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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실기

시리즈 : 한길 그레이트북스 [197]

박은식 저 | 이종란 역 | 한길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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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5664085 / 464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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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간 100주년 만에 다시 빛을 보다
올해는 한일병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이 책 『왕양명실기』도 『소년』지에 실려 일제로부터 판매를 금지당한 지 100주년 만에 우리말로 옮겨져 빛을 보게 되었다. 더구나 독립운동가의 저작이니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고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왕양명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한국철학사에서 박은식의 주자학 비판과 양명학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를 중견철학자 이종란이 일일이 역주를 달아 우리말로 옮겼다.

완역에다 충실한 역주
1. 1910년에 출간된 『왕양명실기』를 최초로 완역했다.
2. 일반 교양 독자를 위해, 옮긴이가 직접 1,080개의 주를 본문 아래 달아놓았다.
3. 전공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책의 말미에 한자 원문을 함께 실었다.
4. 전공자를 위해 저자가 저술에 참고한 책의 내용과 원문을 비교해 역주에 표기하였다.
5. 읽기 편하도록 목차를 나누었다(원본에는 목차 구분이 없다).
6. 주인공의 삶과 사상, 문학작품이 함께 어우러지고, 저자의 의견이 곳곳에 독후감처럼 들어 있다.
7. 내용의 흐름이나 문체가 학술서적처럼 딱딱하지 않고 소설 같은 느낌이 들어, 읽기에 편안하고 즐거움을 준다.

저술 동기는 국권의 회복
박은식은 우리 근현대역사에서 큰 별과 같은 인물이다. 애국계몽운동과 구국운동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냈다.
특히 박은식은 역사기술을 통해 근대 민족주의를 확립시킨 인물이다.
이 책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우리 역사에서 유교를 개혁하고자 하는 최초의 주장이다. 조선 역사의 주자학 일변도의 풍토에서 양명학으로 개혁하자는 시도는 쉽지 않았다. 아니 양명학을 공부하는 자체도 공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양명학 연구자가 적은 것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주자학을 비판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엿볼 수 있어 학술적인 가치도 크다.
다음으로 우리 철학사에서 볼 때 양명학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견해이다. 이전에 양명학을 연구한 몇몇 학자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은 저자가 처음이다.
또 왕수인과 양명학에 대한 대중적 소개이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다. 왕수인의 소설 같은 삶을 주로 소개하면서 관련된 사상을 전해준다. 옮긴이가 그것을 고려하여 어려운 학술용어나 개념은 가급적 역주에 자세히 풀었다.
특히 왕수인의 지행합일적인 삶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며,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삶을 통해 합일될 수 있는지 방법을 제공해줄 것이다. 극단적이지도 교조적이지도 않은 그의 유연하면서도 치열한 삶과 태도에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문학·교육·군사학 등에 대한 실천적 사례이다.

옮긴이 이종란은 한국철학을 전공하고 『주희의 철학』과 『왕부지 대학을 논하다』 등을 번역했으며, 여러 권의 저술을 낸 중견학자로 이 책을 완역하느라 꽤 긴 시간 동안 분투했다. 저자가 저술에 참고한 책을 일일이 찾아 대조하고 방대한 역주를 달았다. 양명의 일본판 『연보』, 명말청초의 황종희(黃宗羲)가 쓴 『명유학안』(明儒學案), 청말 양계초가 쓴 『덕육감』(德育鑑), 다카세 다케지로(高瀨武次郞)의 『왕양명상전』(王陽明詳傳)을 구해 일일이 대조하였다.

판매를 금지시키다
이 책은 구한말 애국계몽사상가이자 언론인·교육자·역사학자 및 저술가·독립운동가,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중국 명나라 때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책이다. 그가 이 책을 쓴 의도는 한국판 종교개혁운동이다. 그 서막이 「유교구신론」이란 논설이며, 이어 유교를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전통의 주자학이 국권을 회복할 동력을 이미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1910년이다. 그러니까 학문이자 종교인 유교를 개혁하자는 조선 최초의 주장이다.
그런데 최남선이 그 내용을 모두 『소년』에 실었으나, 일제는 이를 불온서적이라고 판정하고 판매를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소년』지까지 폐간시켜버렸다. 당시 당국자의 시각에서는 문제 있는 글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보면 일제를 비방하거나 정치적인 구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양명학이 지닌 지행합일의 정신이 조선독립운동에 실천적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은식은 철학자·교육가·군사지휘관·문학가인 왕수인의 소설 같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하여 어떻게 진리가 발견되고, 그것이 곧장 실천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양명학을 관념의 교조성에 빠진 죽은 학문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이 하나가 되어 현실을 개선하거나 변혁시키는 살아 있는 학문으로 보았다.
이 책은 학술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다. 한국철학사에서 양명학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주자학 일변도의 학문풍토 속에서 몇몇 학자들에 의해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은식에 이르러 비로소 양명학의 가치를 공공연히 주장하였는데, 양명학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더구나 박은식의 독특한 해석은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학술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박은식
저자 : 박은식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이며, 필명으로 무치생(無恥生)·태백광노·창해노방실(滄海老紡室)·백치(白痴)를 사용했다. 그는 한국 근대사상 격동기에 활동한 유학자, 근대 학교 운동의 선구자, 교육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으로 1911년 망명한 후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우며 성장한 주자학자였으나, 변화와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주자학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陽明學)으로 학문적 전환을 결단했다. 그는 이러한 사상적 변화와 함께 1898년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독립협회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그 후 경학원 강사,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교육 개혁에 관한 글을 쓰고, 1904년 ≪학규신론(學規新論)≫을 간행했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보호국으로 만들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이를 비판했다. 그는 이후 복간된 <황성신문>에서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는 항일 언론 활동을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펼쳤다. 또한 1906년 교육계몽단체인 서우·서북학회의 기관지인 <서우>·<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논설을 써서 계몽 활동에 진력하고, 서우사범학교·오성학교·서북협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 힘썼다.

1909년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해 유교 개혁을 주장했다. 이어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대동교(大同敎)를 창건해 유교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양명학 보급을 위해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를 간행하고, 한문교과서 ≪고등한문독본≫을 저술했다. 병합 후에는 독립운동과 국혼이 담긴 역사서의 집필을 위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의 환인현(桓仁縣)에 있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저술에 집중했고, 대종교(大倧敎) 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했다. 이때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을 집필했다.

1912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동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했다. 1914년에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어잡지 <향강(香江)>의 주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강유위(康有爲)·양계초(梁啓超)·당소의(唐紹儀)를 비롯한 중국혁명동지회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안중근전(安重根傳)≫을 저술하고, 망명 후 꾸준히 집필하던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상해에서 이상설(李相卨), 신규식, 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또 신규식 등과 함께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을 조직해 단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인촌의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강연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 ≪발해사(渤海史)≫와 ≪금사(金史)≫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준전(李儁傳)≫을 저술했다.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 이때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1919년 8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정부, 서울 한성정부의 통합에 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으며, 대한교육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시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집필을 시작해 1920년 12월에 간행했다. 이후 ‘건국사’를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역자 : 이종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하고 최한기(崔漢綺)의 철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철학)를 받았다. 한국방송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 출강하였다. 현재는 조선대학교 우리철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최한기의 운화와 윤리』『전래동화·민담의 철학적 이해』『전래동화 속의 철학1-5』『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논어』『한국철학스케치』(공저) 등이 있고 다수의 철학동화가 있으며, 번역서로는『운화측험』『왕양명실기』『공제격치』『주희의 철학』(공역)『왕부지 대학·중용을 논하다』(공역)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종란
옮긴이 이종란(李鍾蘭)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성국관대학교에 출강했다. 주요 저서로는 [최한기의 운화와 윤리], [전래동화 속의 철학], [전래동화·민담의 철학적 이해], [이야기 속의 논리와 철학], [청소년을 위한 철학논술], [강좌 한국철학](공저), [최한기의 철학과 사상](공저), [혜강 최한기](공저), [한국 철학 사상가 연구](공저)가 있다. 철학동화로 [최한기가 들려주는 기학 이야기], [주희가 들려주는 성리학 이야기], [이이가 들려주는 이통기국 이야기], [왕수인이 들려주는 양지 이야기], [정약용이 들려주는 경학 이야기], [박지원이 들려주는 이용후생 이야기], [신채호가 들려주는 자강론 이야기], [서경덕이 들려주는 기 이야기], [김시습이 들려주는 유불도 이야기], [성인이 되려면], [물 흐르듯 살아라]와 한국철학 이야기인 [한국철학 스케치](공저)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주희의 철학](진래, 공역), [왕부지 대학을 논하다](왕부지,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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