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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격랑에 오늘을 묻다

문인구 저 | 예지 | 201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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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797791 / 70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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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문인구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 상식, 법
그리고 정의의 길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몸으로 겪어낸 세대


법률가 문인구가 90을 앞두고 그의 일생을 정리한 회고록을 출간했다. 저자 문인구는 1958년 평검사로서 국가보안법 개정 초안을 작성하고, 1987년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으로서 4·13호헌조치에 대한 첫 반박성명을 발표했으며, 1964년부터 30여 년간 현대건설주식회사 법률고문을 맡아 정주영 회장의 오른편에서 현대의 대소사를 살폈고, 1977년부터 20여 년간 아산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를 맡아 재단의 설립부터 모든 사업을 주관했다.

저자가 사법관시보가 되어 법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이었다. 그 후 그는 전쟁으로 인해 법이 제 기능을 상실한 억울한 세상을 경험했고, 자유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의 몰락을 목격했으며, 오랜 군사 독재의 막을 내렸던 민주화 물결의 한복판에 섰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세계무대에 설 체력을 갖추었는지를 현대그룹의 성장사를 통하여 생생하게 목도했다.

이렇듯 저자가 법률가로서 살아온 시간은 한국 현대사 격변기와 그대로 겹친다. 법률가 문인구의 회고록이 본인이 다룬 법정 사건들보다는 그가 보고 겪은 역사를 중심에 놓은 이유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역사의 격랑을 몸으로 겪어낸 한 세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지금은 물론이고 후대의 세대에게도 소중한 역사의 교훈이 되어줄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정이 몰고 온 파란


1958년 저자는 동료 검사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개정 초안을 작성했다. 당시 검사들 사이에서는 1948년에 제정된 후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오던 국가보안법으로는 휴전 후 국지적 무력 침범보다는 ‘조용히 파고드는’ 비밀공작으로 달라진 각종의 범죄유형을 다루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선 검사로서 느껴온 국가보안법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작성·건의된 이 초안은 국회의 자유당과 정부의 심의·검토 과정에서 독소조항들이 추가되어 국회에 상정된다. 결국 자유당 정권은 심한 반대에 부딪히자 무술경위를 동원해 야당 민주당 의원들을 감금하고 여당 의원들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24파동’을 일으키고 만다.

저자는 ‘24파동’이 3·15부정선거, 자유당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또한 민주당 정권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성급하고 서툰 조치를 취해 사회의 혼란을 자초해 5·16군사정변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고 10·26이나 12·12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후일 검찰청을 떠난 저자는 변호사로서 국가보안법의 남용으로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누명을 쓴 유학생들의 변호를 맡고 결혼식 주례를 해주기도 했다.

대한변협과 함께 시대의 격랑을 넘다


저자는 몇 차례 검찰총장의 결정에 반대하고 지시에 반해 불기소처분 하고 부당하게 발부된 피의자의 구속영장의 철회를 요구한 일로 검찰총장과 충돌한 후 1963년 검찰(청)을 떠났다. 저자의 이러한 경험은 공정한 검찰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여 흔들리고 그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는 것은 법조계의 총체적 위기로 이어진다. 수사를 잘하고 법률 해석을 잘한다고 해서 국민의 신임을 얻을 수는 없다. 범죄가 개인의 범행임에 앞서 불가피한 사회현상이라는 인식 아래 공정한 수사로 범죄의 원인을 찾아주는 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검찰(청)을 떠난 저자는 변호사 단체의 활성화에 투신한다. 변호사가 변호사다운 활동을 하려면 변호사 단체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서울제일변호사회 인권위원(회)장으로서 엄혹했던 1971년 ‘시민인권강좌’를 개최하고, 대한변협 부회장으로서 변호사 연수를 시작하며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하는 일보다 오히려 변호사 단체 일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 저자의 경험은 1987년 대한변협 협회장을 맡으며 십분 발휘된다. 전국에서 들끓고 있던 민주화의 열망이 4·13호헌조치를 만나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저자는 대한변협 협회장으로서 반박성명을 냈는데, 그것이 4·13호헌조치에 대한 첫 반박성명이었다. 대한변협의 반박성명을 시작으로 호헌 조치에 대한 반대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6·10민주항쟁의 물꼬를 텄다. 이후 대한변협은 독재정권하에서 위축되고 무력화된 검찰, 법원의 타락을 질타하는 성명도 연이어 발표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과 함께한 20여 년


저자는 현대건설주식회사 법률고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정주영 회장과의 오랫동안 친교를 나눴다. 법률고문으로서 현대의 기업사는 물론 가족사에 이르기까지 정주영 회장의 가장 가까운 의논 상대였으며 1977년부터는 아산재단의 상임이사를 맡아 실질적으로 아산재단의 설립부터 의료사업 등 재단의 사회복지사업 전반을 이끌었다. 특히 그중에서 서울아산병원을 세우는 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었던 컴퓨터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10년 앞을 내다보는 계획으로 서울아산병원이 오늘날 최첨단병원이 되는 기초를 마련했다. 1978년부터 10년 단위로 개최되고 있는 사회복지 주제의 대규모 심포지움도 저자의 작품이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은 지금도 회한으로 남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던 정권을 생각하면 정주영 회장의 출마 결심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으나 정주영 회장은 재계를 이끌어가는 선구자로서, 사회복지사업에 거액을 희사하며 부의 사회환원에 솔선수범한 거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정주영 회장을 존경했기에 한 재산 마련했겠다는 남들의 기대와 달리 큰 보수를 받지 못해도 괘념치 않았다. 정주영 회장이 거액의 돈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저자는 시간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상식, 법


저자는 인간과 인간의 상식에 대한 믿음이 법률의 바탕에 놓여야 한다고 믿는다. 범죄내용은 간단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인간사를 품고 있게 마련인 절도 사건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간첩으로 남파되어 온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신고한 어머니의 사랑을 고려하여 구형하고, 변호사가 요청하면 수사기록도 흔쾌히 보여주었던 것도 그러한 신념에서였다. 그래서 한평생 어떻게 인간과 상식과 법의 소통을 통해 정의를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그런 고민은 이 책에 기록한 저자의 삶의 주제이기도 하다.

5~6년간 원고를 쓰고 출간을 망설이길 또 몇 년, 그래도 이 책을 내놓게 된 것은 단지 지난날을 회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를 통하여 현재의 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새기고 현재 일어난 일들을 통하여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 <역사의 격랑에 오늘을 묻다> 출간기념회가 3월 29일 오후 5시 30분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립니다.

저자 소개

1924년 경기도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미국 SMU 수학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 취득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한일회담 한국 대표
재단법인 아산복지사업재단 상임이사
한국경제법학회 창립 회장
서울통합변호사회 회장
한일변호사협의회 창립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한일21세기 위원회 위원
세계한인변호사협회 창립
한국법학원 원장
3,1 문화재단 이사장(현재)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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