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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백승종 저 | 푸른역사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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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79448 / 407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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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강이천 사건으로 18세기 조선의 열망과 좌절을 되살리다 영정조 시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흔히 영정조 시대를 두고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특히 정조 대는 조선의 마지막 황금?기라 불린다. 정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통해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꾀했던 영조를 이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규장각을 세워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극 등용했다. 영조의 뜻을 받들어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실시, 인물 본위로 관리를 선발하려 애썼다. 이 같은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홍재전서》 등 ... 강이천 사건으로 18세기 조선의 열망과 좌절을 되살리다 영정조 시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흔히 영정조 시대를 두고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 일컫는다. 특히 정조 대는 조선의 마지막 황금기라 불린다. 정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통해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꾀했던 영조를 이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규장각을 세워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적극 등용했다. 영조의 뜻을 받들어 탕평책을 지속적으로 실시, 인물 본위로 관리를 선발하려 애썼다. 이 같은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 속에서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홍재전서》 등 편찬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문예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영정조 시대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다분히 평면적이다. 그것만으로는 당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의 삶의 자취들, 그들의 망설임과 혼란과 고독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당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다양한 인간군상의 삶을 묻어버린다.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등을 통해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전략들을 파헤쳐 역사적 인간에 호흡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은 백승종은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에서 18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얼굴을 부조해낸다. 저자는 1791년에 벌어진 한 사건의 관련 기록을 차례로 분석함으로써 강이천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지식인들과 국왕 정조 사이에 심각한 ‘문화투쟁’이 전개되었음을 밝힌다. 18세기 조선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책은 그때 그 사람들의 열망과 좌절, 바람과 분투를 절실하게 그려낸다. 정조와 강이천의 문화투쟁, 18세기 조선사회를 읽는 새로운 방식 표암 강세황의 손자로 이를테면 당대의 불량선비로 간주된 강이천姜彛天(1768~1801)과 그의 재주를 아끼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긴 국왕 정조正祖(1752~1800)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들이 벌인 ‘문화투쟁’, 즉 문화적 지배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책의 주제다. 1797년 11월, 강이천은 허랑한 소문으로 혹세무민한 죄로 유배를 간다. 정조는 이 사건을 계기로 패관소품稗官小品을 더욱 철저히 금지한다. 문체반정을 밀어붙인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시험 답안지의 글씨체까지 엄격히 통제한다. 얼핏 보면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태의 연이은 발생에 주목한 저자는 내적 관련성을 찾아낸다. 저자는 문학사조로서 소품문, 당시 기성권력을 위협하고 있던 《정감록鄭鑑綠》을 비롯한 종교ㆍ사회운동, 그리고 반체제 문화운동으로까지 인식되던 천주교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1797년에 일어난 문제의 사건을 파헤친다. 그의 시선에 포착된 강이천 사건은 주류문화인 성리학과 천주교 및 정감록 등의 소문화 집단 간의 대립을 상징했다. 문화투쟁은 18세기 조선을 심층적으로 읽어내는 새로운 코드다. 중층적 서사와 〈연구노트〉의 작성, 새로운 역사 쓰기의 전형을 보여주다 저자 백승종은 근대적 역사학의 한계에 도전한다. 역사적 사실이란 무수한 파편 조각일 뿐이며 애당초 사실의 파편들은 서로 무질서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저자라서 중층적인 서사가 시도된다. 저자는 강이천 사건에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갈등,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전략의 충돌을 짚어낸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그날그날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중요 자료의 번역과 사료 비판 및 2차 자료의 요약과 비평이 꼬박꼬박 기록되었다. 그런 만큼 이 책에는 역사 쓰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점들이 많다. 우선 사료를 읽는 방법이며, 하나의 연구 주제를 다루는 동안 역사가에게 떠오르기 마련인 여러 가지 고민의 흔적이 여실하다. 가설을 설정하고, 사료를 살핀 후 그것을 수정ㆍ보완하는 작업 그리고 연구 도중 자신의 역사관을 성찰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책은 한 권의 역사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정조와 강이천, 시대를 다르게 인식하다 18세기 조선, 불온한 상상력으로 물들다 18세기 조선에는 당시 지배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몇 가지 불온한 사조가 있었다. 첫째, 바다의 섬에서 진인眞人이 군대를 끌고 나타나 삽시간에 조선을 멸망시키고야 말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러한 예언이 조선 사회에 횡행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조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독 심해진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고, 더욱이 강이천과 같은 명류名流 출신이 예언에 빠져 감히 역모를 꿈꾸기까지 한 것은 정조 때였다. 둘째, 지배층이 이단으로 규정해 뿌리 뽑으려 한 천주교의 교세도 점차 확산 중이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성리학이었다. 거기에 불교와 도교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유불선儒彿仙 삼교로는 채워지지 않는 문화적 갈망에 목말라 하던 일부 선비들이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천주교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잦아졌다. 셋째, 명말청초에 유행하던 ‘패관소품’을 즐기는 양반들 또한 늘어났다. 새로운 문예풍조였던 패관소품은 정조와 지배층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패관소품을 유행시킨 중국 작가들이 정통 성리학과는 거리가 먼 양명학자거나 고증학자로서, 전통적인 성리학이 표방해온 이념과 가치를 폄훼하는 불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패관소품은 가냘프고, 삐뚤어진 글이었다. 그런데 명나라가 망한 이유를 그러한 패관소품의 특징에 돌리는 이들이 많았다. 패관소품 탓에 명나라가 망했다는 수군거림이 널리 퍼진 것이다. 조선의 멸망을 점치는 예언의 만연, 왕이 아닌 천주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믿음을 근간으로 하는 새 종교의 전파, 성리학적 사고에 반기를 든 패관소품의 유행은, 국왕을 비롯한 보수지배층으로서는 묵과하기 어려운 혹세무민의 불온한 사조였다. 18세기, 새로운 기회의 시대인가 위기의 시대인가 저자는 이런 18세기 시대상황을 강이천과 정조가 정반대 쪽에서 바라봤다고 진단한다. 한 사람(강이천)은 새로운 기회의 시대로, 다른 사람(정조)은 위기의 시대로 인식했다는 주장이다. 강이천이 18세기 조선에서 변화의 희망을 찾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사회적 상상력’이 깨어난 까닭인데, 이것은 당시 조선사회의 문화적 변화에서 추동되었다 한다. 그러나 정조 입장은 달랐다. 왕은 18세기 조선의 위기담론을 앞장서 이끌었다. 저자는 정조가 강이천 등이 꿈꾼 이상사회를 ‘망상’ 또는 ‘공상’으로 치부하고 위험시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당시 이상사회에의 열망이 확산된 원인을 정조는 체제의 자체모순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사조에서 찾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소품문小品文’의 악영향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정조의 ‘소품문’ 퇴치 노력은 그러한 현실 진단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였다. 강이천 사건은 시대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파악한 양 진영의 충돌이었다. 두 주인공, 강이천과 정조 강이천, 새 세상을 꿈꾼 이상주의자 강이천은 ‘소북小北’을 대표하는 명가의 후예였다. 이름난 화가요 문인이었던 표암 강세황이 그의 할아버지였다. 시서화에 능한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강이천도 어려서부터 특출한 문학적 재능을 뽐냈다. 열두 살 되던 1779년 정조의 부름을 받아 궁궐에 들어가 시를 지어 왕의 칭찬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열일곱에는 벌써 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당대 사회가 요구하던 성리학 공부에 매몰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시대를 고뇌했다. 성리학 지상주의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이상을 키웠다. 그리고 운명이 자신을 완전히 추락시킬

저자 소개

  • 저자 : 백승종
저자 백승종은 1990년대부터 미시사의 실천운동에 전념해왔다. 그의 연구는 재량권, 생존전략 및 문화투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집약되는데 이 책은 문화투쟁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연구는 주로 한국의 예?언문화사에 집중된 결과,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2007),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2006), 《한국의 예언문화사》(2006) 등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미시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서 《미시사의 즐거움》(공역, 2003)과 《미시사와 거시사》(공역, 2001)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이다. 그는 미시사 연구를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가족 및 마을생활에 적용하고, 근현대 한국의 문화사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싶어 했다. 《조선의 통치철학》(공저, 2010)을 비롯해 The Stem Family in Eurasian Perspective(Population, Family, and Society/ Population, Famille Et Societe)(공저, 2009),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2003), 《그 나라의 역사와 말》(2002),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추억》(2000), 《아버지 난 누구예요》(편저, 2000), 《한국사회사연구》(1996) 등에서 저자의 이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부터 저자는 국내외 여러 대학교 및 연구기관에 근무하며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독일의 튀빙겐대학교(재직기간 1990∼1999)를 시작으로, 서강대학교(1999∼2003), 프랑스 국립 고등사회과학원(2000), 독일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1995, 1996, 2001, 2002∼2003),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2004), 독일 보훔대학교(2003, 2009) 등 여러 곳을 거쳤다. 지난해부터 저자는 충청남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연구에 착수했다.

목차

목차
머리말
강이천 사건 연보
1장 작업 가설-18세기 조선, 불온한 상상력으로 물들다
첫 인상
세 사람, 강이천과 김건순 그리고 정조
또 하나의 의문-천주교와 정감록
연구 성과의 탐색-스즈키의 〈조선 후기? 천주교 사상과 ‘정감록’〉비평
가설: 강이천과 국왕 정조는 “문화투쟁”을 벌였다!
2장 사건 스케치-진사에서 불량선비로
유망선비와 불량선비의 갈림길에서
강이천 사건의 재구성
머릿속을 오가는 몇 가지 의문점
죄인들의 심문 현장으로
《일성록》 읽기-1797년 형조의 심문 기록 속으로
3장 정조의 사건 처리-소품을 박멸하라
문화투쟁이다!
소품과 천주교와 강이천 사건, 그 3자의 관계
소품이 사학으로 가니
정조의 “문체반정”, 어떻게 볼 것인가
천주교를 거론하지 마라
1790년대 조선 천주교회의 교리 지식과 교리서
4장 신유박해의 소용돌이에서
강이천 사건, 재연되다!
《노상추일기》에서 만난 강이천 사건
《추안급국안》에 드러난 강이천의 심문 전략
강이천과 김건순의 서울 회동
사료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미궁에 빠지기 쉬운 역모 사건의 해석
강이천의 죽음, 어떻게 볼 것인가
자료 더 읽기: 주변인들의 최후 진술
5장 천주교와 김건순
김건순은 왜 천주교를 선택했는가
천주교와 지식인
서양 배와 천주교
역사학의 글쓰기
6장 여언餘言: 그들을 위하여
정조의 이념적 경직성, 고도로 계산된 통치 전략
강이천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꿈꾼 세상
김려, 그와 강이천의 우정에 대하여
김건순을 말한다
소수자의 시선 - 김이백과 이주황과 김신국의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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