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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142012 / 392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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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중국의 역대 역사서에서 발굴해낸 한반도 출신 인물들의 삶의 발자취! 동아시아 세계의 역동적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역사의 장면들!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한국인의 열전(列傳) 『대륙에 서다: 2천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은 한나라에서 청나라 시대까지, 즉 고구려에서 조선 시대까지 지난 2천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불굴의 한국인들을 엄선하여 엮은 열전(列傳)이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중국 대륙을 무대로 활약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 중국의 역대 역사서에서 발굴해낸 한반도 출신 인물들의 삶의 발자취! 동아시아 세계의 역동적이고 국경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역사의 장면들!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한국인의 열전(列傳) 『대륙에 서다: 2천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은 한나라에서 청나라 시대까지, 즉 고구려에서 조선 시대까지 지난 2천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불굴의 한국인들을 엄선하여 엮은 열전(列傳)이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중국 대륙을 무대로 활약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껏 이들은 한국사와 중국사 모두에서 변방의 역사로 취급되어, 오랫동안 중국 역사서의 몇몇 페이지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최근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촉발된 한ㆍ중 역사전쟁으로 이들의 존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외국인에 대한 기록과 평가에 인색한 중국인들의 역사 서술 방식을 상기한다면, 중국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할 만큼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이 옛 한국인들이 중국 대륙에서 겪었던 좌절과 고통, 역경과 영광은 마치 고선지 장군이 ‘세계의 지붕’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던 것에 비길만했다. 저자 최진열 박사는 그동안 외면 받아왔던 역동적인 역사의 주인공들을 엄격한 고증을 거쳐 생생한 필치로 되살려 놓았다. 북위 황실과 몽골 제국의 중앙 정치를 뒤흔든 황후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위대한 장군, 중국 한 복판에 독립 왕국을 세웠던 군벌, 백척간두의 조국을 구한 일개 역관(譯官)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 -황제, 황후, 군인, 유학생, 승려, 역관, 표류자, 인질로 끌려간 세자 등-을 만나며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우리 역사의 장대한 스펙터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대륙에 서다』는 중국사 전공자가 오직 사료에 근거하여 발굴해낸 성과인 만큼, 그 정확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36장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지도 역시 역동적이고 트랜스내셔널한 동아시아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과연 중국 대륙을 지배했을까? 1980년대 재야 학계를 중심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 본토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한민족의 대륙 지배설’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강대한 민족사에 대한 대중적 열망과 결부되면서, 이러한 주장은 한반도에 국한되는 역사 서술을 넘어 북방 유목 민족의 역사까지 우리 민족사의 방계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논지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고대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러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며 사료(史料)와 고고학적 증거에 근거하여 ‘대륙 지배설’의 실상을 밝힌다. ‘대륙 지배설’은 주요하게 고구려와 백제 두 가지 판본이 있다. 고구려의 사례로는 고구려 모본왕이 하북성과 산서성 일대를 침공하여 지배했다는 설과 광개토대왕이 지금의 북경 인근인 유주를 통치했다는 설이 있다. ‘백제의 요서 영유설’은 더욱 유명하다. 『남제서(南齊書)』「백제전」에 백제와 북위의 전쟁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맞대지 않은 백제와 북위가 어떻게 직접 싸울 수 있었을까? 북위의 군대는 기병 중심이므로 바다를 건너지는 않았을 것이고, 백제도 당시에 적이었던 고구려 땅을 경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즉 이 기록이 이치에 맞으려면, 백제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제서』에 따르면, 백제왕은 한술 더 떠서 자기 신하들을 산동성 일대의 태수로 임명해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하기까지 한다. 과연 백제가 중국 본토를 다스린 것이 사실일까? 저자는 여러 ‘대륙 지배설’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민족주의적 감정에 부화뇌동 하지 말고,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를 가지고 신중히 판단하자고 말한다. 중국의 황후가 된 고구려 여인과 치열한 궁정 암투: 고조용, 고영 우리 선조들 중에도 중국 황후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고조영과 고영이다. 고구려에서 북위로 이주한 고조용은 북위 황제(효문제)의 후궁이었으며 비록 그녀가 죽은 후였지만, 그의 아들이 황제(선문제)가 되자 황후로 추존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후의 수렴청정과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태자의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자귀모사(子貴母死)”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들이 귀해지면 어머니는 죽는다.”는 뜻이다. 고구려 여인 고조용은 아들이 태자로 책봉되면서 이 관습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고구려 여인이자 고조용의 조카인 고영은 선무제(고조용의 아들)의 황후가 되었다. 자귀모사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고씨 가문은 북위 황실과 복잡한 겹사돈 관계를 맺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태자로 책봉된 효명제는 고영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고영은 자귀모사의 관행을 내세워 태자의 친어머니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태자의 친어머니가 황제의 친위대와 연합하여 먼저 거사를 일으켜 상황을 급반전시켰다. 고씨 가문은 숙청되었고 고영은 황후에서 강제로 쫓겨나 비구니로 전락했으며 결국 황제의 친어머니의 지시로 살해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독자들은 오호십육국 시대에 고구려인이면서 중국 황제에까지 오른 고운, 원나라의 중앙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고려인 기황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 전성기의 명장들: 고선지, 흑치상지 고선지와 흑치상지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 출신이지만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다가 불멸의 존재가 된 사람들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유민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자 당나라는 이들을 대륙 서쪽의 인구 희박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들은 곧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제국 변방의 수비에 차출되어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마 제국이 게르만 출신 군인들을 용병으로 썼듯이, 당나라도 유목 민족을 군대로 편성하고 그 우두머리를 번장(番將)으로 삼아 변방의 수비를 맡겼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토번(지금의 티벳)으로부터 수도 장안을 방어할 필요성이 컸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교역로인 비단길을 장악하기 위해 서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 중에는 당나라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흑치상지는 토번, 돌궐 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원래 그는 백제 부흥운동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백제인 내부의 분열과 당나라의 회유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부흥운동을 배신하고 같은 백제인들에게 칼날을 돌려야 했다. 전장을 누비며 큰 공을 세웠던 흑치상지는 결국 최초의 여성 황제인 무측천이 주도한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고선지 역시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서역에서 군 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고선지는 “개의 창자를 먹는 고려놈(高麗奴)아!”라는 모욕을 듣고, 각종 모함을 당하면서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평정하는 대업적을 이루었다. 세계사에 보기 드문 명장이었으나 고선지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말았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장안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고선지는 결국 모함으로 억울하게 희생되고 말았던 것이다.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던 신라인들: 장보고 당나라에서 용병으로 일하던 장보고가 당나라 해적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라인들을 목격한 후 완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하여 해적 소탕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장보고는 서해와 남해 해상의 교통망을 완전히 장악하고 신라, 당, 일본을 잇는 삼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왜 그는 처음에 신라 군인이 아닌 당나라의 용병이었던 것일까? 장보고는 6두품
목차
책머리에
1부 삼국 시대 그리고 위진남북조 시대
1장 고구려와 백제는 과연 중국을 지배했을까?
2장 북위를 움직인 고구려인 황후와 외척들
2부 남북국 시대 그리고 당나라 시대
1장 당나라 전성기에 활약?한 명장들
2장 무위의 화와 고구려 유민들
3장 안사의 난과 고구려 유민들의 분투
4장 유학 열풍에 빠진 신라인들
5장 해상왕 장보고와 골품제의 반항아들
3부 고려 시대 그리고 송, 요, 금, 원나라 시대
1장 거란 치하의 발해인
2장 여진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발해인들
3장 몽골에 도취된 임금
4장 호가호위를 즐긴 사람들
5장 몽골 제국을 뒤흔든 여성
4부 조선 시대 그리고 명나라, 청나라 시대
1장 조선 사대부의 중국 여행
2장 나라를 살린 역관 홍순언
3장 조선인 출신 무장 이성량, 이여송 부자
4장 서구 문물에 취한 세자
맺음말
참고 문헌
인명 색인





































