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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2734 / 232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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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총 인원 500명, 289일의 시간, 574여 리의 거리, 18세기 외교현장 속 통신사의 행렬을 따라가다! 신묘통신사, 즉 제8차 통신사행은 에도 막부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德川家宣)의 쇼군직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총 인원은 정사 조태억, 부사 임수간, 종사관 이방언 등 삼사를 포함하여 500명이었다. (중략) <등성행렬도>는 길이 41.72m, 폭 27cm의 긴 두루마리 그림이며, 여기에 나타난 행렬 순서는 크게 선두 호위, 통신사 행렬, 후미 호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략) 그리하여 선두와 후미 호위를 포함한 일본 무사단의 호위가 실로 다채로운 구성을 이루며 2,0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행렬을 펼친 것이다. - 본문 중 조선시대의 대일본 외교관들이었던 조선통신사에 대한 책이다. 조선 후기 통신사를 통한 한일 문화교류는 에도시대 이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도 일본 각 지역 사회 속에 잔존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공부는 지금은 잊히고 만 조선시대의 전통적 한국미 및 한국 문화의 원조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현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전개·확대되고 있는 한류열풍의 정체성 파악에도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 신간 출간의의 여태까지의 조선통신사 연구는 양국의 외교사적 측면이나 통신사절이 남긴 시문과 관련된 연구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때문에 조선통신사가 실제로 어떤 준비과정을 거쳐 외교 업무를 수행했는지, 그들이 어떤 노정을 거치며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실제 에도에 도착했을 때의 의례절차는 어떠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고문서와 회화자료를 통해, 에도 막부의 준비체제 및 다이묘 등이 중심이 된 일본 전 지역에서의 준비 과정, 행렬 중 에도성 입장 과정, 에도성 내 구조 및 국서전명식 의례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조선통신사 연구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이진희 씨를 비롯하여 강재언, 김달수, 신기수 씨 등 재일본 역사학자들이 일본 내 조선통신사 관련 연고지 답사를 통해 통신사 관련 문헌자료 및 회화자료, 공예자료들을 대량으로 발굴하고 나아가 많은 고문서류도 발견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교포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시작된 이 작업은, 재일교포뿐만 아니라 일본인 및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9쪽)
조선왕조의 통신사 일행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이르러 해상 운행에 적합한 날씨를 기다린 후, 쓰시마에서 마중 나온 영빙참판사(일명 통신사호행차왜)의 안내를 받으며 배를 타고 쓰시마에 상륙한다. 그리고 다시 제반 준비를 갖추어 에도(江戸: 현재의 도쿄)를 향하여 머나먼 길을 떠난다. 쓰시마에서 오사카(大坂)까지는 해로를, 오사카에서 에도까지는 육로를 이용했는데 모두 수천 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었다. (10쪽)
다시 말해 에도 시대의 중앙 정부에 해당하는 막부를 비롯하여 각 번, 쓰시마 등에서 실제로 어떠한 수속과 절차를 거쳐 통신사 초빙이라는 의사결정에 이르렀으며, 또 구체적인 초빙과정의례를 두고 조선왕조와 에도 막부 사이의 의견 조율은 어떠했던가, 나아가 최종 목적지인 에도에 도착한 통신사의 행적 및 에도성 내 국서전명식의 구체적 의례과정 등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매우 적은 실정이다.
이 책에서는 에도 시대 이후 전래되어온 일본 측 문헌사료 및 우키요에 등의 회화 자료를 통해 당시 일본의 정치·문화·사회 속에서 나타난 조선 후기 통신사 문화교류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그 의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조선 후기 총 12회에 걸친 통신사행 중 제8차(1711년) 신묘통신사행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서 18세기 에도 공간 속의 통신사 모습을 재현할 것이다. (12쪽)
신묘통신사, 즉 제8차 통신사행은 에도 막부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德川家宣)의 쇼군직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총 인원은 정사 조태억, 부사 임수간, 종사관 이방언 등 삼사를 포함하여 500명이었다. 신묘통신사절은 1711년 5월 15일 흥정전(興政殿)에서 숙종을 알현한 후 한양을 출발하여 6월 4일 동래에 입성했고, 항해에 적합한 날씨를 기다려 7월 5일 바다를 건너 쓰시마에 도착했다. 그 후 쓰시마번의 번주가 머무는 후나이(府內: 현재의 이즈하라)에 잠시 머물며 외교문서 및 의례 등에 대한 최종 교섭 절차를 거친 다음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사카를 지나 10월 18일, 최종 목적지인 에도에 입성했다. 그리고 11월 1일 에도성에서의 국서전명식을 마치고 11월 19일 귀로에 올라 이듬해(1712년) 쓰시마를 거쳐 1712년 2월 25일 동래부 좌수영 남천으로 귀국했다. 동년 3월 9일 한양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적으로는 모두 289일, 이동 거리로는 수륙노정 모두 합쳐 574여 리에 이르는 긴 노정의 사행이었다. (18쪽)
쓰시마번은 에도 막부의 지시와 의향을 검토한 후 다섯 차례에 걸쳐 차왜[일본에서는 참판사(參判使)라고 부른다]를 파견하며 통신사 내빙을 위한 실무 준비를 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 쇼군의 서거 소식을 알리는 ‘관백고부차왜(關白告訃差倭)’를 비롯하여 새로운 쇼군의 즉위 소식을 알리는 ‘관백승습고경차왜(關白承襲告慶差倭)’, 이어 통신사 내빙을 요청하는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 통신사를 호위해 부산에서부터 모셔가기 위해 파견된 ‘통신사호행차왜(通信使護行差倭)’,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쓰시마에서 동래로 귀국하는 통신사행을 호위하기 위해 파견된 ‘통신사호환차왜(通信使護還差倭)’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도래한 것을 알 수 있다. (19~20쪽)
제5대 쇼군 쓰나요시의 서거(1709년 1월) 이후 국서전명식(1711년 11월 1일)에 이르기까지 약 2년 반에 걸친 에도 막부의 준비 과정 및 절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 준비 과정은 크게 ①에도 막부 주요 관료진의 조선어용 임명, ② 신묘통신사가 왕래할 각 지역(번)에 대한 어용 분담, ③통신사행이 지나가는 연로변 시가지에 대한 정비, ④에도성 내 국서전명식 준비의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64쪽)
이와 같이 1711년 연초부터 통신사 조선어용과 관련하여 왕복하는 연로의 각 지역에 많은 법령 및 포고문(御触)이 시달되는데, 에도 시가지 정비에 대해서만 살펴보아도 20여 차례 이상의 포고문을 찾을 수 있다. 에도의 경우 국서전명식이 행해지는 통신사행의 최종 목적지라는 점과 긴 체재 기간 등으로 인해 에도 막부의 관심이 특히 집중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3쪽)
통신사 일행의 국서전명식(11월 1일) 및 에도성 연향(11월 3일) 당일의 에도성문 출입 관련 규제가 1711년 10월 15·16·20·27일에 연이어 발포되었다. (82쪽)
통신사의 대규모 행렬이 에도를 향하고 있을 때, 에도 막부는 로추를 비롯하여 각 다이묘·하타모토(旗本) 등을 에도성에 불러 모아 여러 차례에 걸쳐 국서전명식 당일의 의례를 연습하고, 나아가 국서전명식 당일 등성할 참가자의 범주 및 등성 시각, 의례 복장 등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86쪽)
신묘통신사행의 에도 접대를 맡은 2명의 관반 사카이 다다오토(酒井忠音=酒井修理大夫)와 사나다 유키미치는 이미 새벽 무렵 에도성에 입성했으며, 그 외 의례에 참가할 에도 막부의 관료 및 다이묘 등은 오전 8시까지 에도성에 입장하도록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106쪽)
<등성행렬도>는 길이 41.72m, 폭 27cm의 긴 두루마리 그림이며, 여기에 나타난 행렬 순서는 크게 선두 호위, 통신사 행렬, 후미 호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두 호위 및 후미 호위는 일본인이 맡았는데, 바로 에도에서의 접대를 맡은(=고치소닌) 두 다이묘, 사카이 슈리다이부 다다오토와 사나다 이즈노카미 유키미치와 전체 관반인 쓰시마번주 쇼 요시가타에 의한 호위인력(무사단·병졸·짐꾼)이다. 그리하여 선두와 후미 호위를 포함한 일본 무사단의 호위가 실로 다채로운 구성을 이루며 2,0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행렬을 펼친 것이다. (114쪽)
혼마루 내 오히로노마의 준비가 완료되고, 에도 막부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가 오히로노마 상단에 착좌하면서 국서전명식이 시작되었다. 국서전명식은 11월 1일(1711년) 10시경부터 오후 2시까지 약 4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삼사가 오히로노마로 안내되고 이어서 국서 양도 및 삼사의 배례(拜禮)의식, 쇼군의 사주(賜酒)의식 등이 계속되었다. (145쪽)
한편 이날(1711년 11월 4일) 마상재를 시연한 사람은 지기택(池起澤, 34살)과 이두흥(李斗興, 29살)이었는데, 마상립(馬上立)·마상도립(馬上倒立)·마상도예(馬上倒曳)·마상좌우칠보(馬上左右七步)·마상횡와(馬上橫臥)·마신상앙와(馬腎上仰臥)·마협은신(馬脇隱身)·쌍마(雙馬)의 8가지 마상재 곡예를 선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쪽)
1부 에도 막부의 준비 과정
1장 에도막부의 차왜파견
2장 신묘 통신사행 출발
3장 에도막부의 영접 준비
4장 아라이 하쿠세키의 빙례개혁
2부 에도 공간 속의 통신사
5장 통신사의 에도 입성
6장 에도성 등성행렬
7장 에도성의 국서전명식
8장 에도향연과 국위분쟁
9장 에도 출발과 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