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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5661763 / 35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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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일본 근대화를 이끈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19세기 후반은 일본 역사의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던 일대 전환기였다. 봉건체제 아래 있던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그 체제에서 벗어나 근대 사회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으며, 내셔널리즘의 통용으로 인해 서구 열강으로부터 개국을 강요당하던 과거와는 달리 어느새 그 열강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서구에 비해 뒤늦게 자본주의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일본에게 선진 자본주의를 따라잡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가장 큰 국가적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러한 과제에 대한 방안으로 ‘서구문명의 도입으로 인한 근대화의 추진’을 제시했다. 그의 사상이 등장한 이후 일본의 근대화는 유럽세계에서 영향을 받아 수동적인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아시아를 대표해 유럽 열강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꿈은 분명 선진 문명을 가져왔지만, 결국 전 아시아를 하나로 영속하기 위한 야심으로 전락하면서 정작 일본이 속한 아시아로부터 벗어난 꼴이 되었다.
이번에 펴낸 ‘인문고전 깊이읽기’ 『후쿠자와 유키치-새로운 문명의 논리』는 일본 근대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후쿠자와 유키치의 생애와 저서를 총 8가지 주제로 엮었다. 원전에서 인용한 글과 저자의 해설을 통해 그의 이론을 읽어내는 한편, 당시 일본의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의 1만 엔짜리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일본 내에선 크게 추앙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았으며, 대중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 전말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다시 읽으면서 당시 일본의 근대화와 한국의 정세도 재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통해 배우고 실천하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인 변화를 알려면 크게 그의 생애를 3기로 나누어 살펴봐야 한다. 제1기는 그가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의문을 품고, 유럽과 미국의 문명을 모델로 한 근대문명의 규범을 스스로 확립하는 때다. 당시 외무성 책임국장의 번역관 신분이 된 그는 영지인 나카쓰를 벗어나 나가사키, 오사카, 에도로 터전을 옮겼고,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를 직접 체험하면서 한학(漢學)에서 양학(洋學)으로 학문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또한 ‘문명’이라는 개념을 서서히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번역과 저술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나갔는데,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서양사정』이다. 이 책은 서양사회의 제도와 사회상, 이념 등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와 미국·네덜란드·영국·러시아·프랑스 등 각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일본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서구 사회와 부딪쳤을 때 느낀 놀라움과 경이로움, 이로부터 발견한 실상을 전하는 한편, ‘freedom’과 ‘liberty’에 맞는 일어 개념으로, 각각 ‘자유임의’ 또는 ‘자유’ 등의 번역어를 쓰면서 이를 일본에 도입하기도 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건대, 오직 서양의 학문과 기술을 강구할 따름이지 그 각국의 정치와 풍속이 어떠한지를 상세히 기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령 그 학문과 기술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의 근본에 반하지 않음으로써, 단지 실익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해악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도 역시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각국의 정치와 풍속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읽는 것이 우선이다.”(본문 68쪽)
그는 근대 자본주의 체계를 가치 기준으로 삼아 일본의 봉건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즉 정치와 문화부터 출발해 근대 사회를 근본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자유, 신교의 자유, 기술과 학문의 장려,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교육하는 것, 법치제도를 확립해 민생을 책임지는 것 등 여섯 가지 항목을 자세히 다루면서 막부정권의 정치만이 유일무이한 정치형태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각종 조세법, 국채, 지폐, 사회시설 등 경제 분야와 사회복지 부분까지 언급하면서 당시 일본의 봉건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익’의 문제까지 살펴보고 있다.
개인의 독립이 곧 나라의 독립이다
서양의 문물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일본 사회를 직시하고 비판하는 저술 활동을 펼친다. 제2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근대 문명의 지도자로서 그의 이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때로, 『학문의 권유』 『문명론의 개략』 등을 펴내면서 문명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서구 문명과 함께 전승되는 이념과 제도 등을 통해서 일본인을 교화하고 일본 사람을 진정한 국민으로 길러내려고 했다. 그는 문명이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것임을 역설했다. 수많은 독자들이 그에 의해 이성적인 정신을 가진 국민으로 바뀌게 되었고, 용기를 얻었으며, 의욕적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갔다고 한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만인 공히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타고난 귀천과 상하의 차별 없이, 만물의 영장답게 심신의 활동으로 천지간에 존재하는 온갖 것을 취하여 이로써 의식주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유자재, 서로 남을 방해하지 않고 각자 안락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자는 취지인 것이다.”(본문 88쪽~89쪽)
후쿠자와는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일상생활에 가까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추구하면서 유교적 사유방법의 독단성과 관념론을 해체하려 했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개인의 독립’이다. 독립하겠다는 마음이 절실한 국민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이는 곧 국가 독립의 기초가 된다고 전파했다.
‘탈아론’, 아시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다
제3기는 1882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1901년 후쿠자와가 생을 마칠 때까지로, 일본 최초로 헌법이 공포되고 청일전쟁을 벌이는 등 국내외적으로 근대 일본의 진로에서 극도로 중대한 국면을 맞은 시기였다. 이 무렵의 후쿠자와는 적어도 외견상으로 볼 때 제2기와는 현저하게 다른 사상가로 변모했고, 적극적으로 메이지 정부의 대외정책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국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다 하나, 국민의 정신은 일찍이 아시아의 고루를 벗어나 서양의 문명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행한 것은 이웃 나라 문제로 인함이니, 하나를 중국이라 하고 하나를 조선이라 한다……. 나의 견식으로 이 양국은 현대의 문명이 동쪽으로 점차 이동하는 상황에서 도저히 그 독립을 유지할 대책이 없다.”(본문 303쪽~304쪽)
이 시기의 그는 오로지 ‘부국강병’의 논리에만 몰두해 과격한 정치사설을 발표했다. 또한 지배와 차별의 관념에 입각해서 이웃 나라인 한국, 중국과는 결별하고 향후 구미 열강의 일원으로서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겠다는 의지로 일관했다. 특히 메이지 정부가 주도한 대외침략의 논리를 이론화시킨 그의 ‘탈아론’(脫亞論)은 일본인의 정신적인 이상으로 계승되면서, 이후 한국 침략과 만주사변 이후의 아시아 대륙 침략에 이르기까지 구체화·현실화되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 제국주의의 이론적 출구 역할을 자처하면서, 문명과 진보를 주장하던 선구적인 그의 사상도 아시아의 긴장관계를 더욱 심화시킨 ‘탈아론’에 묻혀 한계를 맞게 된다. 청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 패망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근대 일본에서는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전통적 인식의 틀이 무너졌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아픈 역사 속에 한일감정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독도영유권 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 일본은 여전히 역사와 진실 앞에서 반성하고 사죄하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족적은, 근대 일본이 피해갈 수 없었던 수많은 문제, 이를테면 근대화는 곧 서구화인가, 국가가 우선인가 개인이 우선인가, 일본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 특히 그중에서도 한국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일본이 새삼 다시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