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역사를 쓰다

이이화 저 | 한겨레출판 | 2011년 07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40.00
판매가
$22.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44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84314825 / 523쪽 152 x 21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당대의 역사가가 쓴, 너무나 진솔한 자서전 역사가가 쓴 자서전은 그리 많지 않다. 학계의 주류에 있던 이들이 회갑연이나 정년퇴임 등의 기념일에 맞춰 서둘러 출간하는 자기 중심적 서술로 일관한 책들이 넘쳐나긴 하지만, 오랜 집필 과정을 거친 진솔한 회고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010년 강만길 선생의 『역사가의 시간』이 출간되어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편 강만길 선생과 이이화 선생은 같은 진보학계의 진영에 있지만, 역사학자로서 성장한 내력은 판이하다. 강만길 선생은 기존의 보수적 역사학계의 반... 당대의 역사가가 쓴, 너무나 진솔한 자서전 역사가가 쓴 자서전은 그리 많지 않다. 학계의 주류에 있던 이들이 회갑연이나 정년퇴임 등의 기념일에 맞춰 서둘러 출간하는 자기 중심적 서술로 일관한 책들이 넘쳐나긴 하지만, 오랜 집필 과정을 거친 진솔한 회고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010년 강만길 선생의 『역사가의 시간』이 출간되어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편 강만길 선생과 이이화 선생은 같은 진보학계의 진영에 있지만, 역사학자로서 성장한 내력은 판이하다. 강만길 선생은 기존의 보수적 역사학계의 반대편에서 최초로 분단 시대의 역사학을 주창하고, 좌익계열의 독립운동 활동을 우리 독립운동사에 포함시킴으로써 근현대사 연구의 큰 족적을 남겼지만, 선생 역시 기성학계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반면 이이화 선생은 고졸 학력에 제대로 된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다. 팔삭둥이 서자로 태어나 작은 키와 허약한 체질의 신체적 조건을 지닌 채, 전국의 고아원을 전전하며 공부의 꿈을 키웠다. 이이화 선생이 짊어진 삶의 조건은 대다수 국민들이 궁핍했던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전후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주역의 대가 아버지 이달 선생에게 배운 한문 실력과 남다른 총기,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선생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당대 최고의 역사가가 되었다. 당대의 역사가가 쓴 ‘자신의 역사’는 어떤 무늬를 빚을 것인가? 그는 ‘진솔함과 자기 과시의 차이’에서 긴장했다고 담담히 밝히지만, 이 책의 미덕은 단연 ‘진솔함’이다. 감추고 싶은 가족사, 남달리 혹독한 유년기 청년기를 거쳐온 신고의 세월을 선생은 진실하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철저하지 못했던 정직성이나 민주운동 과정에서 한 발 뒤에 서 소심히 방관했던 부끄러움도 이 자서전에 담아냈다. 가출 소년에서 민중의 역사가로 그는 가출 소년이었다. 신학문을 배우는 것은 일본놈이 되는 것이라는 부친의 엄격한 신념에 따라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한문만을 배웠다.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전쟁통에 고아원에 들어가면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의 고아원을 전전했다. 명문 광주고등학교에 들어가 ‘여관뽀이’ 생활을 하며, 생애 유일한 졸업장을 손에 쥐지만, ‘문학도’의 꿈을 안고 들어간 서라벌예술대학은 1년을 채 다니지 못한다. 그러고는 먹고살기 위한 십수 가지 직업을 거친다. 가짜로 서울대 배지를 달고 문제집 장사를 하기도 하고, 아이스케끼, 빈대약, 가루치약 장사, 보험사 외무원, 술집 웨이터, 급기야 매혈까지. 큰 장애물이었던 병역 문제가 해결되고, 역사가로서 출발하는 큰 계기를 마련해준 동아일보사 연감 작업 임시직이 된 것이 선생의 나이 서른한 살 때다. 인생의 승부처였다. 선생은 국립도서관과 동아일보사 조사부의 책을 훑으며 평생 한국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는다. 당시 이이화가 동아일보사 조사부 책을 다 읽었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부친에게 배운 한문 실력과 문학도로서의 글쓰기 능력, 그리고 본인이 체험한 ‘민중적 삶’이 결부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창작과비평》《신동아》《뿌리깊은나무》《월간중앙》 등의 매체에 실리고, 독자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역사 텍스트’에 열렬히 호응한다. 한편 척사위정과 북벌론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담은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기성학계에서도 소장 역사학자로 인정을 받고, 민족문화추진회의 국역위원, 규장각 고전 해제 집필, 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 등을 거치며 기존의 학제에서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 전업 역사저술가의 롤 모델 선생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생각이 삐딱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말하는데, 선생의 굴곡진 삶과 바로 그 ‘삐딱한 생각’은 남들과는 다르게 역사를 바라보는 이이화식 시선의 바탕이 된다. 1970년대 말 무렵부터 이미 영호남의 지역감정이나 파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한국의 파벌’이란 제목으로 한국사 속의 당파, 지벌, 문벌, 학벌 문제를 《월간중앙》에 연재해 인기를 얻었으며, 이미 알려진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기존의 내용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해석을 던졌다. 폐륜적 폭군으로 폄하되었던 광해군을 새로이 조명했으며, 정여립ㆍ강홍립ㆍ정인홍 등 역적으로 알려진 인물을 재평가하고, 전봉준ㆍ이필제 등의 동학지도자, 신돌석ㆍ장지필 등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인물들을 발굴했다. 역사 속의 잊혀진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하거나 특정 사건을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식의 역사 서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90년대 이후임을 감안했을 때, 이이화 선생의 당시 작업은 명실공히 선구적이었다. 물론 역사 집필가로서 선생의 능력과 안목, 그리고 치열한 열정이 집대성된 작업은 10년간의 집필과정을 거쳐 원고지 2만7천 매에 새겨진 22권의 한국통사 『한국사 이야기』였다. 『한국사 이야기』라는 ‘역사를 쓰다’ 한반도의 빙하기부터 거슬러 올라가 1945년 해방까지의 한국통사를 22권의 책으로 한 개인이 집필한 것은 전대미문의 작업이었다. 집필 기간과 분량만이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선생은 ‘역사에서의 평등’이라는 자신만의 화두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왕조사ㆍ정치사ㆍ사건사 위주의 역사 서술이 아닌 역사의 또 다른 주인으로서 일반 백성, 노비, 백정, 여성 등 민중들의 삶과 생활사를 포괄한 ‘완전히 새로운 한국사’를 펴냈다. 서술 방식도 논문식이 아닌, 일반인의 눈높이를 염두에 둔 이야기체를 지향했다. 이러한 역사 서술은, 누구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길 위의 역사가로서의 삶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문헌에 파묻히지 않고, 전국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기록을 발굴하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채록했다. 선생이 오랫동안 관여하고 활동한 역사문제연구소의 중요한 행동과제가 ‘현장 답사’였던 것이나, 자서전 속에 담긴 많은 내용이 답사나 역사 기행, 역사 강좌 등에 할애된 까닭도 그와 맥락을 같이한다. 역사가의 시대정신 선생이 인생의 후반기, 역사 집필뿐만 아니라 역사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게 된 내력도 그와 이어진다. 선생만의 독보적 영역을 이룬 주전공 분야가 ‘동학농민전쟁’ 연구라 할 수 있는데, 선생은 관련 저서의 집필에 그치지 않고 ‘동학농민운동사의 재조명’이라는 사회운동으로 확장한다. 이는 선생이 뒤에 고구려사 보전 운동, 과거사 정리 운동, 친일청산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행보와도 연결된다. 자신의 생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지나온 ‘사회’와 ‘세계’를 돌아보는 것이며, 그 ‘세계와 맞섰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리라. 이 자서전을 통해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성찰과 독서의 감흥이 그다지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생을 들여다보는 역사가의 렌즈가 자서전의 흔한 맹점이라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의 흔적을 공들여 걷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글] 이이화, 그의 인생 역정은 한 편의 소설이다. 그는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랐다. 공식 학력은 고졸이다. 서러움이 얽혀 있는 생래적 소수자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 무렵 한문 공부만 시키던 아버지 곁을 떠나 시와 소설 등 많은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다. 그 문학 체험을 통해 그는 소수자냐 아니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고뇌하고, 성취하고, 열망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기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평생의 영감을 얻었다. 이

저자 소개

  • 저자 : 이이화
저자 이이화는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태어나, 부친인 한학자이자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 선생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 열여섯 살 무렵 집을 나와 부산·여수·광주 등을 떠돌다 여관 종업원 노릇을 하며 광주고를 졸업했다.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해 ‘문학청년’의 꿈을 키웠지만,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중퇴하고, 아이스케키·빈대약장수·술집웨이터·가정교사 등 20여 가지 직업을 거쳤다. 이십대 후반 무렵 본격적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겠다 결심하고, 동아일보사 출판부와 색인실 임시직을 거쳐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 서울대 규장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에서 고전과 역사를 연구했다.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때 참여한 뒤 연구소장이자 《역사비평》 편집인으로서 동학농민전쟁 등 민중·생활사 연구와 역사답사기행 등을 주도하며 역사 대중화에 나섰다. 이렇듯 독학으로 ‘역사학자’의 길을 개척하면서 ‘민중사·문화사ㆍ생활사’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일궈냈다. 특히 1995년부터 10년 동안 칩거하며 써낸 한국통사인 『한국사 이야기』(22권)는 필생의 역작으로 꼽힌다. 역사학자로서 저술뿐만 아니라 ‘역사바로잡기운동’이나 ‘과거사 청산’ 등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역사운동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등을 맡았고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단체 조사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했다.

목차

목차
머리글|진솔함과 자기 과시의 차이
1장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
가출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
역사 공부의 밑천이 된 한문을 배우다
2장 고학의 길
소설을 읽으며 꿈꾼 새로운 세상
고아원 생활
유일한 학력증서, 광주고 졸업장
짧은 대학생활
고단했던 밥벌이

3장 편집자에서 한국사 집필가로
번듯한 학사과정, 동아일보사 임시직 시절
학계에 데뷔하다
4장 대중 속으로 들어간 역사학
일반 독자들이 읽을 역사 글을 쓰다
서울대 규장각 시절
10·26과 서울의 봄
아치울에 정착하다
대중들과 함께 호흡한 역사기행·역사강좌
5장 역사문제연구소와
신군부 독재에 맞선 '역사문제연구소' 발족
을 창간하다
6월 항쟁 이후의 변화들
6장 한국사의 흔적을 찾아서, 미개척지 중국 답사
한국사의 미개척지, 수교 전인 중국 답사
박완서·송우혜 선생과 함께한 두 번째 중국 답사
'조선의용군'의 흔적을 찾아나선 중국 서쪽 답사
실록 사건과 세 번째 중국 답사
7장 동학 농민군의 역사를 재조명하다
동학농민전쟁 백주년 기념사업 추진 '선봉장'맡아
동학군을 재조명한 실질적 주역, 향토사학자들
동학농민혁명 100돌 사업의 성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출범
8장 민족, 민중을 중심에 둔 첫 '한국사 이야기'
평생의 소원, 한국통사 집필
고대사와 고려사를 각 4권으로 출간하다
집필의 피로를 덜어준 문밖 나들이
10년 결실, 22권의 한국통사 완간
9장 고구려사 보전과 과거사 청산
고구려사 지키기와 동북공정
남북학자들이 함께한 고려사 학술토론
과거사 청산의 중심, 민간인 학살 문제
과거사 정리법 통과와 한계
10장 역사의 현장에서
통합민주당 공천 심사에 참여하다
촛불의 현장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다
압록강·두만강 국경지대 탐방
친일 문제와 국치 100년
에필로그|남기고 싶은 가족 이야기
연보
논문 및 저서
인명 찾아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