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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 장르 영화의 최전선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저 | 한국영상자료원 |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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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056334 / 231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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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60년대 대중영화의 장인, 김기덕을 말하다.” -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공동기획 회고집 출간 -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을 맞이하여 한국영상자료원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기획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장르 영화의 최전선》이 출간되었다. 60년 대중들의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던 감독, 김기덕의 회고집이다. 60년대 한국영화사의 르네상스를 수놓았던 김기덕 (1961)으로 데뷔해 청춘영화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1964) 뿐만 아니라 ... “60년대 대중영화의 장인, 김기덕을 말하다.” -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공동기획 회고집 출간 -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을 맞이하여 한국영상자료원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기획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장르 영화의 최전선》이 출간되었다. 60년 대중들의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던 감독, 김기덕의 회고집이다. 60년대 한국영화사의 르네상스를 수놓았던 김기덕 (1961)으로 데뷔해 청춘영화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1964) 뿐만 아니라 스포츠영화, 코미디영화, SF영화를 종횡무진 했던 김기덕은 명실공히 1960년대 한국영화사 르네상스의 한 축을 담당한 감독이었다. 그는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이해한 몇 안 되는 감독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꿈꿨으며, (1977) 이후에는 후학 양성을 위한 영화교육에 힘쓰는 등, 충실한 영화인의 삶을 보내 왔다.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의 삶, 총체적 영화인 김기덕 이번 KOFA-BIFF 공동총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장르 영화의 최전선》은 1960년대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중의 마음을 설레 만들었던 김기덕의 작품들을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에서는 그의 첫 작품 (1961)에서부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64), (1965) 뿐만 아니라 독특한 치정드라마 (1969)에 이르는 흥미로운 영화들을 선보인다. 이 회고집은 영화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김기덕의 영화 인생을 되짚어 보고 그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바이오그래피를 담당한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주유신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김기덕의 삶 속에 별처럼 빛나는 영화의 위치를 하나씩 살펴본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는 영화 작업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그의 연출론과 영화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단지 직업인으로서의 영화감독 김기덕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과 교류 속에서 생겨나는 그의 위치,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엿 볼 수 있다. 두 번째 장에 실린 ‘거의 모든 장르의 이름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을 담당한 강소원 프로그래머의 김기덕 작품론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김기덕이 대중의 열망을 포착하기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장르적 감각을 발휘했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설명해내고 있다. 오영숙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세 번째 장, ‘사나이 되기의 강박과 순정: 1960년대와 김기덕 영화’에서 고뇌와 우수에 찬 사나이들을 호명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건달의 낭만과 비루함, 그리고 연인들이 목숨을 건 사랑의 파토스는 김기덕 영화 속에서 다면각체의 모티브가 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발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부록에는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자료를 근거로 정리한 김기덕 감독의 작품 목록과 더불어 주요작품 소개, 작품 관련 기사가 실려 있어서 참고해 볼 수 있다. 김기덕 감독 약력 1930년 9월 28일 서울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1년 이란 전쟁영화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많게는 한 해 여덟 편 그리고 적게는 한 두 편씩 20여 년 동안 7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정열적으로 만들었다. 그 영화들을 대충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962년에 , , 1964년에 , , , 1965년에 , 1966년에 , , 1967년에 , , , 1968년에 , , 1969년에 , 등을 만들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도 감독의 다작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71년에 , , 1971년에 , , 1972년에 ,

저자 소개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 유일의 영화 아카이브 기관입니다. 1974년 필름보관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영화와 관련된 모든 콘텐츠가 모여 있으며 한국영화의 역사가 숨쉬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일반인들이 쉽고 즐겁게 영상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국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KOFA), 영상도서관 그리고 온라인상의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 애호가들의 천국이자 영화교육의 장으로서 우리 영화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소속 한국영화사연구소는 2007년에 설립되어 우리 영화사 연구를 위한 사료 수집 및 정리, 연구 성과 공개, 연구를 위한 영상자료 지원, 한국고전영화 걸작의 공개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 장르 영화의 최전선》,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3》,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4》,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5》, 《일본어 잡지로 본 조선영화》, 《한국영화 100선》등

1996년에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경쟁 국제영화제입니다. 아시아의 신인들이 대거 소개되는 '뉴커런츠'와 유럽 신진감독들을 소개하는 '플래쉬 포워드'를 비롯하여 아시아, 한국, 월드로 나뉜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한해 세계영화계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20만 가까운 유료관객들이 모여드는 영화제 프로그램 외에도 아시아 영화를 지원하는 펀드인 ACF와 일정기간의 교육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 감독을 발굴하는 AFA, 영화계 현안을 다루는 '비프 아카데미' 등을 통해 마켓, 학술, 교육, 축제의 장을 펼치는 종합적인 성격의 영화제입니다. 2011년은 새로운 변화의 기점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이자 아시아 최대의 영상센터인 '영화의 전당'이 건립되고, 세계영화 학계의 주요한 담론을 다룰 국제포럼이 올해 처음으로 개최됩니다. 또한 새 시대를 맞이하여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영문 표기가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BIFF)"으로 변경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를 향해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재발굴하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동시대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영화의 오늘'뿐만 아니라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으로 프로그램과 책자를 발간하는 한국영화 회고전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그중 한국영화 회고전은 과거 영화유산의 발굴 및 복원을 통해 한국영화사의 주요한 감독과 배우를 오늘날 되살려 한국영화사를 다시 세우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앞으로도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하고 발굴,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입니다. 

책 속에서

1961년에 데뷔하여 1977년에 은퇴한 그의 영화 이력은 한국 영화의 첫 번째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의 영광과 활기 그리고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침체기와 쇠퇴기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의 퇴영과 침잠을, 그가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치열하게 겪어낼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70여 편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 보는 일은 바로 한국 영화의 두 시대를 온전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비판적, 성찰적으로 되짚어보는 작업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주유신, 14쪽

동시대의 요청에 따른 가장 대중적인 문화 프레임으로서 장르를 발견한 김기덕은 그것을 덜 자의식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도전적이지는 않은 태도로 다룬다. 심지어 그는 거의 모든 장르를 횡단하다시피 했지만 많은 장르를 섭렵하는 것이 그의 관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 장르 그 자체가 아니라 60년대 한국사회라는 콘텍스트와 그 속에 놓여 있는 당대인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김기덕의 장르영화가 가진 특징들 즉 새로운 관객층의 유도, 스타 시스템의 활용, 자기 복제와 리메이크, 다른 매체로부터 온 서사의 영화적 번역, 다른 국가의 영화로부터의 영향, 혼종 장르적인 성격 등은 동시대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적인 콘텍스트에 대한 그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적 비전을 넘어서서 다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모험가 기질로 충만한 이 대중친화적인 감독에겐 장르적 무의식 같은 게 있었는지도. 당대 '흥행보증수표'로서 최대 다수의 대중과 교감을 나누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이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1960년대, 이 다작 장인의 장르적 상상력은 작가 감독의 예술적 의지만큼이나 인상적이다.
- 강소원, 101쪽

이러한 방식으로 김기덕의 영화는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추구가 얼마나 타나토스와 가까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애정서사는 단순히 통속적 기법의 차원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기덕 식의 사랑의 서사는 사실상 공동체의 현실에 잠복해 있는 폭력과 억압의 구조와 실상으로부터 출현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목숨 건 사랑은 말 그대로 어떤 현실적인 조건이나 상황도 돌보지 않은 채 사랑 그 자체를 향해 응집되는 맹목적인 파토스이다. 운명적 사랑에 도취한 그들은 단순히 세속적인 규범에서 일탈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 안락에 반하는, 인간 존재에 내재하는 운명을 스스로 실현한 것이다. 이렇듯 그들의 미친 사랑이 세속의 삶을 파괴하는 정열의 근본임을 고려하면 그것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결말이 된다. 그 죽음은 그들의 사랑이 처음부터 요구하고 있었던 세속의 부정, 그것의 완성이다.
- 오영숙, 136~137


김기덕 감독 약력
1930년 9월 28일 서울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1년 <5인의 해병>이란 전쟁영화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많게는 한 해 여덟 편 그리고 적게는 한 두 편씩 20여 년 동안 7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정열적으로 만들었다. 그 영화들을 대충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962년에 <가정교사>, <77번 미스 김>, 1964년에 <천안삼거리>,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1965년에 <남과 북>, <용사는 살아 있다> 1966년에 <말띠신부>, <종점>, 1967년에 <여대생 사장>, <내멋에 산다>, <대괴수 용가리>, 1968년에 <아네모네 마담>, <성난 대지>, 1969년에 <샹하이부르스>, <남의 속도 모르고> 등을 만들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도 감독의 다작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71년에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명동 부루스>, 1971년에 <열아홉 순정>, <캬츄사>, 1972년에 <결혼반지>, <별이 빛나는 밤에, 1973년에 <하숙인생>, 1974년에 <유관순>, <꽃상여>, 1975년에 <가수왕> 그리고 1977년에 <영광의 9회말>을 만들었다.
-『한국영화감독 사전』, 한국영화감독협회, 65~66

목차

목차
인사말
김기덕: 장르의 발견자, 대중문화의 창조자 - 주유신
거의 모든 장르의 이름으로 - 강소원
사나이 되기의 강박과 순정: 1960년대와 김기덕 영화 - 오영숙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의 삶, 총체적 영화인? 김기덕 - 주유신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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