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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43190 / 285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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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미국 땅에 정착한 이민 1세대의 삶과 여정, 한국계 미국 시장 조재길이 전하는 한인 이민사 누... 미국 땅에 정착한 이민 1세대의 삶과 여정, 한국계 미국 시장 조재길이 전하는 한인 이민사 누구의 삶이든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시대는 격동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 거센 파도에 맞서야 하는 삶이었다. 나는 여기에 이민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덤으로 안고 살아야 했다. 아련하기만 한 지난날을 용케 헤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 저자 서문 중 저자는 1974년 암울했던 한국의 정치 상황 속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청소부와 주유소 종업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해, 전산국에서 컴퓨터 오퍼레이터로 일했고, 세리토스 시에 한국인 최초로 부동산 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모았다. 그리고 반정부신문인 ≪코리안스트릿저널≫, ≪라성일보≫를 발행하며 17년간 언론인으로 살았다. 한인사회의 반독재·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을 주도한 결과 파산에 이르렀지만 인쇄소 회사를 차려 재기에 성공했다. 그리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세리토스 시의원을 거쳐 시장에 당선되며 현재 한국계 미국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평생 치열하게 싸우며 살았다고 한다. 차별을 딛고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거듭나기까지, 독재정부의 탄압에 맞서 재기에 성공하기까지, 미국 시장으로 이민자들의 꿈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비와 곡절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 가정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미국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후배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책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격동기를 지나온 우리 모두의 역사이자, 한인 이민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늘 자신이 가진 능력의 10%밖에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과, 잠자고 있는 자신의 능력 90%를 깨우려고 홀로 애쓰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할 수 있고, 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의 목표와 꿈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의 꿈이 헛되지 않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 추천사 중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건너가 살고 있다. 저자는 1980년대 도미해 미주 한인사회에서 대중과 함께했다. 개인적으로 거둔 부와 성공을 뒤로 하고 언론인으로서 이민 1세와 1.5세, 2세의 교량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의 개인사를 보면 미국 땅에 건너간 한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한인사회의 정치력 향상을 목표로 미 주류사회 정치에 뛰어들어 지금 현재 한인사회는 물론 세리토스 주민 모두의 시장으로 새로운 비전을 갖고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한인 정치력 신장은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2세, 3세들이 미국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미주 한인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 1세대로서 자신의 소명은 앞으로 미국 땅의 주인으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일이라 한다. 이 책이 개인사가 아닌 한인 이민사로서의 의미를 갖는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1987년 6월 21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서울국제공원에는 정오부터 수많은 동포들이 태극기, 현수막, 구호판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참여한 동포는 대략 7,000여 명으로 1992년 4·29폭동이 일어나기까지 최대 인파가 몰린 것이었다. 한인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의 취재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는데 동원된 카메라만 13대였으며, 행사 이후 일주일 내내 TV에서 이날의 뜨거운 열기가 보도되었다. 조직력 없이 단지 신문과 방송 홍보만으로 이처럼 많은 인파가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당시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126~127쪽) 북한이 미주동포연합의 결성을 추진하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양분되었다. 나는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남북 화해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통일운동을 지향했다. 그러나 남과 북 양쪽은 모두 자기네 깃발을 들고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미주 통일운동권은 해외운동으로서의 독자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조직구성원의 의사보다는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지 여부에 의해 조직이 좌우되는 실정이었다. (중략) 나는 남과 북 그리고 한국의 정치권과 운동권 사이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무비판적으로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의 결정을 추종하는 해외 운동권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197~199쪽) 영어의 기초가 없는 내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운동에 영어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 전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는 가정방문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다. 가정방문을 하다 개에게 물리기도 하고, 손전등을 들고 늦은 시간에 다니다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239쪽)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지만 내 의지나 능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소년의 꿈은 태평양 너머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와 담을 쌓고 살기 위해 전공을 컴퓨터로 바꾸고 비정치적인 광고전문지 ≪주간광고≫를 만들었으나 시대적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 섰다. 이민 1세로서 높은 언어장벽에 눌려 영어가 유창한 젊은 세대의 뒷바라지를 나의 사명으로 생각했으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 주류사회에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내 의지대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281쪽)
위스콘신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들고 미국 땅을 밟았지만 나는 위스콘신 주는 가보지도 못한 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그리고 청소부와 주유소 종업원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전산국에서 컴퓨터 오퍼레이터로 출발해, 프로그래머로 미국인들이 10년 이상 걸린다는 매니저 직급의 작업조정관까지 3년 만에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그 뒤 ‘유리천장(여성이나 소수계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에 회의를 느껴, 한국인 최초로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 나와 말똥 냄새 나던 세리토스 시에 한국인 최초의 부동산회사를 세웠다. 내가 내건 ‘LA의 베드룸 세리토스’라는 구호는 세리토스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15쪽)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일요판에 나오는 구인광고를 보고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오퍼레이터로, 아내는 키펀치 오퍼레이터로 직장을 찾아다녔다. 영어를 잘 못해서 전화로 미리 약속을 하고 가는 식이 아니라 광고에 주소가 있는 곳만 골라 지도를 보고 무조건 찾아갔다. 처음에는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금방 취직이 될 것이라 기대했으나 곧 미국인들의 몸에 밴 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찾아다녀 보아도 대게 미국에서 쌓은 경력과 학력만 물어보고는 제대로 인터뷰를 해주지 않았다. (83쪽)
회사가 제법 규모를 갖추고 활기차게 돌아가던 1980년 4월이었다. KBS에서 취재팀이 찾아왔다.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나를 소개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내가 ‘세계 속의 한국인’ 1호로 선정된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당시는 한인사회를 대표할 다른 사업체나 인물이 없던 시기라, 10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모았으며 많은 한국인 직원들이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부동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내가 그나마 적합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108쪽)
종합주간 신문 ≪코리안스트릿저널≫은 한인사회의 문제점, 한인타운의 현실과 미래상 등 기획연재와 한흑관계, 노동문제, 민권운동 등을 심도 있게 다룬 특집기사들로 독자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한인언론이 비판의 성역으로 여겼던 한국의 정치상황, 총영사관, 언론, 기독교계에 대한 비판과 반전·반핵·평화운동, 한반도 핵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도 성역 없이 다루었다. 이렇다 보니 스트릿저널의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121쪽)
안기부와 총영사관의 공작으로 나는 한인사회의 여러 단체와 동창회로부터 소외되고, 심지어는 가깝게 지내던 친지나 이웃과도 점차 멀어졌다. 친구들과 동문들이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였기 때문이다. 간혹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슬프고 황당했던 것은 모임에서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였다. (126쪽)
1987년 6월 21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내 서울국제공원에는 정오부터 수많은 동포들이 태극기, 현수막, 구호판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날 참여한 동포는 대략 7,000여 명으로 1992년 4·29폭동이 일어나기까지 최대 인파가 몰린 것이었다. 한인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의 취재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는데 동원된 카메라만 13대였으며, 행사 이후 일주일 내내 TV에서 이날의 뜨거운 열기가 보도되었다. 조직력 없이 단지 신문과 방송 홍보만으로 이처럼 많은 인파가 자발적으로 모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당시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기는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126~127쪽)
북한이 미주동포연합의 결성을 추진하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양분되었다. 나는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남북 화해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통일운동을 지향했다. 그러나 남과 북 양쪽은 모두 자기네 깃발을 들고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미주 통일운동권은 해외운동으로서의 독자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조직구성원의 의사보다는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는지 여부에 의해 조직이 좌우되는 실정이었다. (중략) 나는 남과 북 그리고 한국의 정치권과 운동권 사이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무비판적으로 북한의 조평통이나 한국 운동권의 결정을 추종하는 해외 운동권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197~199쪽)
영어의 기초가 없는 내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운동에 영어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어 전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는 가정방문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다. 가정방문을 하다 개에게 물리기도 하고, 손전등을 들고 늦은 시간에 다니다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239쪽)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지만 내 의지나 능력으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어린 소년의 꿈은 태평양 너머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와 담을 쌓고 살기 위해 전공을 컴퓨터로 바꾸고 비정치적인 광고전문지 ≪주간광고≫를 만들었으나 시대적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 섰다. 이민 1세로서 높은 언어장벽에 눌려 영어가 유창한 젊은 세대의 뒷바라지를 나의 사명으로 생각했으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 주류사회에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내 의지대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281쪽)
목차
추천사
기적 같은 꿈 _유재건
조 사장, 조 박사 그리고 조 의원 _은호기
머리말 축복받은 삶
제1부 농민의 아들, 세계 속의 한국인 1호가 되다
1.농민의 아들
2.청춘, 멈춰버린 시한폭탄
3.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제2부 참언론,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1.‘바른 언론’을 지향하다
2.민주화운동의 대변지 ≪코리안스트릿저널≫
3.민족화해와 통일의 지렛대
제3부 오늘도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달린다
1.60대에 이룬 아메리칸드림
2.한국계 미국 정치인으로 새로운 출발
맺는말 ‘나’의 거울에 비친 자화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