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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003564 / 156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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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너머의 언어와 감성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손필영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손필영 시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0 아시아 예술창작거점 사업>에 추천되어 1년여간 머물렀던 ‘몽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었다. 울란바토르에서부터 고비초원, 생샹드, 바잉보르트, 아르항가이, 흡스굴, 블루초원 등을 거치는 여정 속에서 자연과 인간, 시간과 역사, 이념과 그 너머를 체화된 언어와 감성으로 풀어냈다. ‘몽골’이라는 거대한 시공간 앞에 시인은 한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 오르는 능동화된 ‘몽골’을 경험한다. 시집의 대표 시 『타이하르 촐로』에서 볼 수 있듯, 몽골 초원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타이하르 촐로에 새겨진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시인은 “인류를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 바로 “눈부신 사랑”이었음을, 그것은 몽골의 “모래”와 “바람”에도 날아가거나 사라지지 않고 “지평선으로 우주로” 퍼져 나가는 것임을 발견한다. 시인의 그러한 발견은 이 시집 1부에 수록된 25편의 몽골 시편으로 조각되어 입체적인 형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환한 어둠 속에 태어나는 시
원초적인 몽골의 입체 조각인 1부와 달리, 2부와 3부에서는 시인의 섬세한 내면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시인은 “어둠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 어둠은 단지 깜깜하고 빛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환한 어둠”이다. 속인 빈 “아름드리 전나무”의 “기다란 어둠”처럼, 그 어둠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있고 또 그 흔적을 따라 가고 있는 자기 자신이 있는 공간이다. 눈이 내렸지만 그럼에도 속이 빈 전나무는 껍질만으로도 버텨야 하는 현실에 놓인 공간이다. 시인은 텅 빈 그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넣는다. 순간 어둠이 환하다. 이처럼 시인 손필영의 섬세함은 그의 눈빛이 닿는 곳, 이를테면 지리산, 바우덕이 무덤, 느티나무, 그랜드캐니언 등은 물론이고, 어느 거리, 어느 강가, 어느 날 저녁 등에 닿아 깎인 자리를 채우고 모난 자리를 토닥여 “빛”나는 “존재”들의 “향기”로, 그리고 시로 태어난다.
시집 해설 - 빛과 존재들의 향기
구체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손필영의 시들은 가상 세계에서 범람하는 헛된 욕망과 정보들에 휩쓸리지 않는 고전적 정신성과 견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신대철이 “시의 무대”라고 부른 상황적 공간을 앞부분에 배치할 때가 많다. 그것은 물론 연극 무대처럼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시적 주체 앞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동적인 시공간이며, 첫 연보다는 두 번째 연에 나올 때가 많다. 그럴 경우, 첫 연과 끝 연은 마치 두 개의 전극처럼 그 사이에 놓인 현상들의 나타남과 그 변주들에 강력한 시적 에너지를 흘려보내며 뜻깊은 의미론적 자장을 빚어낸다. 화자의 감각과 의식이 그 시공간을 통과하는 동안 자연과 인간은 아직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손필영이 빚어내는 “시의 무대”는 감각·사유의 시공간적 배경이자 질료이며, 시적 주체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생성적 공간이다. 물질적·시간적 이미지들로 충만해 있는 그것은 때로는 화자가 자신의 몸까지 잊어버리게 할 만큼 능동적 기운을 뿜어내기도 한다. 시인의 감수성에 매개되면서 빛과 존재의 향기를 발산하게 되는 그것은 자연적 사물들이나 생명체들에게 박탈된 본성을 되돌려주면서 우리들에게 포스트모던적 징후들과 맞설 수 있는 심성적 바탕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시인의 감성으로 매개된 자연과 “오래된 사람”에 깃든 장구한 시간성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부유하는 생령들이 닻을 내릴 수 있는 풍부한 물질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처럼 손필영의 “어디 먼 곳”에 대한 지향은 우주적 순환을 거쳐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고양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 또는 우리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유년을 환한 빛 속에 드러내는 쪽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황광수, 「빛과 존재들의 향기」 중에서
하얀 자작나무 숲을 지나 황야, 소리도 지운
비 내리고 사이사이 햇빛 내린다
몰려오는 먹구름 밑으로 불쑥 솟아나는 큰 바위,
낙타 탄 소년들이 묻는다
무얼 찾느냐고
오래된 그림이냐고
낡은 3층 건물처럼 높고 구석 깊은 바위를 돌다
소년들이 이끈 곳은
은빛 총알 하나, 작은 틈에
언제였는지, 작은 틈에
모래에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비밀
바위를 다시 한 번 돌아 나오자
“사란, 죽을 때까지 사랑해”
생명에 새긴 사랑의 서약이 돋아 나온다
(오, 눈부신 사랑! 저 서약이 인류를 지탱해온 것일까)
소년들은 떨리는 제 숨결을
지평선으로 우주로 쏘아 보낸다
타이하르 촐로, 사랑이 약속이 시작되는 곳
―「타이하르 촐로」 전문
미끄러운 겨울 길,
모퉁이 돌면 뒤집힌 자동차들
비탈에 선 나무들
어젯밤 무슨 말을 했지? 말 사이 침묵도 모르면서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려 멀리 왔다. 혼자서도 모여 살 줄 모르면서
국경 강줄기도 러시아도
미세한 눈가루에 지워졌다,
땅도 허공
마른가지에 걸어둔 말 머리
흔적을 지우고 돌아가는 바람,
정밀한 순간
눈 속,
눈사람이 스친다
―「몽골 일기 1」 전문
노스림에서 내려다보면
유황과 모래와 진흙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다가 갈라진 지층들
노을 품은 협곡은 황금을 담은 듯 사방에서 번쩍거린다
깊고 광대하다는 말은 그랜드캐니언을 축소하리라
독일에서 온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고사목에 올라갔다 가지에 걸려 우는 동양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아이의 엄마는 등을 돌리고
어린아이의 울음은
강에서 올라온 하늘을 빨갛게 적시다가
어스름에 풀려 사라진다
끈기는 모래층
집착은 진흙층
회한은 자갈층
메마름은 유황층
단숨에 일어나야
노을을 품을 수 있다는 걸
아이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울음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늙은 엄마가 되기까지
누구나 하나의 지층을 갖는다는 걸
아이는 알 수 없지만
붉고 검은 선으로 사라진 사방이
어둠 속에서 우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오면
인간은 엄마의 아이에서
우주의 아이로 태어나리라
―「그랜드캐니언에서」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