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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4115 / 391쪽 153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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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다산의 후반생 다산 정약용, 유배와 노년의 자취를 찾아서 『다산의 후반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후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정조 치하 초계문신으로서 승승장구하던 다산의 운명은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801년 11월, 다산은 천주학쟁이라는 죄목의 칼을 쓰고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형 정약전과 함께 기나긴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 모진 세월이 18년이다. 긴 유배 생활을 끝내고 고향 마재로 돌아온 다산은 다시 18년간 일민(逸民)으로서의 ... 다산의 후반생 다산 정약용, 유배와 노년의 자취를 찾아서 『다산의 후반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후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정조 치하 초계문신으로서 승승장구하던 다산의 운명은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801년 11월, 다산은 천주학쟁이라는 죄목의 칼을 쓰고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형 정약전과 함께 기나긴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 모진 세월이 18년이다. 긴 유배 생활을 끝내고 고향 마재로 돌아온 다산은 다시 18년간 일민(逸民)으로서의 삶을 살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1801년을 정점으로 하여 마치 곧장 수직낙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산은 유배지에서 많은 제자와 지인을 두었고, 6백여 권에 달하는 수많은 저서를 내놓았다. 이러한 다산의 후반의 삶을 낙척한 선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사람이 이루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위대한 업적을 단순히 ‘기적’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 속에는 다산의 치열한 삶이 녹아 있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연민마저 느껴지는 다산의 면모, 그리고 다산 곁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준 사람들의 열기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저자는 프로 사진작가이다. 이 책에 수록된 90여 컷의 사진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전라도 강진에서 그리고 경기도 마재에서, 다산이 걸었던 길을 저자는 함께 걸었고, 그 길을 카메라 렌즈에 핍진하게 담아냈다. 이 책의 저자는 다산이 태어난 해와 사도세자가 죽은 해가 같다는 묘한 인연으로 이 책의 서두를 열고 있다. 1762년,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해에 다산은 태어났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正祖)의 치세에 젊은 각신(閣臣)으로서 기량을 발휘하던 다산은 정조의 갑작스런 승하로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다. 다산 또한 사도세자처럼 질곡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을까. 이후 다산은 36년의 긴 시간을 유배와 해배의 삶으로 채워야 했다. 이 책에는 동문 매반가의 주모, 제자 황상, 혜장선사, 초의선사, 윤단 가족, 석천 신작, 부인 홍씨 등 다산의 후반생을 함께한 이들이 매 꼭지마다 거론되고 있다. 이들과 주고받은 대화, 이들에게 지어준 시문 등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이들과 함께 만들어간 다산의 기적과도 같은 치열한 삶을 매 꼭지마다 보여주고 있고, 유배 직후부터 삶을 마감하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다산이 남긴 시문집을 비롯해서 다산과 교유한 주변 인물들의 문집까지 모두 검토하여 사실을 바탕으로 다산의 후반생을 재구성하였다. 너무나 치열했던 삶, 다산의 후반생 36년 유배 18년 ― 감시가 창작의 원동력이요, 함정이 곧 학문의 산실이 되었다!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고 순조를 앞세운 정순왕후와 노론(老論) 세력이 정권을 잡을 무렵, 궁에 남은 남인(南人)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노론 세력은 지난 정권의 실세들을 내몰기 위해 적당한 죄목을 찾던 중 천주교라는 기막힌 건수를 찾아냈다. 정약용은 비록 정조 생전에 천주교를 배교했지만, 어떻게든 옭아 넣으려는 그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자형이 이승훈이었고, 외종형이 윤지충이었고, 그의 셋째형이 정약종이었다. 이들은 1801년 신유사옥 때 모두 죽임을 당했다. 다산은 정조 승하의 슬픔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유배의 길에 올랐다. 북풍에 눈 날리듯 남쪽 강진의 밥집까지 밀려 왔네. 다행히 조각산이 바다를 가려 총총한 대나무로 세월을 삼는구나. 옷이야 남녘이라 겨울에도 덜 입지만 근심이 많아서 밤에 술을 더 마시지. 한 가지 일이 나그네 걱정 겨우 잊게 해 주니 동백이 설도 전에 벌써 꽃피운 거라네 ― 「객지에서 마음에 품은 생각을 쓰다」(이 책 28쪽 참조) 유배지에서 느꼈던 다산의 막막함과 두려움을 그나마 씻어준 것은 남녘땅의 붉게 물든 동백이었다. 설날도 되지 않았는데, 남녘의 성급한 봄꽃은 벌써부터 꽃망울을 틔웠다. 지금도 강진 땅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는 세월의 켜가 쌓인 울창한 동백숲이 있다. 유배는 다산의 인생에서 불행의 시작이었다. 기어코 다산만은 죽여야 한다고 벼르던 그들은 유배로는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현감 이안묵을 강진으로 내려 보냈다. 게다가 강진 사람들은 마치 전염병 환자를 대하듯이 다산을 멀리했다. 천주학쟁이의 죄목을 쓰고 왔으니, 행여 다산과 가까이했다가 함께 천주학쟁이로 몰릴까 두려웠으리라. 이런 갑갑하고 암울한 현실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준 건 동문 매반가의 주모였다. 그녀는 강진읍성 동문 밖에서 매반가 즉 밥을 파는 집을 운영하던 할멈이었다. 동문 매반가의 할멈은 다산에게 잘 곳을 마련해주었고, 이후에는 근처 마을의 학동을 가르치게 해서 다산 스스로 살 수 있는 길도 터주었다. 비록 동문 매반가의 주모가 보살펴주긴 했지만, 현감 이안묵의 감시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던 다산은 좁은 골방에서 자연스레 집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의 6백여 권 저서 창작의 원동력이 바로 이들의 감시였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동문 매반가 주모의 주선으로 학당을 연 다산은 그의 평생의 제자 황상과 이학래를 만나고 그의 집필에 도움을 준 혜장스님, 초의스님 그리고 여러 학인들과 교유하게 되었다. 대밭 속의 부엌살림 승려에게 의지하는데 가엾은 그 승려 수염이며 머리카락 길어져 묶어야 했네. 이제는 불가 계율 타파한 채 싱싱한 물고기 잡아 국까지 끓인다네. ― 「다산화사」 중 ‘스님’(이 책 163쪽 참조) 위 시는 다산이 동문 매반가에서 보은산방으로 옮겨 살다가 다시 다산초당으로 옮겼을 무렵 혜장선사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혜장은 다산초당 옆에 초막을 짓고 직접 음식 수발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혜장 또한 큰 스님이었으니 직접 수발을 들었다는 건 과장이라 해도, 그만큼 정성을 들여 다산을 모셨다는 말일 것이다. 다산의 제자 이학래는 자그마치 20년간 다산을 모시고 그의 집필을 도왔다. 다산의 저서 상당수가 이학래에 의해 정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학래의 마지막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말라고 했던 다산과 등지면서까지 과거시험을 통한 출세욕을 불태우던 이학래는 나이 칠십이 될 때까지 과거시험만 보다가 결국 마지막엔 우물에 빠져 죽었다. 자살이라는 설도 있지만, 실수로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다산의 업적은 하늘의 도움이었다. 유배지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다산에게는 기적의 산실이었고, 기적의 거름이었다. 심지어 다산과 함께 유배길에 올랐던 다산의 둘째형 손암 정약전도 다산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당시 손암은 우이도와 흑산도를 오가며 유배생활을 했고, 다산은 손암에게 자신의 글을 보내어 확인받고 질정하고 또 보완했다. 애초에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가게 된 것은 그곳에 천주교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산을 죽이려 했던 노론 세력은 죽일 명분이 없어 할 수 없이 유배를 보냈지만, 그곳에서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천주교인이 많은 곳으로 보내 어떻게는 옭아 넣으려 했다. 강진 땅은 다산의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의 세거(世居)였다. 처음엔 감시 아래 있었기에 이들과 접촉할 수 없었지만, 결국 다산은 해남 윤씨 집안의 물질적인 도움으로 유배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의식주를 비롯해 집필에 필요한 자료도서까지 해남 윤씨 집안
목차
책을 펴내며
들어가며 | 다산, 사도세자의 죽음과 함께 태어나다
현감 이안묵 | 다산을 감시하러 왔다
동문 매반가 주모 | 수통에 빠진 사람 내라도 돌봐야재!
윤광택가 | 딸을 주지 않겠나
제자 황상 | 스승의 가르침을 잊어 본 적이 없소이
표씨 부녀 | 피로 맺었으니 무슨 일인들
손암 정약전 | 하늘을 읽는 사람이요
혜장선사 | 나를 따를 자가 어디 있소
제자 이학래 | 스승이 곁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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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후반생 36년, 다산이 걸었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