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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뿐 1

박인식 저 | 바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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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8830986 / 468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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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첫사랑의 시차로 빚어진 운명적인 사랑의 어긋남과 그 어긋난 사랑이 풀어 나가는 시간의 팽창과 단축 속에 깃든 우리나라 근ㆍ현대 현실의 구체성들! 산山이라는 화두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방랑작가 박인식! 그의 별명은 오무자五無子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다 있는 핸드폰과 자동차와 컴퓨터와 신용카드 그리고 티브이 이 다섯 가지가 없다. 오무자 된 그의 외곬삶은 동시에 그에게 오유자五有子라는 별명도 안겨주었는데, 그것은 역마살과 책과 시간과 쓸쓸함 그리고 자유 이 다섯 가지다. 오무자는 오유자를 낳았고, 또 오유자... 첫사랑의 시차로 빚어진 운명적인 사랑의 어긋남과 그 어긋난 사랑이 풀어 나가는 시간의 팽창과 단축 속에 깃든 우리나라 근ㆍ현대 현실의 구체성들! 산山이라는 화두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방랑작가 박인식! 그의 별명은 오무자五無子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다 있는 핸드폰과 자동차와 컴퓨터와 신용카드 그리고 티브이 이 다섯 가지가 없다. 오무자 된 그의 외곬삶은 동시에 그에게 오유자五有子라는 별명도 안겨주었는데, 그것은 역마살과 책과 시간과 쓸쓸함 그리고 자유 이 다섯 가지다. 오무자는 오유자를 낳았고, 또 오유자는 방랑인생 수십년의 배란기 끝에 이백자 원고지 오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을 낳았는데, 이번에 도서출판 바움에서 출간하게 된 『첫사랑뿐』(전3권)은 바로 그 결실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운명과 사랑을 연기緣起와 환생還生의 상상력으로 투시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나라 근ㆍ현대 현실의 구체성들을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알타이어족의 천산산맥에서 한국의 백두대간(의 끝 해남 두륜산)까지 아우르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옛 가야 땅 청도의 이인異人인 할아버지(처용이라 불리기도 한다)와 그의 손자 인수에 이르기까지 일제하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족사(나아가서 민족사, 문화사)가 축을 이룬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테마는 천년의 시간을 통해서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인 사랑과 그 운명적인 사랑 이면에서 펼쳐지는 우리 한민족과 한민족 문화의 뿌리에 대한 진정한 실체 찾기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제를 생동감 있게 전하기 위해 옛 누란왕국의 전설, 즉 안귀 왕과 누란 왕녀의 전설을 활용한다. 누란왕국은 투르크계 민족의 갈래인 위구르족이 세웠는데, 당시 동서문화와 유목문화와 농경문화가 교차, 융합되어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렸던 왕국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겨우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가 스웨덴의 지리학자 스벤 헤딘에 의해 본격적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왕국이다. 소설 속 주인공 인수가 만주 지역 일대와 우루무치와 투르판과 카슈가르, 그리고 천산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할아버지의 전력前歷을 추적해가는 여정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소설적 장치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서 인수와 인수의 할아버지 그리고 조선족 여인 쇼메이(이정민)는 연기와 환생을 통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인수의 할아버지는 누란왕국 왕의 환생자이고, 조선족 여인 쇼메이는 누란왕국 왕녀의 환생자이고, 인수는 누란왕국 원수의 환생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오랜 시간을 통해 굴절된 우리 한민족韓民族과 한민족 문화韓民族文化의 시원始原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실제 우리 한민족과 한민족 문화의 시원은 중앙아시아 지역(바이칼, 파미르 지역)까지 소급되기도 하는데, 특히 작가가 언급하는 위구르 민족은 우리처럼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와 유사한 음식문화(여기서는 항아리국수와 탁탁탁국수를 들고 있다)를 공유하고 있는 민족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흔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국 고유의 음식으로만 알고 있는 국수noodle가 실은 위구르족 고유의 음식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제갈량의 남만 원정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만두 역시 실제론 만주 지역(옛 고구려와 발해의 터전)에서 더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와 같은 유전적 혈통의 내림 때문일까? 실제 우리 민족은 여느 민족보다도 국수와 만두를 더 좋아한다. 비단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작가는 로마에서 기원하여 프랑스에서 꽃피운 포도주도 누란왕국에서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한다. 그 증거로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오랜 옛날부터 이미 포도가 재배되었고, 포도주도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따르면 우리 한민족이야말로 중앙아시아(위구르), 몽골,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걸어온 민족이다. 그런 만큼 소설 속 인수의 여정이 한반도,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 여정 가운데 인수가 만나게 되는 정영치와 쇼메이와 장운과 하릴과 카리미 등은 천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연기와 환생으로 빚어진 어긋난 운명적인 사랑의 변주곡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 그 여정은 광활한 중앙아시아 초원의 땅에서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면서, 그리하여 급기야 한반도에 이르게 되는 역사적 변이變移에 대한 간접적 추체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알타이어족의 천산산맥을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연결시키고, 그 끝자락에 있는 옛 가야 땅 청도에 뿌리를 둔 한국 민족사의 기백과 집념을 인간의 운명과 사랑에 빗대어 파격적인 구상과 장중한 스케일로 다룬 것이다. 추천의 글 박인식은 원래 자유인이다. 소설 『첫사랑뿐』은 또한 파격적인 구상과 서술로 되어 있다. 주제는 장중한 스케일을 다루고 있다. 알타이어족의 천산산맥 맥락을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연결시키고, 그 끝자락에 있는 옛 가야 땅 청도에 뿌리를 둔 한국 민족사의 기백과 집념을 다루었다. 이 안에서 인간의 운명과 사랑을 연기 환생의 상상력으로 투시하면서도 근ㆍ현대 현실의 구체성들을 대입해 나아간 경이로운 소설이다. -구중서(문학평론가) 오랜만에 잠까지 줄여가며 책에 빠졌다. 첫사랑의 열병을 다시 앓은 듯하다. 그 며칠 사이 첫사랑으로 몸 씻어 허물 벗은 걸까. 이 나이에 흰 나비로 부화하여 첫사랑의 봄날 속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다니! -신경림(시인) 왼발이 미래를 맞아 포옹하고 애무하면 오른발은 집착도 깨우침도 과거 속으로 버리고 길을 튼다. 길 위의 미래와 과거 사이에서 현재의 모공이 열리고 세포가 깨어난다. -김화영(문학평론가) 그의 글을 읽으면 산 어느 한 곳에, 산이라는 절대 순수의 터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은 읽는 이의 발바닥부터 자극해서 이 땅의 수많은 산과 들을 밟게 하고 꿈틀대게 하고 사랑하게 한다. -안치운(연극평론가) 광기 어린 글로 산과 인간, 젊음과 죽음에 대한 가열찬 질문으로 일관한 그의 뜨거운 글은 피처럼 선연한 그 순정성으로 인해 모든 이들의 가슴을 흥분시키고 적신다. -최성각(소설가) 반초는 장안에 왔다가 뜻밖의 일을 겪게 된다. 오랑캐다! 길거리 어린애들이 자꾸만 그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애들이 놀려대는 오랑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거리에 어른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다. 반초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오랑캐로 비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랑캐는 쳐부숴야 할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서역 사막에서 오랜 세월 오랑캐와 싸우는 사이에 그의 피부와 눈 빛깔까지 그곳에 사는 오랑캐의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하여 반초는 누런 모래 먼지가 녹색을 그리워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가차 없이 지워버리는 서역으로 다시 가서 오랑캐처럼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서역으로 되돌아가는 반초야말로 나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도 주변에서 아랍 오랑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전생이 아랍 민족이 사는 서쪽의 먼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도 전생의 고향을 찾아, 전생에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이 기차를 탔을 것이다. 사막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달도 흘러간다. 기차는 구름에 달 가듯이 하기도 하고, 모래바다 파도에 배 가듯이 넘실넘실 달리기도 한다. 그 넘실대는 모래 파도를 보며 나는 그 모래 파도에 몸을 던진 후한의 반초를 생각했다. 그 반초를 생각하며 반초처럼 ‘아랍 오랑캐’소리를 들으며

저자 소개

1951년 경북 청도에서 났다.
월간 『사람과 산』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했다. 오래 전에 일터를 떠난 자유인이 되어 전업작가로 나섰다. 1985년 장편소설 『만년설』을 발표하며 산이라는 화두를 문학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간 장편소설 『백두대간』(전2권) 『종이비행기』(전2권), 실명소설 『인사동블루스』, 기행소설 『대륙으로 사라지다』, 희곡집 『서문동답』, 산악인 이야기 『사람의 산』, 미술 기행기 『햇살 속에 발가벗은』 『반딧불이 되도록 그리운』 『그리움은 그림이다』, 기행 산문집 『방랑보다 황홀한 인생은 없다』 『북한산』 『독도』 등의 책을 펴냈다.
1997년에 방영된 MBC 창사특집 24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산>의 원작과 극본을 집필했다. 2010년에는 인도와 네팔 ‘부처의 길’ 천오백 킬로미터를 백일 동안 걷고 나서 기행문집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펴내기도 했다.


 


별명이 오무자五無子다. 남들은 다 갖고 있는 핸드폰과 자동차(아예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와 컴퓨터와 신용카드 그리고 티브이가 그에게 없는 다섯 가지다.
오무자 된 외곬삶은 남들은 잘 갖지 않으려는 다섯 가지를 안겨줬다. 역마살과 책과 시간과 쓸쓸함 그러나 자유의 오유자五有子를 괴나리 봇짐 지고 현대 무한경쟁시대를 눈 질끈 감고 걸어가고 있다.
그 오무자는 오유자를 낳았고, 또 오유자는 방랑인생 수십 년의 배란기 끝에 이백자 원고지 오천 매 분량의 이 장편소설을 낳았다.


 

책 속에서

하야시는 서울 온 김에 퇴원해서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을 찾아갔다. 사이토 총독이 그의 대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 몇 년 선배였다. 하야시 서장은 총독에게 자신에게 테러를 가한 조센징이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의 사주를 받은 빠가야로 조선독립투사라고 거짓말했다.
독립투사라면 빠가야로 중에서도 상 빠가야로로 알고 이를 갈고 치를 떠는 총독은 그 말에 넘어가 곧 바로 조선 팔도에 할아버지를 어서 빨리 검거하라는 긴급 현상수배령을 내렸다.
그 바람에 검거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북만주까지 할아버지가 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정작 하야시가 부조했다는 것은 이게 아니다.
총독에게 그가 거짓 고자질 하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기생 끼고 북만주로 야반도주한 난봉꾼으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하야시 덕에 그 위세에 청도 산천초목이 다 뜬다는 일본인 경찰서장을 민족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북만주로 피신한 열혈 독립투사라는 감투 아닌 감투를 쓰게 된 것이다.
― ‘봄날에 핀 꽃, 봄날에 지다’ 중에서

성호와 홍도는 내 라면 인생 반려자들이다. 첫 라면을 그들과 함께 맛보았다.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며 얼마나 숱한 밤을 라면 안주삼아 소주를 마셔가며 라면 삼매경에 빠져 들었던가. 학창시절 우리 몸의 피와 살을 키운 팔 할은 라면이었다.
그 첫 라면의 맛을 나는 토종 닭백숙 맛 더하기 국수라고 정의했었다. 별 생각 없이 내뱉었던 그 말은 그 뒤로 수없이 먹게 된 라면에서 토종닭 백숙 맛을 찾아내라는 화두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때 토종닭 백숙을 그토록 고집했던 것은 토종닭 백숙 맛 나는 라면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토종닭 백숙의 그 노랑노랑 떠오르는 기름을 다시 맛보며 그런 노란 기름기가 우리의 어린 영혼을 황홀하게 감싸주던 첫 라면의 맛을 셋이서 함께 다시 느껴보고 싶어했다. 그런 음식을 영혼의 음식이라 부를 수 있다. 누구든 한두 가지씩 영혼의 음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첫 라면이 영혼의 음식이었다. 첫 라면이 나를 다른 곳으로 또 다른 시간으로 데려갔듯 이렇게까지 애를 써 찾아내는 토종닭 백숙이라면…… 그 닭고기 맛도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리라.
할머니의 묘소가 있는 ‘그곳’에?
― ‘떠도는 자의 하얀 산’ 중에서

한 알의 만두 속에는 만두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쌈과 비빔밥과 새우튀김 그 모두 들어 있었다.
“아버님. 어때요. 맛있죠?”
아버지는 우리가 고량주를 마시고 있는 사이에 이미 만두 접시와 만두통을 반쯤 비우고 있었다. 입안의 만두를 천천히 음미하고는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응. 인수야. 정말 맛있어. 인철 애비는 어때?”
삼촌은 이미 물만두 접시와 찐 만두통을 말끔히 비워버렸다. 그사이 그래서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니라 만두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네, 형님. 맛있습니다. 제가 여태 먹어본 만두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장운 양.”
장운이 빚은 것도 아닌데 삼촌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만두를 자기가 빚은 듯 그 인사를 넙죽 받았다.
“아, 네. 맛있었다니 제가 기쁘군요. 그럼 이 만두 맞나요?”
그녀의 질문에 정전된 극장 안처럼 사위가 조용해졌다. 다들 만두 씹는 소리도 빼주잔 내려놓는 소리도 내지 않고 숨죽였다. 그 새우만두집에 왜 왔는지를 잠시 있게 했던 새우만두의 그 기막힌 맛이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맛과 같은 건지 아닌지를 장운이 서슴없이 물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기까지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머릿속에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북만주로 도망쳐 와서는 아버지와 삼촌을 낳고 북만주 온천지를 방랑하던 그 유랑의 세월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스쳐지나갔다.
― ‘쌈 아니면 만두’ 중에서

반초는 장안에 왔다가 뜻밖의 일을 겪게 된다.
오랑캐다!
길거리 어린애들이 자꾸만 그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는 애들이 놀려대는 오랑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거리에 어른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다. 반초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오랑캐로 비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랑캐는 쳐부숴야 할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서역 사막에서 오랜 세월 오랑캐와 싸우는 사이에 그의 피부와 눈 빛깔까지 그곳에 사는 오랑캐의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하여 반초는 누런 모래 먼지가 녹색을 그리워하는 모든 인간의 열망을 가차 없이 지워버리는 서역으로 다시 가서 오랑캐처럼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서역으로 되돌아가는 반초야말로 나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도 주변에서 아랍 오랑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전생이 아랍 민족이 사는 서쪽의 먼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도 전생의 고향을 찾아, 전생에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이 기차를 탔을 것이다.
사막 위로 구름이 지나가고 달도 흘러간다. 기차는 구름에 달 가듯이 하기도 하고, 모래바다 파도에 배 가듯이 넘실넘실 달리기도 한다. 그 넘실대는 모래 파도를 보며 나는 그 모래 파도에 몸을 던진 후한의 반초를 생각했다. 그 반초를 생각하며 반초처럼 ‘아랍 오랑캐’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또 그 할아버지의 손자답게 ‘아랍 사람 같네’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내 삶에 대해 생각하다 말고 차창에 기대어 나는 소리 죽여 할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했다.
― ‘사막 위로 구름도 달도 흐른다’ 중에서

……사막 모래벌판에 펼쳐진 그들 삶의 젖줄이었던 로푸호를 떠나서는 더 이상 살아 갈 수가 없었다. 누란은 로푸호의 블루 빛 물 주변에 깃든 농작물이 만들어낸 녹색지대 덕에 타클라마칸 사막 한가운데 사직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 호수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수가 누란을 버린 것이다.
누란 사람들은 로푸호에 사는 하룡신의 노여움 탓이라 믿었다. 그들은 하룡신에게 호수가 누란 땅에 그대로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로푸호는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호수를 잃은 누란은 곧 사막에 묻혀 폐허가 될 위기에 처했다. 호수가 멀어지기 시작하여 누란왕은 누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로푸호가 옮겨간 선선 땅으로 천도를 시작할 무렵, 누란의 젊은 지배자였던 안귀의 부인은 독초를 입에 물고 성루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사막에 매몰된 누란의 옛 도읍은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에 의해 발굴되어 천오백여 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곳에 로푸호는 없었다. 헤딘 일행에 섞여 있던 과학자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흘러드는 타림강 토사의 퇴적과 바람이 뒤바뀌게 되면 물길까지 뒤바꿔놓아 천오백 년을 주기로 로푸호가 남에서 북으로 또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헤딘 일행은 그 폐허 한가운데서 관 하나를 찾아냈다. 그 관 속에는 얼굴 피부는 양피지처럼 딱딱했지만 눈이나 코나 입 따위의 얼굴 윤곽을 천오백여 년 넘도록 간직하고 있는 여인의 주검이 나왔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으로 그녀가 타클라마칸 사막의 젊은 지배자였던 안귀의 부인이란 것을 알아냈다. 누란과 로푸호의 여왕이었던 그녀는 죽어서까지 아름다웠다.
헤딘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보게 했다.
천오백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그 로푸호가 누란의 옛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중에서

그녀는 처음 봤을 때 이미 나를 다시 만났다는 걸 알아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다시 만난다’는 위구르 팔찌를 그렇게까지 애를 써 내게 껴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누란의 그녀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온몸을 떨었던 건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우루무치로 가기 전 물 없는 그무강을 삭매가 되어 건너면서 나는 그 먼 발치서 내려다보고 있는 천산의 눈동자에서 어떤 여인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천산을 올라 그 꼭대기 부근 빙하호에 들어갔을 때 그 어떤 눈빛은 물고기의 몸을 빈 발광체가 되어 내 발길을 유도했었다. 그 반짝이는 빛의 덩어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거기 팔찌 글씨 그대로 새겨진 옛 암각화 앞에 닿았었다. 끝내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만났던 그녀를 데리고 전생의 내가 거기로 도망 와서는 내세에서나 다시 만나자는 그 천년의 약속을 맹세했을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나는 이름도 같은 백두산 천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쇼메이를 떠올렸다. 그 쇼메이에 대한 기억을 태우고 나의 혼불은 광속의 빠르기로 누란 시대로 돌아가 그녀와 함께 누란시대의 천지 빙하호 어느 암벽에다 ‘우리는 다시 만난다’라고 글씨를 새겨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있는 기억까지 되살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쪽은 내가 아니다. 그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천지에서 나와 함께 지냈다는 것을 나를 만나기 전부터 기억하며 그것을 평생소원으로 간직하게 된 것만 같았다. 그 소원을 이루고 다시 겨울 백두산을 오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지금 돌이키니 심상찮다. 지금껏 지속되는 그 둔주 속에서 그녀는 누란의 왕녀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아득해졌다.
― ‘첫사랑, 그때는 다만 가슴 떨릴 뿐’ 중에서

목차

목차
작가의 말 / 봄날에 핀 꽃, 봄날에 지다 / 국수잔치 벌였네 / 비트겐슈타인과 라면 / 저물녘 피리 소리
계란 세 알 네 조각 나누기 / 중간쯤에서 찾은 그녀 / 해남 두륜산 / 곤륜산 블랙홀 속으로
위해 텍사스에서 / 이는 사랑을 간지럽힌다 / 우리는 악어가 되어 다시 만날까? / 만리장성 쌓은 남자의 여자
봉천 개장수와 박 포수 / 두만강변 민들레 / 떠도는 자의 하얀 산 / 그녀는 정말 사진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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