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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예세닌 서정시선

세르게이 예세닌 저 | 박형규 역 | 써네스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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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958524 / 191쪽 126 x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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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 예세닌의 아름다운 시집 러시아의 시인들 중에서 대한민국에 잘 알려진 시인을 뽑으라면 당연히 푸쉬킨이고 그 다음이 바로 예세닌이다. 예세닌의 서정시 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예세닌의 시인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푸쉬킨의 처럼 말이다. 예세닌은 1895년에 태어났다. 푸쉬킨보다도 100년을 늦게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예세닌의 감성은 푸쉬킨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모든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러시아 국민들은 그가 사랑을 할 때 같이 사랑했으며, 그가 조국의 현실을 아파할...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 예세닌의 아름다운 시집 러시아의 시인들 중에서 대한민국에 잘 알려진 시인을 뽑으라면 당연히 푸쉬킨이고 그 다음이 바로 예세닌이다. 예세닌의 서정시 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예세닌의 시인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푸쉬킨의 처럼 말이다. 예세닌은 1895년에 태어났다. 푸쉬킨보다도 100년을 늦게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예세닌의 감성은 푸쉬킨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모든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러시아 국민들은 그가 사랑을 할 때 같이 사랑했으며, 그가 조국의 현실을 아파할 때 같이 아파했다. 혁명기의 러시아에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방황을 하는 그는 러시아 국민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짧지만 러시아 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간 시들을 모아 뽑아서 만든 책이 바로 예세닌 서정시선 이다. 러시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시집 러시아가 세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자’이다 라고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러시아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러시아에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연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러시아의 아름다움은 자작나무로 상징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 전역에 걸쳐서 자작나무가 서식하고 있으며, 자작나무 자체의 아름다움은 특히 겨울에 빛이 나는데 겨울이 긴 러시아에서 당연히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 자작나무를 포함한 러시아의 자연은 시골 풍경 또는 소도시들과 어울려서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서정시인인 예세닌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그 자연을 이야기한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자연을 그래서 그는 농민시인이기도 하다. 농민시인으로서 그는 자연에 살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시로 표현한다. 그것은 때로는 어머니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마디로 예세닌은 이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시 속에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시들을 우리는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 소개

1895년 10월 3일 랴잔 지방의 콘스탄티노보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9년, 세르게이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스파스 클레프키 마을에 있는 교사 세미나에 갔는데 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이곳에서였다. 지도교사의 조언에 따라 시작(詩作)에 몰두하기 위해 그는 1913년 3월 모스크바로 떠난다.

1915년 3월 9일, 상징주의 시의 대가 알렉산드르 블로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갑자기 진땀을 흘리기까지 했다. 블로크는 예세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등 도움을 주었으며 그를 “천부적인 재능의 농민시인”으로 불렀다. 예세닌은 자신이 블로크와 클류예프로부터 서정시풍을 배웠고, 벨리로부터는 형식을 배웠다고 주장했다.

1916년 2월, 첫 시집인 ≪초혼제≫가 출간되자, 예세닌의 명성은 순식간에 높아져 황후와 공주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황금 시계와 목걸이를 받았다. 그러나 예세닌은 혁명에 동감해서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열렬히 환영했다. 

예세닌은 1919년을 자기 생애의 최고의 해로 간주했다. 그에게 서점과 출판사, 보헤미안 문학 카페인 ‘페가수스의 마구간’에 대한 감독권이 주어졌다. 이 시기 그는 여러 시인들과 함께 ‘이미지 그 자체’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미지주의 문학 그룹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1918년 혹은 1919년에 예세닌은 공산당에 가입하고자 지원했다. 그러니 그는 너무나 개인적이고 ‘어떤 혹은 모든 규율에 이질적’이라고 간주되었다. 이러한 열정적인 사회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에서는 점차 소외와 고독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1921년에 그는 “흔히, 서정시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라고 적는다.

1921년 11월, 예세닌은 미국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을 만났다. 그녀는 그보다 열일곱 살 연상이었다. 그들은 1922년 5월 2일 결혼했고, 5월 10일 유럽과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의 미국 생활은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 그는 뉴욕을 혐오했으며 자살을 생각할 만큼 권태로웠다. 그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영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예세닌은 덩컨과 함께 파리로 돌아갔다. 음주와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1923년 8월 5일경 그들은 모스크바로 되돌아왔고 10월 말 경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났다.
예세닌은 권태와 우울증에 빠졌으며, 알코올 중독과 환각으로 고통을 받았다. 정신적 안식처를 발견할 수 없었던 그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1925년, 예세닌은 장시 <페르시아 모티프>와 <안나 스네기나>를 썼던 바쿠로 갔다. 환각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망상증도 그의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11월 그는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12월 21일 그는 갑자기 병원을 떠나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페테르부르크로 떠나 호텔에 투숙해 12월 28일, 성상(聖像)이 놓인 구석의 수도관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박형규
고려대학교 노문학과 교수,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 러시아연방 국제러시아어문학교원협회 상임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재 한국러시아문학회 고문. 러시아연방 국제러시아문학교원협회 푸쉬킨메달 수상, 러시아연방국가훈장인 우호훈장 수훈.

주요저서·논문
『종합러시아어』1문법편, 2작문편, 3회화편(공편저), 『러시아문학의 세계』 『한러사전(책임편집)』 『러시아문학의 이해(공저)』 「러시아상징주의 시문학운동」 「러시아낭만주의연구」 「글라스노스티와 오늘의 소련문학」 「문학과 이념」 「톨스토이론」 「톨스토이즘과 한국」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연구 및 평가」 등.

주요역서
톨스토이-자전적 3부작 『유년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인생에 대하여』 『예술이란 무엇인가』 『독서의 고리(인생독본)』 『인생의 길』 등
파스테르나크-『의사지바고』
볼가코프-『거장과 마르가리타』
푸쉬킨 서정시집-『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솔제니친-『이반일리이치의 하루』
체호프-단편선집 『사랑스러운 여인』 희곡집 『벚나무밭』 『바냐외숙』 등
고골리-단편선집 『외투』

책 속에서



옮긴이의 글
예세닌에 대하여


박형규朴炯奎

1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예세닌은 국민시인이다. 더 러시아적인 작가를 말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시 속에는 러시아의 운명이, 슬픔과 기쁨이 들어 있다.예세닌은 민중시인이다. 민요에 가까운 그의 시, 어휘뿐만 아니라 모든 내용에 의해 예세닌은 민중시인이다. 예세닌은 복잡한 시인이다. 어쩌면 가장 복잡한 시인 가운데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매력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시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과 인간으로서 마땅한 자비를 표현하기 위하여, 자연에 의해 특별히 창조된 기관器官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고리키는 말하고 있다.
예세닌의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의 비밀은 자비로운 인정에 있다. "나는 생각한다. 대지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그 대지 위의 인간들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쟁으로 인한 불행한 불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를". 서사시 「안나 스네기나야」 가운데에서 진정한 평화의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암소가 우는 가난한 시골구석, 자작나무, 술집, 러시아의 공업화, 카프카즈와 랴자니, 몰도바인과 그루지야인, 초원과 여자…… 이 모든 것이 그의 시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 자신과 결합되어 있었고 그 자신을 통해 전해졌다.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것 모두가 그의 감정을 동요시켰다. 그는 이야기 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했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아직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생겨날 것을 자기 시에서 다루고 있다.

2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면서 예세닌은 훌륭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의 재능은 서정시에서 특히 선명하게 발견된다. 그는 강한 시적詩的인 자아발견이라는 비길 데 없는 재주, 그리고 마음 속에 일어난 정답고 친밀한 분위기와 가장 섬세한 뉘앙스를 포착하여 전달하는 재주를 가졌다.

사랑하는 고향 땅이여! 내 가슴은
호수 한복판 속 태양의 건초더미를 꿈꾼다.
수백 가지 소리 들리는 너의 푸르름 속에서
나는 넋을 잃고 싶어라.
………………………………
이루 말할 수 없는, 푸른, 보드라운……
폭풍우 뒤에, 뇌우雷雨 뒤에 나의 고향 땅은 조용하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 끝없는 들판 -
꿀과 장미 냄새를 맡는다.

연못 속에 비친 자작나무, 타작마당을 치우는 늙은 할아버지의 턱수염에 해 그림자가 비치는 것 등…… 민중시적 형상의 세계가 어렸을 적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푸른, 보드라운……
폭풍우 뒤에, 뇌우雷雨 뒤에 나의 고향 땅은 조용하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 끝없는 들판 -
꿀과 장미 냄새를 맡는다.

연못 속에 비친 자작나무, 타작마당을 치우는 늙은 할아버지의 턱수염에 해 그림자가 비치는 것 등…… 민중시적 형상의 세계가 어렸을 적부터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풀담요 속에서 나는 노래와 더불어 태어났다.
봄의 여명이 나를 무지개로 감싸주었다.

나는 성숙기까지 자랐다, 요한 축일 밤의 손자,
마녀가 나에게 행운을 예언했다.

고향에 대한 사랑, 아주 생생하고 정확한 비유로 표현된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감정, 주위의 아름다움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데 대한 슬픔, 그리고 인간이 일생에 단 한번 도달하는 비길 데 없는 매력 속에 용해되는 듯한 희망이 그의 시속에는 들어 있다.
새벽의 모닥불, 파도소리, 은빛 달, 갈대소리, 드넓은 하늘, 푸르른 호수 수면 - 세월이 흐를수록 고향의 온갖 아름다움과 러시아 땅에 대한 풍만한 사랑이 시 속에 쏟아졌다.

오, 러시아여 - 산딸기의 들판
그리고 강에 내려앉은 푸른 빛이여, -
기쁘고 아플 때까지 나는
너의 호수의 우수를 사랑하리라 …….

그의 모든 작품에는 강한 서정시풍이 스며들어 있다. 조국의 운명과 자연에 대한 시에도, 사랑의 시에도.
예세닌에게 있어서 자연은 움직이지 않는 풍경의 배경이 아니라, 늘 살아 움직이며 인간의 운명과 역사적 사건에 뜨겁게 반응한다. 자연은 시인이 좋아하는 주인공이다.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숄로호프의 자연의 풍경 속에서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예세닌의 자연 속에는 들어 있다. 예세닌의 언어 회화의 기술은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창조력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려는 한 가지 목적에 바쳐져 있다.
자연묘사에 민요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 예세닌은 종종 다음과 같은 의인법을 쓰고 있다-벚꽃이 "횐 망토를 입고 잔다", 버드나무 가지가 "울고 있다", 포플러가 "소곤댄다", "졸린 대지가 태양에게 미소 짓는다", "눈보라가 집시의 바이올린처럼 흐느낀다"느니 하는 등.
예세닌의 시적 재주, 그의 작품의 사상, 미학적 의미, 국민시의 전통과 러시아 고전과의 밀접한 관계가 그의 시 속에 점차 충분히 그려져 나아갔다. 어렸을 때 처음 『이고리 군기軍記』를 읽고서 강한 인상을 받았고, 러시아 영웅서사시, 레르몬토프와 네크라소프, 니키친과 콜리쏘프, 페트와 쮸체프의 시를 암송하기도 한 그에게는 푸쉬킨과 고골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예세닌은 자기 식으로 개조하기는 했지만 블로크를 통해 집시-로맨스 모티프를 파악하였고, 벨르이에게서 현대의 종교적 상징뿐만 아니라 시의 운율을 배웠으며, 그의 문학발달에 있어서 클류예프의 영향관계는 특히 중요하다.
후기에는 더욱더 푸쉬킨의 소박함에 끌렸는데, 「페르시아 모티프」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어떤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귀향」 등에서는 이 점이 분명히 느껴진다.예세닌의 서정시에서 형용사 어구, 비유, 은유는 형식을 위함이 아니라 사상과 내용을 좀더 충분하게, 좀더 깊이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현실성, 구체성, 감성은 구성에 있어서의 특징이며, 형상의 형이하학에로의 지향-이것은 그의 문체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 가운데의 하나이다. 감정과 언어, 사상과 형상의 놀라운 하모니, 시의 외형과
내적 감동의 통일은 가히 압도적이라 하겠다.

3
예세닌의 시대는 러시아 역사에 있어서 대변혁의 시기였다. 과거로 물러난 가부장적 러시아, 차리즘에 의해 세계대전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간 러시아로부터 혁명에 의해 변화된 러시아, 레닌의 러시아, 소비에트 러시아로-시인이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 간 역사의 길이 이러했다.
10월 혁명에 대한 예세닌의 태도는 두 가지 측면으로 구별된다. 첫째, 소비에트 정권의 정치적 인정과 혁명에 동조, 둘째, 프롤레타리아혁명의 본질의 현실적 인식, 레닌의 당 정책·계급투쟁의 성격·사적 유물론 철학의 이해.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당시 진보적 작가들에게만 존재했던 높은 사상발달의 수준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혁명시기에는 완전히 10월 혁명 편이었으나, 모든 것을 자기 나름으로 농민 쪽에 서서 받아들였다"-라고 예세닌은 「자신에 대하여」라는 자서전적인 글에서 말하고 있다. 이 '농민편향'은 시인의 세계관의 주관적 측면의 표현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작품 속에, 그의 견해 속에 나타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순이 그의 정신분열증과 개성으로만 설명된 적이 있었으나, 이 모순은 현실적인 생활현상에 대한 깊고도 진지한 반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예세닌의 시는 아주 드라마틱하고 진실하며, 심한 갈등과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깊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혁명 초기에 예세닌은 자연을 예술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 인생과 다른 미학적인 문제에 대한 시의 관계에 특별한 흥미
를 가졌었다.그러나 시인의 사상·예술의 발달은 1919년부터 시작된 그의 작품에 끼친 이미지스트들의 유미주의적 문학 경향의 영향으로 억제되었다. 이미지스트들과 가까워지면서 예세닌은 자신의 미학원칙이 그들의 창작의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이미지스트들의 형식주의 작품은 예세닌의 시와는 퍽 달랐다. 그도 곧 이 사실을 감지해 1921년 봄, 이렇게 썼다. "내 동료들은 예술이란 예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들은 화를 낼 것이다. 그와 같은 예술접근은 진지하지 않다고…… 그들에게는 조국애가(이 말의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없다……."
서정시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밝고 아름다운 것들과의 갈등, 특히 혁명 이상과의 갈등 속에서 그는 놀랍도록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인간이 아니다!
숨길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한쪽 다리로 과거 속에 남았다,
다른 한쪽 다리로 강철의 군대를 따라잡으려고 하면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있다.

「목로 술집 같은 모스크바」 (1921∼24) 계열의 일련의 시에서는 정신적 타락, 심각한 창작 위기의 증거로 혁명의 힘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고 낙오된, 사회적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이제 나는 어머니에게가 아니라
생판 남인 웃음이 헤픈 인간쓰레기에게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내일이면 다 나을 것이다!"

동시에 시인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의미를 알고자 한다.

오, 만약에 이 나무이파리들처럼,
깊은 곳에서 두 눈에 의해 싹이 틀 수 있다면.

이 시기의 몇몇 작품은 퇴폐, 세상에 대한 방종한 태도, 난폭하고 무뢰함을 지칭하는 '예세닌주의'라는 용어를 나타나게한 동기가 된다. 당시의 진보적인 비평은 예세닌과 '예세닌주의'를 분리시키려 하였다.예세닌은 러시아 농민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는데, 바로 이점이 그가 국민시인, 민중시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며, 선명한 사실주의 작품에서 자기 시대의 주요 사건들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농민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 - 사회주의의 길이 역사에 의해 러시아에 주어졌다. 예세닌은 이것을 이성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감성으로는, 러시아 농민이 그 길 위에 서기란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음을 느꼈다. 이 때문에 미래의 농촌에 대한 예세닌의 고뇌가 있다.

들판의 러시아여! 들판을 따라
나무쟁기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 만족스럽구나!
자작나무들도 포플러나무들도
나의 빈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나는 모른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어쩌면 나는 새로운 생활에 맞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강철처럼
불쌍하고 빈곤한 러시아를 보고 싶다.

4
마야코프스키와 함께 예세닌은 전 소비에트 시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시인이다.
30년대 중반 루마니아에서 예세닌의 시가 번역되어 나오자 진보적인 신문 휴머니즘은 "고통받는 이, 폐허 속에 살고 있는 이, 공장과 항구에 흩어져 있는 이, 사회 정의를 사랑하고 훌륭한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 의해 읽혀졌다"고 평했다.
다시 말해서 당시 부르주아적인 루마니아에서 예세닌은 사회통신으로, 민중시인으로 이해된 것이다. 약 10년 뒤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레비는 문학 신문에 실린
자신의 논문 (1955.12.15)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네 명의 러시아 작가가 후기 이탈리아 문학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 네 작가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끼, 체
호프, 그리고 예세닌이다."
프랑스 작가 루이 아라공은 『프라브다』지(1925.10.21)에 세계의 빛나는 시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 러시아에는 마야코프스키와 예세닌이 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예세닌이 죽었을 때(1925.12.28) "가장 위대한 시인이 죽었다…… 그의 시는 마치 그의 마음의 보물을 두 줌 뿌린 것과 같다"고 쓰고 있다.
예세닌의 비극적인 종말은 이와 비슷한 종말이 거의 모두 그러했듯이 일련의 상황의 결과이다. 그 상황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가는 동안 부닥친 생활의 어려움 앞에서의 무방비성이었다. 예세닌은 몹시 감수성이 강한 시인이었으므로, 어쩌면 갑작스레 나타난 고통·실망·정신적인 피로의 영향을 받아 생명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목차

목차
벌써 밤이 되었다/호수면은 진홍빛/자작나무/어머니의 기도/너 나의 버려진 고향 땅이여/개의 노래/어린 나무 숲의 검은 머리단/나는 고향 땅에서 사는 것에 지쳤다/나는 여기 고향의 가족 품에/지는 해의 붉은? 날개/오 러시아여/내일은 저를 일찍 깨워 주세요/밭은 추수가 끝나고/여기에 그것이 있도다/황금빛 나뭇잎/나는 마지막 농촌 시인/한 무뢰한의 고백/목숨이 있는 모든 것은 어릴 적부터/거친 자들에게는 기쁨이 주어지고/나는 아쉬워하지 않는다/그렇다, 이제는/여기에서 또다시 술을 마시고/울어라 손풍금아/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난 아직 그처럼 지친 적은 없었다/먼 옛 세월의 카랑카랑한 울음으로는/나에게는 딱 하나의 심심풀이가 남았을 뿐이다/너는 수수한 여자이다, 모든 여자처럼/너야 딴 놈이 들이켜라고 하라지/소중한 여인이여/너를 보노라면 슬프다/너 나를 쌀쌀하게 괴롭히지 마라/저녁은 검은 눈썹을 모았다/쉬아가네여, 나의 쉬아가네여!/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담청색 덧문이 있는 나지막한 집/황금빛 수풀/시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하늘빛의 즐거운 고을/하늘빛 블라우스, 파란 눈/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고 있고/푸른 밤/귀향/소비에트 러시아/떠나가는 러시아/어머니의 편지/답장/스탄스/봄/손을 잡아당기면서/바람, 은빛 바람이 휘파람을 불고 있다/아, 대단한 눈보라, 제기랄, 빌어먹을!/ 눈의 평원, 흰 달/너 나의 잎이 다진 단풍나무여/나의 길/비난의 눈초리로/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가여워하지 않는다/잘 있거라, 벗이여/
부록
자신에 대하여/예세닌에 대하여 박형규/세르게이 예세닌 연표(박형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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