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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 성호사설 선집

시리즈 :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1]

이익 저 | 김대중 역 | 돌베개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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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3811 / 301쪽 136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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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글 중에서 저자 성호 선생의 사유와 생애를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만을 선집한 것이다. 성호 이익은 조선 후기 당쟁의 와중?에 낙척한 선비로 살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실로 경이로운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성호는 문학, 철학, 역사는 물론, 정치, 사회, 지리,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집요한 관심, 체계적인 지식, 높은 식견을 갖추었다. 그런데 이런 ‘광범위함’ 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사유의 ‘절실함’과 ‘투철함’이다. 성호는 세상의 ... 이 책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글 중에서 저자 성호 선생의 사유와 생애를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만을 선집한 것이다. 성호 이익은 조선 후기 당쟁의 와중에 낙척한 선비로 살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실로 경이로운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성호는 문학, 철학, 역사는 물론, 정치, 사회, 지리, 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집요한 관심, 체계적인 지식, 높은 식견을 갖추었다. 그런데 이런 ‘광범위함’ 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사유의 ‘절실함’과 ‘투철함’이다. 성호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편견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한 양심적인 학자였다. 성호는 조선 후기 학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의 사상이 곧바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그 대신 후학들이 그 학문을 꾸준히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일례로 다산 정약용은 “학문이 해박한 성호 선생을, 나는 백대(百代)의 스승으로 모신다”고 존경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성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본서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하여, 『성호사설』 중에 긴요하다고 판단되는 글들을 뽑아 엮었다. 투철한 문제의식과 고도의 지적 사유로 이루어진 『성호사설』 박학하신 성호 선생을 내 영원한 스승으로 따르려네. 아름다운 숲에는 열매가 무성하고 커다란 나무에는 가지가 울창하네. 강의하실 땐 모습이 엄격하시고 투호(投壺)하실 땐 예법에 밝으셨다지. 고결하시어 속인(俗人)을 놀라게 했건만 불우했음은 어쩐 일인가. -「성호 선생을 기리며」(최지녀 편역, 『다산의 풍경-정약용 시 선집』, 돌베개, 2008) 위 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성호 이익을 기리며 지은 작품이다. 다산은 십대부터 이익의 글을 읽으며 그를 사숙(私淑)했다. 시구 중에 ‘아름다운 숲’이나 ‘커다란 나무’는 이익의 학문세계를 비유한 말이다. 성호 이익의 삶과 학문은 다산 정약용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다산은 유배지에서 쓴 편지를 통해, “성호 선생도 집안이 화를 당한 이후 이름난 학자가 되셨다. 모두 탁월한 성취를 이루셨으니, 권세가의 부유한 자제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며 아들들을 격려하고 힘써 학문할 것을 주문하였다(「새해 첫날」 중에서―박혜숙 편역, 『다산의 마음-정약용 산문 선집』, 돌베개, 2009).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투철한 문제의식과 폭넓은 지식으로 조선 학술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학자이다. 조선 실학(實學)의 계보는 퇴계 이황 ― 한강 정구 ― 미수 허목 ― 성호 이익 ― 녹암 권철신 ― 다산 정약용으로 이어지는데, 성호에 의해 크게 발전한 실학은 다산에 의해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성호의 대표 저서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숨 막히는 당쟁의 와중에서 만들어졌다. 남인의 집안으로, 몇 대에 걸쳐 번영을 누렸던 성호의 집안은 1680년의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인해 일거에 몰락했다. 성호가 태어나기 한 해 전의 일이다. 성호의 부친은 성호가 태어난 그 다음 해인 1682년에 세상을 떴으며, 성호에게 글을 가르친 둘째 형 이잠(李潛, 1660∼1706)도 1706년에 역적으로 몰려 장살(杖殺)당했다. 어린 시절 병약하기도 했지만, 이런 집안의 배경으로 인해 성호는 일찌감치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학문에만 정진했다. 성호의 학문과 사유의 터전이 된 곳은 경기도 광주(廣州)의 첨성리(瞻星里)이다. 첨성리는 지금의 안산시(安山市)에 속하는데(성호기념관이 이곳에 있다), 이곳은 성호의 선영(先塋)이 있는 곳으로, 집안 대대로 내려온 이곳의 전장(田莊)을 기반으로 해서 성호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생활해 나가며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 전장을 ‘성호장’(星湖莊)이라 한다. ‘성호장’은 성호의 ‘사유의 공간’이었다. 이곳은 농촌이면서도 서울과 매우 가까운 지역이다. 성호는 이곳에서 몸소 양봉(養蜂)과 양계(養鷄)를 하고 농지를 관리하는 등 농촌생활을 하면서 인근 농민들의 참상에 직면할 수 있었으며, 서울이라는 중심지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그 동향을 예의주시할 수 있었다. 성호의 일련의 개혁사상은 이렇게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부딪치게 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지적 대응이었다. 『성호사설』(星湖僿說)도 이곳에서 지어졌다. 애초에 성호가 『성호사설』이라는 제목의 책을 지으려는 의도로 저술에 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호사설』에 수록된 글들은 성호가 40세 전후부터 평소에 공부하거나 생활하거나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떠오른 생각이나 의문들을 적어둔 것들이다. 성호는 그 글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나이가 80세에 가까워지자 그 글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40여년에 걸친 학문의 총 결산이 곧 『성호사설』인 것이다. ‘사설’(僿說)은 ‘자질구레한 논설’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주변 농민들의 참상에 대한 정직한 대응, 선배 실학자의 계승, 꾸준한 학문적 축적 등이 모여 『성호사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천문, 지리, 의학, 생물,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문헌 고증, 사회개혁, 국방, 외교 등 『성호사설』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는 실로 광범위하다. 그래서 흔히 『성호사설』은 백과사전적 저술로 알려져 있고, 이런 통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는『성호사설』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성호사설』은 폭넓은 지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백과사전과 비슷하지만 그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점은 실학자로서의 ‘투철한 문제의식’과 ‘높은 식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호사설』에 담긴 광범위한 지식은 그저 흥밋거리나 ‘지식을 위한 지식’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하층민이 더 잘살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놀고먹는 자들이 특권을 유지하는 부조리를 어떻게 하면 청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부당하게 잊힌 사람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중국 및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선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세계 인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등등의 문제를 구체적이면서도 치밀하고 깊이 있게 파고들기 위해 이런 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역사와 국토에 대한 주체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인식 -울릉도와 독도 등 영토분쟁의 예견과 대안 제시 『성호사설』에서 성호는 고대사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논의를 펼쳤다. 한반도의 고대국가의 국호, 고조선의 영역, 한사군(漢四郡)의 위치, 삼한(三韓)의 위치를 새롭게 고증한 것(「우리나라의 국호」, 「고조선의 영역」, 「한사군에 대한 변증」, 「마한, 변한, 진한」)이 그렇다. 이러한 성호의 연구를 통해 한국사가 엄연한 학문적 체계와 독자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지식인의 ‘자기인식’이 역사적 지평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성호는 고대사 연구를 통해 조선 나름의 문명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다. 단군조선이 중국에 못지않는 문명을 이룩했다는 관점(「우리나라의 국호」, 「고조선의 영역」)이 곧 그러한 문명의식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호가 단군을 한민족의 조상으로 무조건 신비화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단군신화를 둘러싼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의문을 제기하면서 단군신화를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재인식하고자 했다(「단군신화에 대하여」). 이렇듯 성호는 조선의 주체성을 중시했으되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서에 기초를 둔 막연한 애국주의는 경계했다. 이

저자 소개

  • 저자 : 이익
1681~1763. 투철한 문제의식과 폭넓은 지식으로 조선 학술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학자이다. 세계 전체에 대해 전방위적 관심을 갖고 평생 탐구에 매진했다. '성호사설'을 비롯하여 '성호질서', '사칠신편', '예설유편?', '곽우록', '관물편', '백언해'등이 그 성과이다. 그의 학문 정신은 다산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었다.

목차

목차

병아리
벌 이야기
도둑고양이
동물을 대할 때에는
육식에 대하여
파리도 함부로 잡았다가는

『시경』의 애정시
궁핍한 시인의 마음
전쟁에 반대한다
남명(南冥) 시의 기백
어느 이름 모를 선?비의 시
이항복의 만시(挽詩)
백두산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울릉도
조선 팔도의 물산
우리나라의 국호
단군 신화에 대하여
발해의 역사
양만춘, 안시성을 지키다
귀공자에게도 굴하지 않은 장수의 위엄
미천한 몸으로 출세한 사람들
임꺽정과 장길산
임진란 때 활약한 종의 아들 유극량
나라를 빛낸 역관 홍순언
변방의 꿋꿋한 선비 최진첨

젖먹이도 군적에 오르는 세상
여섯 좀벌레
조선의 여덟 가지 병폐
과거 시험의 폐단
나라를 망친 당쟁
붕당을 없애려면
조세 감면의 허점
사면(赦免)의 문제점
거지의 하소연
유랑민의 고통
부모의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면
죽은 노비를 위한 제문
노비 제도의 부조리함
서얼 차별의 문제
환곡 제도의 폐단
토지의 균등 분배를 위하여
무엇을 위해 공부할 것인가
선비가 촌사람만 못하다니
시골 선비, 서울 선비
선비는 늘 가난한 법이다
선비가 참아야 할 여섯 가지 일
내 어찌 좀벌레가 아니랴
콩죽을 먹으며
이민족에 대한 중국의 편견
국제 정세와 생존 전략 1
국제 정세와 생존 전략 2
병자호란에 대하여
전쟁이냐 화친이냐
일본에 대하여
수비에 능한 일본
일본의 승려 겐뽀오
삼포 거주 일본인 문제
서양 선교사 로드리게스
서양 선교사 우레만
안경
서양의 그림
지구는 둥글다
서양의 방성도(方星圖)
아담 샬의 천문 역법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해설
이익 연보
작품 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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