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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선을 찾아서 - 우리고전 100선 13

시리즈 :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21]

홍만종 저 | 정유진 역 | 돌베개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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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3804 / 284쪽 135 x 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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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최근 『청구영언』(靑丘永言)의 편자가 김천택(金天澤)이 아닌 홍만종(洪萬宗)이라는 학설이 제기되면서, 홍만종은 다시금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조선의 지식인으로 살다 간 현묵자(玄?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해동도가(海東道家) 관련 서적인 『해동이적』(海東異蹟)을 편찬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사 및 사학사(史學史)와 관련된 중요한 저술을 여럿 남겼다. 이 책은 홍만종이 20대에서 30대에 걸쳐 지은 세 권의 저서인 『해동이적』, 『순오지』(旬五志), 『명엽지해』(蓂葉志諧... 최근 『청구영언』(靑丘永言)의 편자가 김천택(金天澤)이 아닌 홍만종(洪萬宗)이라는 학설이 제기되면서, 홍만종은 다시금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조선의 지식인으로 살다 간 현묵자(玄?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해동도가(海東道家) 관련 서적인 『해동이적』(海東異蹟)을 편찬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사 및 사학사(史學史)와 관련된 중요한 저술을 여럿 남겼다. 이 책은 홍만종이 20대에서 30대에 걸쳐 지은 세 권의 저서인 『해동이적』, 『순오지』(旬五志), 『명엽지해』(蓂葉志諧) 가운데 각각 일부를 골라 번역한 것이다. 83세로 장수를 누린 홍만종은 70대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저술 활동을 펼쳤지만, 그 사상의 전체적 틀은 청년기에 완성한 이 세 권을 통해 이미 그 대강이 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 한 권만으로도 홍만종의 사상과 저술의 전체적 면모 및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것을 지독히도 사랑했던 조선의 지식인 홍만종 주지하듯 조선 후기 3대 가집(歌集)은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이며, 각 책의 편자는 김천택(金天澤), 김수장(金壽長),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2008년에 발표된 영산대학교 김영호 교수의 諸 논문), 『청구영언』의 편자는 홍만종이다. 그 근거는 새롭게 발굴된 홍만종의 저서 『부부고』(覆?藁)에 실린 「『청구영언』 서문」과 「『이원신보』(梨園新譜) 서문」을 통해서이다. 이 서문에 따르면 『청구영언』은 홍만종이 편찬한 것이고 김천택은 이 책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표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원신보』는 『청구영언』의 속편이다. 사실 『청구영언』의 편자에 대한 의문은 조동일, 강전섭, 조규익 선생 등에 의해 이전부터 이미 논의된 바 있으므로, 이 발견을 통해 학계에서는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청구영언』의 편자가 홍만종이라는 사실은, 기존의 홍만종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바뀜을 의미한다. 한시비평가(漢詩批評家)로서 평가되어 오던 홍만종이 한시뿐 아니라 우리나라 시가에도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도가적(道家的) 성향을 지녔던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이다. 평생에 걸쳐 우리 역사와 문학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많은 저술을 남겼다. 홍만종의 글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어질병(폐결핵으로 추측됨)을 앓았는데, 이것이 지병이 되어 벼슬길에도 나가지 않고 평생을 야인(野人)으로 지내며 독서와 저술에만 힘을 쏟았다. 그가 젊은 나이에 병을 얻은 것은 미루어 짐작컨대 부친 홍주세(洪柱世, 1612~1661)의 정치적 실각과 사망에 따른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1660년 부친 홍주세는 당파 싸움에 연루되어 벼슬이 감등되고 이듬해 사망한다. 풍산(豊山) 홍씨 경화거족(京華巨族)의 후예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홍만종의 벼슬길은 순탄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한때 사마시에 합격해 이름뿐인 벼슬을 얻기도 했지만 이내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의 유배생활까지 겪게 되니, 이후 홍만종은 벼슬에 크게 뜻을 두지 않았던 듯하다. 이러한 건강상의 이유와 정치적 불우로 인해 홍만종은 도가의 양생술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체제 바깥에서 혹은 체제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다 간 도가의 삶과 사상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도가 사상은 홍만종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홍만종의 정신세계를 저류하며 그의 역사의식과 문학정신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해동도가(海東道家)다. 특히 17세기 조선의 도가사상은 존화적(尊華的)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 및 정신문화를 앙양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사상 중 하나였으니, 그가 단군신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산수(山水)의 아름다움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던 것도 이런 도가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홍만종은 일찍부터 우리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특히 단군(檀君)을 ‘우리 민족의 비조(鼻祖)’로 여겨 여러 문헌 기록을 참조해 그 사적을 고증하고 정리하였다. 20대의 저술인 『해동이적』에서부터 시작된 시조(始祖) 단군에 대한 관심은 30대의 저작 『순오지』를 거쳐 만년의 역작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摠目)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속된다. 그리하여 『동국역대총목』에서는 단군을 우리 역사의 정통(正統)으로 내세우기에 이른다. 이는 소위 ‘기자 정통론’(箕子正統論)에서 기자를 단군으로 대치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또한 한말(韓末)의 ‘민족주의 사학’에 중요한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서 의미가 크다. 홍만종은 한문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일찌감치 우리말과 국문문학의 가치를 긍정했던, 선구자적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순오지』에서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83) 등 우리나라 역대 문인들이 지은 가사(歌辭)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노래는 모두 우리말을 사용하는데 간혹 한자가 섞여 있을 뿐 대개 우리글로서 세상에 전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중국과 달리 우리말을 사용하니 당연한 이치다. 이런 노래는 중국의 노래와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대로 보고 들을 만한 것이 많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노래가」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우리말을 사용하니 그 노래도 우리말로 지어진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한글을 ‘언서’(諺書), ‘언문’(諺文) 등으로 낮춰 부르며 한자로 된 문학만을 인정하던 시대에 이처럼 국문문학의 가치에 주목한 것은 매우 선구자적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홍만종의 우리 문학에 대한 관심은 상층의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순오지』에는 우리 농민이 부른 노래가 명나라 장수를 감탄케 하는 일화가 등장하는데, 이는 홍만종이 민중들이 향유했던 민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홍만종은 민간의 설화 및 전설, 야담 등 민중들에 의해 구술된 이야기를 채록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달력에 적은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의 『명엽지해』(蓂葉志諧)는 마을 노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채록해 놓은 소화집(笑話集)으로, 조선 시대 구비문학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홍만종은 민중의 생활 언어에도 주목해 140가지가 넘는 민간의 속담을 채집하여 한문으로 옮겼다. 항간의 아낙이나 아이들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속담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뜻이 깊어 사대부들도 종종 글에 인용하고는 했다며 속담의 가치를 높이 샀다(「우리 속담의 가치」). 이처럼 홍만종은 사대부 지배계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피지배 계층인 민중의 생활 언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었다. 홍만종의 사상적 유연성은 17세기 사상 구도의 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충격 뒤 지식인 사회에는 일련의 사상적 지형 변화가 나타나는데, 한편에서는 정통 성리학 이념이 더욱 강화되었던 반면,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는 도교나 불교, 양명학 등 소위 이단(異端)에 대한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며 주류 성리학의 이념적 편협함을 비판하고 나섰다.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천하에는 유ㆍ불ㆍ도 세 가지가 있는데, 도가와 불가는 견성(見性)을 근본으로 하고, 유가는 인륜을 중시하니, 옷과 음식이 살아가는 데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다.” 홍만종은 17, 8세기의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지식인이었

저자 소개

  • 저자 : 홍만종
1643~1725. 도가적(道家的) 성향을 지녔던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이다. 평생에 걸쳐 우리 역사와 문학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에 몰두해 많은 저술을 남겼다. 시? 비평서로 『소화시평』(小華詩評), 『시평보유』(詩評補遺) 등이 있고, 역사서로는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摠目) 등이 있다. 그 외에 『해동이적』(海東異蹟), 『순오지』(旬五志) 등을 저술했으며, 최근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청구영언』(靑丘永言)과 『고금소총』(古今笑叢) 또한 그의 편저로 보인다.

역자 소개

  • 역자 : 정유진
인하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논문으로『한국ㆍ중국ㆍ베트남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여성형상 비교 연구』가 있다.

목차

목차
우리 땅 우리 역사 _ 『순오지』
동방의 시조, 단군왕검
국사 도선
이성계가 꾼 꿈
귀화인 퉁두란
아아! 고구려
안시성주 양만춘
진시황을 저격했다는 우리나라 장사
일본인이 두려워한 승려 유정
우리나라의 이름
황제 한번 못 해 본 나라
우리말 우리 노래 _ 『순오지』
중국 노래의 음률을 따지는 건 쓸데없는 일
우리에게는 우리의 노래가
중국인이 탄복한 이색의 시 솜씨
우리 속담의 가치
우리가 처음 만든 글자
우리나라의 신선들 _ 『해동이적』
산신이 된 단군
알에서 나온 혁거세
천제의 아들 주몽
삼일포의 네 신선
학을 춤추게 한 옥보고
대세와 구칠
담시 선인
욱일승천한 김가기
간곳없이 사라진 최치원
별의 화신, 강감찬
오백 년을 산 권 도사
세상 밖에서 노닌 김시습
화를 피한 정희량
날 때부터 글을 안 남추
서경덕과 벗한 지리산 선인
도술을 감춘 서경덕
외국어 천재 정렴
술수에 능했던 전우치
전우치를 잡은 윤군평
임진왜란을 예언한 남사고
서경덕의 제자 박지화
물의 신선 이지함
의술에 밝았던 장한웅
검선(劍仙) 장생
곡기를 끊은 곽재우
신선술, 건강과 불사의 비결 _ 『순오지』
신선 수련술과 단학
신선을 만난 정우복
불사의 사람들 1―맷돼지 노인과 목객
불사의 사람들 2―새인간과 털여인
마음으로 병을 고치는 태백 진인의 비결
택당 선생 수련법
조식법
탄진법
도인법
대추씨와 호두 알맹이
마을 노인이 들려준 민중의 이야기 _ 『명엽지해』
농짝에 갇힌 사또
거울 때문에
떡은 다섯 개
수양 매월은 먹 이름
거웃 한 오라기 나누어 갖기
스님이 먹어 봐야 먹은 거지요
약속을 저버린 두 선비
그렇지, 나는 누이가 없지!
이마를 만지면 상객
골동 좋아하다 거지가 된 사람
첫날밤 신부의 내숭
방귀 뀐 사람은 나
다리 없는 신부
너무나 노련한 신랑
며느리보다 더한 시어머니
아가, 몸을 돌려라
생니가 한 자루
서답이 아니라 모자
바둑에 미치면
엉터리 과거 시험
치마끈 푸는 소리
너무 짜요 너무 짜
다리 아래의 방
미련한 종놈
연중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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