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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315583 / 20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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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당신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 주는 능력자?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도덕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훈련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는 구원자?
어느 순간,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이런 램프의 요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닐까? 내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나와 내 가정의 안위를 보장해 주고, 가끔 윤리적 지침을 제공해 주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존 맥아더는 준엄하게 선포한다. 신약성경은 정반대를 가르친다. 성경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분은 소유주이며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노예이다. 이 땅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해방되었으며, 값을 치르고 팔려 모두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상당히 생경하다. 신약성경을 가볍게 읽어 나가도 그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존 맥아더는 그 이유가 “충격적일 정도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즉 “킹제임스 번역본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영어 번역본들의 오역으로 ‘노예’라는 헬라어 단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저자는 이 ‘노예’라는 사도들을 비롯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익숙한 개념이었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논지를 역사적 문헌적 증거를 들어 주도면밀하게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참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내 삶에 예수님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분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고, 다른 무엇보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하고, 그분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그분의 명령을 준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언젠가는 우리가 우리 주인 앞에 서서 우리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온다고. 주인이 언제 돌아오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통해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감당하며 언젠가 귀환하실 주인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벽한 자치권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른 속박 아래 매이게 되었다. 한때 바로의 소유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히브리 민족은 또 다른 주인을 섬기기 위해 한 주인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주권자가 되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지 못했다. 바로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켰을 뿐이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노예들이었다.
- 2장 <오래된 역사, 영원한 진리> 중에서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들’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곧 그들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의미였다. 사도 바울에게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그야말로 매 순간 자기희생의 삶, 전적으로 주인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삶을 포함했다.
- 5장 <주님, 그리고 주인이신 분(2)> 중에서
신자들은 노예라는 사실 자체로는 아무런 영광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가족구성원으로서 그분과 관련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로 구별되었다. 그분의 노예가 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받아 보는 독자들에게, 자랑하려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었다.
영원하신 왕의 노예가 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요 특권인가! 우리는 그분의 영광의 광채를 받아 경외함과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그분을 예배하며 영원히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영원히 우리 이마에 새겨질 것이다. 모든 세대의 성도들과 함께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소유로 택해 주신 사실에 영원히 감탄하게 될 것이다.
왕과 교제한다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
- 6장 <우리 주 우리 하나님> 중에서
어느 주석가가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개념은 근사한 자기중심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자는 의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목적 없는 사람, 목표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가치 있는 대의를 향해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죄악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은 자는 도덕적 진공상태 속에서 헤매지 않는다. 그들은 의의 노예들이다.” 참 자유는 죄악의 노예 상태가 종결될 때 시작되며, 죄악의 노예 상태가 종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 9장 <죄에서 풀려나 새로운 주인에게>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진노와 불순종의 자녀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인격을 본받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권한을 위임해 주신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는 의의 자녀들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의 두려움이나 율법의 저주를 받은 노예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예, 그리스도를 위한 노예, 의의 노예가 되었다. 그것이 참 자유다. 따라서 우리는 아들이면서 동시에 노예다. 그 비유들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두 실재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영원토록 우리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될 것이다. 영원토록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노예 상태에 놓일 것이다.
- 11장 <노예에서 아들로(2)>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