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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 1 민주주의에서 권력붕괴 문제에 관한 연구
시리즈 :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83]
칼 디트리히 브라허 저 | 이병련 역 | 나남 | 2011년 02월
ISBN : 9788930085571 / 512쪽 150 x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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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칼 디트리히 브라허의 명저인《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를 번역한 것이다. 브라허는 이른바 ‘고사포대 보조원 세대’(Flakhelfergeneration)에 속하며 바이마르공화국 말기와 나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미군 포로로 미국 본토에 끌려가 소련군 포로들과는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청소년기의 경험은 전후 그의 학문형성에 지속적 영향을 미쳤다. 그 세대 학자들의 주된 인식관심은 바이마르의 파국을 피하고 전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안정된 기반 위에 구축할 것... 이 책은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칼 디트리히 브라허의 명저인《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를 번역한 것이다. 브라허는 이른바 ‘고사포대 보조원 세대’(Flakhelfergeneration)에 속하며 바이마르공화국 말기와 나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미군 포로로 미국 본토에 끌려가 소련군 포로들과는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청소년기의 경험은 전후 그의 학문형성에 지속적 영향을 미쳤다. 그 세대 학자들의 주된 인식관심은 바이마르의 파국을 피하고 전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안정된 기반 위에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는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좌파와 우파 전체주의, 곧 공산주의와 나치운동으로부터 협공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식은 전후 그의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인식을 깊이 각인하였다. 그는 구동독 사통당(SED)의 독재를 처음으로 독일 “제2의 독재”라고 규정했다.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내독관계가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의 이러한 태도는 별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동독의 사통당 정권이 무너지고 국가안전부를 통한 사통당 독재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그는 자신의 진단이 맞았음을 재확인하였다. 그는 동시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동유럽 및 동남부유럽의 탈냉전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새로운 대체 이데올로기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촉구했다. 그가 학문적인 경력을 출발했던 아데나워 시기는 총리민주주의(Kanzlerdemokratie) 시기라고 일컬어지며 권위주의적 요소가 아직 많이 잔존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정치적으로 사민당과 더 가까운 입장을 취했지만, 이 시기 자신의 입장을 ‘좌파자유주의적’(linksliberal)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달만(Friedrich Christoph Dahlmann)이나 테오도어 호이스(Theodor Heuss),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의미에서 구자유주의적이거나 온건자유주의적”이라고 밝혔다. 1960년대 중반에 신좌파 학생운동이 격렬해지면서 그는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다. 좌파급진주의가 아직 충분히 공고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서독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나치 지배에 대한 파시즘적 해석이 헤게모니를 장악했지만 그는 수미일관 단호하게 전체주의 개념을 대변하였다. 그는 파시즘론이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지배형태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무시하고 있으며 나치즘의 반유태주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의 전체주의론은 하지만 나치 지배체제에서 히틀러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의도주의자’(intentionist 혹은 intentionalist)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책《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는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해외의 정치학자들이나 역사가들 그리고 서독의 다양한 진영에 속한 식견이 풍부한 저널리스트들의 소개로 그의 저서는 두터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곧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책은 수십 년간 바이마르공화국에 대한 필독서로 소장 연구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의 사회사가 게르하르트 A.리터(Gerhard A.Ritter)는 이 책이 “독일의 두 번째 민주주의도 실패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바이마르의 실패로부터 미래를 위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1945년 이후 자기 세대에게 결정적인 문제에 “아주 설득력 있는 답”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에버하르트 콜브(Eberhard Kolb)는 이 책이 “바이마르 독일의 권력구조에 대한 섬세한 분석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이를 능가하는 책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이 연구는 “각 개별인물들과 사회집단들의 책임”을 정확히 규정하려고 시도하며 구엘리트들의 책임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디 차이트〉(Die Zeit)는 1984년 7월 20일 이 책을 100권의 가장 중요한 비소설류 책으로 선정하였다. 위르겐 다니엘(Jurgen Danyel)과 마틴 자브로우(Martin Sabrow)가 최근에 편집한《현대사 고전 50선》은 브라허의《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뿐만 아니라 그가 볼프강 자오어(Wolfgang Sauer)와 게르하르트 슐츠(Gerhard Schulz)와 함께 1960년에 출간한《나치의 권력장악》도 고전의 반열에 올렸다. 브라허는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의 전쟁목표에 대한 피셔논쟁이나 1968년의 학생봉기 이전에 이미 과거청산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바이마르공화국의 해체》는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20세기 ‘극단의 시대’의 본질적인 화두와 씨름한 현대적 고전으로서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들과 구조들을 경계하고 자기방어 능력을 갖춘 건강하고 힘 있는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를 모색하는 데 큰 교훈을 줄 것이다.
그에 반하여 독일 지역에서는 군주제적 절대주의가 훨씬 더 확고한 기반 위에 서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과 요셉2세의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랑스의 경우 혁명을 야기했던 내부의 과다한 폐해들을 위로부터의 제한된 개혁을 통하여 다만 경감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근본적 변혁을 회피하려는 노력이 보다 일관되게 진행되었으며 또한 보다 성공적이었다. 비록 독일인들이 혁명운동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독일이 장기간에 걸쳐서 유럽과 동일한 사상에 의해 지배받고 비슷한 정치운동에 의해 이끌려지던 마지막 국면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계몽사상 출판업자들, 정치가들, 철학자들, 작가들은 유럽적 경향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독일에 독자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이 내정적 변형, 절대주의적 독재, 끊임없이 팽창하는 대중사회에서 부르주아층의 정치적 각성에만 국한하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들의 계획을 용이하게 함과 동시에 초민족적 소명감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대외적 성공을 찾았으며 프랑스의 민족적 이해관계의 의미에서 민주혁명의 사상을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전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러한 침략군의 장군이었던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젊은 민주주의에 대한 독재권력을 획득했으며 그의 정복전쟁을 전 유럽으로 확장했다. 이것은 아직도 여전히 진보적 혁명의 이름으로, 곧 인민들을 절대주의 지배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하에 일어났다. 그러나 프랑스 점령이 주는 부담이 절대주의 지배 못지않게 무거운 것으로 드러나게 됨에 따라, 그에 대한 열광과 신뢰는 즉시 무너졌다. 자유주의적 자유사상은 이제―외정적인 것으로의 심각한 전환과 함께―나폴레옹적인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데올로기로 변하였다. 그것은 동시대인들의 눈에 이 독재를 야기한 혁명을 반대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지속적 불신, 그 치명적 영향을 프랑스혁명의 경과가 입증하는 것으로 보였던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독일의 민족의식의 불신이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문화정책의 영역에 국한되어 전개되었던 반(反)‘서구화’ 투쟁이 이제는 본래적인 정치의 차원에서 벌어지게 되어, 서구적 사상에 대립하여 독일적 자생성이라는 구호를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목차
- 옮긴이 머리말 5
- 문고판 머리말 9
- 머리말 23
제1부 권력구조의 문제
제1장 바이마르공화국의 형성에 대하여 41
1. 19세기 민주주의의 딜레마 41
2. 세계대전으로부터 혁명으로 55
3. 1918년 신질서의 문제들 62
4. 바이마르의 타협구조 70
제2장 의회민주주의에서 대통령제 국가로 81
1. 제국의회의 권력상실 82
2. 정당국가에 대한 비판 95
3. 의회주의 사상의 위기 106
4. 제국대통령들의 지위: 에버트에서 힌덴부르크까지 110
5. 헌법 제48조에 따른 독재권력 116
6.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로의 전환 123
제3장 민주적 공간에 있는 정당들 133
1. 정당의 기능과 성격에 대하여 134
2. 사민당의 딜레마 142
3. 정당구조의 경직화 153
4. 독일민족인민당(DNVP)의 문제와 민주적 중도 162
5. 민주적 정당체제의 허약함 178
제4장 전체주의적 정당들의 발흥 183
1. 전체주의적 급진주의의 특징들 183
2. 공산당의 발전과정 191
3. 나치당의 성장 201
4. 나치 이데올로기 209
5. 나치당의 조직, 선전 그리고 전술 221
제5장 정치적 공간에서의 급진운동 239
1. 청년운동과 연합체들 240
2. 철모단의 발전 251
3. 전투적 투쟁단체들과 온건한 투쟁단체들 258
4. 당군대(黨軍隊)의 등장 267
5. 보론: 대학생들의 급진화 273
제6장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조 279
1. 정치의식의 위기 280
2. 이데올로기적 흐름들 285
3. 사회 계층구조의 변화와 중간계급의 위기 293
4. 방어이데올로기와 급진화 303
5. 나치당의 중간계급 침투 311
제7장 관료제 문제 319
1. 문제의 근본 320
2. 직업공무원층을 둘러싼 투쟁 328
3. 관료제와 공화국 340
4. “제3제국”으로의 길 345
5. “사법부의 정치화” 348
제8장 경제정책적 권력구조 361
1. 이익집단의 정책 362
2. 세계경제 대공황의 시작 376
3. 경제발전의 구조적 문제점들 385
4. 집중운동 391
5. 보론: 경제공황기의 경기변동 398
제9장 제국군대 407
1. 베르사유 조약: 국방정책적인 측면들 408
2. 전통과 혁명 420
3. 지휘부 조직의 건설 436
4. 제국군대 내부의 구조 448
5. 군부의 정치적 전술과 전략 463
6. 슐라이허와 군수문제 471
7. 위기에 처한 국가에서의 군부 484
찾아보기 4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