 시인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쓰미(嗣?)이며, 자(字)는 스즈(適之)다. 그의 부친은 안후이성(安徽省) 지시(績溪) 출신으로 청나라 말에 지방 관리를 지냈으며 상업에 종사하기도 했고, 모친은 농촌 출신이었다. 후스는 1891년 12월 17일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1895년, 후스는 고향의 종가 문중에서 개설한 학당에 들어가 사서오경을 공부했으며, 아홉 살 때부터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홍루몽(紅樓夢)] 같은 소설을 읽었다. 1904년에 상하이로 가서 영어와 서방의 자연과학을 배웠고, 옌푸(嚴復)가 번역한 영국 헉슬리의 [천연론(天演論)]과 량치차오(梁啓超)의 [신민설(新民說)] 등을 통해 안목을 넓혔다. 중국공학(中國公學)에 재학할 때 그는 경업학회(競業學會) 활동과 함께 [경업순보(競業旬報)] 편집을 맡아 백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구체시(舊體詩)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연과학의 길을 포기하고 문학과 사학의 길을 택했다. 
1910년 미국으로 간 그는 코넬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하다가 뒤에 문학과 철학으로 바꾸어 1914년에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에 컬럼비아대학교로 가서 철학자 존 듀이의 학생이 되어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을 배웠다. 1917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스는 같은 해에 귀국해 베이징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이어서 영문학과 주임 및 문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당시 베이징대학교의 교장이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는 외국에서 유학한 신파(新派)들을 초빙해 개혁에 큰 뜻을 두었다. 이에 후스를 중심으로 한 신지식인들은 천두슈(陳獨秀)가 편집장으로 있던 월간 [신청년(新靑年)]을 진지로 삼아, 민주와 과학을 선전하고 신문화운동과 문학혁명을 앞장서 외쳤다. 
그는 백화문을 정식 문학 언어로 삼아, 구문학을 탈피하고 신문학을 발전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도데 모파상 입센 등의 외국 작품들을 번역, 소개했으며, 백화문학 창작에 솔선수범했다. 
후스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기 직전에 주미 중국대사를 지내다가, 1945년에 귀국해 베이징대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1949년에 공산당 정부가 대륙의 정권을 잡게 되자 후스는 다시 미국으로 가서 생활했다. 지내다가 1958년 대만으로 돌아와 국립중앙연구원 원장직을 맡았다. 그러다가 1962년에 사망했다. 

역자 소개

고려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베이징사범대학(北京師範大學)에서 중국현당대문학 전공으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중 전환기 소설의 근대적 자아](공저)[중국근대지식연표](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공자 길들이기][후흑열전][중국의 충격](공역) 등이 있다. 그 외 중국현대문학ㆍ근대매체ㆍ문화 분야에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차

목차
책을 내면서
해제 | 『신청년』지면을 통한 5·4신문학논쟁
1 『신청년』의 신문학론
현대 유럽 문예사론 천두슈
후스와 천두슈의 통신문
창나이더가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 후스
문학혁명론 천두슈
첸쉬안퉁과 천두슈의 통신문
쩡이와 천두슈의 통신문
나의 개량문학관 팡샤오웨
나의 문학개량관 류반눙
역사적 문학관념론 후스
후스 선생의 「문학개량에 관한 소견」을 읽고 위위안쥔
후스와 천두슈의 통신문
문학개량의 첫걸음 이밍
첸쉬안퉁이 천두슈에게 보내는 서신
문학혁신의 의미 해설 푸쓰녠
소설과 백화운문을 논함 후스 · 첸쉬안퉁
신문학과 오늘날의 운 문제 첸쉬안퉁
건설적 문학혁명론 후스
단편소설론 후스
단편소설론 후스
문학개혁의 진행순서를 논함 성자오슝 · 후스
신문학 및 중국 구국 장허우짜이 · 후스 · 첸쉬안퉁 · 류반눙 · 천두슈
신문학 문제에 관한 토론 주징눙 · 후스 · 런훙쥔 · 췐시안퉁
문학혁신과 문자개량 주워눙 · 후스
문학진화 관념과 희곡개량 후스
희곡개량의 제 문제에 관한 고찰 푸쓰녠
나의 희곡개량관 어우양위첸
나의 중국 구극관 장허우짜이
희곡개량 재론 푸쓰녠
인간의 문학 저우쭤런
새로운 문제 차자오중 · 첸쉬안퉁
문학혁명과 문법 저우후 · 첸쉬안퉁
문학혁명과 문법 저우후 · 첸쉬안퉁
문학개혁에 대한 두 가지 의견 이밍스 · 첸쉬안퉁
백화시의 3대 조건 위핑보 · 후스
문학개량과 문자교체 장윈 · 후스
백화문의 가치 주시쭈
나는 왜 백화시를 지으려 하는가 후스
신문학의 세 가지 주요사항에 관하여 판궁잔 · 첸쉬안퉁
몇 번의 시 창작 경험 위핑보
문학 연구회 선언 저우쭤런 등
2 보론 | 5·4신문학논쟁의 주요 쟁점
신구 문학논쟁
백화문논쟁
장르개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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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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